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214
이철식 회장은 장내에 있는 세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특히 정면에 있는 한정만 전무와 이만손을 바라보면서 화를 내고 있었다.
“1500억 원이 뉘 집 개 이름이야? 그 돈을 가져다가 이룬 것이 아무 것도 없어? 뭔가 성과를 내야 할 거 아니야? 포털이라고 만든 ‘이웃집’은 무려 200억 원이 투자가 되었는데 회원수가 100만 명도 못되는 75만 명, 회원 하나 모집하는데 2만 원이 더 들어가? 프리웨이는 1500만 명을 넘었다는데. 계열사나 협력회사에서 억지로 가입한 것을 제외하면 순수한 회원은 몇 만이나 될지 모르겠군.”
이철식 회장의 질책에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1998년 동안 이룬 e-천명의 성과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프리웨이와 일련의 시리즈가 거둔 성과에 비한다면 10%에 불과했다.
프리웨이가 투자한 금액을 전부 다해도 200억 원 수준이고 광고나 유료관련 매출액까지 전부 다 투자로 환산해도 1000억 원 정도에 불과했다.
“어느 것 하나 프리웨이에 비해 나은 것이 없어. 더구나 천명SDI까지 지원하도록 붙여 주었는데 이런 실적이라니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아. 한 실장, 경제연구소에서는 뭐라고 해?”
“이 보고서가 미국의 스탠포드에서 프리웨이의 의뢰를 받아서 만든 것인데 마침 프리웨이에서 정부에 IT 정책을 수립하는데 참고하라고 건네주었다고 합니다. 관련 공무원들이 하나씩 복사하여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로한나 기술연구소에서 프리웨이에 제출한 보고서는 하나의 지침서처럼 취급을 받고 있었다.
“IT에서 선점의 효과는 상당히 지대합니다. 하지만 그런 선점의 효과도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패러다임을 바꾸면 순식간에 아성이 무너지고 맙니다. 그런 의미에서 프리웨이는 미국의 첨단 IT기업도 하지 못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채택하여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장인걸이란 애가 그 정도로 천재란 말이야?”
“사실입니다. 천명의 정보팀을 모두 다 움직여서 조사한 내용을 보면 프리웨이의 모든 것은 장인걸이 구상하고 솔루션까지 제시한 상태에서 프로그래머는 작업만 한 것으로 나옵니다. 특히 백제그룹에서 인수한 백제화학, 지금은 HR화학의 연구원들의 평가를 보면 모든 연구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이해력을 가지고 있으며 충분한 자료만 제공한다면 순식간에 연구자 수준의 지적능력을 보인다고 합니다.”
한준우 사장의 답변에 이철식 회장은 영 맘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러다가 이만손을 노려보았다.
“공정거래위원회를 움직여서 불공정행위와 독과점 조사를 하자고 한 것은 어떻게 되고 있어?”
“정부의 정책기조가 바뀌고 있습니다. 경제회생을 위해 대기업을 우선했지만 지금은 저들이 주장하는 분배의 정의나 공정경쟁으로 정책의 방향이 옮겨가고 있습니다. 더구나 김성택 경제수석이 그간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얼마 전에 경질이 되면서 우리 쪽 말발이 먹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경로를 통해 조사를 나가는 것을 압박하고 있지만 다들 꺼려하고 있습니다. 불공정행위라고 할 만한 정황이 없습니다. 조사를 한다면 뭔가 적발을 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으니 나갔다가 허탕을 치면 난감한 상황에 처할 것이니 다들 주저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변변한 경쟁자가 없으니 불공정이라고 할 행위 자체가 없었습니다.”
공정경쟁은 먼저 치열한 경쟁이 존재해야 공정성을 따질 상황이 되는데 일방적인 독주로 인해 변변한 경쟁이 없는 상황에서 공정성을 따지는 행위는 의미가 없었다. 팽팽한 경기에서 심판의 역할이 중요하지 일방적인 경기에서 심판이 오심을 저지르면 그것은 겉으로 드러나고 오히려 심판이 심판받게 되었다.
심판에게 평생 먹고살 정도의 대가를 지불하고 미래에 대한 보장까지 해주지 않는 이상 섣불리 가담하지 않을 것이니 매수도 어려웠다.
“프리페이 문제는? 그 자체로 문제가 아닌가?”
“그것도 불공정행위라고 몰아붙일 수가 있지만 전자상거래에 관한 법률을 준수하고 있고 누가 강제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자격만 되면 서비스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그거 금융기업이 아닌가? 금산 분리로 몰아붙이면 갈라치기를 할 수 있잖아? 카드나 다른 업체에 넘기게 하면 안 되나? 그런 다음에 프리페이로 흔들면 될 것도 같은데.”
