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218
결국 한정만 전무와 이만손이 발생시킨 손실을 계열사에 떠넘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정도가 알아낸 전부였다.
“명단에 있는 사채업자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장인걸은 주요 사채업자들의 리스트를 주고 그들에 대한 동향을 주시하라고 지시를 내린 상황이었다.
“그쪽은 여전합니다. 주춤하다가 1월부터 다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자금사정이 어려운 기업이나 사업가들이 여전히 많은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 빌려준 돈을 회수하기 위해 법원판결을 통하여 차압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상 이자제한법이 폐지된 상황이라 조금만 빌미가 주어지면 공권력을 이용한 강제집행을 하여 현금화를 하고 있었다. 전에는 그나마 이자제한법을 근거로 고리사채업자의 불법성을 따지면서 저항을 했지만 지금은 그런 명분마저 없었다.
“혹시 사채업자들이 운용하는 자금이 늘어났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습니까? 그에 대한 내용은 없군요.”
“사채의 규모가 늘어났지만 워낙 현금거래가 많아 거기까지는 파악을 못했습니다. 대신에 우후죽순처럼 사채를 하겠다고 나서는 자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골목의 양아치들마저 사채에 뛰어드는 판국입니다.”
자금을 가진 자들이 사채를 운영하는데 앞장서고 있었다.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대리인을 내세워 사채시장이 뛰어들고 있었다. 이런 판국에 기존의 양아치들까지 나서서 전주들을 유혹하여 자금을 마련하고 고리사채를 돌리고 있었다.
은행에 예금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수익이 높은 편이라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가 고리사채에 무너지고 있었다. 음성적인 지하자금이 판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저번에 저랑 부딪쳤던 점박이 김창섭이 이상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구역이 축소되었는데 오히려 100여 명이나 조직원을 늘렸습니다. 뭔가 이상한 짓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
“결국 중천사거리를 다시 탈취하려는 것 같군요. 거기다 파레스 호텔 쪽도 노리고요. 내가 말한 민지훈이나 마태욱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던가요?”
민지훈이나 마태욱과 친하게 지낸다고 할지라도 두 가지 이유로 그들의 동태를 살피도록 했다. 하나는 그들이 배신하거나 불가피하게 적대적인 행위를 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가 있고 예기치 않게 그들에게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도 아는지 그쪽의 동태를 살피고 있습니다. 숫자로는 민지훈씨 쪽이 밀리지 않기에 기습을 당하지 않는다면 큰 문제는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50명 정도 민지훈씨가 더 많습니다.”
“혹시 명륜당 파에 대해서 들은 것은 있습니까?”
“거기는 종로, 명동만 보스가 관할하고 신촌이나 청량리, 용산, 약수동 쪽은 중간 보스들이 나누어서 관리하는 상황이라고 합니다. 말이 그렇게 도는데 자세한 것은 잘 모릅니다.”
장인걸은 마태욱이나 민지훈과 만나서 들어야 자세한 내용을 알 것 같았다. 강동철이 아직은 미숙한 상황이라 답답했다. 개개인의 실력이 뛰어나도 조직들 사이에 인맥이 없기에 파고들지 못해 내부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주말에 외부 연락을 차단한 후에 친구들과 송추의 집에서 보내었다. 그간 미국에 갔다 오고 집체훈련을 받느라 정신적으로 지친 상황이라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집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두 달 이상 만나지 않은 상황이라 할 말이 많아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장인걸이 학교를 휴학한 사실에 다소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대신 자신들은 올해만 다니면 되기에 올해 학교를 마치기로 했다.
월요일에 회사에 가서 밀린 일을 처리하다가 사무실로 찾아온 박시운 대표를 만나서 업무보고를 받았다.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유럽으로 출장을 다녀온 상황이라 이제야 대면했다. 물론 회사의 일은 다른 임원을 통해 보고를 받았지만 대표의 입장에서 보고할 것도 있었다.
“연구비는 부족하지 않습니까? 자금사정이 나아졌지만 연구비란 것이 아무리 써도 모자라다고 하는 상황이니.”
공식적으로야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따로 할 말이 있을 수도 있기에 물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애로사항도 있었다.
