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30
“시험 끝났다.”
동아리에 들어오는 사람의 절반은 그런 외침을 했고 아직 시험이 남아 있는 사람은 그런 사람을 보면서 심기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어제 끝났어.”
하루 전에 끝난 사람이 좋아할 것 없다는 표정이 되기도 했다. 하루나 이틀 차이지만 그 차이를 가지고도 서로 대거리를 하면서 장난으로 아옹다옹 다투었다.
“주말에 뭐 할 거야?”
“집에 가야죠. 다음 주가 어버이날이잖아요.”
이미향이 주말의 일정에 대해 물었다. 축제의 공연도 다음 주인데 연습을 하지 않기로 했으니 걱정스러운 기색이었다.
“그러면 오늘 갈 거야?”
시험이 끝난 날이라 오후에 따로 수업이 없었다.
“집에 가서 식사하고 출발해야죠. 부모님에게 전해줄 것도 있고요.”
장인걸은 장유현의 집에서 노래자랑의 부상으로 받은 남녀 시계세트를 드릴 생각이었다. 가격도 1만 달러에 달하는 한정판 시계세트였다. 더구나 시계의 디자인이 너무 중후한 분위기라 젊은 장인걸이 차기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하긴 너는 집에서 떠나 있지. 나야 집에서 다니니 생각을 못했네. 세라도 집에 간다고 하던데.”
장인걸은 동아리방 한쪽 드럼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있는 권세라를 보았다. 보통 권세라의 전용석이기도 한 드럼의 자리였다. 그렇기에 동아리방에 있어도 잘 보이지가 않았다.
“어버이날을 챙겨야 용돈 받는데 지장이 없죠. 그래서 평소 집에 안 가는 사람일수록 잘 챙겨야 해요.”
유독 집에 관심도 두지 않는 사람이 그런 날은 챙겼다. 그 이유를 들어보면 다른 날은 몰라도 그런 날은 챙겨야 그나마 1년이 태평하다는 말이었다. 평소에도 못하고 그런 날마저 챙기지 않으면 인성마저 의심을 받는 사태가 벌어지니 불가피했다.
“그건 그렇지. 둘이 싸웠어? 세라가 너를 봐도 별로 아는 체를 하지 않는 것 같아.”
공연을 위해 연습을 같이 하지만 전과 달리 사적인 대화는 거의 하지 않고 있었다. 장인걸은 이미향과 권세라가 단짝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런 질문에 뭐라고 답할지 곤혹스러웠다.
“특별히 기억나는 것은 없는데요.”
장인걸은 자신이 잘못한 것은 없기에 모른 척 대답을 했다. 강진경과의 문제는 잘못을 따질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것으로 감정이 상했다고 해도 표면에 드러낼 일은 아니었다.
이미향이 묻는 것도 상황을 몰라서 묻기보다 장인걸의 반응을 살펴보려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더욱 내색을 하지 않았다.
“시험 끝났다.”
사람의 심리라는 것이 똑같은지 강진경도 마찬가지였다. 동아리 안으로 들어오면서 시험 끝났다고 외쳤다. 1학년들은 대학 첫 시험이 끝났으니 후련할 것은 당연했다.
“시험 끝났는데 뭐할 거야?”
“다음 주가 어버이날인데 먼저 집에 가야지.”
강진경은 장인걸이 전에 만났을 때도 집에 간다고 말했는데도 기억을 못하는지 물었다.
“나도 따라서 놀러 갈까? 두툼한 옷 입고 따라갈까?”
“왜?”
“어머니, 요즘 제가 갑자기 신게 먹고 싶어요. 집에 가서 이러면 인걸이 네가 어떻게 될까?”
“애가 하여간 장난을 해도.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장인걸은 기겁한 표정이 되었다. 더구나 그들 사이를 동아리 사람들에게 감추고 있는데 의심할 여지를 줄 수 있었다.
“어제 우리 사촌언니를 만났는데 일요일에 전에 헤어진 남자 친구가 결혼식을 한데. 그 결혼식에 두꺼운 옷 입고 참석해서 눈물을 뚝뚝 흘릴까 고민해서 말이야.”
“농담이라도 그런 끔찍한 소리 하지 말아라. 그런 일이 벌어지면 변명할 새도 없이 일단 몇 대 맞고 대화를 시작할 것이니.”
장인걸은 강진경이 그런 농담을 하면서 웃는 것에 어이가 없었다. 그런 말을 하면서 권세라를 보는 것이 일종의 도발로 보였다.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그 속에 뼈가 있었다.