“그렇게 하려면 관련 법규를 몇 개 손봐야 합니다. 특히 수신행위를 해야 하는데 그런 행위로 몰아붙이기에는 곤란합니다. 프리페이 환전 후에 일종의 예치라고 하지만 그것마저 규제를 하면 실물거래에서 선급금 지급행위 자체마저 불법이 될 수 있습니다. 현재의 법체계에서는 규제가 쉽지 않습니다. 프리페이를 잡자고 관련 법규를 바꾸면 곤란해질 기업이 수도 없이 많아집니다. 당장 우리 천명이나 재계가 결사적으로 개정을 반대하는 몇 가지 조항을 손대야 합니다.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라고 몰아붙이려고 해도 사실상 모든 곳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황이라 차별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독과점이라고 몰아붙여 끼워 팔기를 못하게 만들면 되지 않나? 언론을 움직여서 그렇게 몰아붙이는 것이 어때?”
“언론사도 프리웨이의 눈치를 보기에 불가능합니다. 괜히 이상한 기사를 냈다가 언론사가 먼저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 보고서를 모든 공무원들이 보는 것처럼 산업 표준을 그들이 만들고 있는 상황이라 공무원들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오히려 호된 역풍을 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 쪽의 관료들도 있지 않아? 최소 국장급들을 움직이면 아래에서는 따르게 마련이잖아?”
이철식은 끊임없이 몰아붙였지만 한준우 사장은 계속 반박했다. 억지로 해서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었다. 그런 억지를 관철시키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우리는 제조업입니다. 그 분야 집중하라는 것이 지금 정권의 주문입니다. 그런 기조로 빅딜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전과 달리 우리의 영향력도 한계가 있습니다. 이번 정권은 기존 정권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경제위기 때문에 자제를 했지만 이제 조금씩 상황이 호전되니 본색을 드러내려고 합니다. 더 나섰다가는 VIP의 심기를 거슬려 표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한준우는 장인걸을 권력의 힘으로 누르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자인했다. 천명의 영향력에 비해서는 약세지만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상황은 아니었다.
“지금 미국에 가 있는데도 회사는 잘 돌아가고 있더군.”
“내부결재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미국에서 있지만 필요한 보고는 바로 할 수가 있고 결재를 받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 천명보다도 그런 면에서 잘 되어 있다는 평가입니다.”
전자결재시스템은 재벌그룹에서 1~2년 전에 도입을 하기 시작했고 천명그룹은 모든 계열사가 작년 말에 도입을 완료했다. 국내에서 가장 최첨단이라고 자부할 수가 있는데 프리웨이가 그런 시스템보다도 더 잘되었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우리는 SDI와 MS가 공동으로 개발하여 적용하지 않았나? 그거 실력이 좋으면 해킹으로 살펴볼 수도 있지 않아?”
“그렇습니다. 하지만 거기는 차세대 방식인 클라우드 시스템을 채택했다고 합니다. 95년에 AT&T에서 시작한 것 말입니다. 전문장비가 있어야 해서 개인은 힘듭니다. SDI 수준에서 추진해야 하는데 어렵습니다. 해킹을 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요즘 그거 반도체 부문에서 나오는 말이잖아? 그거 때문에 전용서버가 필요하고 메모리 반도체의 수요가 획기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면서 그에 따른 낸드 계열의 투자가 필요하다면서?”
“맞습니다. 그런 개념이 있지만 아직 상용화 자체가 요원한데 장인걸이 도입을 하여 실질적으로 구현한 것으로 보입니다. 관련 특허도 여러 건 출원했는데 나중에 문제가 될 소지도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포털 중에서 가장 첨단의 시스템을 갖췄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걸 다른 포털에서 도입하려고 했지만 운영프로그램 자체가 없어 실패하고 있습니다.”
베끼려고 하지만 베끼지 못하는 것이 그런 부분이었다. 실제로 그런 것을 구현하려고 한다면 특허를 침해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천명의 연구진이 특허청에까지 확인을 한 상황이었다.
“무섭군. 미국에도 특허를 출원하는 것 같군?”
“맞습니다. 미국에도 모두 다 출원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미국에서 특허를 내주지 않는다면 관련 특허가 공개되어 IT 분야에서 미국의 독점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천명전자의 연구소에서는 특허의 효과마저 분석한 상황이고 미국의 특허당국이 특허를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었다. 그럴 경우 추후 미국 업체에서 특허를 출원해도 인정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것도 저것도 다 안 된다면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야? 이러다가 SDI마저 폴라텍스트에 뒤처지는 것 아니야?”
