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37
최유림은 감춘다고 해서 감출 일은 아니기에 실상을 알렸다. 이미 알고 묻는 상황에서 시치미를 떼는 것은 불신을 키우는 것에 불과했다.
“형도 주먹을 써요?”
“아니, 나는 그런 쪽이 아니야. 그래도 지방대이지만 대학이라도 나왔잖아. 주로 사무실에서 사장님이 쓴 비용을 정산하고 외출할 때 동행하여 업무를 보좌하는 것이 보통이야. 실제로 폭력을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
그러면서 자신이 하는 일부터 천광상사가 하는 일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했다. 하는 일만 들어보면 일반 도매상이나 차이가 없었다. 물론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일이 그렇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 상당히 냉혹한 진실이 있기도 해. 서로 공생을 원하면 원만한 관계가 이루어지지만 우리를 배제하거나 축출하려는 시도를 하면 그에 따른 응징을 하지. 그 부분은 비서들은 알지 못해.”
일종의 폭력으로 이루어진 질서 속에서 영업을 한다는 의미였다. 서로 귀찮은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 적절한 타협을 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지금에 와서는 큰 납품처를 제외하고는 그런 사실도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이 근방은 왕돌이파가 관리를 하고 있죠?”
“그렇기는 하지만 레벨이 다르지. 거기는 주류나 물품공급을 하지 않고 그저 술집이나 음식점만 관리하는 정도이지. 그들의 상위에 우리가 존재해. 그들은 외곽 조직이라고 봐야 해. 우리 구역에는 왕돌이파와 같은 조직이 대략 다섯 개 정도 있어. 그런데 왕돌이파는 어떻게 아는 거야?”
물론 알려고 하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지만 일반 대학생이 알 필요는 없는 내용이었다. 그걸 장인걸이 아는 것이 이상했다.
“혹시 누가 술 먹고 깽판 치다가 그들과 시비라도 붙은 거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나서는 경우가 없을 텐데.”
최유림은 조폭일수록 폭력을 함부로 행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최악의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인들과 싸우지 않는다고 했다. 대놓고 폭력을 쓰는 것은 조직에 속하지 않은 동네 양아치들이 대부분이라고 설명을 했다.
“그냥, 우연히 애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어요. 대학가 술집이라고 해서 그런 것과 아예 무관한 것은 아니라면서.”
장인걸은 아직 민지훈의 일을 꺼낼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소문을 들은 것처럼 말을 했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의문을 가진 것처럼 행동했다.
“지금까지 너에 대하여 회장님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회장님도 내 책임 하에 모든 것을 관리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입장이고. 그렇게 믿고 운용하지 않으면 비밀유지가 불가능하면서.”
최유림은 회장에게 보고한 내용과 지시받은 지침에 대하여 일러 주었다. 비자금을 당장 회수할 것은 아니니 장기적인 관점에서 운용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혹시 다른 내용은 없어요? 자금의 용도가 뭐예요?”
“회장님의 노후자금이라고 하더라. 당장 은퇴는 하지 않아도 조만간 2선으로 물러날 생각도 있는 것 같아.”
그러면서 추가적인 내용에 대해 설명을 했다. 장인걸이 묻지 않았다면 굳이 신경 쓰지 않았을 내용들이었지만 장인걸에게는 상당히 심각한 이야기로 들렸다.
장인걸은 최유림이 관리하는 비자금의 존재를 누가 아는지 물었고 대략 회장과 다른 두 사람 정도가 안다고 답을 했다. 두 사람도 사장의 최측근으로 조직의 자금을 실질적으로 관리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다음 보스로 두 사람이 거론 된다고요?”
최유림은 장인걸에게 비밀이라고 할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조직원이라면 대략 알 수 있는 내용이기에 그에 대하여 설명을 했다.
“세력은 약해도 나이가 젊은 이치성 전무가 유리하다는 말이군요. 회장님의 참모 출신이고 능력도 뛰어나니까요. 거기다 회장님의 지지도 있고요. 반면에 차태근 부회장은 조직 내부의 중간 보스들 중에 상당수가 지지를 하고요.”
