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25
“기록하는 것은 누가 가르쳐 준 거야?”
이것은 이미향이 실용음악학원에서 작곡과 편곡을 배우면서 배운 방식으로 이런 기록이 생활화되면 나중에 편곡할 때에도 참고가 된다고 했다.
“기억은 한계가 있고 나중에 작업할 때도 참고하기 위해서 기록하는 거죠.”
장인걸은 회귀하기 전에 이미향에게 배웠다고 말할 수는 없기에 그런 식으로 얼버무렸다. 이미향에게 배웠다고 해도 적는 방식은 자신의 스타일대로 했기에 같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일단 파트를 나눈 대로 남자와 여자의 키로 변화시켰다. 그런 다음에 같이 부르는 부분을 체크하여 메인이 되는 보컬을 정하고 그에 맞도록 역시 조정을 했다.
그런 다음에 곡 전체를 다시 들었다. 그렇게 하는 것으로 곡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멜로디의 일부를 죽였네.”
이미향이 바로 그 부분을 체크했다.
“보컬을 강조하기 위해서 피아노 부분의 일부를 죽였죠. 괜찮은 것 같지 않아요? 그리고 일단 여기는 그대로 두지만 실제 공연을 한다면 이 부분을 바이올린 연주자를 직접 섭외하여 연주하게 할까 하는데 어때요?”
간주부분에서 바이올린은 필수였다.
“그렇게 하면 되겠네. 금방 마무리가 되었네.”
“이 정도만 해도 기본은 하겠지만 직접 맞춰 본 다음에 조금 수정을 해야죠. 지금 더 해봤자 사족이죠.”
이미향은 편곡은 최소한만 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입장이었다. 기교를 부린다고 편곡을 과잉으로 하다보면 원곡의 느낌이 사라지고 그러면 남는 것은 연주밖에 없다고 했다.
막 편곡을 마치자 늦은 시간에 7,8교시 수업을 마친 강진경이 동아리방으로 들어왔다.
“일단 이것 먼저 들어 보자.”
장인걸은 파트를 나눈 부분을 내밀면서 MR을 틀어주었다. 사전에 자신과 강진경의 음역에 맞춰 키를 조정한 상황이라 원곡과 느낌이 달랐다.
“일단 한 번 불러 보자.”
노래하는 창법도 제각각이고 영어발음도 그리 좋지가 않아 어색했지만 일반인이 부르는 수준에서는 그런대로 들어줄 정도는 되었다.
“발음이 콩글리쉬인데.”
강진경의 발음이 장인걸에 비해서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당시의 영어교육이 회화를 중시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인 영어교사가 영어를 가르쳤고 그러니 대부분의 학생의 발음이 좋지 않았다.
“너무 원어민처럼 발음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나아. 오히려 외국인처럼 발음하면 우리나라 청중들의 귀에는 이질적으로 들려 호응이 떨어지기도 해.”
옆에서 있던 이미향이 팝송을 부를 경우에 한국식 발음이 더 좋을 수도 있다고 충고했다.
“호텔 로비에 가면 필리핀이나 외국에서 온 가수들이 공연을 하는데 그들이 팝송을 부르면 오히려 어색해.”
이미향의 말에 장인걸도 그런 말을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외국에서 살다온 가수가 팝송을 불렀는데 너무 혀를 굴리고 발음이 뭉개져서 이상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장인걸은 공연을 준비하더라도 학교 공부와 일상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회귀 전 원경희와 사귈 때에도 학교 공부는 충실히 했었다. 이번에도 일상을 지키려고 노력을 했다.
“제법 노래를 하던데. 저번에 노래방이라도 갔어야 했는데.”
장유현은 장인걸이 회사로 찾아오자 자신의 연습실로 오라고 하더니 노래에 대해 언급했다.
“조금 올드한 분위기의 노래죠. 다행히 다들 아는 노래라 호응이 좋았던 것 같아요.”
장인걸은 겸손을 부릴 때라는 생각에 객관적으로 평가를 하려고 했다.
