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3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디까지 비밀로 해야 합니까?”
“네가 그 역할을 맡는 것은 오직 나와 사장님만 알고 있다. 아울러 자금을 보관하고 운용하는 것에 대하여는 오직 너와 사장님만 알아야 된다. 나에게도 알릴 필요는 없다.”
“실장님에게도 말입니까?”
“내가 굳이 알아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하여는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최유림은 무슨 의미인지 모를 수가 없었다. 서로 믿지 못하는 것이기도 했고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 그 바닥이었다.
“일단 그렇게 알아라. 앞으로 필요한 것에 대하여 밝은 날에 세세하게 알려줄 것이니 그렇게 알고 오늘은 한잔 하자. 여기에 왔으니 매상을 올려주어야 다들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김기정 실장은 말을 마치자 벨을 눌러 종업원을 불렀다. 최유림은 밖에서 인기척이 나자 표정을 바꾸었다. 걱정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는 일이니 나중에 고민하는 것이 나았다.
1. 꿈인가, 회귀인가?
장인걸은 아침에 일어났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다른 풍경에 놀라고 있었다. 호텔의 객실에서 명상을 하다가 혼절했던 것 같았는데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풍경이 보이고 있었다.
‘고구마 투가리라니?’윗목에 있는 수수깡으로 엮어서 만든 고구마 투가리는 대학 다닐 때에 시골집에 갔을 때 보고 그 후에는 보지 못했다.
다른 집은 모두 고구마를 다 판매하여 보관을 하지 않았지만 유독 고구마를 좋아하는 어머니 덕분에 상당한 양을 집에 보관하는 상황에서 고구마 투가리를 만드는 것은 불가피했다.
그것도 그가 군대에 갈 때쯤이 되어 어머니가 당뇨 증상이 있게 되면서 사라졌다. 고구마가 당뇨병에 그리 좋지가 않다고 해서 고구마를 맛만 보는 정도로 먹었기 때문이다.
‘꿈인가?’장인걸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자신이 동해안국제마라톤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강릉에 갔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골집 자기 방에 있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아 꿈이라 생각했다.
‘악몽이었지? 명상을 하다가 심마에 들고 말았다.’그는 명상에 들어 울화를 이기지 못하고 심각한 심마에 들어 심상살인을 하고 말았다는 생각에 죄책감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설마 상상으로라도 자신에게 피해를 주었던 자들을 무참하게 살해한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아프지.’장인걸은 꿈이라는 생각에 팔을 꼬집었는데 아프기 짝이 없었다. 당장 심상에서 살인을 했을 때에도 피 냄새가 나지 않았다. 소리도 나지 않았다. 오직 시각적인 것만 남아 있었다.
‘설마 꿈이 아니라면 이 시기로 돌아왔어?’그런데 모든 것이 다 생생했다. 도저히 꿈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어릴 적, 고등학교 때의 자신의 모습이었다. 여명 속에서 벽에 걸린 1m가 조금 넘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더구나 벽에 걸린 달력의 형상으로 보면 당연했다. 당시에는 휴대폰이 그리 상용화되지 않은 상황이라 시계를 차고 달력에 날짜를 표시했다. 특히 일부 달력에는 빨간 띠가 있어 매일 옮겨야 했다.
새해가 시작되고 한 달이 지나지 않은 때였고 고작 나흘 전에 설날이 지난 것 같았다. 그 달력이 있다는 것은 큰아버지가 은행의 지점장이 되었다면서 가져온 것이니 다른 때일 수가 없었다.
‘시기상 어제 개학했고 글피 졸업인데. 그리고 보면 오늘 뭔가 중요한 일이 있었는데? 그게 뭐지?’그렇게 생각하다가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아직 동이 훤히 트지 않은 상황이었다. 시간은 여섯시 반을 지나고 있었다. 겨울이지만 입춘이 지나면서 해가 제법 길어진 것 같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불을 개서 서랍장 위로 올렸다. 그의 방에는 장롱대신에 옷가지를 넣어놓는 서랍장과 옷걸이만 있었다. 그러니 이불을 개서 서랍장위로 올려놓았다.
스위치를 올리자 천장에 긴 형광등만 보였다. 눈이 나빠진다고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짧은 형광등을 두 개짜리 긴 형광등으로 교체했었다. 당시에는 그 정도가 최선이기도 했다.
입고 있던 티셔츠와 트레이닝복 바지를 보자 여전하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들었어도 겨울에는 항상 그런 복장으로 있었다. 잠옷 대신에 그런 옷을 입고 잠자리에 들었다.
