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229
“회생을 시키려면 사업성이 있어야 하고 인수조건이 좋아야 하겠군요? 한계기업은 청산을 하고 회생가능성이 있다면 인수조건을 좋게 하여 빨리 정리하는 것이 국가 경제에 부담이 적을 것입니다. 인수협상을 잘 하여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합니다.”
“아직 아무 것도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기본조건도 나오지 않았고 현장실사도 해야 하고요. 그래야 최종적인 인수조건이 정해질 것이라 봅니다.”
장인걸은 인수여부는 조건이 맞아야 함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특혜를 받을 생각은 없지만 호구가 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철저하게 손익을 따져서 결정할 예정이었다.
“만일에 AM그룹을 인수하지 않는다면 도입한 외화는 어떻게 투자할 것입니까?”
그간 조용히 지켜만 보던 신임 경제수석이 질문을 던졌다.
“돈이 없지 투자할 곳은 많지 않습니까? 최후의 방도이지만 가장 확실한 투자는 부동산에 묻어두는 것이라 봅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원래 가격은 회복할 것이니.”
장인걸의 말에 배석한 이도헌 경제수석이 입맛만 다시고 더 이상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런 투자까지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니 어르고 달래서 돈을 빼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한 기업의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장래가 유망한 기업들까지 사채 시장을 기웃거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업체에 적당히 투자를 한다면 향후 커다란 이득을 볼 것입니다.”
나중에 건재한 기업 중에 일시적으로 어려운 기업에 투자를 하고 지분을 확보하면 큰 이득을 볼 수도 있었다. 주식시장에서 주식을 취득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지만 유상 증자에 참여하여 지분을 확보한다면 자금사정이 어려운 기업의 숨통을 터주는 일이었다.
최근 천명그룹 이철식 회장의 관심사는 대그룹 간에 추진 중인 빅딜이었다. 그 중에 가장 핫한 반도체 부문의 협상을 주시하면서 정부의 지원을 줄이는데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었다. 정부의 자금이 경쟁사에 투자되면 좋을 것이 없었다.
“공적자금의 투자는 1조 정도로 줄였고 대출금액의 상당액을 지분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제시하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추후 모든 의사결정은 정부와 은행의 승인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미래전략실장인 한준우 사장의 보고에 이철식 회장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RC전자와 한동전자로 나뉘어져 있던 반도체 부문과 모니터 부문을 하나로 합치는 것은 천명전자에게 기회이면서도 위협이었다.
천명전자가 그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은 구조조정의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니 다행이지만 대상인 된 경쟁사의 규모가 커지고 공적자금마저 지원이 될 것이니 위기였다.
하지만 두 회사의 반도체 부문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니 한동안 불협화음이 발생할 것이고 생산기술이나 공정이 다르기에 해결해야 할 것이 많았다. 이는 반도체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비용이 증가하는 요인이 되어 기회일 수도 있었다.
“아마도 한동그룹으로 넘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거기로 가는 것이 우리에게 유리할 것입니다. RC에 넘어가면 귀찮은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대신 LCD쪽은 RC로 넘기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그렇게 하도록 신경을 쓰면 되고 AM그룹은?”
“빅딜에 탈락했습니다. 그들도 귀찮은 문제를 떠안지 않을 것이고 정부도 빅딜에 변수를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장인걸이 인수할 의향을 보였고 외화를 1억 달러나 들여왔습니다.”
“어디서?”
“바하마인데 조사를 했지만 전주가 누구인지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장인걸의 말로는 전주가 일종의 팬이라고 하는데 국내의 비자금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놈아를 보면 우리나라와 연결된 자금일 가능성은 그리 없어. 미국의 자본일 가능성이 커. 마라톤대회에 나가면서 계속 들락거렸는데 정신머리 없는 호구를 하나 물었을 거야.
감언이설에 속아 한국에 투자하면 이득이 클 것 같아서 투자를 했겠지. 그런데 AM그룹을 노린다고? 그놈이 죽으려고 작정을 한 것인가?”
