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29
사람이 잘못을 했어도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는 사람보다 지적하는 사람에게 앙심을 품는 경우가 더 많았다.
“씨팔, 쪽팔려서.”
권동환은 9시에 학원 수업이 끝나자 평소에 자주 어울리던 애들이 있는 당구장으로 가서 당구대 옆에 있는 의자에 가방을 던지고 화를 냈다.
“뭔 일이 있어?”
일찌감치 당구장에 모여서 당구를 치던 친구 세 명이 물었다. 권동환은 다른 세 친구와 달리 부모의 성화 때문에 대학 진학을 포기하지 못하고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학원에서 한 대 태우러 갔다가 꼰대새끼를 만나서 개쪽을 당했다. 찌질한 영태 새끼가 꼰대 새끼한데 잡혀가지고.”
그러면서 상황을 적당히 각색하여 말했다. 하지만 말을 하는 순간 결국 굴복하여 담배꽁초를 주웠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다. 친구들이 재미있다는 듯이 놀리자 분노가 다시 일어났다.
“대학생 같다는 말이지? 괜히 선배들과 엮이면 귀찮아져. 덩치도 컸다면서.”
친구들 중에 가장 머리가 좋다는 이중권이 어떻게든 응징하겠다는 권동환에게 신중하라고 조언을 했다.
“우리 학교 선배는 아니야. 앞의 대학에 다니는 것 같아. 선배라고 해도 뒤에서 몰래 한 번 까면 되는 거지.”
권동환은 당하면 반발하는 성격이었고 항상 그런 식으로 만사를 대응해 왔었다. 잘못을 반성하기보다 남 탓을 하고 훈계를 하면 앙심을 품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중권이 머뭇거리니 다른 애들마저 심드렁한 표정이 되었다.
“쪽팔리고 말아. 괜히 나대다 짭새들까지 끼면 간단히 해결되는 것이 아니니. 명우, 저번에 학교에서 애 하나 터치 했다가 천만 원 이상 깨졌다면서.”
“요즘은 말로 해결이 되지 않아. 무조건 이게 들어가야 움직여. 돈 없으면 몸으로 떼어야 하는데 골치 아프다. 드러누워서 돈 달라고 하면 미쳐. 그래서 천만 원이나 나갔다. 더구나 뽀대가 좋다면서? 오히려 터지고 말도 못하는 상황도 있어.”
권동환은 친구들이 몸을 사리자 화를 내지도 못하고 신음만 흘렸다. 같이 몰려가서 다구리를 놓겠다고 할 줄 알았는데 반응이 시원치가 않았다.
“네들은 당구나 쳐라.”
권동환은 더 말을 해도 자신만 바보가 되는 것 같아 가방을 들고 일어났다. 그들이 호응을 하지 않으면 다른 길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그가 믿는 것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아버지에게 그 사실이 알려지면 더 혼이 날 수가 있기에 부탁을 하지 않았지만 지금과 같은 경우에 부탁하는 것이 최상으로 보였다.
만만한 게 동네 형이었다. 우상공고를 나오고 백수건달로 지냈는데 군대에 갔다 와서도 여전히 술집 기도를 하면서 빈둥거리는 민지훈이었다. 그 형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에 나오라고 해도 듣지 않고 있었다.
단지 고등학교 다닐 때에 싸움 하나는 아주 잘해 거칠기로 소문이 난 우상공고에서도 짱을 먹었다는 것이었고 지금도 인근에서 알아주는 싸움꾼이었다.
“뭐냐?”
집에서는 공부를 시키려고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자신의 백수 후배가 될 것 같은 동네 꼬맹이가 집으로 찾아왔다. 찾아온 이유야 어디서 쥐어터지고 하소연 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그 정도면 맞을 짓 했네. 맞지 않은 것이 다행이지. 네가 우리 술집 주차장에 그랬다면 뒈지게 패고 한 대 더 팼다.”
민지훈의 반응에 권동환의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얼마 전까지야 동조를 하면서 꼰대짓 하는 사람은 다 작살을 내야 한다던 동네 형이 안면을 바꿔서 타박을 했다.
“개떡 같은 소리를 하려면 그냥 가라. 내가 그런 쪽팔린 일에 나설 군번이 아니다.”
권동환은 너무나 달라진 민지훈의 모습에 화가 났지만 표출하지 않았다. 잘 말해 자신의 응어리를 어떻게든 풀어야 했다.
“한 번 형이 나서면 안 되어요? 이 동네는 형이 꽉 잡고 있다면서요. 그냥 술집 아르바이트가 아니라 특별경비직이라면서요?”
