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27
“하긴 이러다가 욕구불만으로 있다가는 이성을 잃을지도 모르지. 더구나 저렇게 유혹을 하는데 외면하기에는 내 혈기가 너무나 왕성해. 고작 나이 스물인데.”
그렇게 나직하게 중얼거리고 가게 안으로 돌아갔다. 2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방은 그가 나갈 때와 분위기가 확실하게 달라져 있었다.
“하여간 술과 무슨 원수가 졌는지 시작을 하면 적당히 끊을 줄을 몰라. 다들 인사불성에 가깝게 취했으니. 적당히 정리하라고 해야겠네.”
장인걸은 그나마 멀쩡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총무 이미향에게 갔다. 거의 술을 마시지 않고 주문내역과 회비를 관리하고 있었다.
“1차는 마치죠? 더 놔두면 누구 하나 쓰러질 것 같은데.”
“고작 여덟시 밖에 되지 않았는데 왜 그러는지. 술에 원수를 졌나? 신입들도 너무나 마셔대네. 졸업한 선배들도 온다는데 어쩔 수 없이 여기를 정리해야겠네. 그런데 세라와 싸웠냐? 아까 잠시 밖에 나갔다 들어오더니 저렇게 술을 마셔대던데.”
장인걸은 이미향의 말에 순간 멍한 기분이 들었다. 권세라가 강진경과 자신이 나누는 대화를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 강진경이 보이지 않으니 찾으려 나왔다가 대화 내용을 엿들었을 가능성이 컸다.
‘하여간 골치가 아프군.’두 여자 사이에 자신이 끼어있다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 그들의 눈치를 보는 사실 자체가 맘에 들지 않았다.
신입생 환영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장인걸은 기억을 한참 더듬고 있었다. 같은 동아리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었다.
회귀 전에 오랫동안 같이 있었지만 음악 실력이나 대략적인 성격을 아는 정도이지 그 이력이나 이후의 행보에 대하여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같이 음악을 하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고 더 이상의 관심을 두지 않은 면이 컸다.
‘권세라 선배는 어느 구청의 청소년회관에서 청소년진로상담을 했던 것 같군. 그러면서 음악 강좌를 맡기도 했고 공연기획도 종종 했던 것 같은데. 이미향 선배는 광고회사에 취직하여 카피라이터와 음악적인 능력을 살려 음향광고를 담당했다. 진경이는 어떤 회사에 취직을 했던 것 같은데? 무역회사던가?’강진경과 크게 접점이 없기에 그 이후의 진로에 대하여는 정확히 알지를 못했다. 그러니 바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 기억이 난다. 집안이 꽤나 좋았지. 포워딩 회사를 경영하여 결국은 그 회사에 들어갔던 것 같아. 상호가 무슨 해운인데?’수출이나 수입을 할 때 화물의 포워딩을 하는 종합물류 회사를 운영했다. 그러고 보니 그가 취업했을 때 우연히 프린스해운을 방문했다 마주친 것도 기억이 났다.
‘각 제품의 수출 채산성을 검토하면서 포워딩 비용을 산정하기 위해 거래하는 물류업체를 방문했지. 거기서 유럽으로 향하는 삼광식품의 화물을 담당했던 것 같군.’프린스해운은 족벌경영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회사였다. 회장부터 사장, 부사장 2명, 전무 3명이 모조리 다 강씨 일가였다. 회장은 강진경의 할아버지였고 아버지는 부사장인가 전무인가 했던 것 같았다. 그나마 다들 능력이 좋아 문제점이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집안사람이 워낙 많아 강씨라고 해도 다른 직원들과 다름이 없이 일반 사원으로 입사했다고 했지?’그런 기억을 더듬다 보니 조금씩 기억이 났다. 그가 복학하여 학교에 있을 때에 들었던 내용들이었다. 그가 복학할 때에 졸업을 했던 강진경이니 같이 학교에 다닌 것은 2년이 전부였다.
‘진경이와 만나는 것은 그리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장인걸은 여자와 다시 만나는 것 자체가 두렵기도 했다. 적당히 알고 지내는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로 만나는 것은 부담이 되었다. 또 다시 배신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냥 부담 없이 만나자. 그러면 배신이라고 할 것도 아니다. 믿지 않으면 배신도 없는 것이지. 만사를 제쳐두고 한 여자에게 순정을 바치는 것이 미덕은 아니지.’장인걸은 자신이 여자를 사귀는 것에 대한 일종의 트라우마를 가진 것을 알았다. 일정한 선을 그어놓고 그 이상 가깝게 지내는 것은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다.
전에 쓰라린 경험을 하고 똑같은 실수를 하는 것도 멍청한 짓이지만 실패할 것을 걱정하여 피하기만 하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었다.
