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242
연구, 생산, 외주까지 다 수행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연구소이지만 공장이고 중개상의 역할을 수행하는 회사가 되었으면 했다.
“대략 무슨 회사인지 알겠습니다. 결국 연구실과 생산 공장을 겸한 주문형 연구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말씀 같군요. 일단 한국에 다녀올 생각이니 이번에 방문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그곳과 협력을 해야 할 것 같으니 말입니다.”
“한국에서 지금 반도체 회사인 AM그룹을 인수하고자 협상을 진행 중입니다. 늦어도 10월 이전에 협상을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팹리스 업체가 필요합니다. 미로연구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지만 그런 능력을 갖춘 업체는 많을수록 좋을 것입니다.”
장인걸은 AM그룹을 인수할 계획임을 밝혔다. 그런 사실을 말한 이후에야 왜 그런 연구소를 세우려는지 이해했다.
“앞으로 IT관련 전문기업으로 키워나갈 계획입니다. 소프트웨어나 네트워크, 플랫폼 업체에 이어 하드웨어까지 영역을 확장하려고 합니다. 물론 그로 인해 재정이 취약해질 수가 있지만요.”
장인걸은 자세히 설명하여 이석현을 설득하려고 했다. 무조건 밀어붙여서 하는 것보다 스스로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움직여야 좋은 성과를 낸다고 믿었다.
이석현은 장인걸이 말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한국으로 출발했다. IMF로 한국에 돌아가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을지 걱정하던 상황이라 장인걸의 제안이 반가웠다.
이승찬은 교도소로 면회를 온 부모를 만났다. 1심에서 징역 4년을 받았지만 항소하여 최종적으로 징역 3년을 선고 받고 교도소에 수감이 되어 있었다. 친구들과 같이 일을 저질렀지만 가장 주도적으로 대부분의 사건에 참여한 덕분에 다른 사람보다 6개월에서 1년 정도 형을 더 받았다.
“다른 애들 말을 들어보면 양진 사람들이 양진에 들어오면 가만 두지 않겠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애들도 다 서울이나 다른 곳으로 떠나 있다고 하더라.”
모범수가 되면 형기의 절반을 채우면 가석방 심사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서정민과 김광일은 2년 형을 선고받아 만기 6개월을 남기고 먼저 가석방이 되었다. 다른 친구인 이진석은 2년 6개월을 받은 상태라 여전히 감옥에 있었다.
둘은 가석방 상태이기에 다시 폭력행위에 연루가 되면 가중처벌을 받을 수가 있어 외부로 피한 상황이기도 했다. 더구나 무리의 싸움꾼인 이승찬이나 이진석이 없는 상태에서 지역의 선배들에게 대항할 수는 없었다.
“개새끼들이.”
이승찬은 자신을 양아치 취급하는 최영석이나 양진의 주먹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욕부터 했다. 전에도 그들 때문에 주천으로 도망을 쳤는데 거기서도 사고를 저질러 다시 양진에 들어왔다가 장인걸과 충돌이 발생하면서 지금의 상황에 이르렀다. 최영석이건 장인걸이건 생각만 해도 화가 났다.
더구나 장인걸의 경우에는 변호사를 사건대리인으로 지정하여 검찰에 압력을 가해 어설프게 수사하고 기소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 때문에 형을 더 받은 면도 있었다. 이진석이 백방으로 손을 써서 좋은 변호사를 선임한 덕분에 몇 가지 혐의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니 정신 차리고 한동안 서울에 가 있어라. 작은아버지네 가게에 자리를 만들 것이니 얌전히 있어. 이번 광복절은 안 되어도 추석이나 크리스마스에는 나올 수도 있으니.”
“나는 가석방 같은 것은 바라지도 않아요. 몇 번 독방에 들어간 적도 있어서. 하여간 여기도 귀찮게 하는 것들이 많아서는.”
이승찬은 교도소에 있으면서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몇 번 싸움을 해서 징벌을 받기도 했다. 형기가 늘어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오히려 교도소에서 알게 된 조폭들과 교류하면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니 엄마나 아버지는 신경 쓰지 말아요. 내가 가까이 있어서 좋을 것은 없으니. 작은 아버지 성격과 내 성격은 맞지도 않고 가게 말아먹을 것이 아니라면 내가 가서는 안 되죠.”
이승찬은 그렇게 말하고 이를 바드득 갈았다. 자신의 미래를 망가뜨린 그 누구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장인걸을 손보고 싶지만 감옥에 있는 입장에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출소를 해야 어떻게 할 수 있어 보였다.
