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239
그들 모두 살객 임치형이 물러난 상황을 모를 수가 없는데 그런 사실은 언급하지 않고 다시 나서는 사실만 언급하게 되니 어처구니가 없기도 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병 주고 약 주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거기서 그 사실을 거론할 분위기도 아니니 다들 표정 관리를 하느라 인상을 찌푸렸다.
“한국도 경제위기가 오고 뒤숭숭한 상황인데 이쪽 동네까지 수선을 피우면 좋지 못할 것 같습니다.”
장인걸도 처음으로 한 마디를 했다. 그러자 박갑술이나 백두성의 표정도 굳어갔다. 그들은 나이가 들어 무력은 없지만 거대 조직의 수장이기도 했다. 그러니 살객의 복귀가 의미하는 바를 모를 수가 없었다.
“일단 각자의 영역에서 제 역할을 하고 분란을 일으키는 자들을 단속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기존 질서를 해치는 자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 것입니다. 고리 사채를 빌미로 하여 인신매매를 하거나 심지어 장기밀매까지 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하고 있고 마약도 심심찮게 돌고 이런 와중에 총기마저 들여오는 자들이 있습니다.”
장인걸의 지적에 다들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들은 조직에서 취급하면 안 되는 금기사항이었다. 만일 어떤 조직이 이런 일을 자행한다면 공적이 되어 공격을 받을 수가 있었다. 물론 암암리에 몰래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놓고 하지는 않았다.
“임치형 사장님이 다시 복귀하여 내부의 혼란을 수습하고 그 이후에 서울의 혼란을 잠재우면 지금 벌어지는 일탈들도 다시금 자취를 감출 것이라 봅니다. 만일 임치형 사장이 복귀한 이후에도 여전히 혼란을 부추기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됩니다. 아예 이 바닥에서 퇴출을 시켜야 합니다.”
장인걸은 그 말을 하고 난 다음 여섯 명을 보았다. 모두 걱정스러운 기색이었다. 자칫 일이 커지지 않을까 염려하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어쨌든 지금의 상황을 방치하면 상황이 심각해질 것이고 그것은 또 다른 범죄와의 전쟁을 불러올 것입니다. 괜히 휩쓸려 애먼 사람만 다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고 그것만큼 억울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장인걸은 그 정도만 말을 한 다음에 마객을 보았다.
“필요하다면 적당히 공권력도 이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신 이상한 짓을 하는 자들만 적당히 단속하면 될 것입니다.”
공권력의 개입을 불러와도 폭력이 수반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었다. 위증을 하면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마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폭력을 앞세워서 협박을 하지 못하게만 해도 금기를 어긴 자들은 버티지 못하고 잠적을 했다. 그런 자들을 주시하다가 재차 신고를 하면 더 이상 도주하지 못하고 일망타진이 되었다.
“적당히 처신을 하자는 말 같은데 그렇게 합시다.”
백두성이 나서서 정리를 했다. 더 구구절절 말할 필요는 없었다. 이렇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분란을 예방하고 서로 행동을 통일하자는 의미였다.
장인걸은 천명그룹에서 운영하는 서라벌호텔의 골든 홀이라는 연회장의 임페리얼 룸이라는 곳으로 들어갔다. 물론 혼자 가지 않고 민수길과 안정만을 대동했다. 변호사인 황치현은 중간에 자리를 주선한 사람이기에 따로 오기로 했다.
그들이 당도하자 황치현은 먼저 도착하여 천명그룹 사람들과 같이 기다리고 있었다. 같은 법조인이라서 그런지 천명그룹 법조인들과 자리를 같이 하고 있었다. 박쥐 노릇을 할 수도 있지만 그것도 고려하여 대응을 하고 있었다.
“박정신이라고 합니다.”
박정신은 나이가 60살이 넘었지만 워낙 잘 관리해서 그런지 겉으로는 40대 정도로 보였고 날카로운 인상 때문에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워보였다.
“장인걸입니다.”
둘은 서로 자신의 이름만 소개하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박정신 옆에 있는 70대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나섰다.
“나는 박강성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까지 그룹의 고문을 맡고 있었는데 상황이 좋지 않아 부회장으로 복귀를 했습니다.”