“그 노래도 쉬운 노래는 아니지. 창법 자체가 독특하기도 하고. 특히 명곡은 대충 부르는 것은 쉽지만 제대로 부르는 것은 만만치 않아.”
명곡은 대중성이 뛰어난 면이 있기에 쉽게 따라 부를 수가 있다. 하지만 독특한 매력, 독창성도 존재하기에 그 부분을 구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두 가지가 잘 어우러져 공전의 히트를 치는 것이 보통이었다.
“가수 되려고?”
“노래 불러 먹고 사는 것이 쉽나요. 일단 취미 삼아서 해야죠. 공부도 하고 군대도 다녀와야 하는데 그때에도 확신이 있다면 시도해 볼 생각이에요.”
“나도 그렇지만 너도 참 겁이 많은 것 같아. 신중한 것은 좋지만 너무 망설이다가 기회를 놓칠 수도 있어. 이거 한 번 읽어봐. 드라마 대본인데.”
장인걸은 장유현이 들고 있던 대본을 받았다. 대본의 제목을 보다가 어떤 드라마인지 알고 흥미로운 표정이 되었다.
“여기 장승필이라는 사람의 대사를 해봐.”
장인걸은 바로 읽기보다 앞뒤 내용을 살펴보고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살폈다. 그런 다음에 어떤 분위기인지 파악하고 장승필이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살폈다. 앞부분에 시놉시스가 있기에 캐릭터에 관한 것도 파악이 가능했다.
‘내가 연기에 재능이 있는지 보려는 것인가? 물론 하라고 하면 못할 것은 없지만.’장인걸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연기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만날 자기 기분대로 살던 고지식한 상사인 오정환 부장의 비위를 맞추면서 살았다. 항상 맘에 들지 않았지만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웃는 낯으로 상대를 했다.
그런 상황에 비하면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속에서는 천불이 나는데도 억누르고 ‘예예’거리는 것보다는 쉬운 일이었다.
장인걸은 자신이 파악한 캐릭터의 특성을 형상화한다는 기분으로 대사를 읽어 나갔다. 무려 열두 줄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어전에서 반대파의 대신들을 탄핵하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장승필이 논박하는 내용은 사실 모든 대신들에게 해당되고 심지어 그도 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지만 자신은 무관하다는 듯이 비분강개한 표정으로 공격을 하는 장면이었다.
물론 반대파도 그런 사실을 알고 모두가 아는데도 뻔뻔하게 나서는 장면이었다. 똑같은 짓을 하면서도 자기는 그런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장인걸의 대사가 끝나자 장유현은 신기한 것을 보았다는 표정이었다. 아주 재미가 있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야, 대단한데. 공부를 잘 한다고 들었지만 짧은 순간 캐릭터 분석도 대단하고 거기에 스스로 캐릭터를 만들어 내다니. 사극인데 톤 자체도 저절로 어울리게 만들어내고. 앞으로 연기해라. 성공할 것 같다.”
장유현이 연기를 시켜보려고 하는 것을 알지만 장인걸은 딱히 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음악은 재미가 있지만 연기는 즐겁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연기가 재미있어 보이지 않아서 잘 모르겠어요.”
즐겁지 않은 일을 해서 성공하는 것은 쉽지 않고 설사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어도 가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하긴 연기가 즐겁지 않으면 의미가 없지. 노래가 즐겁다면 노래를 하는 게 맞아. 나중에 데뷔를 하고 뮤직비디오라도 찍으면서 연기를 알게 되면 달라질 것이지만. 어쨌든 노래든 연기든 재능이 있으니 연예계에 진출해도 굶어 죽지는 않을 것 같네.”
장유현의 말에 장인걸은 그저 빙긋 웃기만 했다. 자신이 그런 능력을 가진 것이 놀랍기도 했다. 연예계는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이 될 것도 같았다.
“그러면 전에 말한 대로 기획사에 소개해 줄게.”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군 문제는 해결하고 움직일까 합니다. 군이 걸리면 어디건 약자가 되는 것 같습니다. 성공을 해도 어정쩡하고요.”