“인수를 해서 살려낼 가망성은 거의 없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있는 상황에서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장비와 원자재를 일본에서 들여와야 하는 상황이니 VIP가 아무리 비호를 해준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장비나 소재회사는 다들 우리와 거래를 하는 곳입니다. 적당히 한두 마디 양념만 치면 됩니다.”
“적당한 가격에 넘겨주도록 하면 될 것 같군. 그 문제는 일단 놔두어. 괜히 우리가 나서서 산통 깨지 말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 다음에 프리웨이나 다른 것까지 이번 기회에 가져오도록 하면 됩니다. 경영에 실패한다면 오너가 사재를 출연하여 살려야 할 것입니다.”
“몰리브덴 광산이 있어 쉽게 넘어가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 지금부터 일본 쪽에 철저히 단속을 해놓아. 그리고 RC와 한동도 이야기를 해놓고. 셋도 많아 둘로 만드는데 다시 하나를 더 만들 이유는 없으니.”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할 것입니다. 딴따라가 하나 잘 되니 겁을 상실한 것 같습니다. 항상 운이 좋을 수는 없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알려주도록 하겠습니다.”
한준우 사장의 말에 이철식 회장도 만족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언제 삐끗할까 기다리고 있는데 스스로 진창으로 굴러들어 오고 있었다. 이철식 회장이 나서서 전화 몇 통화만 하면 무너질 위기를 자초하고 있었다.
장인걸은 휴학을 했지만 강진경이나 권세라는 계속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자주 보지 못하는데 방송에 계속 나오니 익숙한 것 같아.”
“나도 그런데. 그런데 ‘그 남자의 다이어리’라는 이 소설 왠지 우리 이야기 같지 않아?”
권세라가 최근에 프리로맨스에 연재가 되어 인기를 얻고 있는 소설을 하나 보여주었다. 주인공은 남자가 아닌 여자였고 바람둥이는 아니지만 우유부단하게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남자를 사귀는 여자 둘의 이야기였다.
특이하게도 이 이야기에는 세 번째 여자가 등장을 하는데 남자의 첫사랑이었다. 남자는 두 여자를 만나면서도 첫사랑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장인걸은 묘하게 자신의 상황과 비슷한 면이 있어 흥미가 생겼다.
한동안 연재된 글을 읽느라 장인걸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대략 한 시간 정도 읽자 연재된 글을 다 읽었다. 워낙 자신들의 이야기와 비슷해서 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너도 첫사랑이 있어?”
장인걸은 강진경의 질문에 의아한 표정으로 보았다. 그런 질문을 하자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지만 속으로는 뜨끔했다. 상황은 다르지만 원경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사랑이 아니지만 회귀 전의 헤어진 애인이었다.
“그런데 설마 이 글을 네들이 쓰는 것은 아니지?”
장인걸은 읽으면서 데자뷰 같은 느낌이 들어서 반문을 했다.
“흐흐, 우리가 공동으로 집필하고 있지. 필명은 ‘창백한 여자’, 내가 경희, 세라가 세은이의 이야기를 담당하고 있어. 남자 이야기는 공동으로 구상하고 있고. 모델이 있어 그리 어렵지 않아.”
그러면서 유료연재로 쏠쏠하게 돈이 들어온다고 자찬을 했다. 로맨스소설의 특성상 유료연재 전환이 빨랐고 현재 프리스토어에서 조회수가 가장 높았다.
“며칠 후에 책으로도 나올 거야.”
순간 장인걸은 두 여자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글을 연재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이야기의 스토리는 다르지만 기저에 흐르는 감정선이나 흐름은 판박이였다. 글에 드러난 두 여자의 심리상태는 질투와 우정이 묘하게 뒤범벅이 되어 있고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사이에 점점 사랑이 깊어지지만 현실과의 괴리로 인해 어떤 선택도 하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친구도 애인도 아닌 두 관계 사이에서 묘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저 친구로 위장을 하고 있었다.
“네들이 생각하는 내 모습이 이렇다니. 조금 충격이긴 하다. 사실 그렇기도 하지만. 본색이 그대로 까발려지는 것 같아 민망하기도 하고. 현탁이의 이기적인 모습과 내 모습이 다를 것 없기도 하고. 변화가 두려워서 현상유지만 하는 상황이니.”