‘내복을 입으면 답답해서 잠을 들 수가 없었지. 어지간해서는 겨울에도 팬티에 바지만 입었지.’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5년 전에 개축을 하여 당시에는 최신식인 거실이 보였다. 거실의 끝에는 입식 부엌이 존재했다. 그리고 거실을 중심으로 방이 무려 네 개나 있었고 화장실도 있고 화장실 반대편에는 창고로 사용하는 다용도실이 있었다.
장인걸의 방은 부모가 사용하는 안방의 맞은편에 있어 화장실이 바로 문 옆에 있었다. 반면에 할머니와 여동생이 부엌 옆에 있는 방을 하나씩 사용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3년 후에 장인걸이 군대에 가 있을 때 돌아가셔 청원휴가를 나오기도 했다.
“일어났어? 먼저 씻어라. 인숙이와 싸우지 말고.”
동생인 장인숙은 당시에 중3이었는데 일종의 결벽증 비슷할 정도로 청결을 강조하고 있었고 아침저녁으로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았다.
나중에 고등학교에 가면서 공부한다고 며칠간 머리를 감지 않아 머리에서 땀 냄새가 났고 대학에 가서도 그리 깨끗한 이미지는 아니지만 당시에는 달랐다.
조금만 늦게 일어나면 화장실을 차지하고 있어 고생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실을 가기 마련인데 참는 것이 곤욕이었고 급하면 결국 집밖으로 나가 마당 구석에 있는 수채 구멍에 볼일을 봐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기존에 쓰던 구식 화장실도 있지만 냄새가 워낙 심해 들어가는 것 자체가 곤욕이었다. 함부로 화장실을 없애는 것은 아니라면서, 그 화장실이 편하다는 할머니 때문에 없애지 못하고 그냥 둔 상황이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장인걸의 성격에 빨리 나오지 않는다고 동생을 들볶았고 장인숙은 절대로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성인이 되어서도 인숙이와는 그리 사이가 좋지 못했다. 대학에 들어온 이후에도 기숙사에 들어가거나 각자 따로 대학 근처에서 자취를 했다.
물론 그런 이면에는 여자 친구인 원경희와 사귀는 상황에서 여동생이 집에 있으면 불편할 것이기에 절대로 같이 지내지 않으려고 한 장인걸의 의지가 있었고 여동생도 장인걸과 같이 살게 되면 학교에서 멀어져야 했기에 그것이 싫어 거절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볼일을 보고 세수를 하고 나왔다. 그런 다음에 방으로 가서 책가방을 챙긴 다음에 아버지가 방에서 나와서 TV를 켜자 거실로 나왔다.
“잘 주무셨어요. 할머니도요?”
장인걸은 어느새 할머니도 나와 있어 인사를 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뭔가 챙겨서 나가는 것을 보자 답답했다.
“어머니, 위험하게 또 거기를 가요?”
“안에서 보면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말이야. 나는 거기가 좋아야.”
밖에 헛간 옆에 있는 냄새가 지독한 구식 화장실이 있는데 여전히 할머니는 거기를 사용했다. 좌변기에 익숙하지 않는 할머니는 거기서 쪼그리고 앉아서 볼일을 봐야 개운하다는 사람이라 불편하고 위험하다고 말려도 거기로 갔다.
나이가 여든하나이니 아주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농촌에서 고생을 한 덕분에 그리 건강한 모습은 아니었다. 당장 내일 몸져누워도 이상하지 않을 형상이었다.
더구나 몸도 불편한 사람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온갖 집안청소를 다하려고 하는 것 때문에 부모님이 잔소리를 해도 그 때뿐이고 돌아서면 걸레를 들고 거실을 닦고 창틀을 닦고 있었다.
장인걸이 시끄럽다는 푸념을 하자 방을 바꿀 수가 없어 안방 벽 쪽에 텔레비전을 두는 탓에 거실의 모양이 요상하게 변해 있었다.
귀가 좋지 않은 할머니 때문에 종종 볼륨을 높였는데 장인걸의 방 쪽에 두면 공부에 방해가 되었다. 그래서 현관문과 가까운 벽에 두었는데 그러니 거실 모양이 이상해질 수밖에 없었다.
볼륨을 키우지 않으면 들리지 않으니 바닥으로 내려앉아 텔레비전 앞으로 다가서 어느 사이에 바로 앞으로 가니 모양이 이상해도 그런 식으로 놓고 살 수밖에 없었다.
장인걸이 대학에 진학하여 서울로 올라간 후에야 원래 모양을 찾아서 배치를 했는데 아직은 그대로 있었다. 그렇기에 소파와 벽 사이에 대략 2m 정도의 공간이 남아 있어 보기에 그리 좋지가 않았다.