“제발 정신 좀 차려. 여기 갇혀 있으면서도 달라지는 것이 없어. 정민이나 광일이는 이참에 새사람이 되겠다고 하던데.”
이승찬의 아버지는 그저 얼굴만 보고 뚱한 표정으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고 어머니만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옆에서 교도관이 지켜보는 상황이니 그저 조용히 말을 했다.
“사람은 생긴 대로 사는 것 같아요. 나기를 이렇게 났고 남들이 눈꼴시리게 하면 참지를 못하는데 그냥 살아야지요. 그러니 엄마도 이제 오지 말고 나는 없는 사람 취급해요. 엄마 보면 괜히 속만 시끄러우니까. 이제 면회와도 귀찮아서 나오지 않을 것이니.”
이승찬은 전과자가 된 마당에 사회에 나가서 참하게 산다고 달라질 것이 없으니 본격적인 조폭의 길을 갈 계획이었다. 그렇게 하려면 집과 연을 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장인걸은 8월이 되면서 포틀랜드, 시애틀까지 활동범위를 넓혔고 네바다 주의 라스베이거스에서 3일간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동부의 뉴욕과 보스턴에도 가서 공연을 했다. 홍보활동을 하면서 동부에서도 슬슬 반응이 나타나고 있었다.
“참, 홍보를 해도 별로 성과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한 달 반 가까이 홍보활동을 했는데 별로 성과도 없는 것 같고요.”
보스턴까지 찾아온 SCM의 닉 플로이언을 만나자 그렇게 푸념을 했다. 그간 앨범이 20만 장 이상 판매가 되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한국과 달리 반응이 바로 나오지 않았고 아무리 홍보를 해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느낌이었다.
어디를 가더라도 뜨뜻미지근한 반응이었다. 그저 감상을 하면서 고개만 끄덕이는 수준이었다. 좋은 노래라는 평가이지만 청중이 열광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장인걸은 혼돈의 기운을 이용하면 열광적인 반응을 끌어낼 수도 있지만 음악 외의 방식으로 성과를 내고 싶지 않았다.
“이 정도면 훌륭한 성과입니다. 캘리포니아와 동부 일부 도시만 돌았는데 이 정도 성과라면 대단한 것입니다. 물론 한국에서의 성과와 비교하면 미미하지만 미국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습니다. 이제 각 지역의 케이블 방송도 관심을 갖고 뮤직비디오를 방송하고 있지 않습니까?”
케이블 방송의 음악프로그램에 방송되려면 뮤직비디오가 필수였다. 케이블 방송은 직접 출연을 하는 것보다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래서 장인걸은 앨범의 타이틀곡과 서브타이틀 2곡을 뮤직비디오로 제작했다.
저비용으로 스튜디오와 야외에서 가볍게 촬영했다. 스튜디오에서는 노래를 하거나 악기를 연주했고 야외에서는 노래의 분위기에 맞도록 간단한 모션을 취하거나 연기를 했다. 전에 드라마에 출연하여 연기를 했던 것이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미국은 가수가 직접 나와서 노래 주제와 매치가 되는 다양한 모션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뮤직비디오가 대세였다.
“신인은 보통 2~3년은 홍보활동을 해야 전국적인 반응을 이끌어냅니다. 그것도 선택된 한두 명이나 가능하고요. 고작 한 달 반 정도에 이름을 알리고 음악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이니 좋은 현상입니다. 더구나 케이블에서 뮤직비디오를 틀어주기 시작했으니 앞으로 더 인기를 얻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 육상선수권대회나 뉴욕마라톤이 중요합니다.”
이벤트 앨범이 되는 것을 경계하지만 일단 홍보 측면에서는 그런 성과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유명해지면 음악적인 평가와 별개로 인지도가 상승하면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
‘프리튜브처럼 유튜브가 활성화가 되어야 한다. 구글에서 동영상 사이트를 만들 것인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유튜브가 뜬 것은 한 5년 이후이니. 동영상 촬영과 로딩이 자유로운 시기가 되어야 활성화가 될 것이고 미국은 한참 멀었다. 스마트폰이 나와야 촬영이 자유로워 활성화가 된다.’ 이번에는 인수합병이 아닌 자체 론칭이 일어날 것인데 그것을 이용하여 홍보할 수 있다면 나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일단 미국내 앨범 홍보활동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스페인 세비야로 건너가서 세계 육상선수권대회를 준비해야 합니다.”
