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32
미모의 여학생이 나타나서 유려한 춤 동작을 선보이니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남학생들이 매료가 되고 말았다. 그로 인해 한동안 강진경은 ‘명석대 댄스녀’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전이라서 그나마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쳤다.
이후 전상운이 색소폰 연주를 했고 장인걸과 강진경은 듀엣을 준비했다. 이어서 You raise me up 듀엣 공연이 이어졌다. 흥겨운 댄스에 이어 조금 차분한 듀엣이 이어지자 2000여 명의 관중들이 다시 무대에 집중했다.
특히 댄스를 추면서 관심을 집중시킨 미모의 강진경이 듀엣의 보컬로 나서자 사람들은 더욱 관심을 보였다. 더구나 유선경이 간주 부분에서 애절한 선율로 관중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그들의 공연이 아마추어 수준이 아니라고 평가를 했다.
듀엣 공연이 끝나자 전상운이 트럼펫을 연주하고 이미향이 키보드를 연주하여 무대의 공백으로 사람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해주었다.
이후에 장인걸과 유정훈이 기타를 메고 앞으로 나서고, 유화영과 이미향이 베이스와 키보드를 담당했고 권세라가 별도로 설치한 풀 투어 드럼세트를 앞으로 이동시켜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런 드럼의 형상은 뮤직비디오를 연상시켜 오아시스를 아는 사람들, 락의 마니아들을 열광시키기도 했다. 여기서 권세라는 현란한 드럼연주의 퍼포먼스를 보여 환호를 자아냈다.
장인걸은 듀엣에서도 뛰어난 가창력을 보였지만 락 공연에서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뛰어난 보컬 능력을 선보였다. 락 공연이 끝나자 모두가 열광하기 시작했고 축제의 밤은 더욱 열기를 더해갔다.
이후에 차윤혜가 나서서 애절한 발라드를 불렀다. 차윤혜는 예전부터 알려진 상황이지만 그 실력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이런 공연으로 장인걸은 동아리만이 아니라 과에서도 명성을 얻게 되었고 그 행사에 관중으로 왔던 진성민과 채지원 덕분에 고등학교 동창들까지 알게 되기도 했다.
9. 민지훈
축제 마지막 날 강진경이 유선경과 저녁을 같이 하기로 했다면서 나가자고 했다. 공연을 도와주면 밥을 사기로 했다고 했다.
“둘이 사귀는 거야?”
“우리 사귀는 거 아니야. 그냥 친구. 좀 친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식당을 가지 않고 장인걸의 집 앞에 있는 전야제에서 만났고 같이 치킨에 생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아닌 것 같은데.”
유선경은 그렇게 말하면서 미심쩍은 표정이 되었다.
“그런데 진경이 너 음악 계속 하려고?”
“취미로 하는 거야. 지금은 나아졌지만 무대공포증이 있잖아. 큰 무대에 서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고.”
강진경의 말에 장인걸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자 멍했다. 무대 위에서 그렇게 열광적으로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강진경이었다.
“무대공포증이요? 진경이가요?”
“일반적인 무대에 서는 것은 문제가 없는데 뭔가 중요한 것이 걸리면 문제가 된다고 해. 중요한 두 개 무대를 망쳤거든.”
그러면서 6학년 때 전국규모의 동요대회 결선을 망쳤고 예중 입시 실기평가에서 역시 망쳤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결국 성악을 포기하고 일반 중학교로 진학했다는 말이었다.
“심각한 정도야?”
“발작은 한 건 아닌데 식은땀을 흘리면서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하는데, 사실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어. 나중에 알아보니 무대공포증이라고 하더라고. 학교 학예회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았기에 믿지 않았는데 중학교 1학년 때에 다시 한 번 전국대회에 억지로 출전했는데 결국 동일한 증상이 벌어졌어.”
“축제 무대도 큰 무대인데. 최소 천 명 이상 모였는데.”
“그거야 아마추어 무대이니 부담이 없어서 그렇지. 경연도 아니고 정식 공연도 아니고. 망쳐도 문제가 없고. 잘해도 받는 것도 없고. 같은 무대라도 취미라고 생각하면 문제가 없는데 뭔가 걸리거나 돈을 받는다 생각하면 힘들어져.”
순간 장인걸은 강진경이 남자를 사귀는 자세도 그런 문제와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의문이 생겼다. 책임이나 기대라는 부분이 개입되면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가니니 콩쿠르에 나갈 것인가요?”