스포츠보다는 덜하지만 연예계는 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성공을 해도 성공한 것이 아닐 수가 있었다. 잘 나가던 스타도 군대에 갔다 오면 절반 가까이 복귀에 실패하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IMF 외환위기가 오면 어떤 분야보다도 타격을 크게 입는 분야가 연예계였다. 그런 상황에서 연기나 음악이나 입문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러면 언제 군대에 갔다 올 생각이야?”
“일단 2학년을 마치고 다녀올 생각입니다. 2001년에 복학을 할 것이고 그 때쯤이면 결정을 할 계획입니다.”
장인걸은 아직도 노래를 하는 것은 취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나서더라도 좀 더 실력을 키운 다음에 나서고 싶었다.
장유현은 장인걸과 만난 후에 장시현을 불렀다.
“실력은 어때요? 연기도 살펴본다면서요?”
“꽤 괜찮은데 할 생각이 없다네. 차라리 잘 되었어.”
“네? 무슨 말이에요?”
“내가 내년 정도에 독립할 생각이잖아. 굳이 지금 시켜서 남 좋은 일을 시킬 이유는 없을 것 같아. 그 후에 데려오는 것이 낫지. 2~3년 후에는 가수도 관리를 할 생각이고. 물론 영화제작이나 드라마 제작에도 투자를 할 계획이고.”
장유현과 장시현은 독립한 이후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 것의 일환으로 인지도를 올리기 위해 드라마 출연도 고려하고 있었다.
장인걸이 살폈던 대본은 ‘인세의 영웅’이라는 드라마 대본이었다. 현재 잠정적으로 출연을 결정하고 세부조건을 협의하고 있었다. 사극이다 보니 승마나 기타 무예 등의 액션을 익히기 위해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었다.
“그날 보니 노래를 잘 하던데 여전히 가수를 할 생각이래요?”
“사실 뜨기만 하면 가수가 더 낫지. 작곡까지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고. 잘하기만 하면 그게 더 돈이 되지.”
연기자는 보통 러닝개런티가 아니라면 출연료는 고정적이었다. 그렇기에 한 달에 3000만 원을 받기도 어려웠다. 광고모델료가 그나마 금액이 큰데 항상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재수가 없으면 아무런 광고에 출연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인기가 있어 행사에 나가더라도 가수에 비해서 연기자는 금액이 높지가 않았다. 지명도가 낮은 개그맨들보다도 더 낮은 행사비를 받았다.
“나도 출연료만 받았다면 개털이었을 거야. 출연하는 작품마다 10%가량을 투자한 덕에 재산을 모았지.”
출연료로 받은 금액은 1억을 넘지 못했다. 물론 최근에는 그보다 더 받았지만 초창기에는 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출연하는 작품마다 뜰 것이라 생각하여 투자를 했다. 신중하게 작품을 선택했기에 모조리 흥행에 성공하여 엄청난 부를 안겨주었다.
“하기야 판돈을 걸어야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고 형 때문에 피를 본 배우들도 몇 있죠.”
장유현이 작품에 출연할 때 10%를 투자한다는 것을 알고 영화제작사에서 주연급 배우에게 투자를 요청하기도 했고 배우가 투자를 하겠다고 먼저 나서기도 했는데 대부분 실패했다.
“그 덕분에 형이 출연하는 작품은 성공한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하죠. 이번에 개봉할 ‘좋은 날’도 다들 기대가 크더군요.”
“그거야 결과가 나와 봐야 아는 것이고. 그런데 막상 독립을 하려는데 경제상황이 좋지 못한 것 같아 걱정이다.”
장유현의 광고계약도 경제위기가 오면서 불발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회사에서도 영입하려던 배우의 계약금을 낮추는 바람에 계약이 무산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재정이 어려운 회사들이 속출한다고 합니다.”
연예인들이 소속된 회사들도 영세한 업체들이 대부분이었다. 인기 연예인의 계약금이 억대에 달하지만 그것이 다 빚이었다. 그런 비용을 뽑아낸다면 모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했고 각종 인건비까지 감당하다보면 적자가 커져 결국 망하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경기가 나빠지면 그 타격이 더욱 크게 미치기 마련이었고 지금처럼 기업이 줄 도산하는 상황에서는 어떤 회사도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웠다.