글의 주인공인 현탁이는 두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면서도 좋아하고 그러면서도 욕심 때문에 선택도 못하면서 어정쩡하게 현상유지만 하고 있었다.
또한 글에 나온 여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남자에게 뭔가 불만이 있으면서도 선택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선택을 뒤로 미루면서 일종의 휴전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남해안으로 같이 간 것도 저번에 했던 여행을 모티브로 한 거야? 그런데 여행을 앞두고 다이어트를 하면서 헬스클럽에 가서 진짜로 땀을 흘린 거야?”
두 여자는 각기 예뻐지고 멋진 몸매를 만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기를 쓰고 노력하지만 무심한 남자는 그런 것은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그저 편하게 휴식을 하면서 남자의 로망을 달성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자신들의 피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의미 없는 행위가 되고 말았다. 두 여자는 허탈한 모습이 되어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우리 사이에 결론이나 선택이 필요한 거야?”
“아니, 이대로 그냥 지내자. 단지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하여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할지 알고 싶었을 뿐이야. 이런 우리의 상황이 아주 나쁜 것은 아니라는 인정이랄까? 그럴 수도 있다는 일종의 사회적인 인정이랄까?”
자신들의 상황이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일이 아니라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은 것 같았다. 일종의 드러낼 수 없는 관계를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싶은 것 같았다.
“댓글을 보니 남자나 여자를 엄청 욕하면서도 그럴 수 있다는 평가이네. 너무 문란하다는 내용도 있고. 한편으로 지금이 조선시대냐면서, 시대착오적인 이야기라고 열폭을 하기도 하고.”
댓글은 그리 좋은 내용은 아니었다. 재미는 있지만 이야기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내용이 많았다. 마치 조금 지나서 유행하게 될 막장드라마를 욕하면서도 꼭 챙겨 보는 시청자들 같았다.
“내용이 미풍양속을 해치기에 규제를 해야 하는 것 아닌지, 하루에도 서너 개의 항의 메일이 오기도 해. 19금 규정이나 사회통념상 연재가 가능하다는 내용이라고 답변을 보내지만 불만이 많아. 물론 사이트 자체가 음란하다고 폐쇄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그거야 그들 기준이고. 그들 기준으로 보면 결혼식, 아이도 문제이고 세상이 멸망해야 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이지. 그러면 고전인 셰익스피어도, 춘향전도, 심지어 심청전, 적과 흑, 안나 까레리나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도 다 문제가 있는 것이고. 춘희도 그렇게 보면 똑같은 내용이고.”
장인걸은 소설도, 자신들의 이야기도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렛잇비(Let it be)하고 퀘세라세라(Que sera sera)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인간은 존재 자체가 불합리한 면이 있었다. 그 중심에 존재하는 인간의 본성도 마찬가지로 불합리했다. 좋게 말하면 가능성이고 달리 말하면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장인걸이나 두 여자나 모두 마찬가지였다.
장인걸은 민수길 사장과 안정만 전무, 양지원 본부장, 프리웨이 산하의 자회사 사장들을 모은 회의를 주재했다. 이번 주제는 자회사의 상장이었다. 청와대에서 조기 상장을 하기로 협의한 이상 그 준비를 할 필요가 있었다.
“프리웨이는 창립한지 1년 반이 지난 지금 국내 최대의 IT업체로 성장했습니다. 또한 프리웨이나 각 자회사는 대부분 손익분기점을 넘겨 흑자를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래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기에 이익을 배당할 상황은 아닙니다.”
장인걸은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모두 발언을 했다. 이번회의에서는 어떤 안건을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결정을 통보하는 자리였다.
“그동안 우리가 거둔 성과로 인해 외부에서 견제의 목소리가 큽니다. 우리가 너무 독주를 하는 상황이라 여타의 투자가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프리웨이가 워낙 독보적이라 성공에 대한 가능성이 없기에 벤처창업자나 투자자들이 소극적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해서는 IT 산업 전체에 활기가 사라지고 만다. 플랫폼을 프리웨이가 독점한 상황이라 타 업체는 플랫폼을 독점한 프리웨이의 하청만 가능한 시스템이 형성되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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