장인걸은 전대 종기실장을 맡았던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언론에서 천명그룹의 위기와 그에 대한 대응을 보도하면서 항상 거론을 하던 인물이었다. 지금은 박정신이 회장권한대행을, 박강성이 부회장을 맡아서 천명그룹을 이끌고 있었다.
“일단 자리에 앉도록 합시다.”
다들 자리에 앉지 않고 서 있는 상황이라 박강성은 자리를 권했고 서로 마주 보고 자리에 앉았다. 룸 안에는 4인이 앉을 수 있는 탁자가 세 개 일렬로 놓여 있었고 서로 적당히 마주 앉게 되었다. 중심에 장인걸과 박정신, 박강성이 마주보고 앉았다.
“우선 장간지 전무가 진행한 일에 대하여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우리 천명그룹에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말을 마친 박정신이 자리에 일어나서 장인걸에게 인사를 했고 장인걸도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받아주었다. 진심이든 아니든 어쨌든 사과를 받았으니 일단 답례를 하는 것이 예의였다.
“그나마 다행이군요. 혹시라도 개인적인 일탈행위로 치부하면서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할까 걱정을 했는데 말입니다.”
장인걸은 아직은 미흡하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그렇게 퉁명스럽게 말을 건넸다. 장간지의 잘못이나 천명그룹의 잘못은 인정했지만 이철식 회장의 잘못은 아예 언급하지 않고 있었다.
“우리 천명그룹은 개인이 회사의 조직을 임의적으로 움직일 정도로 허술한 것은 아닙니다. 일련의 일들이 정도를 벗어난 행위이지만 회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움직일 수 있는 수준의 일이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실패를 했고 모든 것이 드러난 상황이니 깨끗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박강성 부회장은 그런 행위 자체가 아닌 실패한 것이 잘못이라는 듯이 당당한 어조로 말을 했다. 장인걸이 무너지고 드러나지 않았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태도였다.
“사죄를 한다고 해도 말로 그치고 만다면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굳이 사죄를 받지 않는다고 해서 배상을 받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단지 서로 간에 적대감이 커질 것이지만 그거야 다소 불편함을 감수하면 되는 문제이고 말입니다.”
박강성 부회장의 말에 장인걸도 지지 않고 맞대응을 했다. 여전히 자신들이 강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물론 강자이긴 하지만 그들이 절대강자는 아니고 장인걸도 그냥 약자는 아니었다.
“하긴 화해를 원한다면 먼저 사죄를 해야겠지요. 말로 백날 잘못했다고 한들 의미가 없고요. 잘못했다면 맨입이 아니라 두 손 한가득 뭔가 건네주어야 한다는 말도 있고요.”
박정신이 두 사람의 대립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인지 개입을 했다. 그 말을 해도 장인걸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이 화해의 선물로 뭐를 꺼낼지 궁금했다. 어설픈 것이라면 아예 받지 않을 생각이었다.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상황이라 어떤 것을 선물로 드려야 할지 참 난감합니다. 그렇다고 뭘 원하는지 묻는 것도 그렇고요. 그래서 연예계와 연관이 있는 사업을 하나 정리하려던 참이니 넘겨주면 어떨까 합니다. CM기획이라고 하는 비상장 회사인데 액면가의 30%에 넘겨드리면 어떨까 합니다.”
장인걸은 CM기획이 어떤 회사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CM기획의 분야가 가요와는 상관이 크게 없지만 그도 연예기획사를 운영하는 입장이었다.
극장체인회사이기도 했고 드라마와 영화를 제작하는 제작사이기도 했고 영화투자회사이면서 영화배급까지 겸하고 있는 영화계의 큰손이었다. 하지만 극장체인 CMV를 제외하고는 적자를 보는 상황이었다. CMV도 부대시설 운영으로 흑자를 내지 영화 상영으로는 오히려 적자를 보는 실정이었다.
“장부상 자본금이 50억 원입니다. 자산 1000억 원에 부채 800억 원, 자본과 자본잉여금이 200억 원 정도이니 부실한 것은 아닙니다. 정부 정책에 부응하여 업종을 전문화하려는 의도에서 정리할까 검토하는 중이었지만요.”
