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26
8. 축제의 시작
3월 중에 12명의 신입생이 동아리에 가입을 했다. 4월 1일이 되자 이미향은 바로 동아리 신입생 환영회 일정을 공고했고 환영회 이틀 후인 첫째 주 주말에 MT를 가기로 했다.
“금요일 오후 3시에 1차, 금요일 저녁 7시에 2차가 출발하고 토요일 오전 9시에 3차가 출발합니다.”
MT는 전처럼 강촌으로 기차를 이용하여 가기로 했다.
“몇 시에 출발할 거야?”
“오전에 수업이 끝나니까 그냥 1차로 가려고요.”
선배들과 락 공연 연습을 마치고 난 후에 권세라가 언제 갈지 물었다.
“나는 4시에 수업이 끝나 2차로 갈 수밖에 없는데 아쉽네. 2차로 갈 생각 없어? 나랑 같이 2차로 가자.”
권세라가 자기랑 같이 가자고 하면서 말을 붙였다.
“그냥 일찌감치 갈게요. 그렇게 신청도 끝났어요.”
장인걸은 권세라와 같이 가면 뭔가 피곤한 일이 생길 것 같아 피하였다. 사실 강진경도 조금 귀찮은 면이 있지만 권세라는 더욱 부담이 되었다.
“사실 듀엣을 조금 더 연습할 필요가 있어 먼저 가서 잠깐 연습을 하기로 했어요.”
권세라의 태도를 보면 어떻게든 장인걸이 강진경이나 다른 여자를 만나지 못하게 하려는 면이 보였다. 기회만 되면 집 밥을 먹고 싶다면서 자취방을 방문하려고 해서 그럴 틈을 주지 않고 있었다.
“그래? 연습 때문이라면 어쩔 수 없지.”
권세라는 아쉬워하면서도 더 이상 채근하지 않았다.
“이번 1학년은 우리 때보다도 실력자가 더 없어 보여 걱정이야. 너와 진경이 빼고는 완전 초보들이니.”
권세라가 푸념을 했다. 노래를 잘하거나 악기를 잘 다뤄야 하는데 둘 다 못하는 사람이 가입을 했다. 그러면 결국 선배들이 가르쳐 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았다.
그렇게 교습을 받아도 재능이 없어 실력이 늘지 않으면 하나둘 그만두기 시작해 2학년에 올라가면 가입한 신입생 절반만 남았다. 탈퇴를 하는 것은 아닌데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고 활동을 하지 않았다.
“다들 열의는 있어 보이던데요. 특히 동수와 민재는 아예 기타교습을 받는다고 학원까지 등록했던데요. 학과 공부 외에는 음악만 하고요.”
“지금 기본을 배우면 1년은 지나야 흉내라도 내는데 2학년이 되어도 공연에 나서기 어렵지.”
장인걸도 전에는 2학년이 되어서도 겨우 기초나 떼는 정도였다. 그런 사람도 꾸준히 연습하면 시간이 지나자 실력이 늘었다.
“그리고 상우를 보면 박자감이 뛰어나 드럼을 배우면 잘 할 것 같던데요. 며칠 사이에 확 실력이 늘었던데요.”
“그렇기야 하지만 걔는 제 마음대로 하는 경향이 있어서 쉽게 실력이 늘지 않을 타입이야. 예술가가 고집이 없으면 안 되지만 그것도 기본 실력을 갖추고 난 이후이지 개뿔도 없으면서 설치면 그건 시건방진 거지. 걔는 인간이 먼저 되어야 해.”
권세라의 말에 장인걸은 달리 말을 하지 않았다. 박상우는 그런 문제 때문에 권세라와 상당히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결국 2학기가 되어서야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되고 제대로 된 기본기를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 후 6개월 만에 일취월장하여 권세라가 가르칠 것이 없는 실력을 갖게 되고 유일하게 1학년 중에서 음악을 계속하게 되었다. 하지만 2학년 1학기에 퀸즈바드라는 언더그라운드 밴드의 드러머로 발탁이 되면서 동아리를 떠났다.
그 후에 학교마저 그만두고 드러머로 활동했지만 성취욕이 강해 언더그라운드에 만족하지 못했다. 밝은 곳으로 나오려고 기를 썼고 퀸즈바드를 일방적으로 탈퇴를 한 후에 아이돌밴드인 크라스노트라는 YT기획의 밴드드러머로 옮겨가서 그가 막 제대할 무렵에 풍파를 일으키기도 했었다.