장인걸은 집에 도착하여 특별히 외할머니의 안부를 물었다. 건강이 걱정되었다. 곧 어버이날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외할머니의 건강이 염려되어 내려온 면도 있었다. 회귀 전에는 돌아가신 것이 얼마 후였기 때문이었다.
“퇴원했고 네 아버지랑 같이 2주마다 병원에 가서 상태를 살핀다. 두 달에 한 번 정도 영양제 주사를 맞으면 당분간 상태는 악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더라.”
“사돈한테 여기 와서 같이 지내자고 했는데 말을 듣지 않는다. 아플수록 옆에 사람이 있어야지. 나랑 같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면서 돌아다니면 얼마나 좋아.”
그 옆에서 할머니가 거들었다. 어머니야 할머니 눈치가 보여 그런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 못하지만 할머니가 나서면 가능한 이야기였다.
“할머니, 그러면 좋겠네요. 병원이야 2주에 한 번 가면 되니 문제없고요. 그 때 할머니도 같이 가서 진료를 받으면 좋고요.”
“그것도 좋겠네. 내일 거기 간다면 나도 같이 가자.”
할머니가 만나서 직접 설득할 생각인 것 같았다. 심부전이라는 것이 영양제로 버틴다고 하지만 그리 길게 버틸 수 있는 병이 아니었다. 당장 급한 증세는 호전시켰지만 먹고 운동하는 것도 중요했다.
“인숙이는 아직 오지 않은 것 같네요.”
“일곱 시 반차를 타고 오면 여덟 시는 넘어야 집에 들어온다. 걔 때문에 네 아버지랑 밤길에 데이트를 한다.”
정류장으로 인숙이 데리러 나가는 것을 그렇게 표현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오려면 어두운 길을 따라 와야 하니 무섭기도 하죠. 학교 앞에서 자취를 시키는 것도 생각해 봐야겠어요.”
“그것도 방법인데 그럴 바에는 은성고등학교를 보낼 것을.”
장인걸이야 남자이니 통학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지만 여자인 장인숙은 밤길을 다니는 것이 불안했다. 그런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은 경험이 없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이번 학기는 그대로 보내고 가을 학기 때에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자취를 하더라도 혼자는 그렇고 친구가 있어야 할 것이니.”
여자 혼자 자취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집을 떠나보내려고 하지 않은 면도 있었다.
“문제이긴 하네요.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바빠져 정신이 없을 것인데 말이에요. 매일 데리러 갈 수도 없고.”
“그거야 어쩔 수가 없지. 시간을 내는 수밖에. 부모인데 그런 것은 감수해야지. 부모는 그냥 되냐? 그런 것을 귀찮아 할 것이라면 애를 낳지 말아야지.”
장재현의 말에 장인걸은 달리 말을 하지 못했다. 회귀를 했지만 부모가 된 적은 없기에 그런 마음까지 이해하지 못했다.
“겸사겸사 두 분이 데이트로 자주 하십시오. 집에서는 할머니 눈 때문에 손을 잡기도 그럴 것인데.”
장인걸이 능글맞은 표정을 지으면서 그렇게 말을 하자 어머니가 눈을 흘겼다. 할머니도 웃음을 지었다.
“애가 나를 뭐로 보고. 할미, 구식이 아니야. 그렇지 어미야?”
“그럼요. 어머님이 얼마나 신식인데요.”
전에는 장인걸이 시골에 오면 고개만 까딱여서 인사를 한 후에 혼자 방에 틀어박혀 있다가 날이 밝으면 서울로 도망가기 바빴지만 이번에는 가급적이면 어른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했다.
외할머니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주 다니면서 건강을 신경 쓴 덕분인지 생각보다 건강해 보였다. 모처럼 주말이라 외삼촌의 식구들과 이모네 식구들도 방문을 했다.
원래 할머니도 가려고 했지만 외가 식구들이 모인다는 말에 부모와 장인걸만 가기로 했다. 반면에 인숙이는 토요일에 학교에 등교해야 해서 같이 갈 수가 없었다.
다음 주에 어버이날이 있으니 주말에 먼저 방문을 한 것 같았다. 식구들이 모여들어서 그런지 외할머니의 표정도 어느 때보다 밝아 보였다.
장인걸은 오랜만에 외갓집에 온 것이고 마침 마당에 꽃이 핀 것 같아 바로 방으로 들어가지 않고 모처럼 늦은 봄의 향취를 잠깐 즐기려고 했다.
“하여간 너도 문제이다. 괜히 쓸데없이 관여하고.”
장인걸은 순간 자신이 뭔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하지만 그 것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까이 다가온 외삼촌의 표정에서 알 수가 있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간 것은 들었지만 굳이 오지랖을 부려 외가까지 챙기고. 내가 어련히 알아서 우리 어머니 살필까?”
