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250
장인걸이 제안한 창투사 설립은 빠르게 진행이 되었다. 사채를 회수한 자금이 곧바로 자본으로 납입이 되었다. HR홀딩스의자회사로 HR창업투자주식회사가 만들어졌다.
창투사의 경우 투자촉진에 관한 정책의 일환으로 인해 금산분리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특수금융회사로 산하에 거느릴 수가 있었다. 주주는 실제 투자자들과 연관성을 입증할 수 없는 차명으로 이루어졌다.
그 숫자도 보통 10여 명에 달했다. 혹시라도 한 구좌에 모조리 투자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방법이 없고 통제 불능의 사태에 빠져들 수가 있기에 분산시킨 면도 있었다.
장인걸은 돈이 들어오자 사전에 조사한 유망한 업종에 투자했다. 프리웨이조사팀과 강동철의 조사팀, 마태욱의 조사팀까지 교차로 검증하여 인성까지 파악한 상황이었다.
“우리가 투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윤성욱 전무가 공장장으로 있는 이상 불가능합니다.”
투자가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고 실망했던 사장의 표정에 의아함이 어렸다.
“무슨 이유라도 있습니까?”
“심사를 하는 과정에서 제출한 서류 외에도 회사 차원에서 추가적인 조사를 진행합니다. 이미 그 조사에 대한 동의를 받은 상황이고요. 그 결과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되었습니다.”
“알겠습니다. 이중 견적의 문제가 몇 번 제기되었지만 동업자가 설마 그렇게 할까 싶어 따지지 않았는데 바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그 문제만 해결되면 됩니까?”
“그렇습니다. 윤리문제에서 거래 불가 판정이 내려졌습니다.”
창투사는 단지 돈만 빌려주기보다 문제의 해결도 제시했다.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그것만 해결이 되면 잘 될 회사는 투자와 함께 그런 문제까지 해결해주었다.
그런 일을 하다가 장인걸은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8월 말부터 훈련에 들어갔다. 8월 말에 프리웨이 상장이 이루어지면서 장인걸과 HR홀딩스가 보유한 상장주식의 시가 총액은 무려 3조 원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처음 2만원으로 상장된 프리웨이의 주식은 1주일 사이에 3만 원을 돌파했고 다시 열흘이 지나면서 4만 원을 돌파했다. 상장할 때 3조원이던 시가 총액이 무려 6조원 이상으로 치솟았다.
‘너무 오르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군. 산이 높으면 그만큼 골짜기도 깊다는데. 회귀 전에도 3조, 5조 했는데 프리웨이는 그 수준을 돌파하는 것 같군. 지금부터 대비해야 할 것 같아.’ 장인걸은 프리웨이의 주가가 너무나 상승하자 오히려 걱정이 되었다. 버블이 가라앉으면 그로 인해 비난이 폭주할 것이 분명했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만들고자 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버블이라고 경고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 장인걸은 프리웨이나 다른 계열사가 IT버블의 직격탄을 받는 대상이 되지 않도록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주가를 공모가보다 높게 유지하도록 할 필요는 있겠군. 미국의 9.11테러시기에 그 가격을 유지시키는 것을 목표로 해야겠군.’ 장인걸은 허튼 짓을 하지 않도록 긴축을 하면서 내실을 기하는데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버블이 붕괴되어도 내재가치가 공개할 때보다 더 높으면 변명할 거리가 될 것 같았다.
‘주가가 요동을 치고 상승하는 것은 내 소관이 아니다. 문제는 공모가 이하로 떨어지는 것인데 그것도 사실 회사만 잘 굴러가면 의미가 없다. 묻지마 투자 열풍은 누구도 막을 수는 없다.’ 장인걸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IT산업을 실물경제와 연동시켜 내실을 기하는데 주력하기로 했다. 망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망한다면 모든 비난을 다 받을 수밖에 없고 자신의 인생마저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
‘올해는 앨범도 내지 않고 콘서트도 하지 않았더니 팬들의 불만이 크군. 올림픽이 끝나고 가을에 앨범을 내야겠군.’ 장인걸은 앨범 준비를 거의 다 했지만 일이 많아 나중으로 미뤄둔 상황이었다. 앨범만 내고 활동하지 못하면 발표할 의미가 없었다. 올림픽이 끝난 후에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앨범을 발매할 계획이었다.