“문제없습니다. 이제 조금씩 성과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사실 돈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제대로 된 특허 하나만 건지면 수백억 원을 벌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연구자들 사이에는 특허 금광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특허 하나가 터지기만 하면 평생 먹고 살 걱정을 하지 않을 정도로 돈을 버는 경우가 있었다. 보통 해당 특허로 발생하는 매출액 1% 수준의 로열티를 받는데 매년 수조 원의 매출액이 발생하면 수백억 원을 벌었다.
“대표님이 생각하는 우리 회사의 목표가 일종의 팹리스입니까? 반도체 회사에 연구결과를 판매하거나 외주를 주는?”
“그렇게 되었으면 하지만 일단 소재연구에 주력할까 합니다. 지금 하는 연구는 희토류의 경제적인 이용과 이를 사용한 각종 소재의 품질 향상, 수율의 제고가 목표입니다.”
이것도 지금의 HR화학으로서는 다소 어려운 일이었다. 실험실의 성과가 상용화로 이어지려면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했다.
“혹시 AM그룹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장인걸은 식사를 마칠 무렵이 되자 슬쩍 운을 뗐다. 그것을 묻기 위해 지금 식사를 하는 자리까지 마련했다.
“대충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거기 반도체연구소의 소장인 윤일중 박사는 학교 3년 선배이기도 합니다. 백제화학 시절에는 거기에 희토류를 수입하여 1차로 가공하여 납품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산은 순도가 떨어져 재가공을 해야 반도체에는 사용이 가능합니다. 일본 것이 품질이 좋기야 하는데 시간도 복잡하고 수량이 적다고 배짱을 부려 우리가 직접 가공했습니다.”
그러면서 AM그룹의 사정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방만한 운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박시운 박사가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반도체 산업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투자라는 설명이었다.
또한 외환위기가 오지 않았다면 그룹이 좌초되지 않고 사업이 성공할 수가 있었는데 자금경색이 발생하여 1년 전 무너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투자를 하는 과정이라 기업의 가치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실정이고 그동안 축적했던 모든 노하우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건설과 토목을 하자고 한 사람이 윤일중 박사입니다. 반도체 공장을 지으려면 특수한 설비를 해야 하는데 일반적인 건설회사가 지을 수는 없습니다. 기초부터 시작하여 건축, 청정설비 등 일반 건축과는 다릅니다. 그래서 거기에는 엔지니어링과 토목과 건설이 다 있는 것입니다.”
업체를 그렇게 분리한 것은 법규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한 회사로 묶으면 일부 업무를 외주 주어야 하는데 그러면 굳이 건설업에 진출할 의미가 없다는 말이었다. 설계나 감리를 건축회사가 다 독점할 수는 없는 일이니 법인이 달라야 가능했다.
“그리고 소재나 각종 장비 공장은 일본에서 어렵게 기술이전을 받아 만든 것입니다. 파운드리 회사이지만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하는 시스템 반도체를 목표로 했기에 제품 전환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기도 했습니다.”
소재나 장비에 투자를 해야 생산 제품을 유연하게 바꿀 수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소재와 장비를 교체하는데 엄청나게 시간이 들어 그런 시스템 구축이 불가능했다.
“우리 회사에서 인수하면 도움이 됩니까?”
“물론입니다. 그리고 폴라텍스트와도 궁합이 아주 잘 맞을 것입니다. 앞으로는 범용 서버가 아닌 전용 서버를 제작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다양한 칩을 공급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회사에서 인수하기에는 너무나 덩치가 큰 사업입니다. 추가적으로 2천억 원은 투자가 되어야 합니다.”
2천억 원이라면 장인걸이 투자하기에는 벅찬 금액이었다. 물론 일단 부채를 안고 인수한다면 인수를 할 수도 있어 보이지만 추가적인 자금 부담이 쉽지 않았다. 외부에서 조달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돈이 문제이군요. 어쨌든 조용히 한 번 알아봤으면 합니다. 가급적이면 소문이 나지 않게 말입니다. 괜히 외부에 알려져서 욕을 먹기 싫습니다. 무모한 일을 하려고 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고 별로 실익이 없어 포기할 경우 그들을 외면했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비난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장인걸의 말에 박시운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HR화학을 인수하려고 할 때에 있었던 논란을 보면 당연했다. 무모하게 인수한다는 비난을 했고 인수협상이 지지부진할 때 기대감이 무너지면서 돈만 생각하여 외면하려고 한다는 비난을 했다.