“클라우드 서버의 개발이 문제입니다. 만일 그것이 상용화가 된다면 미국 제품을 도입하는 SDI는 경쟁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민간 중소형 시스템 구축에서 약세를 보이는데 이러다가 대기업이나 행정전산망까지 내주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천명전자 네트워크 장비 부문을 강화해야 합니다.”
한정만 전무나 이만손은 구경꾼이 되어 이철식 회장과 한준우 사장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일단 e-천명은 정리해야 할 것 같아. 더 이상 투자할 가치는 없어 보여. 이렇게 격차가 벌어졌다면 우리는 반도체와 인터넷 장비 같은 하드웨어에 주력해야 할 것 같아. 문제는 폴라텍스트인데 그 문제는 한준우 사장이 중심이 되어 대응을 해봐. 둘은 한준우 사장의 지휘를 받아 철수할 준비를 하고.”
이철식 회장은 투자를 해도 성과가 없다는 한준우 사장의 주장에 결국 e-천명을 최대한 빨리 포기하기로 했다. 굳이 더 오래 끌어봤자 손실만 커질 것 같고 그 주축을 담당한 이만손의 입지만 점점 추락할 것이니 빨리 치워야 했다.
천명그룹의 투자는 실패를 했지만 그들이 뿌린 씨앗은 인터넷 산업의 저변을 확장시켜 수도 없이 많은 인터넷 기업의 창업으로 이어졌다. 그들 대부분이 실패를 했지만 살아남은 일부는 이후에 중요한 인터넷 산업의 중추가 되었다.
장인걸은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일정이 길어져 1월 20일에야 LA에 갈 수 있었고 거기에 가서 헨리 라미레스를 먼저 만나 일을 하면서도 틈틈이 작업한 것들을 보여주고 의견을 구했다.
“며칠 사이에 몰라보게 어휘력이 좋아진 것 같습니다.”
장인걸이 쓴 가사를 보고 감탄했다. 하루 정도 같이 작업을 한 후에 다시 닉 플로이언의 작업실로 가서 그간 작업한 것을 보여 주고 의견을 구했다.
“아예 녹음을 하면 좋겠지만 시간이 없군요. 이 정도라면 녹음을 하여 앨범을 내는 것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닉 플로이언은 장인걸이 가작업한 것을 들어본 후에 앨범 발표를 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을 했다. 장인걸이 보기에도 1집 앨범을 영어 가사로 내는 것은 문제가 없어 보였다.
“돌아가서 다시 한 번 찬찬히 검토를 하려고 합니다. 그 전에 정규 3집 앨범을 발표할까 합니다. 그런 다음에 로테르담 마라톤대회에 나가고 그 후에 미국에서 앨범을 내도록 하죠.”
장인걸은 자신의 일정에 대하여 설명을 했다. 로테르담에서 세계최고기록을 내고 그 여세를 몰아 영어로 1집 앨범을 내면 이슈가 될 것 같았다.
“로테르담 마라톤 대회가 보통 4월에 있죠?”
“그렇죠. 런던 마라톤대회, 보스턴 마라톤대회와 비슷한 시기에 열려 선수들은 어느 하나를 보통 선택하죠.”
“마라톤을 해서 폐활량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게 아니라 폐활량이 좋은 편인데 마라톤을 하면서 더 좋아진 것이 진실이죠. 어릴 때도 폐활량은 아주 좋다고 했습니다.”
장인걸은 마라톤을 해서 폐활량이 좋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고 오류를 수정했다.
“그게 더 정확한 말이겠군요. 영어 앨범도 마라톤 대회에 나가기 전에 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라톤 성적 때문에 앨범이 과소평가될 소지도 있습니다. 마라톤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장인걸이 우려했던 부분을 지적하는 닉 플로이언이었다. 마라톤 선수로 유명해지는 것은 음악가로 평가받는데 마이너스 요소가 될 수 있었다. 자칫 이벤트 앨범으로 전락할 수도 있었다.
사람의 편견이라는 것이 무서워서 이벤트 앨범은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이벤트 앨범으로 묻힐 수가 있었다. 가창력이 뛰어난 인기 배우가 최고의 뮤지션과 PD를 섭외하여 앨범을 발매해도 대부분 큰 호응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그러했다.
장인걸은 훈련이 끝난 직후에 앨범을 출시할 계획이니 앞으로 바빠질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일만 한다면 어렵지 않지만 학교에 다니고 회사까지 경영해야 했다.
끝ⓒ (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