‘일단 IT버블에 대응하여 최대한 내실을 기하자. 그리고 IT버블 붕괴에 대비하자. 물론 그 후에 마이텔을 인수하자. 내년 이 때쯤이면 마이텔의 부도위험이 대두될 것이고 바로 인수하지 말고 월드컵 즈음하여 인수하는 것으로 하자. 부도유예협약이니 부도니 하면서 2년 가까이 지난 후에 정리가 되었다. 그 전에는 월드컵을 겨냥한 마케팅도 하고.’ 장인걸은 스마트폰을 개발하여 스마트 시대에 대비할 생각이었다. 회귀 전에는 스마트폰을 늦게 도입했는데 이번에는 한국에서 가장 먼저 도입할 수 있도록 만들 계획이었다.
‘그걸 위해 백제화학을 인수하고 AM그룹을 인수했다. 또한 미국에 HR기술연구소도 개설하고 미로연구소와 공동으로 차세대 이동통신 CPU를 개발하고 있다. 또한 프리웨이 산하에 차세대 이동통신용 운용시스템과 스마트폰 운용시스템마저 개발하고 있다. 퀄컴에 하드웨어를, 애플이나 구글에 소프트웨어를 내어주는 사태는 방지해야 한다.’ 장인걸은 천명그룹과 경쟁하고 협력하는 수밖에 없기에 그 시기를 대비하려고 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생각했다.
한 달 가까이 본격적인 훈련을 한 후에 올림픽 개최도시 시드니에 당도하여 3일간 준비를 한 후에 마침내 마라톤종목 경기에 출전했다. 시차가 그리 많이 나지 않기에 빨리 가지 않았다.
마라톤은 올림픽 게임의 마지막 파이널을 장식하는 경기이기에 올림픽의 꽃이기도 했다. 올림픽에서 남자 100m, 남자 축구와 더불어 가장 가치가 높은 3개의 메달 중에 하나였다.
장인걸은 누구보다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움직일 때마다 기자들이 달라붙어 인터뷰를 하려고 했다. 전에는 컨디션 조절을 핑계로 기자들을 외면했지만 이번에는 적당히 맘에 드는 인상, 기운을 가진 기자들과 동행을 하면서 적당히 인터뷰에 응했다.
“사실상 이번 올림픽에서 우승하면 은퇴할 것이라고 선언했는데 정말로 그렇게 할 것입니까?”
“그럴 계획입니다. 다시 가수의 길을 가고 경영자의 길을 가려고 합니다. 올림픽이 끝난 후에 앨범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한국과 미국에서 두 가지 종류의 앨범을 발매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기존에 한국어로 발매한 2집 앨범을 영어가사로 번안하여 발표한다고 알렸다.
“제가 듣기에 자산이 30억 달러를 돌파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 최대 인터넷 기업의 오너라고 하던데 그 나이에 어떻게 창업하게 된 것입니까?”
“평소 인터넷에 관심이 많았고 적용하고 싶은 아이디어도 많았습니다. 다행히 제가 가수를 하면서 그런 꿈을 실현할 자금이 확보했고 과감히 도전했는데 성공한 것 같습니다.”
장인걸은 적당히 대답을 했고 그렇게 인터뷰한 내용은 바로 보도가 되고 다시 그것을 다른 언론이 받아서 보도하자 장인걸에 대한 뉴스가 끊이지 않았다.
