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205
“그러면 아홉시 이후에 봅시다.”
김인복은 특별하게 말할 내용은 없지만 같은 처지의 사람끼리 실컷 욕이라고 하고 싶은 마음에 박용하를 불러낸 것이기도 했다. 박용하에게 전화를 하기 전에 박상민에게 전화를 했지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면박만 당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되자 자신을 악의 구렁텅이에 빠뜨린 중도일보 윤구철 차장에게 전화를 했지만 나중에 이야기를 하자고 매몰차게 끊고 말았다. 같이 만나다가 의심을 받을 여지가 있기에 연락을 차단한 것 같지만 서운하기 짝이 없었다.
“무슨 일이요?”
박용하는 방송국 앞에 있는 커피숍에서 김인복을 만나자 퉁명스럽게 용건을 물었다. 잠깐 김인복에 대해서 서너 명의 아는 사람에게 물었고 다들 한마디로 양아치라고 평가를 했다.
“사회부에 있을 때부터 약점을 잡고 협박하여 뒷돈을 받고 앞으로는 광고를 강매하여 인센티브를 챙겼지.”
“아마 집을 서너 채 정도 살 돈을 챙겼지만 결혼한 지 10년이 되도록 전세를 살아. 술, 여자, 경마장까지 다니지. 그나마 약은 안 하는 것이 용해.”
“가까이 해서 좋을 것 하나 없는 인간이야. 혹시라도 장인걸 건으로 공조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면 절대 동조하지 마.”
한마디로 상종해서 좋을 것이 없는 인간이었다. 그럼에도 나온 것은 혹시라도 뭔가 득이 되지 않을까 해서였지만 행색을 보니 도움은커녕 해를 끼칠 것 같았다.
“장인걸 갸를 어떻게든 손을 봐야 할 것 아닙니까? 내가 조금 사람들 관심을 받으려고 기사에 살을 좀 붙여서 썼는데 그것을 가지고 싸가지 없이 지랄을 합니다. 기자가 그럴 수도 있지.”
저녁을 하면서 혼자 반주로 소주를 한 병 마신 상황이니 조금 말이 거칠게 나왔다.
“거기한테도 조금 서운하게 했다고 건방을 떤다면서요.”
김인복의 말투는 기자라기보다는 뒷골목에서 시비를 거는 양아치의 모습이었다. 정직을 당해 출근을 하지 않는 상황이니 차림새나 외모도 노무자나 다름이 없었다.
“시상식에 나오지 않으면 상을 주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그런 것으로 사람들이 뭐라고 하지만 그냥 무시하면 됩니다. 그런데 달리 할 말이 있습니까?”
괜히 엮여서 좋을 것이 없어 보이기에 속내를 비추지 않고 냉랭하게 대답을 했다. 박용하의 태도가 예상과 달라지자 김인복은 정신이 드는지 상대를 노려보았다. 술을 먹어서 그런지 얼굴이 달아올랐고 눈에 핏발마저 서 있었다.
“흐흐, 갸가 참석을 하지 않으면 가요대상이 아니라 망신대상이 되고 마는데 무시를 한다고? 그런 사태가 나면 잘리지는 않더라도 지방으로 쫓겨 가야 할 텐데.”
김인복은 박용하가 태연한 것 같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는 표정으로 재차 이죽거리듯이 말을 했다.
“나도 오보 한 번 냈다고 1개월 정직에 대기발령이 났고 인사팀에서 수도권과 광역시가 아닌 곳을 자원하라고 했는데 MTV에서도 1월 초에 그런 일이 벌어질 것 같은데.”
김인복의 말에 박용하는 아니라고 반박도 못하고 얼굴만 무섭게 변하고 말았다. 화를 내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도 못하는 모습이 재미가 있는지 김인복은 웃기만 했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태연한 척 하는 모습을 비웃고 있었다.
“지금부터라도 작업을 해야 할 것입니다. 지방에 내려간 후에는 작업하고 싶어도 불가능할 것이니.”
“그래서 나도 자폭을 하여 징계를 먹으라는 말인가?”
상대가 먼저 말을 트고 난 상황이니 박용하도 말을 트고 물었다. 평상시에 방송국 사람이 아니거나 인기 연예인이 아니라면 반말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박용하라 김인복에게 반말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재수가 없으면 징계를 먹을 수도 있지. 이래저래 지방에 내려가는 상황에서 징계 먹는 것이 대수는 아니지. 한 방을 먹이면 되는 거야.”
“그래 뭔데?”