장인걸은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누나나 매형이 잔소리 하면서 한심한 놈 취급하는 것이야 하루 이틀이 아니니 그러려니 하겠지만 네놈까지 그런 얼굴을 하는 것은 주제넘은 짓이야.”
술 냄새가 나고 있지만 그리 심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막말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항상 외삼촌을 욕하고 있었는데 이런 모습을 보니 이해가 되었다. 뭔가 안에서 잔뜩 뒤틀려 있는 것이 보였다.
장인걸은 여기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대놓고 쏘아붙이는 것이 능사는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냥 당하고 지나가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최선인지, 문제가 없을지 고민이 되었다. 이런 배배 꼬인 외삼촌을 상대해온 어머니나 아버지의 고역을 생각하니 오히려 연민의 마음까지 들었다.
‘하여간 이런 사람이니 같이 사는 식구들은 얼마나 힘들 것인지 걱정이군. 그러니 얼굴이 저렇게 어둡지.’외갓집 식구들은 이모네 식구들과 달리 얼굴이 어두웠다. 그것이 외할머니의 건강을 걱정해서가 아니라 외삼촌 때문에 사는 것이 힘들어서 그런 것으로 보였다.
‘어머니가 유산을 포기한 것에는 귀찮음을 피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군. 이런 사람이라면 관재능력은 제로라고 할 수 있겠는데. 어떤 일을 하건 망하게 만드는 마이너스의 손인데.’지금 보이는 한 가지 행동만 보아도 그가 평소 어떻게 사는지 판단이 되었다. 흔히 분노조절장애라고 하는 정신적인 문제가 있었다. 거기에 과대망상이나 피해망상의 조짐도 당연히 존재하는 것 같았다.
‘마치 내가 원경희의 일을 겪고 동창들에게 보였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하긴 그때 나도 피해망상에 휩싸여 있었지.’장인걸은 많은 생각이 떠올라 대응을 못했고 결국은 그것이 외삼촌을 무시하는 것으로 보였는지 더욱 얼굴이 흉측하게 일그러지면서 곧 한 대 치려는 기색을 보였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장인걸은 시비를 피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막무가내인 사람을 대할 때 가장 무난한 대응을 했다. 물론 상대의 화를 돋우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무난한 대응이었다.
“건방진 놈, 내가 네 머리꼭대기에 있어. 어디서 개수작이야? 내가 이렇게 사니까 만만해 보이고 네 발 끝에 있는 것 같지?”
장인걸의 외양은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지만 그는 식품회사에서 마케팅을 담당했던 경험을 가진 사람이었다. 매일 진상이라 칭해지는 온갖 양아치를 상대하는 매뉴얼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식품회사에는 사흘거리 한 번씩 이물질로 인한 문제가 발생했다. 그 중에 열에 하나나 진짜로 이물질이 들어간 경우였다. 나머지 하나 정도가 유통이나 판매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보통 십중팔구는 돈을 바라거나 회사의 평판을 떨어뜨릴 목적으로 자행하는 고의적인 음해인 경우였다.
진짜로 이물질이 들어간 경우라면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 하지만 조작을 하는 경우라면 그 사실을 밝혀야 했다. 사실 여부가 밝혀지기도 전에, 그럴 기회를 주지 않으면서 무조건 책임을 지라고 난리를 쳤다. 사실을 공개하겠다고 협박하면서 밝히지 않는 대신 보상을 해달라고 떼를 썼다.
나중에 조작이라는 사실이 명백히 밝혀진 후에도 끝까지 증거를 부정하고 난리를 피우면서 보상을 해달라고 큰소리를 치는 자들도 많았다. 그런 자들은 보상을 받아내려 작정을 했고 스스로 최면이라도 걸었는지 조작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장인걸은 폭언을 하는 외삼촌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183cm가 넘었던 장인걸이었다. 그동안 키도 조금 더 크고 몸이 더 좋아진 상황이었다.
그런 장인걸이 인상을 쓰면서 노려보자 외삼촌은 놀란 표정이 되면서 움찔 뒤로 물러났다. 폭력을 쓰면서 난동을 피우는 자들은 덩치가 큰 사람이 정면으로 나서면 오히려 겁을 먹는 경우가 많았다.
“좋은 날, 얼굴 붉히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 정도에서 그만하십시오. 다른 어른들이 들을까 두렵습니다.”
장인걸은 냉정한 목소리로 말하고 돌아서서 한참 동안 노려보았다. 무례한 태도일 수도 있지만 필요했다. 그런 다음에 귀찮다는 표정을 짓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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