절반은 허풍이 들어간 것이지만 민지훈은 속칭 왕돌이파라 칭해지는 폭력조직의 행동대장이기도 했다. 대충 조폭이라는 것은 알려졌지만 조금 포장해 후배들에게는 조폭이 아니라 특별경비직이라고 소개를 했다.
폭력조직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라 명석대 주변의 유흥주점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이 모이고 종종 힘자랑을 하는 경우가 생기고 취객의 난동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폭력행위가 발생하다보니 결국은 그런 이름이 붙고 말았다.
두목인 왕돌이 하태강은 인근에 있는 우상공고를 나왔는데 민지훈처럼 역시 고등학교 다닐 때 알아주던 싸움꾼이었다. 지금은 힘이 빠지고 몸이 무너져 예전과 같지 않았다.
하태강은 집안에 재산이 꽤나 있는 덕분에 명석대 인근에서 호프집 세 개를 인수하여 운영했다. 그러다가 문제가 속출하자 고등학교 후배들을 모아 자생적으로 술집 ‘기도’를 운영하면서 인근 술집들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10년 후배인 민지훈도 합류하게 되면서 구심점을 갖춘 하나의 조직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기도 했다. 민지훈도 술집과 음식점을 비롯한 업소를 열면서 연합을 한 상황이었다.
물론 필연적으로 그 지역의 전국구 조직인 광현이파와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관내의 업소에서 주류와 물품을 납품받는 것으로 적정한 타협을 했고 그들의 영역을 인정받기도 했다.
“술집에서 취객이 난동을 부리면 어쩔 수 없이 끌어내는 것이지 일반인들한테 손을 쓰지 않는다. 학교 다닐 때야 약한 애한테 힘자랑을 하지만 사회에서 그러다가는 감옥으로 직행이야.”
권동환은 믿었던 동네 형마저 외면하니 달리 말도 못하고 결국은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집에 가서도 학원이 끝나고 두 시간 가까이 놀다 왔다고 다시 혼이 났다.
강진경과 장인걸은 축제에서 듀엣공연을 하기로 결정이 되자 간주 부분을 연주할 바이올린 세션을 누구로 할 것인지 논의했다. 사실 그 노래를 선정할 때부터 염두에 둔 사람이 있었다.
“아는 사람 있어?”
동아리에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초보 수준이라 외부에서 초빙해야 했다.
장인걸은 강진경의 친구 중에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2등을 할 유선경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먼저 물은 것이기도 했다. 물론 방도가 없으면 MR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유선경은 초기에는 정통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을 하지만 나중에 방송에도 진출하여 대중음악도 연주하는 크로스오버 뮤지션으로도 활동했다.
심지어 10년 후에는 유튜브에 스트리머로 진출하여 엄청난 조회수를 올려 클래식의 대중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런 유선경이기에 축제공연에 간주를 연주해달라고 부탁하면 거부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한 번 알아볼게. 국민학교 친구 중에 바이올린 한 애도 있으니. 그 정도 연주해줄 수는 있을 거야. 가급적이면 우리 학교에 다니는 애로 찾을게. 우리 학교 기악과 바이올린 전공도 있으니.”
다음날 강진경은 2학년인 유선경을 데려왔고 간주부분을 편곡한 악보를 건네주었다. 연주에 관해서는 더 잘 알 것이기에 굳이 설명을 할 필요는 없었다.
“이 노래는 두 번 정도 교회에서 연주한 한 적이 있어요. 그렇기에 그리 어렵지 않아요. 단지 편곡을 했기에 조금 다르지만요. 조금만 연습하면 될 것도 같아요.”
“여기 편곡을 한 부분이 있어요. 가상악기로 연주한 부분이 있는데 참고하세요.”
장인걸은 MR도 복사를 하여 건넸다. MR이 있으면 분위기를 바로 알 수 있어 악보만 있는 것보다 훨씬 시간이 단축되었다.
“일단 노래도 한 번 들어봤으면 하는데요. 노래의 분위기를 알면 어떻게 연주를 할지 감을 잡기 좋으니까요.”
“그거야 어려울 것은 없죠. 지금 연습을 하려던 참이니까요.”
둘은 MR을 켜고 노래를 했다. 듀엣은 보통 독창을 번갈아 하다가 합창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물론 합창의 방식도 메인과 코러스 형태, 두 보컬의 경합, 제창이 있는데 그 모든 방식을 다 사용했다.
간주부분에서는 유선경이 곧바로 연주를 하기도 했다. 한 번도 연습을 하지 않고도 원하는 수준에 가깝게 연주했다. 역시 실력은 확실한 것 같았다.