“로테르담 마라톤 대회에서 도핑테스트 문제로 실랑이가 벌어졌고 그 이후에 도핑테스트용 혈액샘플 관리 문제로 인해 파문일 일었습니다. 그 문제는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실로 끔찍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절대로 벌어져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습니다. 비윤리적인 행위에 관련된 자들을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 아울러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시스템을 보완해야 할 것입니다. 그나마 이번 대회에서 모든 도핑테스트 시에 옵서버의 참관을 허용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기존에는 도핑테스트를 완전 밀실에서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한 상태에서 진행했다. 그러다가 양성이 나오면 샘플에 이물질을 첨가했다는 반박이 이어지고 음모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는 공개된 장소에서 테스트를 했고 모두가 참관이 가능했다.
“이번에도 신기록을 노릴 것이고 그동안의 훈련이 성과를 보인다면 좋은 기록이 나올 것이라 봅니다. 하지만 날씨가 덥고 코스가 편도이기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의문입니다. 물론 저의 경우에는 혼자 질주하는 면이 있기에 기록 단축을 위한 페이스메이커의 유무와는 상관이 없지만요.”
장인걸은 그렇게 말한 후에 출발 전에 해야 할 조치를 취했다. 그런 조치를 누락하면 올림픽의 경우 실격을 당할 수 있었다. 이원희 코치의 안내에 따라 하나하나 절차를 진행했다.
마침내 출발지점에 나서서 기다렸다. 몇몇 얼굴을 익힌 선수들과 가볍게 손 인사를 한 후에 한동안 기다렸다 스타트 건의 출발 신호와 함께 장인걸은 앞으로 달려 나갔다.
장인걸은 빠르게 달려 나갔다. 그렇게 달려가는 장인걸의 뒤를 여러 선수가 바짝 따라왔다. 각 국가에서는 기준기록을 넘는 선수가 3명 이상이면 3명, 2명이면 2명, 1명이거나 하나도 없으면 1명만 출전할 수 있기에 마라톤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는 고작 90여 명에 불과했다.
3명이 참가한 국가가 10여 개 국가에 불과했고 나머지 국가는 2명이나 1명이 참가했고 한 명도 참가하지 않은 국가가 훨씬 많았다. 보통 200여 명 가까이 참가하는 다른 대회와는 크게 차이가 있었다.
올림픽은 보통 기록이 아닌 순위였지만 장인걸은 기록에 중점을 두면서 레이스를 운영했다. 장인걸이 초반부터 질주하자 몇몇 선수의 기운이 요동을 쳤지만 무시했다. 그들이 화를 내거나 초조해 하거나 하등 신경 쓸 이유는 없었다.
아시안게임이나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보여준 레이스를 다시 한 번 재현했다. 두 대회보다 두 배는 많은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장인걸은 힘찬 레이스를 펼쳤다.
14분에 5km를 돌파한 장인걸은 이번에는 5km를 14분 40초의 페이스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35km 지점을 통과하자 1시간 42분이 지나고 있었다. 장인걸은 남은 7.195km를 21분 안에 돌파하기로 마음먹고 약간 속도를 높였다. 그렇게 하면 2시간 3분을 돌파하여 2시간 2분대의 기록이 나올 것 같았다.
장인걸이 결승선을 통과하자 기록이 나왔는데 2시간 2분 44초로 목표로 한 21분보다 16초나 단축을 했다. 막판 1km를 남긴 지점부터 응원하는 사람들 때문에 약간 페이스를 올렸는데 그것이 크게 작용을 한 것 같았다.
장인걸이 앞에서 까마득히 사라지고 말자 회귀 전에는 10분도 훌쩍 넘었던 다른 선수의 기록이 2시간 8분대의 기록으로 상승했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은 순위경쟁을 하는 레이스가 펼쳐졌고 그래서 아시아나 유럽 출신 선수가 강세를 보였는데 이번 대회에서는 장인걸을 제외하고 상위권에 대부분 아프리카계 선수가 들어왔다.