현재의 2인자와 미래의 2인자 사이에서 누가 보스가 될지 아직은 불투명하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회장님은 이치성 전무에게 물려주고 두 사람이 동시에 2선으로 물러나자는 입장이지만 차태근 부회장의 생각은 어떨지 몰라. 자기도 한 번 회장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장인걸은 마침내 참변의 원인이 되는 내부 분열이 왜 발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런 일은 하루아침에 결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장시간에 걸쳐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이치성 전무는 회장님 비서출신으로 사실 사채업을 주로 하는 편이라 조직 내부에 지지자가 별로 없거든. 오히려 나이가 많은 중간 보스는 차태근 부회장을 선호해.”
젊은 사람이 회장이 되면 그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물러나야 하는데 그것이 달가울 리가 없었다.
‘하긴 기업의 경우 경영권 승계 작업이 몇 년, 십년이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일도 몇 년의 시간을 두고 진행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면 2~3년 후에는 대립이 극에 달할 수도 있다.’장인걸은 최유림이나 안광현 회장이 왜 제거가 되는지 알 것도 같았다. 분명 원하는 형태로 일이 진행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반대파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여 살인을 계획하고 실행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보통 이런 일은 약한 쪽에서 계획한다. 내부 반란이 성공했다면 알려지지 않았을 것인데 알려진 것은 결국 실패했다는 의미일 수가 있다. 그렇다면 최종적으로 실권을 장악한 자는 이치성 전무일 것 같군.’어쩌면 이치성 전무의 계략에 회장파나 부회장파가 당한 것인지도 몰랐다. 이간계를 통해 상잔하도록 하여 조직을 장악한 것인지도 몰랐다.
“승계 작업은 유혈충돌이 벌어질 수밖에 없지 않아요? 뭔가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어 보이는데 말입니다.”
장인걸은 최유림이 나중에 죽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차마 하지 못하고 가능성을 언급했다.
“당분간 몸을 사리라는 이야기를 실장님이 했지. 대부분의 조직이 세대교체를 하거나 승계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분열이 일어나 무너졌지. 그럴 가능성도 높으니 걱정이긴 하다.”
최유림도 상황이 위험하다는 것은 인식하고 있어 보였다. 단지 자신에게 그런 일이 닥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아 제대로 대비를 하지 못한 것 같았다.
“사실 조직에서 의리는 오래 전에 사라졌다고 들었습니다. 다들 돈에 눈이 돌아가 조금만 이득이 생겨도 서로 배신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각자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면 배신과 뒤통수치기가 빈번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그 와중에 죽어나는 것은 장기 말, 실무자들일 것입니다.”
최유림은 장인걸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여론을 살피려고 했는지 그런 소문이 나도록 안광현이 조장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 더욱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조심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발을 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런 상황인데 어떻게 해야 하지?”
“가급적이면 혼자 다니지 말아야 하고 형을 지켜줄 사람을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최소한 약간의 호신술이라도 익히고 도망칠 수 있도록 체력이라도 단련해야 하고요.”
최유림도 그런 것 외에 방도가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상황이 싫다고 손을 씻으려고 한다면 가장 먼저 제거될 수도 있었다. 조직은 한 번 몸을 담그면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했다.
“내가 알기에 적당히 몸을 빼서 조직에서 운영하는 업소의 주인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하던데 그렇게 하는 것이 최선일 것 같아요.”
일종에 일선에서 물러나는 방법인데 자연스럽게 안전을 획책할 수 있어 보였다.
“그것도 쉽지 않지. 비자금을 손댔는데 그렇게 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해. 회장님이 물러났다면 몰라도 이탈하는 순간 회장님의 제재를 받을 것인데.”
치명적인 비밀을 알고 있는데 놓아줄 리가 없었다. 사실 이렇게 장인걸을 몰래 만나는 것도 사실은 위험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도둑질을 하듯이 집을 빠져나와서 몰래 찾아오고 있었다.
“여기 1200만 원이다. 땅이라도 살 수 있다면 사두어라. 단기적인 자금회수는 없을 것이니.”
“지금은 땅값이 끝없이 추락 중이니 살 때가 아닙니다. 주식도 마찬가지고요. 반면 달러는 무려 15%나 올랐더군요. 대신 금을 조금 사놓을까 합니다. 은행에 대여금고를 만들어서 보관할까 합니다.”