“대단한대요. 진경이가 음악을 하려고 하다가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포기했는데 이렇게 다시 노래를 하니 그래도 다행이네요. 중학교를 예중으로 갔다면 성악을 했을 거예요. 그리고 파트너분도 너무나 노래를 잘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는 왜 해. 괜히 부끄럽게.”
강진경이 음악을 포기한 이면에는 뭔가 사정이 있어 보였다. 말하고 싶어 하지 않으니 굳이 알려고 할 필요는 없었다.
“너니까 해주는 거야. 다른 사람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거다. 나도 콩쿠르 준비하는 것만 해도 시간이 없어.”
“하여간 잘난 척은.”
둘은 상당히 친한 것 같았다. 어쨌든 간주부분 연주세션까지 확보하자 한시름을 놓게 되었다.
중간고사 기간이지만 시험공부를 하는 틈틈이 각자 시간을 내서 공연을 준비했다. 장인걸도 중간고사를 대비하여 학과 공부를 착실하게 했다. 특히 1,2학년은 교양과목의 경우 통합시험에 대비해야 했다.
명석대는 교양필수과목인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인문사회과학 분야는 파트별로 통합고사를 치러 성적을 냈다. 그렇기에 1,2학년의 경우에 별도의 시험시간을 확인해야 했다.
다행이라면 5일에 걸쳐 오전에만 시험이 있었고 오후에는 개별교과별로 시험을 치렀다. 장인걸의 경우에 국어, 영어, 수학, 화학과 물리학이 모두 통합평가 대상이었다. 인류학과 화공학총론은 교수가 별도로 평가를 하기로 했다.
전에는 성적이 아주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평가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기에 그 부분에 집중하여 공부를 했다. 그렇기에 좋은 성적을 받을 자신이 있었다.
“오늘 저녁 같이 먹자.”
장인걸은 점심 식사 후에 듀엣 곡을 연습한 후에 같이 저녁을 먹자고 강진경에게 청했다. 저녁을 같이 먹자는 것은 단순히 저녁식사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알았어. 그렇게 하자. 수업 끝나고 네 집으로 갈게.”
강진경은 7,8,9교시 수업을 들어야 했기에 동아리방을 나갔고 장인걸도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 먼저 집으로 갔다.
장인걸은 공부를 하다가 저녁 무렵이 되자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혼자 먹을 때보다 신경을 많이 써야 했지만 그 덕분에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 면도 있었다. 조금 지나자 강진경이 집으로 찾아왔고 준비한 음식으로 식사를 했다.
“너무 맛있다. 우리 엄마보다 더 잘하는 것 같아.”
공짜로 밥을 얻어먹는 것이 미안한지 그렇게 말하는 것으로 생색을 냈고 여유롭게 커피까지 끓여서 마셨다. 아울러 커피 물이 끓는 사이에 강진경이 설거지는 했다.
치우는 것마저 끝내자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고 서로 몸짓으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둘은 사전에 정한 것처럼 움직였고 마침내 방안으로 같이 들어갔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다음에 둘은 같이 누워서 흐트러진 숨을 고르고 있었다.
“이러다가 나 너한테 빠져버릴 것 같은데.”
강진경은 걱정스럽다는 표정이 되어 장인걸을 보았다. 아직도 흥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왜 걱정이야?”
장인걸도 걱정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내색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전처럼 누구에게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알잖아. 누군가를 너무 좋아하면 집착을 하게 된다는 것을. 나 이러다가 너에게 매달릴까 걱정이 되는 거지.”
장인걸은 한동안 말이 없이 강진경의 어깨만 가볍게 쓰다듬어 주었다. 강진경도 아무런 말이 없이 그대로 있었다.
“그냥 이 순간 서로에게 충실하자. 미래는, 심지어 우리 마음도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이잖아. 카르페디엠. 지금을 즐기면 되는 거야. 지금 최선을 다하자.”
장인걸은 남녀 간의 어떠한 약속도 시간이 흘러 마음이 변하면 부질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단정을 짓지 않았다. 당장은 서로 죽고 못 사는 관계였지만 그런 열정도 시간이 흐르면 시들은 꽃다발처럼 퇴색하기 마련이었다.
“하긴 그렇지. 미래는 모르는 일이고 나중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데 지금 걱정하는 것만큼 미련한 것도 없지.”
강진경도 잠깐의 감정과잉에서 벗어나 홀가분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자 장인걸도 표정이 밝아졌다.
장인걸은 여자와 남자의 심리상태도 다르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렇게 확연히 다른 것에 놀랐다. 남자는 회의를 하는 면이 있는데 여자는 오히려 집착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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