장인걸은 마침내 마라톤에서 올림픽, 세계선수권, 대륙의 올림피아드, 4대 마라톤대회 석권이라는 유일무이한 기록의 보유자가 되었다. 또한 중요한 7개 대회의 대회최고기록을 보유한 유일무이한 선수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시드니대회 MVP로 선정이 되어 폐막식 마라톤 금메달 시상과 더불어 MVP 수상까지 하게 되었다.
올림픽을 마치고 돌아온 장인걸은 다시 학교에 다니면서 회사 일을 처리했다. 복학한 후에는 학교 앞에 회장실을 차린 다음에 그곳에서 업무를 처리했다. 이동하는 시간도 아까웠다.
그러면서 인근에 있는 자신 소유의 건물에 마련한 스튜디오에서 그간 준비한 앨범을 녹음했다. 은마기획과 동아리에서 사용하던 건물이었는데 은마기획이 별도의 스튜디오를 만들어서 이전하고 동아리마저 따라가자 집에 있던 장비를 옮기고 새로운 장비를 들여서 전용 스튜디오로 개장했다.
그렇게 하는 사이 어느새 10월 말이 되었고 장인걸은 앨범 녹음이 끝나자 11월 초에 마침내 앨범을 발매했다.
앨범이 나왔지만 장인걸은 학교를 수업과 회사 경영을 핑계로 최대한 활동을 자제했다. 방송국에서도 장인걸의 수업시간을 고려하여 편의를 봐주었기에 별다른 분란은 없었다.
미국에서도 장인걸의 앨범이 1집보다 훨씬 빨리 반응을 보였다. 특별한 홍보활동을 하지 않았어도 일주일 사이에 무려 10만 장이나 팔렸다. 뮤지션들도 장인걸의 노래가 대단하다는 평을 했다. 이번에 발표한 노래는 미국인의 정서에 어필하는 면이 있었다.
물론 미국 음악시장의 특성을 알기에 사전에 뮤직비디오를 사전에 제작하여 자신이 직접 출연하지 않아도 케이블TV에 방송이 되도록 했다. 그런 준비가 빛을 발해 성과를 냈다.
“겨울 방학 기간인 1월에는 한국에서, 2월에는 미국에서 짧게 홍보활동을 할 예정입니다. 한국에서는 6대 도시에서, 미국에서도 역시 6대 도시에서 콘서트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합니다.”
장인걸은 일반적인 홍보활동이 아닌 순회 콘서트로 활동방향을 정하고 준비하도록 했다. 농구나 배구 같은 겨울 스포츠가 진행되고 있기에 주로 경기가 없는 날을 골라 체육관에서 공연하는 일정을 잡았다.
미국의 경우에는 닉 플로이언의 SCM 레이블이 별도로 현지 공연 전문기획사인 ‘스타 라이트’라는 쇼 비즈니스 회사와 공동으로 공연을 기획했다. 총 12회의 공연을 할 예정이었다.
LA,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애틀랜타, 휴스턴, 뉴욕에서 공연하기로 했다. 라스베이거스와 보스턴, 필라델피아, 댈러스, 시애틀의 경우에도 후보에 올랐지만 나중에 하기로 했다. 사실 아직까지 티켓 파워가 부족한 면도 있었다.
“연말이라 국내에서 활동을 할 필요는 있습니다. 가장 행사가 많습니다. 거기다 방송사 연말대상도 있고요.”
“적정한 수준의 행사라면 활동할 수는 있겠지만 무작정 행사에 나가고 싶지 않으니 잘 선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연말대상은 참여하도록 하지요.”
장인걸은 굳이 행사를 뛸 생각이 없기에 적절한 행사만 잡으라고 했다. 사실 IT버블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회사 일을 적절히 처리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IT버블이 붕괴될 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했다.
“버블은 반드시 붕괴하기 마련입니다. 또한 버블이 붕괴할 때에도 기회는 존재합니다. 이번 버블붕괴에 휩쓸려서 우량주들까지 폭락할 것이니 그 때 그런 종목들을 싼 값에 쓸어 담을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에 부사장으로 승진한 안정만이 나중에 투자하자는 의견을 개진했다. 장인걸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한 것 같았다.
