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20
“그거야 개인의 사생활인데, 뭐. 서로 맘에 들면 눈이 맞을 수도 있고. 그러다가 호감이 사라지면 만나지 않고 깨끗이 헤어지면 되는 일이고. 나중에 결혼할 때가 된다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지금 나의 생각은 그래.”
강진경의 말을 듣자 장인걸은 전에 왜 그런 말이 돌았는지 이해가 되기도 했다. 말 그대로 행동했다면 그런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맘에 들면 같이 어울리고 그러다가 흥미가 사라지면 헤어지고 그러니 바람둥이라고 소문이 돌고 헤프다는 말이 돈 것이었다.
“인걸이, 너는 어떻게 생각해?”
권세라가 갑자기 듣고 있던 장인걸에게 물었다. 괜히 끼워들었다가 이상한 소리가 나올 것 같아 조용히 듣기만 했는데 그게 불만인 것인지 응원을 요청했다.
“뭘요? 딱히. 그냥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그런 정도죠. 여기서 내 생각이 중요한 것은 아니죠.”
장인걸은 굳이 이런 자리에서 자신의 생각마저 말해 다시 논쟁을 이어갈 이유가 없어 답변을 회피했다. 괜히 편을 들어 어느 한 사람과 멀어지는 것도 싫었다. 한쪽 편을 들면 2:1로 논쟁을 하게 되는데 그건 후유증이 컸다.
“자, 그냥 마시던 것만 마시고 이만 마치죠.”
장인걸은 벌써 소주를 두 병이나 시켜서 마시는 상황이기에 자리를 정리하자고 했다. 정리를 하지 않으면 했던 이야기 또 하면서 답도 없는 논쟁만 할 것 같았다.
남자인 장인걸이 있기에 아주 노골적인 표현은 자제했지만 내용은 이미 일반적인 이야기 수준을 넘어간 상황이었다. 술이 더 들어가고 이야기가 길어지면 그런 금도도 무너질 것 같았다.
그들은 밖으로 나와서 기숙사로 가려는 권세라 때문에 다시 학교 후문 앞까지 가야 했다. 학점이 좋아서 그런지 권세라는 2학년인데도 기숙사에 있었다. 반면 강진경은 집이 서울이라 집에서 다니고 있었다.
“먼저 가세요.”
학교 후문 앞에 당도하자 권세라에게 먼저 들어가라고 했다. 권세라가 교문 안으로 들어가자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커피 한 잔 더 할래?”
강진경이 그런 말을 하자 장인걸은 고민이 되었다. 착각일 수도 있지만 이건 뭔가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나중에 유행하는 ‘라면 먹고 갈래?’라는 말의 새로운 버전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로 호응하고 싶지 않았다. 먼저 권세라가 기숙사로 들어갔지만 다시 돌아서서 멀리서 지켜보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강진경과 둘이 따로 만나는 것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설사 뭔가 섬을 타더라도 외부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아니, 사실 지금 고등학교 선배를 만나야 해. 그래서 자리를 먼저 정리했고. 나중에 시간을 내서 보자.”
장인걸은 그렇게 말했고 강진경은 다시 말을 하지 않고 시내버스가 당도하자 타고 갔다. 장인걸도 천천히 걸어 자신의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장인걸은 전화가 울리자 바로 받았다. 전화가 와도 그가 집에 있는 시간이 아니면 받을 수가 없었다. 핸드폰이 있다면 부재중 전화가 보이기에 놓치는 경우가 없는데 그것이 불편했다.
“난데. 시현이 아저씨.”
“아, 안녕하세요. 잘 계셨어요?”
장인걸은 갑자기 장시현이 전화를 하자 당황을 했다. 자신이 전화를 하기 전에 통화할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먼저 전화를 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주말에 시간 있어? 토요일 오후에 말이야. 특별한 일이 없다면 시간을 비워두었으면 해서.”
“무슨 일이 있나요?”
장인걸은 행사가 있는지 궁금했다. 사람을 동원하는 일로 보였다. 그렇기에 연락을 한 것이라 짐작하면서 이유를 물었다.
“특별한 행사는 아니고 유현이 형님의 딸 세원이 돌인데 참석했으면 해서. 집안사람과 아주 친한 사람들만 초대하기로 했는데 자네도 연락을 하라고 해서. 선물은 필요 없으니 참석만 해.”
“어디서 하는데요?”
“집, 호텔에서 하려고 하다가 사회 분위기가 그래서 집에서 그냥 조용히 하기로 했어. 집은 한남동에 있어. 주소를 불러줄 것이니 와서 이름을 말하면 될 거야. 다섯 시에서 일곱 시 사이에 오면 될 거야.”