‘얽매이지 않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하여 아예 만나지 않을 필요는 없다. 마음이 간다면 만나면 되는 일이다.’강진경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이 권세라였다. 전에는 그런 느낌을 절대로 느끼지 못했는데 무척이나 자신을 좋아하는 느낌이 들었다. 전에도 그랬는지 장인걸이 바뀐 것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런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올 때까지는 애인을 두고 싶지 않아. 특정한 사람과 사귄다고 다른 것을 못하는 것은 싫어. 전적으로 애인에게 모든 관심을 쏟고 싶지 않아. 여자가 공부나 음악에 비해 우선일 수는 없다.’장인걸은 다시 한 번 마음을 정하니 혼란스러운 머릿속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4월이 되면서 학교는 3월의 들뜬 분위기는 가라앉았지만 안정된 분위기 속에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사회에서는 여기저기 죽는다는 아우성 소리가 나고 있지만 대학사회 내부까지는 바로 전파되지 않고 있었다.
과에서 MT를 간다고 하지만 장인걸은 참여를 하지 않았다. 분위기상 절반가량만 참석할 것 같았다. 한 번 정도 참여할까 고민을 했지만 그렇게 참여하면 과 활동에 계속 참여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았다. 더구나 일정이 동아리와 겹쳐 하나만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동아리 MT에 참석했는데 강진경은 기회만 되면 은근히 유혹의 신호를 보냈고 권세라도 마찬가지로 주변을 맴돌았다. 서로 둘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지 못하게 감시하려는 것 같았다.
“너, 진경이와 무슨 일이 있어?”
전날 가벼운 음주와 간단한 공연으로 일정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2박 3일이니 첫날에는 암묵적으로 음주를 자제했다.
다음날 아침에 식사 당번이 되었기에 먼저 일어나 간단히 운동을 하고 식사를 준비하는데 같은 조가 된 권세라가 물었다.
“무슨 말이에요? 어제 그냥 피곤해서 바로 잠이 들었는데.”
남녀 각기 큰 방을 하나씩 잡아서 잠을 잔 상황이었다. 장인걸은 무슨 질문인지 알지만 엉뚱한 대답을 했다.
“저녁에 같이 모여서 노래할 때 진경이와 내내 옆에서 같이 있고. 서로 사귀는 것으로 보이던데.”
“그런 것 없어요. 같이 듀엣을 하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일 뿐이에요. 더구나 걔는 생각 자체가 일반인과 달라요. 누구랑 사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만나는 것에 관심이 있어요.”
장인걸의 말에 권세라는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남녀 간에 만날 때는 1:1로 만나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은 그런 개방적인, 일종의 프리섹스를 이해하지 못했다.
장인걸은 밥과 해장국을 준비하여 가스버너에 올렸다. 그런 다음에 준비한 반찬을 꺼내어 먹기 좋게 갈라놓았다. 권세라보다 장인걸이 모든 것을 주도했다.
“내가 하는 말은 그런 말이 아니잖아.”
권세라는 바로 반박을 하지 않더니 조금 시간이 지난 다음에 그렇게 따져 물었다.
“무슨 말인지 대충 알아요. 그런데 선배가 내 애인이나 여자 친구도 아니잖아요? 나는 군대 다녀오기 전에는 여자 친구를 사귈 생각은 없어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많고요. 어쩌면 진경이 의견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기도 하고요.”
장인걸은 권세라에게 완곡하게 거절의 의사를 보냈다. 어쩌면 강진경과 똑같은 생각인지도 몰랐다. 구속력이 없는 남녀관계라면 좋지만 서로 상대를 구속하는 관계는 싫었다.
“뭔 이야기를 그렇게 심각하게 해?”
총무인 이미향은 식사당번에서 제외가 되었지만 일찌감치 일어나서 부엌으로 나왔다.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어.”
권세라가 이미향을 대화에 끌어들이지 않으려는지 달리 말을 하지 않았다. 장인걸이나 권세라 누구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식사를 준비해 나갔다.
전날 술을 많이 먹지 않아서 그런지 다들 아침 8시가 조금 넘자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식사 준비를 하면서 달그락 거리고 음식 냄새가 식욕을 자극하니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아리 MT는 노래를 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것으로 토요일 하루를 보내더니 일정을 마친 밤에 엄청나게 술을 마시는 것으로 사실상 종료가 되었다. 일요일 아침 늦게 일어나 간단히 식사를 하고 점심 무렵에 서울로 출발했다.