HR전자로 이름을 바꾼 AM그룹은 정상화를 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차근차근 영업을 하고 연구개발한 제품을 라인에 투입하면서 호전이 되고 있었다.
HR화학에서 그동안 연구개발한 반도체 관련 특허를 제공하면서 경쟁력도 확보되는 면이 있었고 미국의 미로연구소에서 개발한 미로스-01을 생산하게 되면서 채산성도 좋아졌다.
장인걸은 HR전자에서 황기성 사장, 윤일중 연구소장, 박시운 HR화학 사장과 같이 향후 반도체분야를 어떻게 할지 논의하고 있었다.
“현재 반도체 업계의 화두는 초박막이나 3차원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기술을 확보해야 살아남을 것입니다. 사실 이론이나 실험실 수준의 기술은 이미 개발이 되어 있지만 그것을 경제성이 있는 양산기술로 개발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윤일중 연구소장이 현재의 기술동향에 대하여 언급을 했다.
“사실 남들만큼 하면서 따라가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상용화가 되고 1년 정도 지나면 대충 흉내를 낼 수 있습니다. 특허침해를 피할 수가 없지만요. 물론 설비나 자본력이 딸려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주요 반도체 업체는 어쨌든 기술 수준은 쫓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선도하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말씀이군요.”
“맞습니다. 1년이면 반도체 제품 주기 상 또 다른 신제품을 출시할 아주 긴 시간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따라가면 채산성은 아주 좋지가 못할 것입니다. 이미 선도업체가 단물을 싹 다 빼먹은 상황이니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 HR의 수준은 어떤가요?”
“남들 하는 수준입니다. 그렇지만 HR화학이 합류하면서 소재에서 상당한 강점을 가지게 되었고 미국의 미로연구소와 협업을 하면서 설계분야에서도 상당한 진척을 갖게 되었습니다. 거기다 폴라텍스트 때문에 클라우드 시스템에 특화된 반도체의 개발능력도 확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즘 시간이 나면 연구개발 관련 자료를 살피고 있지만 고작 이해를 하는 수준이지 어떤 방향을 잡거나 개발방향을 잡을 수준은 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장인걸은 프리웨이나 폴라텍스트의 제품은 같이 개발에 참여할 수 있지만 반도체는 불가능한 상황이라 답답했다. 워낙 전문적이고 미세한 분야라 아직도 이해를 하는 것도 벅찼다. 1년 이상 전문서적을 공부했지만 이제 입문한 수준이었다.
“사주나 경영진 중에서 그 정도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황기성 사장님도 사실 반도체의 이름만 알지 기술적인 문제에 들어가면 잘 모릅니다. 연구원 출신의 경영자도 현장을 떠난 상황이라 평가를 하는 정도가 고작입니다.”
박시언 대표가 장인걸의 수준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이공계 학생이고 1년 가까이 공부를 했다면 새로운 것을 개발하지 못해도 평가할 정도는 되어야죠?”
“그건 과욕입니다. 마치 논문을 쓴다면 무조건 내이처나 사이언스에 기재될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다 잘하는 분야가 다릅니다. 전공이 왜 있겠습니까?”
황기성 사장마저 장인걸에게 욕심이라고 타박을 했다.
“프리웨이나 폴라텍스트와 같지 않습니다. 그 분야는 눈에 보이고 어렵지 않게 검증이 가능하지만 반도체는 다릅니다. 끝없이 테스트를 해야 검증이 가능합니다. 그것도 일반적인 방식이 아닌 최첨단의 방식으로요.”
박시운 대표가 지금 정도에 만족하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들은 장인걸이 반도체 관련 논문이나 연구자료를 꾸준히 섭렵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연구개발에 기여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
장인걸은 한국에서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잠깐 시간을 마련하여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가 보유한 20억 달러에 달하는 주식을 처분하고 이후의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얼마 전에 10억 달러를 돌파했는데 그 사이에 배나 불어났다.