장인걸은 화제를 돌리기 위해 그렇게 물었다. 바이올리니스트라면 한 번쯤 나가기를 원하는 가장 큰 국제 콩쿠르였다. 나중에 나가서 입상을 하기도 했으니 지금쯤 준비하고 있을 것이니.
“나가고 싶지만 예선을 통과하는 것도 쉽지 않죠. 그렇게 하기 위해 지금부터 각종 경연에 나가서 실적을 내야죠. 예선에 나가는 것 자체가 어렵죠. 그러기 위해서는 유명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면서 솔로 연주자로 지명도도 쌓아야 하고요.”
자신의 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갑자기 말이 많아졌고 시시콜콜한 것까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유선경 씨는 실력이 있으니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될 것입니다. 파가니니콩쿠르에 나가서도 좋은 성적을 낼 것 같고요.”
셋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아홉시가 넘도록 맥주를 마셨다. 시간이 되자 강진경과 유선경은 택시를 타고 떠났다. 둘 다 집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했다.
권동환은 몰래 장인걸이 사는 빌라를 살폈다. 담배를 피우러 가던 멤버들도 빌라에서 일이 있은 후 다른 골목으로 몰려갔다. 폭행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그 남자를 다시 만나기가 겁난다고 피하였다.
사실 그도 왠지 다시 만나는 것이 꺼려졌다. 그렇지만 남자의 자존심은 어떻게든 응징을 가하고 싶었다. 그것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던 그의 신념과 어긋나는 일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 때문이기도 했다. 굴복하고 담배꽁초를 주웠을 때의 굴욕감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장인걸의 귀가 시간은 일정하지 않지만 그가 담배를 피우러 학원에서 잠깐 나오는 시간에 사흘에 한 번 정도 귀가 하는 것 같았다. 그가 들어가고 난 후에 켜지는 불빛을 보고 어디에 사는지도 파악을 했다. 멀리서 그 곳을 바라보면서 이를 부득부득 갈았지만 공격할 용기는 없었다.
한편 장인걸은 동아리 사람들과 학생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귀가를 하다가 어디선가 느껴지는 적의, 일종의 살기를 감지했다. 그런 감각은 외삼촌인 손성표를 마주했을 때와 유사했다.
금강나한공을 익히게 되면서 사람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했는데 시선보다 시선을 보내면서 그 사람이 갖는 일종의 의념에 반응을 했다. 적의나 호기심, 질투 같은 강렬한 감정이 당사자의 기운을 움직였고 시선을 따라서 장인걸에게 쏟아지면 그것을 기감으로 느낄 수가 있었다.
순간 장인걸은 금강나한공을 운용하여 살기의 근원을 탐색했고 마침내 찾아냈다. 빌라의 출입구와 그리 멀지 않는 곳, 반대편 골목에서 180cm 가량 되어 보이는 꽤나 덩치가 큰 남자가 담배를 피우면서 노려보고 있었다.
장인걸은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전에 담배꽁초 버리지 말라고 경고를 했던 무리 중에서 권동환이라고 했던 학생이었다.
‘그 일로 앙심을 품은 것 같군. 자신이 잘못을 하고도 그걸 지적하면 뉘우치기보다 해코지를 하려고 하는 자가 있으니.’그런 경우를 한두 번 당한 것이 아니기에 새삼스러울 수가 없었다. 세상이 순리대로 흘러가면 어려울 것이 없는데 그것을 부정하는 자들이 많았다.
‘설마 나를 공격할까?’집안으로 들어왔다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여 마침 쓰레기를 버려야 할 것 같아서 쓰레기를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 갔다면 문제가 없지만 계속 지켜보고 있다면 문제가 있었다.
‘유림이 형이 드나들고 진경이까지 드나드는데 계속 감시한다면 골치가 아프군.’여전히 멀리서 살펴보고 있었다. 담배를 다 피웠는데도 노려보고 있다는 것은 한 달 전의 일로 앙심을 품었다는 의미였다. 그가 슬쩍 보니 다시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고 있었다.
‘저렇게 주변을 맴돌면 귀찮은데 다시 한 번 경고를 할까? 오히려 긁어 부스럼을 만들까 염려가 되는군.’최유림이야 문제가 아니지만 강진경에게까지 해코지를 한다면 그건 심각한 문제였다. 다행히 지금까지 문제가 없었지만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랐다.
장인걸은 일단 폭력은 행사하지 않을지라도 따끔하게 말을 하기로 결심하고 권동환에게 다가갔다. 더구나 바닥에 담배꽁초를 또 버리는 모습이 보였다.
“야, 너 여전히 담배 피우냐?”