어쩌면 권세라의 말처럼 인성이 조금 덜 된 사람인지도 몰랐다. 아이돌밴드 데뷔이후 드러머 중에서 자기가 최고라는 생각을 항상 내보이다가 적지 않은 욕을 얻어먹기도 했었다. 결국 그런 성향으로 인해 데뷔하고 난 다음에 영국의 드러머와 트러블이 발생해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더구나 내가 복학한 이후에 예능프로그램의 촬영을 하러 동아리방에 왔다가 학생들 수준이 떨어졌다고 지랄을 했지. 특히 내 드럼 실력이 자신에 비해 워낙 떨어진다고 말했지.’고작 1년 있던 자가 마치 자기가 동아리를 만들고 기틀을 다진 것처럼 이야기를 했고 그로 인해 졸업한 선배들까지 게거품을 물면서 성토를 했지만 마침 월드컵과 맞물려서 유야무야 되고 말았다.
그걸 생각하면 화가 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어떻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이번에는 실력으로 그를 누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진경이와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2학년도 미향이와 화영이, 내가 없었으면 중심이 없어 더 힘들었을 거야. 영민이는 노래와 춤에만 관심이 있고 동아리 활동에 적극적이지도 않고. 그나마 선배들이 도와줘서 조금 낫지. 윤혜 선배나 상운이 선배에 비해 우리가 조금 실력이 떨어지는 편이지.”
지금 2학년도 노래나 악기에서 아주 뛰어난 선배가 없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고 복학생이 돌아오면서 달라지지만 어느 기수나 마찬가지였다.
최유림은 보스인 안광현에게 자신이 관리하는 3500만원에 대하여 보고를 했다. 내용이야 안전하게 잘 보관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부동산은 구입하지 않은 것 같군.”
“금액도 작고 언제 찾을지 몰라 일단 믿을만한 사람의 계좌를 빌려 예금을 해둔 상황입니다. 지금은 자금을 은밀하게 보관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최유림은 장인걸이 노출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간단히 보고했다. 비자금을 보관한 사람이 알려지면 위험할 수 있었다.
“당분간, 최소 3년가량은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니 어려우면 부동산에도 투자를 해. 관리를 하는데 부동산이 그나마 편리하니. 보관한 자금이 필요하면 몇 달 전에 말할 것이니.”
안광현은 자금 운용에 여유를 주었다. 그런 여유를 주지 않으면 장기 투자는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정권말기인데 돈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 정도 돈이야 언제라도 조달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나도 은퇴를 해야 하는데 노후 대비를 해야지.”
최유림은 안광현이 은퇴를 언급하자 걱정이 되었지만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그로 인해 발생할 혼란은 항상 피를 불렀기 때문이었다. 특히 암흑가에서의 세대교체는 사실상 반란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평화적으로 진행이 되더라도 전임자의 제거나 후임자를 제거하는 2인자 숙청으로 이어졌다.
그렇지 않으면 후계자가 되지 못한 실력자가 나서 후계자를 제거하고 조직을 장악하는 일이 벌어졌다.
‘누구를 생각하지. 이치성을 미는 것인가? 하지만 이치성 전무는 너무 어린데. 차태근 부회장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인데.’최유림도 보스의 비서이기에 대략 조직내부의 역학관계를 알고 있었다. 중간간부까지는 주먹이 우선이지만 그 이후에는 조직내부의 세력과 자금이 모든 것을 좌우하고 있었다.
또한 조직 내 서열이라는 것도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역학관계에 따라 수시로 변동했다. 그렇기에 일반 회사보다도 더 내부 경쟁이 치열했다.
“알겠습니다. 최대한 잘 운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운용하여 이득이 나면 적당히 나누었다. 그런 메리트가 없다면 굳이 운용할 이유가 없었다.
장인걸은 은행을 다니면서 계좌를 만들었다. 워낙 은행이 난립한 상황이라 10개 은행에 계좌를 만들어도 다섯 개 정도의 은행이 남았다. 더구나 10여 개의 종금사까지 고려하면 앞으로도 15개의 계좌를 만들 수가 있었다.
또한 증권회사에도 계좌를 만들 수 있기에 40개의 계좌를 더 만들 수도 있어 보였다. 그렇게 한다면 주목을 받지 않고 돈을 분산할 수도 있어 보였다.
‘하여간 이 정도로 은행과 금융기관이 난립한 상황이니 대출도 경쟁적으로 해주는 사태가 벌어져 금융위기를 초래했겠지.’장인걸은 가볍게 보아 넘겼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사이에 한국경제는 서서히 침몰해가고 있었다.