“버블입니다. 이대로 가면 조만간 버블이 붕괴될 것입니다. 버블이 붕괴되는 순간 주식은 휴지조각이 되고 말 것입니다.”
장인걸은 페럴 해런드와 이석현 박사, 엘레나 킴, 한스 마케나와 회의를 하고 있었다.
“따라서 최대한 빨리 정리해야 합니다. 비상장 주식과 미로 연구소, 유닉스생체과학연구소의 지분을 제외하고 모두 처분하도록 하십시오.”
장인걸은 앞으로 주가가 좀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지만 정리하기로 했다. 더구나 타임워너와 AOL의 합병이 이루어지는 1월 11일이 본격적인 버블 붕괴의 시점이라는 것을 알기에 시간을 두고 정리할 것을 독려했다.
“벌써 11월입니다. 연말이 임박한 시점이나 내년 초에 붕괴될 것이라 봅니다. 특히 현재 세기의 M&A라 일컬어지는 타임워너와 AOL의 합병은 버블 붕괴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 봅니다.”
장인걸의 말에 다들 의구심을 표명하고 있으면서도 그간 장인걸이 지시한 것들이 다소 이상해도 나중에는 가장 합리적인 방향이라는 것이 밝혀졌기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주식 투자는 2001년 10월 이후에 시작하면 됩니다. 그 기간 동안 살아남을 것으로 보이는 IT기업에 대한 조사를 하면 됩니다. 대신에 매월 하락으로 주가지수 선물에 투자를 하도록 합니다. 앞으로 매월 5,000만 달러 한도로 계약을 하면 됩니다. 레버리지를 사용하면 수익률이 좋을 것입니다. 재수가 좋으면 20배, 100배도 가능할 것입니다.”
장인걸은 버블 붕괴와 1년 후쯤에 벌어질 비극을 막을 수 없다면 그것을 최대한 이용하기로 했다. IT버블붕괴에 이어지는 그 사태로 주가는 대폭락을 이룰 것 같았다. 물론 그 시기에 약간의 반등으로 인해 하락에 투자할 경우 한두 달 손해를 볼 수도 있지만 그건 감수하기로 했다.
장인걸은 면밀하게 시장을 살피면서 주가가 고점에 이른 것부터 매도하도록 했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아직 저가인 몇몇 테마주를 매입했다. IT버블 시기에 대표적인 버블 주식을 알고 있기에 그것들을 구매했다.
‘파로미나 온라인, 현재 12달러이지만 두 달 후에는 무려 380달러까지 치고 올라간다. 미친 상승률이다. 헤일러스 사이언스, 현재 7달러에 불과하지만 450 달러까지 올라간다. 이건 더 미친 주식이지. 에스트란 닷컴은 현재 30달러지만 120달러까지 오르자 10주로 액면분할을 하여 12달러에 재상장 하는데 다시 45달러까지 오른다. 무려 15배 오르는 종목이다.’ 장인걸은 보유한 주식을 대부분 처분하면서 세 종목을 포함하여 버블이 크게 발생하는 주식을 구입한다. 12억 달러의 현금을 보유하도록 했고 12개 종목의 주식에 8억 달러를 투입하여 매집하도록 했다. 끝물이지만 최후까지 이익을 챙기기로 했다.
구입할 때는 8억 달러를 투입했지만 1월과 2월에 그것을 처분하자 무려 35억 달러에 달했다. 기존에 확보한 현금 12억 달러를 합하면 47억 달러나 되었다.
장인걸은 사전에 어깨 가격에 팔도록 지시를 내려놓았다. 자신이 개입한 상황이기에 나비 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고점에 도달하기 전에 폭락할 수도 있기에 자신이 기억하는 고점의 70%의 가격이 되면 점진적으로 정리하도록 했다.
다시 한 번 그 전에 바하마에서 도입한 자금은 모두 상환하도록 하여 나중에 조사를 받더라도 문제가 없도록 했다.
끝ⓒ (2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