장인걸은 재빨리 다가가서 도망갈 길을 막으며 물었다. 도주를 하고 여전히 근처를 맴돌면 그것만큼 귀찮은 것이 없으니 이번에 끝장을 볼 생각이었다.
“왜, 또요?”
“바닥에 꽁초 버리는 버릇 그대로네.”
바닥에 같은 종류의 꽁초가 두 개나 떨어져 있었다. 장인걸이 노려보자 얼른 바닥에 있던 꽁초를 집어 들었다. 이번에는 친구도 없기에 완전 열세라고 생각했는지 반항하지 않았다.
“이제 우리 빌라 쪽에 못 오니 여기서 피우는 거냐? 끊어라. 몸에 좋지도 않은데. 피우더라도 꽁초는 함부로 버리지 말고. 너처럼 맘대로 버리는 사람 때문에 모든 흡연자들이 다 욕먹는다.”
“학원 시간 되어서 가야해요.”
지적을 당하고 잔소리를 듣거나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지 도망칠 궁리를 했다.
“두 번 봐주었다. 세 번은 없으니 내 눈에 다시는 보이지 말아라. 보이는 순간 박살을 낼 것이니. 알았냐?”
장인걸이 기세를 실어서 재차 경고를 하자 권동환은 아무런 말을 못하고 그 자리를 벗어나려는 기색을 보였다.
“앞으로 내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좋을 거야.”
장인걸이 막 그런 말을 하는데 권동환의 표정이 밝게 변했다. 장인걸이 슬쩍 보자 청년 세 명이 지나가고 있었다. 걷는 자세만 보아도 제법 싸움을 할 것 같은 자들이었다.
“지훈이 형, 나 좀 살려 줘.”
장인걸은 권동환이란 녀석이 마치 자신이 나쁜 사람처럼 말을 하니 어이가 없었다. 마치 자신에게 몇 대 맞은 것 같은 시늉을 하고 있었다.
“너 동환이 아니냐?”
그러면서 그 중에 가운데에 있던 자가 다가오면서 장인걸을 바라보았다. 장인걸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면서 권동환을 보았다. 동네 주먹으로 보이는 자들이라 껄끄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그리 두렵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요?”
“손을 보면 알 것입니다.”
장인걸은 그렇게 말하고 담배꽁초를 들고 있는 권동환의 손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 청년의 시선이 권동환에게 향했다.
“이 자식, 또 담배 피우다 함부로 꽁초 버린 거냐?”
권동환은 장인걸이 자신을 때린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담배꽁초를 들고 있는 상황이라 그럴 수가 없게 되자 낙담한 표정이 되더니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형, 나 학원수업 늦었어. 지금 가야해.”
그렇게 말하고 후다닥 도망을 쳤다. 장인걸은 다짐을 듣지 않았지만 더 붙잡아도 의미가 없기에 그냥 두었다. 더구나 아는 사람으로 보이는 청년이 있기에 무리하게 잡기도 곤란했다.
그들은 다가올 때부터 일정한 진형을 구축하여 장인걸을 압박하는 형상이었다. 제법 훈련을 받은 자들이었고 싸움이 무엇인지 아는 자들로 보였다.
장인걸은 여전히 세 명의 청년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 중에 말을 붙인 청년을 보았다.
“동네 후배인데 괜히 끼워든 것 같습니다. 애들이 다 그러니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십시오.”
경우가 없는 사람은 아닌지 머쓱한 표정으로 그렇게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양진읍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좀 노는 동네 청년으로 보였다. 굳이 엮여서 좋을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지 말라고 하는데 계속 그러네요.”
장인걸은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비화될까 걱정이 되어 기세를 죽이고 부드럽게 대꾸를 했다. 주먹깨나 쓸 것 같은 모습이니 자극할 생각은 없었다.
“가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셋 중에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떠나갔다. 장인걸은 그들이 떠날 때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장인걸은 암중에 서로의 역량을 재면서 싸움이 날 때의 상황을 자신도 모르게 가늠하고 있었다.
민지훈은 걸음을 빨리했다. 모처럼 왕돌이파가 관리하는 업체들을 돌아보기 위해 직속 후배 둘과 움직이는데 동네 후배 녀석을 만나게 되었다.
혹시라도 불량배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아닌지 살폈지만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에 직면하자 오히려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담배꽁초를 버리다가 걸려서 일명 ‘지도’를 받고 있었다.
동네 후배도 창피한지 도망을 쳤는데 한 달 전쯤에 와서 사정을 하던 것이 기억났다. 상대는 어려 보였지만 키도 크고 다부진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아마도 그 사람일 것 같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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