장유현이 돌잔치를 집에서 한다고 하니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알았어요. 참석하도록 할게요. 다섯 시까지 갈게요.”
특별한 약속이 없었기에 바로 참석한다고 했고 주소를 받아 적었다. 버스를 타기도 애매해 택시를 타고 가야 할 것 같았다. 차가 있으면 타고 갈 것인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운전면허는 서울에서 따기 어렵다고 해서 겨울방학에 따놓았기에 차만 있으면 운전이 가능했다.
전화를 끊고 난 후에 양진의 집으로 전화를 했다. 집안일이기에 어른들에게 알려야 할 것 같았다.
“선물은 필요 없다는데 그냥 가도 될까요?”
돌잔치에 초대받은 것을 말 하고 선물 이야기를 꺼냈다. 보통 빈손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돌 반지를 준비하는 것이 예의였다.
“필요 없다는데 준비할 것은 없지. 그쪽에서 먼저 말했다니 그냥 가. 돈도 많이 번다는데.”
아버지와 전화를 마치자 곧 이어서 큰아버지 장태현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마도 같은 전화를 받은 것 같았다.
“너도 장유현네 돌잔치에 가기로 했다면서? 그날 우리도 가기로 했으니 우리 집으로 와서 같이 가자.”
큰집에 모여서 같이 가자고 했다. 큰집의 네 식구가 모두 다 간다고 했다. 그런 자리이니 민기나 은지도 가겠다고 나선 것 같았다.
점심시간에 고등학교 동기들이랑 학생식당에 모여서 모처럼 같이 식사를 했다.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같이 식사를 하고 구내매점에서 원두커피와 음료를 사서 휴게실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전에는 이런 자리 자체를 갖지 않았는데, 이렇게 모여서 이야기를 하는 자체가 신기했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같은 고향, 동문들인데도 다르게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다들 미팅은 해 봤어?”
이정숙이 툭 한 마디를 던졌다. 다들 눈치를 보면서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제 사리분별을 할 나이가 되었기에 사실 여부보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었다.
“나는 한 번 나가 봤는데 별로더라. 우리 과팅이었는데 상대 쪽에서 너무나 성의가 없었고.”
진성민이 경험한 것을 말하자 바로 양석헌도 과에서 미팅을 했는데 성과가 없었다고 말했다.
“나는 미팅에 관심이 없어서. 우리 과에서 하는 것도 같은데 그냥 나가지 않았지. 미팅에서 만나려고 하는 것은 바보래.”
장인걸은 자신에게 시선이 모이자 얼른 대답을 했다.
“나도 한 번 나갔는데 다들 나한테 관심이 별로 없는 것 같더라고. 사랑의 짝대기를 했는데 0표더라. 다시는 안 나가려고.”
이정숙이 그렇게 자폭을 하면서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일곱 명이 나갔는데 0표가 세 명이었다면서 그것으로 비분강개한 표정이 되었다.
“네가 가꾸지 않아서 그럴 거야.”
채지원이 위로를 한다고 그런 말을 했지만 이정숙의 화는 풀리지 않아 보였다.
“정숙이가 조금 컨트리스타일이긴 하지. 남자들이 너의 매력을 잘 몰라서 그런 거야.”
채지원이 생글거리면서 계속 놀리자 이정숙이 노려보았지만 다들 웃자 결국 피식 웃고 말았다.
“나는 형일이랑 연락을 하고 지내는데 자기는 내가 미팅이나 소개팅에 나가는 게 싫다더라. 지가 내 남자친구인지 애인인지.”
형일이란 애는 고등학교 동기로 상원대 의대를 갔는데 채지원에게 대쉬를 하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두 사람이 사귀기 직전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미대에 다니는 학생답게 패션 센스도 꽤나 괜찮아 시골 출신으로 보이지 않았다.
“하여간 이쁜 것들은 다 죽어야 해. 나 같은 호박은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냐는 소리나 들어야 하고.”
이정숙은 여전히 0표의 굴욕을 잊지 못하는지 자학개그를 하여 그 자리에 있는 남자들이 멋쩍은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그런 자리에서 노닥거리는 것 자체가 그리 없었기에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이정숙이 은근히 자신의 반응을 살피는 것이 느껴져 왜 그런지 의아했지만 한편으로 최향림과 친하게 지내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 걱정이 되기도 했다.