원래 정상적으로 배치하면 현관으로 나가는 통로가 있어야 되는 공간이었다. 반면 현관문에서 들어오면 2m 길이의 TV 받침용 문갑이 놓여 있어 길을 막는 형상이었다.
“금요일에 졸업식이냐?”
“그래요. 그날 다 오실 거죠?”
“특별한 일이 없으면 다 갈 것인데 네 할머니는 모르겠다.”
“날도 춥고 거동도 불편하신데 끝나고 난 후에 아버지가 학교 앞으로 태우고 오시죠.”
장인걸의 집에는 승용차 대신에 1톤 트럭이 있어 짐차 겸 자가용으로 사용했다.
“인숙이는 다음 주 화요일에 졸업식을 하니 그 때는 나도 갈 수 있어요.”
“그래도 손자 졸업이라고 간다고 고집을 부릴 수도 있으니 모르겠다. 내 말도 듣지 않으니.”
큰아버지가 있지만 농사를 지으면서 부모를 모신 것은 작은 아들인 장인걸의 아버지였다. 공부를 잘 했던 큰 아버지는 60년대에 상고를 나와서 은행에 취직을 하였고 5년 터울인 아버지는 일반 고등학교를 나와서 할아버지와 같이 농사를 지었다.
할아버지는 10년 전에 돌아가신 상황이었다. 만일에 할아버지가 살아 있었다면 지금은 헛간으로 사용하는 곳에서 불편하게 살았을 것이 분명했다.
“일어났냐?”
텔레비전 소리가 크게 나서 그런지 밖으로 나왔다.
“너 고등학교 가면 어떻게 하려고 이렇게 퍼져 있어?”
“지금이나 편하게 지내지 고등학교 가면 얼마나 힘이 드는데. 다른 곳에 갈 것도 아닌데 입학시험을 준비한다고 야자까지 해야 했다니 억울해.”
장인걸이나 동생은 제법 공부를 잘하는 편이지만 굳이 멀리 도시로 고등학교를 가지 않았다. 시골의 양진고등학교를 나와도 대학에 갈 수 있다고 보내지를 않았다.
물론 제법 괜찮은 머리를 가지고 있고 성실한 편이라 시골에서 학교를 나왔지만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인 명석대학교에 합격을 했다.
명석대학은 최상위권 대학은 아니지만 서울의 명문 고등학교에서도 중상위권은 되어야 가는 대학이었다. 물론 동기들 중에 서울의 4년제 대학에 10여 명이나 합격을 하여 그만 특별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인숙이는 대답을 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머리를 감고 하다보면 아버지나 장인걸이 식사를 마칠 때까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장인걸은 준비가 된 것 같아 냉장고 문을 열고 밑반찬을 꺼냈다. 어머니가 밥을 푸고 국을 푸는 동안 보통 그런 수발을 하는 것은 그의 몫이었다.
여동생은 학교 갈 준비를 하는 것만 해도 버거워 해서 그런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반찬을 꺼내고 수저를 놓자 아버지가 식탁으로 왔고 할머니가 찬물에 손을 씻으면서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화장실에 갔다가 마당에 있는 찬물로 세수를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아이고 엄니, 제발 따뜻한 물을 쓰라는데도 밖에서 찬물로 씻어요.”
“개운하게 씻고 들어와야지. 추접스럽게 그냥 안으로 들어오면 기분이 그랴.”
지독하게 말을 듣지 않고 찬물로 세수를 하는 할머니였다. 눈이 와도 물통의 얼음을 깨고서라도 찬물로 씻는 할머니였다.
식사가 다 준비되자 네 사람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인숙아 빨리 나와서 밥 먹어.”
방금 들어간 인숙이에게 빨리 나오라고 했다. 그렇게 재촉을 하지 않으면 느긋하게 나와서 식사도 못하고 학교로 갔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재촉을 해야 빨리 나와 아침을 먹었다.
7시 40분에 집에서 나왔다. 수능이 끝나기 전에는 6시 30분에 나왔지만 지금은 8시 30분까지만 학교에 가면 되기에 그 시간에 나와도 충분했다.
마을 앞으로 다니는 버스를 타려면 대략 10분 정도를 걸어야 했고 버스로 20분 정도 시간이 걸렸다. 평소에는 한 시간 정도 빨리 다니는 버스를 타야 했다.
“야, 인숙이는 왜 저러냐?”
버스에 올라타자 한 정거장 먼저 타는 마정운이 인숙이를 보면서 물었다. 평소에는 아는 체를 하는데 그날은 흔히 ‘생 깐다’고 말하는 무시를 했기 때문이었다.
“밥 안 먹는다고 하는 것을 억지로 먹으라고 해서 그런 것 같아. 다 먹고 살자는 것인데 말이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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