장인걸은 경제관련 뉴스를 보면서 착잡한 기분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재벌그룹의 자금사정이 날로 악화되고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심각한 위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설사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오히려 안 되기를 기원하는 사람으로 매도되어 몰매를 맞는 상황이 벌어졌다.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자에 대하여 엄단을 하겠다는 말을 공공연히 했던 정치가와 고위 관료들은 아무런 문제도 없이 잘 넘어갔다. 저 팬더멘탈이 굳건해서 문제가 없다는 드립을 치고 있다니 듣기만 해도 끔찍하군.’모든 정치가와 관료, 기업인들, 심지어 학자들까지 한 목소리가 되어 문제없다는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것 자체가 문제가 심각함을 보여주는 반증인데 일반 국민들은 알지를 못하고 그런 주장에 동조하는 상황이니 누구도 막을 수 없어 보였다.
‘결국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가 무너진 이후에 잇속을 차리는 것 밖에 방도가 없는가?’그렇게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 외에 방도가 없었다.
‘외환위기를 예방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이니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그저 잘 대응하여 기회를 잡는 것이 최선이다. 어디에 뭉텅이 돈이 있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기억을 뒤져 보아도 그런 건수가 없으니.’그런 건수를 찾으려고 했지만 그런 기억 자체가 없었다. 당시에 워낙 활동을 하지 않았으니 그것을 알 리가 없었다.
‘유림이 형을 잘 구슬려서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가?’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말단에 불과해 보이는 최유림이 더 큰 돈을 관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돈이란 일종의 권력이기 때문이었다.
수요일에 동아리 신입생 환영회가 열렸다. 신입생들도 이미 대학 생활을 한 달 이상 했기에 술에 관해서는 아주 생짜들은 아니고 상당한 주당들도 있었다.
그 자리에서 장인걸은 잠깐의 방심으로 실수를 하고 말았다. 락을 하기로 한 멤버들과 발동이 걸려 정신없이 술을 들이 부었다. 그러다가 취기를 이기기 어려워서 잠시 화장실을 갔다가 술이 올라와서 밖에 나와 바람을 쐬고 있는데 강진경이 찾아왔다.
“난 네가 마음에 들어.”
정신이 없는 상황이라 술이 들어간 강진경에게 그런 말을 할 분위기를 허용하고 말았다. 권세라와 달리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능력이 더 뛰어났다.
“네가 세라선배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채고 있어. 그렇다고 당장 여자 친구를 사귈 생각이 없는 것도. 그저 편하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도 알아.”
장인걸은 강진경이 말을 꺼내자 자신의 생각이 그대로 다 읽혔다는 것에 뜨끔한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나와 건전한 관계로 지내기를 원하지? 물론 그 이면에는 다른 여학생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물론 그렇기에 항상 긴장하면서 나와 거리를 유지하려고 하는 편이기도 하고.”
장인걸은 강진경이 그 정도로 자신을 분석한 것에 놀라 바로 반박을 하지 못했다. 거의 정확한 분석이기도 했다.
“한 마디만 말할게. 나는 네가 좋아. 그리고 네가 원한다면 편의를 봐줄 생각이야. 나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면 뭐든 요구해도 좋아. 단지 그걸 들어주거나 거부하는 것은 나의 선택이고. 그리고 나는 남자가 양다리를 걸치는 것에 대해 비난하지 않아. 친구를 꼭 한 명만 사귀지 않는 것처럼 이성 친구도 좋으면 그냥 만나면 되는 거지. 전에 말했듯 나는 맘에 들면 누구라도 친하게 지낼 거야. 그러니 남을 비난할 생각도 없고. 그런 생각이니 나를 편하게 대해. 심지어 동아리의 다른 여자들을 사귀는 것도 개의치 않아. 네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갈라서면 되는 일이고.”
그렇게 말하고 강진경은 가게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 한 마디로 언제라도 만날 수 있고 헤어질 수도 있으며 원한다면 만나는 것에 대해 비밀을 지켜주겠다는 말이었다.
심지어 장인걸이 자신과 만나면서 양다리를 걸쳐도 문제가 없으니 자신과 사귀자는 말이었다. 장인걸은 강진경의 말에 고개를 젓고 말았다. 술김에라도 그런 말을 대놓고 말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어쩌면 자존심마저 내려놓고 마지막으로 승부수를 던진 것인지도 몰랐다.
한동안 찬바람에 머리를 식히면서 어질어질한 머리를 정리하려고 했다. 강진경이 조금 이상한 여자라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남자에게 대놓고 말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렇다고 하여 자신이 좋다는 여자를 싫어할 이유도 없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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