서울에 도착하자 각자 피곤한지 집으로 뿔뿔이 돌아가기 바빴다. 새벽까지 술을 마신 상황이니 모두 피곤하기 마련이었다. 장인걸이 집에 도착하니 두 시 반이 되어 있었다. 간단히 씻고 바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전화벨 소리에 잠을 깼다.
“나. 지금 자다가 깬 거야?”
전화를 건 사람은 강진경이었다. 어둑한 상태에서 탁상시계를 보니 일곱 시 정도가 되어 있었다.
“응, 그런데 무슨 일이야?”
“나야 어제 그리 술을 마시다가 피곤해 일찍 잤잖아. 과 친구들이랑 과제를 마쳐야 해서 집에 갔다 학교 앞에 왔지. 지금 과제 끝났는데 같이 식사나 할까 해서.”
“알았다. 어디서 볼까?”
장인걸은 이미 마음의 결정을 한 상황이었다. 강진경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이 문제로 언제까지 심력을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만나보고 아니다 싶으면 헤어지면 그만이었다.
“학교 앞 버스 정류장 옆의 공중전화야. 내가 아래로 내려갈 것인데 전야제라는 호프집 앞에서 보자. 네 집이 그 근처이지.”
“그래. 간단히 세수하고 옷 입고 나가면 되니.”
장인걸은 잠을 잔 덕에 피로도 다 풀린 것이라 마침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저녁을 먹기 적당한 곳이 생각났다.
“간단히 돈가스 어때?”
“좋지. 거기에 생맥주까지 곁들여서?”
“그렇게 하자.”
바로 옆에 있는 퓨전 주점 전야제로 들어갔다. 굳이 복잡하게 생각할 것은 없었다. 둘 중에 하나였고 장인걸에게는 어떻게 되건 문제가 없었다.
둘은 가게에 들어가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일단 마주 보고 앉았다. 자고 났더니 배가 고팠다. 금강산도 식후경이었다.
“푹 자고 났더니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다들 너무 들이 붓더라. 나도 꽤 먹었는데 피곤해서 일찌감치 방에 들어갔지. 넌 거의 날 샜지?”
“그랬을 거야. 대충 정리까지 하고 잤으니. 다섯 시가 넘어 갔던 것 같아. 정훈이 형에게 붙잡혀서 도망도 치지 못했고.”
그나마 장인걸이 전보다 체력이 월등하게 좋아진 덕분에 버틸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일찌감치 퍼졌을 상황이었다.
둘은 가볍게 이야기를 하고 식사를 하면서 맥주를 마셨다. 전날 그렇게 술을 마셨는데 음식이 들어가니 다시 술이 당겼다.
“너도 피곤할 텐데 일찍 집에 들어가서 쉬지.”
“네가 생각나서.”
장인걸이 가볍게 옆으로 옮겨가서 이야기를 하자 그것을 신호로 두 사람의 분위기는 순간 달라졌다.
“전화 잘 했어. 아마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보기 어려웠을 거야. 식사 마치고 어디로 갈까?”
장인걸은 강진경의 어깨에 슬쩍 손을 얹으면서 귓가에 대고 속삭이듯이 물었다. 신체접촉이 불쾌한 느낌을 주지 않도록 했다. 강진경도 싫지 않은지 거부하지 않고 있었다.
“네 자취집을 구경하고 싶은데. 괜찮지?”
“구경하는 거야 문제없지. 특별한 것도 없어.”
장인걸은 숙박업소나 비디오방 같은 곳으로 가는 것보다 집이 차라리 한적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기 집으로 여자를 끌어들이는 것이 부담스럽기도 했다.
간단한 말로 서로의 의사를 확인한 것이기도 했다. 강진경이 전화를 했고 장인걸이 나올 때 이미 합의가 있었고 다시 한 번 그런 합의를 확인했다.
안주를 겸해 시킨 돈가스를 다 먹고 생맥주를 비우자 그들은 대략 40여 분 만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장인걸의 자취방으로 같이 갔다.
동아리 MT를 다녀오고 축제 때 공연을 위한 동아리 내부 선발오디션이 1주일 후에 진행이 되었다. 오디션이지만 경쟁보다는 축제를 예비적으로 즐긴다는 의미로 준비했다.
사실 연습하는 과정에서 절반 정도는 윤곽이 드러난 상황이었다. 각자의 실력이야 뻔히 알고 있고 참가에 의의를 두고 참여하는 경우도 많았다. 준비를 하다가 맘에 들지 않아 포기한 경우도 많았다.
“공연메뉴를 정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곡이 정해지고 나면 그 공연에 나서는 것은 우리 동아리에 속한 누구라도 가능합니다. 설사 자신이 선정한 곡이 탈락했다고 해도 끝이 아닙니다. 준비과정에서 참여를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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