“내가 이놈아를 한 달 가까이 쫓아다녔는데 뭔가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여자랑 양다리를 걸치고 있을지 몰라. 실제 걸쳤는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라 그렇게 보인다는 거야. 양념 쳐서 다시 한 번 기사를 내보내야지.”
그러면서 강진경이나 권세라에 대하여 언급했다. 둘 다 친하게 지내고 있다는 말이었다. 물론 둘과 어떤 수상한 행동을 목격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두 여자가 그를 좋아하여 쫓아다니는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놈아가 암흑가 놈들의 비호를 받는 것이 확실해. 연예인이라면 반드시 똥파리가 붙어야 하는데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고 있어. 딴따라치고 깡패에게 두들겨 맞거나 심지어는 그걸 피하려고 무릎 꿇고 빌어 보지 않은 자가 없는데 이놈아는 그런 일이 없어. 오히려 양아치들이 살살 피해. 뭔가 깡패들하고 커넥션이 있어 보여.”
그러면서 박동섭이나 꽁치파의 일을 이야기 하고 흥아 엔터나 문성기획을 인수한 과정에 대해 언급했다. 의혹 수준이지만 이야기를 만들려고 하면 충분한 소재였다.
“흥아 엔터는 영등포의 망둥이 원성환이나 양치리 양성필이 운영하던 회사야. 반면 문성기획은 강남의 리버사이드 파와 연관이 깊어. 다들 깡패들이 운영하는 회사이지. 그런 회사를 인수하면서도 아무런 잡음이 없다는 것은 그들이 밀어주고 있다는 의미이지. 심지어 지참금까지 보탰다고 하더라고.”
“그래서요? 그들이 팬심으로 뒤를 봐주는 것이 문제라면 경호원이나 경비원을 두고 있는 사람이나 기업들 모두가 다 문제이겠군요. 다들 조직들하고 적당히 타협하고 있으니.”
박용하의 반문에 김인복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경호원을 공급해주는 경비용역회사는 암중에 조직들과 공존을 하고 있었다. 그래야 쓸데없는 충돌이 없고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들과 아무런 연관을 맺지 않은 회사는 없었다. 설사 척을 지고 있으면 그 반대편에 우군이라도 있었다.
“함부로 날뛰다가 그냥 날아가는 수가 있습니다. 괜히 깝죽대다가 피를 보는 사태나 당하지 말기 바랍니다. 장인걸씨가 딴따라라고 무시하는데 뒤를 봐주는 거물이 많으니 조심하십시오. 괜히 취임식에 나가고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나간 것이 아닙니다.”
박용하는 반말 비슷하게 말을 하다가 정색을 하고 존댓말을 했다. 이는 완전히 거리를 두겠다는 신호였다. 김인복도 순간 정신이 나는지 자세를 바로 했다. 순간 편집장이 곤혹스러워 하면서 프리웨이의 운영자라고 언급하던 것이 떠올랐다.
“어디 가서 함부로 내 이름을 언급하지 마십시오. 내 이름을 말했다는 소리가 들리면 가만 두지 않을 것이요.”
박용하는 김인복과 엮여서 좋을 것이 없다고 판단이 들어 경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괜히 이런 자리에 나왔다고 생각을 했지만 앞으로 만나지 않으면 될 일이라 생각했다.
장유현은 문창명 감독과 자리를 같이 하고 있었다. KTV 연기대상에서 사실상 장유현의 대상수상과 문창명의 연출상 수상이 확정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일찌감치 축하의 자리를 갖고 있었다.
“오늘 한 사람이 온다고 하는데 오라고 할까요?”
문창명 감독이 난데없이 만나자고 하여 만났지만 굳이 만나야 할 이유는 없었다. 혹시라도 다음 작품에 관한 내용인가 해서 만났는데 다른 용건이 있어 보였다.
“MTV의 문집환 국장과 알고 지내는데 꼭 만났으면 한다고 부탁을 해서 말입니다.”
“가요대상에 장인걸씨가 나가지 않는다고 해서 그럽니까?”
“작년에 MTV가 한 짓이 괘씸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인걸씨가 거기에 나가지 않으면 MTV의 모든 음악관련 프로그램을 완전히 망가뜨리는 사태가 벌어지고 관련 부문이 초토화가 되고 맙니다. 장인걸씨야 마라토너이고 프리웨이를 비롯한 각종 기업을 운영하는 상황이니 그리 아쉬울 것이 없겠지만 가요계 전체를 본다면 적당히 타협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오죽하면 우리 방송국에 연기대상 날짜를 옮기는 것이 어떤지 묻겠습니까?”