최유림은 들고 온 가방을 통째로 내밀었다. 만 원짜리 12다발이니 당연히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돈을 받으니 자기 돈은 아니지만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더욱 불안했다. 돈의 액수가 커지는 만큼 위험도 증가하는 것은 당연했다.
‘고민이군. 막을지, 아니면 이대로 있다가 돈만 챙길지.’3년 정도 기간을 둔 다는 것은 3년 후에 2선으로 물러난다는 말이었다. 그 기간 동안 은밀히 보관을 하고 나중에 군대에 다녀오면 그 자금을 전부 차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자금을 챙긴다고 해도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이다. 고작 2~3억인데 그런 돈을 챙기자고 찝찝함을 감수할 필요는 없지.’장인걸은 최유림이 당한 변이 왜 일어난 것인지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은 것으로 일단 만족하기로 했다.
장인걸은 권세라가 거리를 두는 것 같아 마음이 걸리면서도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진경과의 관계를 아는 것도 같았다. 그렇기에 더 이상 남녀 관계로 엮이지 않고 아는 사람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편했다.
“너는 어느새 실력이 더 좋아진 것 같아.”
장인걸이 아무도 없는 동아리 방에서 한바탕 드럼 연주를 하고 있는데 권세라가 들어와서 2~3분가량 연주를 들었다. 장인걸도 사람이 왔기에 자리에서 일어나니 그렇게 말했다.
“자주 연습을 하니 실력이 조금 나아진 것 같아요.”
장인걸은 자신의 실력이 부쩍 늘어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제는 권세라에 비해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박자감각도 훨씬 예리해졌고 강약을 조절하고 음감마저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오히려 나보다 더 나은데. 나야 밸런스에서 약점이 있는데 너는 그 부분이 뛰어나잖아.”
권세라의 약점이 멜로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점인데 그것은 드럼 연주에서도 드러났다. 그 부분은 감이라고 하는 부분이고 재능과도 연관이 커서 쉽게 극복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너 장유현 배우랑 아는 사이야?”
권세라가 궁금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집안 아저씨,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요?”
“아는 언니가 장유현 배우랑 친한 편인데 돌잔치에 가서 찍은 디지털 카메라 사진을 보여주었는데 그 사진에 네가 보이더라.”
“아는 언니요?”
“내가 일하는 카페 사장님, 같은 시기에 데뷔했는데 친구라고 하더라고. 그 언니는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어. 동갑이라 친구라고 하더라고. 한정수 선배도 우리 카페에서 몇 번 공연도 했고.”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라는 말이 실감이 났다. 결국 그날 있었던 일이 대부분 알려진 것이라고 봐야 했다.
“내가 안다고 하니까 네가 와서 공연하고 싶으면 하라던데. 거기서 노래했다면서? 공연비도 잘 챙겨주겠다고.”
“카페가 달맞이꽃이라고 했죠?”
“응, 그런데 네 집안이 연예인 집안이었어?”
“먼 집안사람이에요. 그러니 연예인 집안이라고 하기도 그렇죠. 카페 사장님하고 친한가 봐요?”
“사실 우리 밴드의 재정을 내가 담당해서. 다들 술 한 잔 사준다고 하면 덜컥 공연 약속을 잡는 사람들이라. 내가 아니었으면 공연을 해도 남는 것이 없었을 거야.”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셈에 약한 것이 보통이었다. 그렇기에 누군가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매니저를 둘 형편이 아니라면 누군가 야무진 사람이 있어야 했다.
“진경이랑 사귀는 거야?”
권세라가 마음을 정리했는지 편하게 물어왔다. 둘이 만나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였다.
“사귀는 것이 아니라 그냥 편하게 만나는 정도죠. 남자 친구가 아니라 남자 사람 친구로.”
당시에는 남사친이나 여사친은 유행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물론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그런 관계로 생각하고 있었다.
“너도 은근히 바람둥이에 나쁜 놈 같아. 그냥 책임지지 않고 만남을 즐기겠다는 말이잖아.”
권세라가 핵심을 찔러왔다. 맞는 말이기에 장인걸은 달리 변명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자유이고 딱히 틀린 말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말을 하는 권세라의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뒤를 돌아서 바로 드럼 쪽으로 가는 상황이라 장인걸은 볼 수가 없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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