심심하면 밤에 전화를 하는 것이 간을 보는 것 같았고 이정숙과 통화를 하는 것도 같았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노닥거리다가 헤어져서 동아리 방으로 가자 방안에는 권세라와 이미향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수업이 있거나 다들 일이 있어 오지 못한다고 했다.
“어제 바로 들어갔어?”
“집에 가방 놓고 나와서 고등학교 선배를 만났어요.”
“진경이가 너한테 관심 있어 보이던데?”
권세라의 질문에 장인걸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곤혹스러웠다. 그런 것을 모를 수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는 척을 할 수도 없었다. 오히려 권세라가 더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우리 동아리에서 암묵적으로 내부 연애 금지 아니에요? 분위기 이상해지는 것은 싫어요.”
장인걸은 삼각관계가 되는 것은 그리 원하지 않기에 얼버무렸다. 그런 이야기를 공론화시켜 문제가 되면 서로 입장이 곤란했다. 그는 강진경처럼 개방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우리는 예술 하는 사람인데 그런 것 없어. 자유로운 영혼들인데 남녀 간에 끌림이 있다면 만나는 거지. 사랑도 이별도 다 좋은 경험이야.”
옆에서 듣고 있던 이미향이 그런 제약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매년 선배들 사이에서 그런 논쟁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대세는 큰 문제만 없으면 무방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요? 하긴 음악에서 사랑과 이별이 가장 많이 다뤄지는 주제인데 그런 제약을 두는 것은 일종의 구속일 수도 있겠네요.”
“그러니 맘에 들면 사귀면 되는 거지. 단, 불미스러운 행위는 절대 엄금이니 그렇게 알고.”
이미향이 성추행이나 성희롱에 대하여는 용서가 없다는 식으로 부연설명을 했다. 사귀다 헤어지더라도 서로 구질구질 말이 나오지 않게 하라는 말이었다.
장인걸은 권세라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자 뭐라고 대답을 하기 곤란했다. 어떻게 반응을 보이건 여자들의 성향을 고려하면 강진경에게 이야기가 들어갈 것인데 곤란했다.
권세라의 모습을 보면 자신에게 관심이 있어 보였다. 이성으로 관심은 아닐지라도 주시하고 있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여기서 강진경을 좋아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 같았다.
이럴 경우에 가장 좋은 방법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기에 달리 말을 하지 않았다 두 여자 모두 뭐라 말을 하기를 기다리고 있지만 장인걸은 말을 하지 않았다.
“참, 선배는 아르바이트 간다던데 공연하는 거예요?”
장인걸이 말을 갑자기 돌리자 멍한 표정을 지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대답을 하지 않고 말머리를 돌린 것이다.
“아니, 과외. 공연은 하지 않아.”
“왜요?”
“아무리 공연문화가 좋아졌다고 해도 대부분 카페인데 그곳에는 술손님이 있기 마련이야. 처음에는 술 한 잔 보내고, 그 다음에는 잠시 인사나 나누자고 하고, 그런 다음에 술 한 잔 같이 하자고 하지. 결국은 술집여자가 취급을 받아. 술자리는 거절했는데 겨울 방학 때 2주 정도 하다가 도저히 아닌 것 같아서 그만두었어. 앞으로 절대로 카페 공연은 하지 않을 거야.”
“하긴 남자들 중에 그런 사람이 꼭 있죠.”
“내가 취미로 음악을 하는 것이지 그걸로 직업을 삼을 것도 아니고. 그래서 공연장에서 공연하거나 결혼식 축가 정도 하는 것이 아니면 아예 하지 않을 생각이야.”
이미향은 특히 미모가 있기에 남자들이 더 집적거리는 것 같았다. 그런 경험 때문에 카페 공연을 하지 않는 것이 아쉬웠지만 그것도 본인의 선택이었다.
“미향이는 예뻐서 그렇지 나는 밴드에서 드럼을 쳐도 누구 하나 술 한 잔 보내지 않더라. 나는 남자처럼 생겨서 그런지. 다 사람 가리는 것 같아.”
권세라가 오히려 부러운 기색으로 말을 했다.
“너보다 뒤에 공연했던 언니는 그런 일이 거의 없다면서?”
“그거야 나이도 40 가까이 되어서 그렇지.”
“네 이 우유빛깔 피부와 얼굴, 몸매가 죄인이지.”
이미향은 권세라가 계속 그렇게 놀리자 아무런 말도 못하고 권세라의 어깨만 몇 대 두들겨서 말을 막았다.
이미향이 한 시간 후에 과외를 가야 한다고 해서 같이 연습을 했는데 그 때까지 다른 사람이 오지 않아 셋만 동아리방에 있다가 같이 밖으로 나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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