이틀 후면 MTV 가요대상과 KTV의 연기대상이 동시에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날 파탄이 나면 새해 벽두부터 MTV 가요대상은 모든 신문의 주요기사로 등장할 것이 자명했다.
물론 그렇게 된다고 해서 MTV가 망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구설수에 오르는 정도이지만 관계자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또한 방송국도 그런 타격을 극복하려면 엄청난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그로 인해 경영상의 어려움도 가중될 수 있었다.
“알았습니다. 만나는 보겠습니다. 필요하다면 설득도 하고요.”
장유현도 작년 연말 이후에 MTV에 출연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굳이 껄끄러운 MTV와 같이 일하고 싶지 않아 은연중에 기피하고 있었다.
문창명 감독이 핸드폰으로 연락을 하자 근처에서 대기 중이었는지 5분만에 나타났다.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니기에 가볍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알다시피 인걸이는 처신이 똑바른 애입니다. 흠잡을 곳이 별로 없지요. 그래서 오히려 많은 사람이 고깝게 생각하면서 해코지를 하려고 하는 면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에게 아주 엄격한 것도 아닙니다. 일정 수준만 되면 문제를 삼지 않습니다. 하지만 딱 자신이 정한 선을 넘는 순간 매몰찰 정도로 냉정해지기도 합니다.”
장유현이 장인걸을 평가하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자 문집환 국장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 말은 MTV의 행위가 참을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났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상을 누구에게 주건 그건 심사하는 사람이 정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는 가요계 상당수를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장 한정수 사장만 해도 노기를 참지 못했고 원로 가수들은 물론이고 원로 연기자들까지 발끈한 상황입니다. 올해 MTV 드라마나 예능이 침체된 것은 명망 있는 분들이 외면한 것도 상당부분 영향이 있을 것입니다.”
문집환 국장은 장유현의 지적에 반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유현이 싫은 소리를 괜히 할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참고 있었다.
“어쨌든 지금의 상황을 원만하게 수습하지 않으면 내년에는 더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장인걸씨를 시상식에 참석시켜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애의 성정을 보면 어지간한 방법으로는 참석시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장유현은 거기까지 말을 하고 일단 말을 끊었다. 사실 그 말을 듣기 위해 찾아온 것이기도 했다. 타협을 하자는 말이지만 그들이 줄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가 않았다.
“접근할 수 있는 것은 그 애가 그나마 프리웨이나 각종 사업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는 점입니다. 그 방향으로 적절하게 방도를 마련하여 찾아간다면 타협이 가능할 것입니다.”
장유현의 말에 문집환 국장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프리웨이나 인터넷을 생각하니 여러 가지 협력이 가능한 부분이 보였다. 프리뮤직이나 프리튜브와 협조를 한다면 서로 윈-윈 할 수도 있었다.
장인걸은 밤늦은 시간이지만 일단 장유현의 전화를 받고 은마기획으로 갔다. 문집환 국장을 만나고 있고 거기서 할 말이 있다는 말이었다.
“저까지 필요한 이유가 있습니까?”
민수길도 동행할 수 있으면 같이 오면 좋을 것 같다는 말에 같이 이동 중에 있었다.
“타협을 하자는 것이겠죠. 파국은 막아야 하니. 그리고 내가 나서서 실무 협상을 하기는 그렇죠.”
장인걸은 벼랑 끝 전술을 사용했지만 방송국의 연말 행사를 파탄 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쉽게 물러날 생각은 없었다. 적당한 수준의 사과와 그에 대한 보상은 받아낼 생각이었다.
‘프리튜브를 위해서는 TV 프로그램의 다시보기 시장을 유치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어느 한 방송국과 기준이 될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방송국도 프리튜브의 회원을 고려하면 결코 손해는 아니다. MTV의 예능과 드라마를 올릴 수 있도록 계약을 체결한다. 이렇게 하면 광고시장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아울러 일부 프로그램은 유료로 책정하여 프리페이의 매출도 노린다.’ 장인걸은 민수길에게 협의해야 하는 방향에 대하여 언급을 했다. 당장 안정만 본부장과 양지원 본부장에게 연락하여 필요한 조언을 받도록 지시했다.
“작년의 시상식이 불공정하게 진행된 것은 사실입니다. 이제 와서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지만 어쨌든 송구하게 생각합니다. 그런 결정을 내린 배경이나 그 후에 행한 각종 변명에 대하여도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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