“그러면 수석연구원들 몇 명을 선정하여 은밀하게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은밀하게 윤일중 소장을 만나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들어보겠습니다.”
“인수에 대해서는 절대로 언급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왜 문제가 발생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회생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만 적당히 들어 보도록 하십시오. 한 번에 그런 대답을 듣기는 어려울 것이니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들어보십시오.”
장인걸은 뒤로 은밀하게 모략을 꾸미는 것 같아 마음 한 구석에 찜찜한 기분이 들었지만 박시운 대표는 그런 것과 별개로 뭔가 기대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몰리브덴 광산의 배당을 제외하고 연구소에 기초연구비만 지출을 한다면 한 달에 100억 원, 1년이면 1200억 원의 유보금을 만들 수가 있고 그 정도라면 어떻게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인수를 하더라도 협상 기간이 있고 시일이 걸리는데 말입니다.”
박시운 대표는 한꺼번에 다 투입을 하지 않아도 되고 시간이 있으니 가능할 것이라는 식으로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 부추기려고 했다. 망한 회사에 있었던 경험 때문인지 남의 일 같지가 않은 것 같았다.
프리웨이 조사팀장인 박현욱은 모처럼 사장인 장인걸의 호출을 받고 긴장한 기색으로 6층에 있는 히어로기획의 사장실로 갔다. 프리웨이의 사장이지만 히어로기획에 사무실이 있었다.
“태양리서치와 업무협조는 잘 되고 있습니까?”
“잘 되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은 훨씬 뛰어납니다. 서로 장점을 결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 같습니다. 특히 해커의 추적에 상당한 능력을 보이기도 합니다.”
프리웨이 보안팀은 해커 방지팀이라고 할 수 있는데 디지털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해커를 특정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것을 가지고 일종의 수사를 하여 색출을 해야 하는데 태양리서치가 아주 잘 했다.
“보안팀에서 조사팀에 그런 의뢰도 합니까?”
거꾸로 해야 하는 것 같은데 반대라니 의아했다. 보안팀은 경비팀에 의뢰해야 하는 것이 옳았다.
“외부활동은 경비팀보다도 태양리서치가 더 잘합니다. 우리 조사팀에 협조를 의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사검증이 주가 되어야 하는데, 참.”
조사팀의 업무 중에 가장 중요한 업무 중에 하나는 기사의 오보를 판단하는 일이었다. 오보라고 신고가 들어오고 1차적인 증거가 제출되면 그것을 근거로 하여 오보여부를 판단했다. 물론 대부분의 기사는 오보라고 판단하기에는 증거가 불충분한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10개 중에 하나는 명백한 오보로 판명이 되었고 그걸 경우에는 조치를 취했다.
“이번에 큰 조사를 하나 맡길까 합니다. 조용히 AM그룹에 대해 조사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공개된 내용부터 내부 정보까지 모조리 파악해 주시기 바랍니다.”
장인걸의 지시에 박현욱은 놀란 표정이 되었다. 조사팀장으로 있는 상황이니 AM그룹이 어떤 상황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인수를 전제로 하여 조사하는 것 같았다.
“한 달 정도 기한을 두고 조사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처리가 어려운 비용은 히어로기획으로 청구해 주시기 바랍니다. 인수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조사입니다. 수집한 자료의 분석이 필요할 경우에 회계 법인에 의뢰해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철저하게 조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태양리서치에 비공식적인 조사도 의뢰합니까?”
“그렇게 해도 됩니다. 마태욱 실장을 만나서 인수를 위한 조사라고 하면 됩니다.”
박현욱 팀장은 일을 하다 보니 실질적인 사장인 마태욱을 알게 되었고 필요한 정보를 얻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조사팀으로 한계가 있는데 보안팀이나 경비팀과도 협업을 해도 됩니까? 사람이 필요합니다.”
끝ⓒ (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