“어쨌든 재계약을 하지 않을 생각이니 그렇게 알고 준비를 해. 회사에서도 계약금을 전보다도 낮추려고 하는 것 같고.”
장유현은 독립을 기정사실로 하고 준비하고 있었다.
최유림은 무려 2000만 원의 돈을 다시 수령하자 난감했지만 자신에게 그만큼 큰 권한이 주어진 것이기에 혼자 끙끙댈 수밖에 없었다.
“너무 많은 자금이라 골치가 아프군요.”
장인걸은 다시 1200만 원이나 되는 돈을 최유림이 밤늦게 들고 찾아오자 곤혹스러웠다. 은행에 큰돈을 입금을 하려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다시 학교 근처에 있는 3개의 은행에 신규 계좌를 만들어서 400만 원씩 입금하기로 했다.
“법인을 만들면 자금을 관리하기 편하지만 그렇게 되면 상법과 형법의 적용을 받게 되어 간단한 문제가 아니게 됩니다. 돈을 빼냈다가 횡령으로 처벌받을 수도 있습니다.”
장인걸은 회사를 만들어서 관리하면 어떤지 묻는 최유림의 제안에 그렇게 답변을 했다. 법인을 만들게 되면 회사의 자금을 개인이 마음대로 인출할 수가 없게 되고 문제가 되면 형사적인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법무사에게 물으니 그런 말을 하기는 하더라. 너와 내가 자금을 주고받고 관리를 맡기는 것은 개인 간의 채권채무지만 회사가 끼게 되면 복잡해진다고.”
장인걸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 되었지만 일단 계좌에 넣어 두는 것으로 결정했다.
“주식 시장이 보합세를 보이거나 상승세라면 거기에 돈을 넣을 텐데 지금은 완전히 하락국면이라 들어가는 순간 손실이니 거기도 쉽지 않습니다. 부동산도 마찬가지이고요. 오죽 심하면 투기지역도 다 해제하는 상황이니.”
일단 그냥 가지고 있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행에 넣어놓는 것이 최선이었다.
“사실 무슨 돈이에요? 회사에서 사장님이 뒤로 빼내는 돈인가요? 비자금을 조성하는 것인데 이건 일종의 횡령이 아닌가요?”
장인걸은 월급쟁이가 가져올 돈이 아니기에 그렇게 물었다. 조직의 상납금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것도 법인이나 사업자 명의를 통한 조달일 것이니 그런 것이 아닌지 물었다.
“사실 이 돈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사장님이지. 나도 이런 일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비서라는 일이 다 이런 일이고 못한다고 나오면 갈 곳도 없고. 내가 보관하면 들킬 염려도 있고 문제가 되었을 경우 추적을 당할 수가 있지. 그렇다고 몰래 지하실이나 창고에 현금을 보관할 수도 없는 일이고.”
최유림은 조직이라는 것만 밝히지 않고 대부분의 사실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편의를 봐주면 나중에 사례하겠다는 말까지 했다. 아울러 원금만 보관하면 된다는 말을 했고 이득이 나면 반반씩 나누자고 설득했다.
“알았어요. 나중에 문제되면 돌려주면 되겠죠. 빌렸다고 하면 되니까요. 대신 나중을 위해 차용계약서를 하나 써야 할 것 같아요. 형이 가진 한 부는 바로 파기를 하고요.”
간단히 최유림에게 해당금액을 빌렸다는 차용증을 작성했다. 간인까지 찍어서 실제처럼 작성을 한 후에 최유림에게 주어야 할 원본 한 부를 바로 폐기했다.
이렇게 하면 장인걸만 자금출처를 증명할 수가 있게 되고 최유림은 흔적을 남기지 않을 수가 있었다.
“이러면 필요할 경우에만 이 계약서가 유효할 것입니다.”
최유림에게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는 계약서를 내보이지 않고 장인걸에게 문제가 생기면 사용할 예정이었다. 그런 경우는 없어야 하지만 만일의 사태는 대비할 필요가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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