장인걸은 아직 미들라인이라고 하는 시카고에서 휴스턴, 마이애미에 이르는 중부의 지역을 돌지는 않았지만 그곳을 돈다고 해도 특별히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이제는 대회를 준비해야 할 시점이었다.
미국에 와서도 꾸준히 훈련을 했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는 부족해 보일 수가 있었다. 그런 가운데 좋은 성적을 거두면 금지약물 투약 의혹만 더 커질 수가 있었다.
그러니 10여 일 정도 현지 적응을 겸한 마무리 훈련을 하여 좋은 성적을 거둘 필요가 있었다. 다음 학기 등록 문제가 걸려있지만 한 학기 더 휴학하기로 학교에 통보한 상황이었다.
장인걸은 미국에 간 이후에도 집이나 강진경, 권세라와 지속적으로 연락을 했다. 다들 걱정할 것이기에 정기적으로 전화를 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지만 국내와 외국은 달랐다.
“세라네 그룹, 문라이트가 마침내 연말까지만 활동하고 해체한다고 선언했어.”
“들었어. 그런데 그 이야기는 왜 하는 거야?”
강진경이 그 사실을 언급하는 것은 권세라와 관련하여 할 말이 있다는 의미였다.
“세라가 이후의 진로에 대해 고민이 많은 것 같아서. 졸업한 후에 솔로로 나서야 할지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아 보여서. 한 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건 내가 돌아가서 하려고 내색을 하지 않았는데. 뭔가 원하는 것이 있나보군. 말하기가 좀 민감한 내용으로.”
권세라가 말을 못하는 것 같아 대신 말해주려는 것 같았다. 사실 강진경은 프리스토리를 자신의 영역으로 구축해 나가고 있었다. 물론 강진경의 능력만이 아니라 집안의 도움도 받은 것이지만 확실하게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프리뮤직에 입사하고 싶은 것 같아. 물론 뮤지션으로 활동을 하겠지만 확실한 전망이 있는 것은 아니니. PD로 활동하고 싶은 것 같아. 미향이가 은마기획에서 제작팀장을 하는 것처럼.”
이미향은 앨범을 MP3파일로 변환하는 작업을 하면서 은마기획과 연관을 맺더니 지금은 아예 정규직 직원으로 채용이 되어 녹음실 하나를 책임지게 되었고 제작 PD로 활동하고 있었다.
“내가 나서기는 그러니 네가 거기에 추천을 해서 일을 하도록 해봐. 너나 나나 모두 친구이지만 나보다 네가 더 나을 것이니. 그렇게 하려고 연락한 것 같고.”
장인걸은 자신이 채용을 결정하면 되는 일이지만 그렇게 하면 권세라에게 좋지 않을 것 같아 강진경이 나서도록 했다. 강진경도 이미 그 정도 입지는 다진 상황이었다. 단지 장인걸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의향을 묻고 싶어서 전화를 한 것 같았다.
“알았어. 그렇게 할 게. 안정만 전무님에게 말해 대리급으로 들어가게 하면 되지?”
“그렇게 해도 될 거야. 당장은 사원으로 입사를 시키고 내년 졸업한 후에. 문라이트에서 활동한 것이 있으니. 음악에 관해서는 전문가이고 지명도도 있고. 프리뮤직 자체 제작을 하거나 이벤트를 할 경우에 심사를 해야 하는데 그런 일을 맡아서 하도록 한다면 될 것 같아.”
장인걸은 강진경보다 뒤처진 느낌이 들지만 그 정도가 최선이었다. 능력이 있지만 그 정도 배려해주는 것이 최선이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 성과를 내면 더 중요한 일을 맡기면 되었다.
“그리고 흥아 엔터에 말해 둘 것이니 밴드가 해체되면 바로 뮤지션으로 등록을 하라고 해. 그래야 음악가로 대접받을 수도 있을 것이니.”
문라이트는 앨범을 내면서 월광기획에 등록이 되어 활동을 했다. 당연히 권세라도 문라이트에 속해 있기에 월광기획 소속이었다. 밴드가 해체되면 소속이 사라지니 소속사가 없는 상태가 될 수가 있었다.
“알았어. 그렇게 말해 둘게. 그리고 이번에 소설의 결말을 올렸는데 봤어?”
“응, 봤어. 그것이 네들의 선택이라는 말이지?”
“어쩔 수 없잖아. 사람은 참 바보 같은 것 같아.”
장인걸은 전화통화이기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통신으로 이야기를 하면 도청이 될 위험이 있기에 말을 아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