장인걸은 이게 선물인지, 폭탄인지 판단이 모호했다. 그렇기에 나중에 CMV가 어떻게 되는지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회귀 직전까지 CMV는 잘 나가고 있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 중에서 수위를 다투었고 자회사인 CM프로덕션은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투자하면서 직접 제작도 했고 CM배급은 3대 배급사로 이름을 날렸고 상당히 많은 영화를 배급하고 있었다. 단지 그 회사의 주인이 천명이 아닌 MJT였지만. MJT는 고작 자동차 카오디오를 주로 생산하는 회사였다.’ 장인걸은 전망이 어둡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마도 회귀 전 천명그룹은 적당한 시점에 MJT에 매각했을 것 같았다. CM기획을 인수한 MJT는 수익의 대부분을 투자하여 문화예술분야의 큰 손으로 변모하는데 성공하여 2007년에 매출 5조 원을 달성하기도 했다.
“준다면 고맙게 받도록 하지요.”
장인걸은 화해를 했다는 것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황치현의 조언이 생각나서 받아들이기로 했다. 장인걸과 천명이 화해한 모습을 보이면 그간 장인걸을 적대했던 자들도 더 이상 적대하지 못할 것이니 한동안 평화를 유지할 수 있어 보였다.
더구나 CM기획 자체는 엄청난 성장 잠재력을 가진 회사이고 그런 시스템을 가진 회사를 창업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구조조정 열풍이 부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처분하지만 회귀 전에 천명그룹에서 CM기획을 처분한 것을 아쉬워했다.
특히 AM그룹을 인수할 예정인데 천명그룹이 적대적인 행위를 한다면 자리 잡는 것이 어려울 것이니 당분간 협력을 할 필요가 있었다.
장인걸은 그간 고민을 하던 것을 바로 실행에 옮기기로 하고 민수길과 임식현 팀장을 호출했다. CM기획을 인수하는 상황이니 그 전에 조직을 정비하기로 했다.
“히어로기획을 HR홀딩스로 사명을 변경하도록 하겠습니다. 단순 기획사가 아닌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 소속사는 그대로 두고 매니지먼트와 에이전트, 저작권 관리 일체를 흥아 엔터에 위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김기현 과장과 이원희 코치, 황지현 코디의 소속은 HR홀딩스의 대표 비서실에 두고 필요할 경우, 즉 내가 공연을 할 때만 흥아 엔터에 파견을 나가는 것으로 정리했으면 합니다.”
“그러면 저희 둘은?”
“마찬가지입니다. 민수길 본부장은 그대로 HR홀딩스의 관리본부장을 맡으면서 흥아 엔터와 은성기획의 대표를 하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임식현 팀장은 회계팀장을 하면서 종합적으로 자금 관리를 하면 됩니다. 대신 직원을 충원하도록 합시다.”
그렇게 말을 한 후에 CM기획을 인수하게 된 사실을 언급했다. 민수길은 같이 들은 내용이기에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둘 다 CM기획이 얼마나 큰 회사인지 알기에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감당이 될지 걱정부터 했다.
“두 사람은 황치현 변호사와 회계사인 유덕환 상무와 같이 CM기획을 인수하시면 됩니다. 발행주식 100만주, 액면가 5천 원인데 주당 거래 가격은 30%인 1500원으로 하여 인수가 15억 원을 주면 됩니다. 부채가 400%에 달하기에 엄격한 기준으로 자산을 평가하면 자본잠식 상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자본이 200억이라고 했지만 믿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실제로 부채가 자산을 초과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당장 인수주체는 히어로기획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CM기획의 대표가 전지운 사장인데 꽤나 실력이 있다고 하니 유임을 시킬까 합니다. 그러니 문제의 소지가 없는지 조심스럽게 살펴봤으면 합니다.”
횡령이나 뇌물수수 같은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는지 살필 필요는 있었다.
“전지운 사장은 PD로 이름을 날렸던 사람이고 작품 선정능력도 뛰어나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천명그룹에서 스카우트를 하여 대표를 맡겼다고 하니 지금의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장인걸은 CM기획을 인수하기로 한 후에 누구를 대표로 선임할까 고민하다가 지금의 대표가 전지운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현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장인걸이 회귀하기 전에도 전지운이 대표로 있었다. 그러니 굳이 바꿀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전지운을 대표로 맡기기 위해 잘 나가던 KTV 드라마국의 CP를 무려 7억 원이나 주고 데려온 상황인데 해고하는 것은 손해이지. 아마 회귀 전 인수한 MJT에서도 그 사실을 알고 유임을 시켰을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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