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39
장인걸은 카운터로 가서 지배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민지훈을 만나러 왔다고 말을 했다. 그러자 사전에 지시를 받았는지 안쪽에 있는 일종의 룸으로 안내했다.
“여기서 기다리시면 됩니다.”
여섯 명은 족히 앉을 수 있어 보이는 소형 룸으로 안내가 되었다. 소규모 친구들 모임을 가질 때 적당한 자리로 보였다. 앉아서 대략 2~3분 정도 기다리자 민지훈이 들어왔다.
“일단 맥주하고 과일을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이나 연락을 할까 했는데 마음이 통한 것 같습니다.”
“일은 잘 정리가 되었습니까?”
“뭐, 그렇죠. 배후가 누구인지 찾으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꺽쇠가 주도한 것은 알았지만 잠적한 상황이라 더 이상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앞으로 조심하는 수밖에 방도가 없는 것 같습니다.”
위험은 여전히 남아있으니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어디 갔다 오는 것 같군요?”
장인걸에게서 술 냄새도 날 것이고 복장이 세미정장 차림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친구들 모임이 있어 갔는데 영 분위기가 이상해서 적당히 얼굴만 비추고 일어났습니다. 집에 가려다가 저번에 이야기를 하다 만 것 같아서 정리를 하려고 들렀습니다.”
민지훈이 집으로 찾아왔지만 어색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아 이야기가 겉돌다 말았다. 더구나 최유림을 만나 새로운 상황을 알게 되었기에 민지훈과 협력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민지훈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가 꽤나 부유한 집안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태양건업이라는 건설자재를 취급하는 중견 기업의 사장 아들이었다. 권동환도 역시 진명전자라는 중견기업 사주의 아들이었다.
명석대 건너편에 있는 부촌에서 꽤나 큰 저택에 살고 있었다. 서로 집안 사이에 왕래가 이루어지고 있기도 했다. 민지훈은 고등학교 때부터 내놓은 자식 취급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부잣집 자식이었다.
“장사는 어떻습니까? 요사이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음식점이나 술집도 어렵다고 하던데 말입니다.”
“나야 그리 타격을 받지 않는 편입니다. 목이 좋은 곳이거나 손님이 많은 곳은 괜찮지만 영세한 음식점은 어렵다고 아우성입니다. 이러다가 대기업 전부가 무너지고 골목의 상권마저 다 죽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때 종업원이 병맥주와 과일안주를 가지고 왔고 둘은 맥주잔을 채운 다음에 건배를 했다. 술집에서는 생맥주보다 병맥주를 조금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어떤 운동을 배운 것입니까? 나는 태권도에 합기도도 배우고 군대에 가서 특공무술도 배웠습니다. 공수부대 출신입니다.”
민지훈이 궁금한 기색으로 장인걸이 배운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오토바이를 탔던 자를 처리한 실력은 결코 운이 아니었다.
“어릴 때에 태권도를 조금 배웠고 그 후에는 공부를 하느라 따로 배운 것은 없습니다. 그저 혼자 운동을 했습니다. 어릴 때에 아는 사람에게 한 수 배운 것도 있지만요.”
장인걸은 자신의 실력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적당히 얼버무렸다. 금강나한공에 대하여 말을 하면 믿어줄 것도 같지 않았고 굳이 밝힐 이유도 없었다. 그렇다고 아예 없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신빙성이 떨어졌다.
“제 지인 중에 한 사람이 천광상사에 다닌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민지훈이 깜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혹시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말을 했습니까?”
곧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되물었다. 민지훈이 습격당한 사실은 감출 수가 없었지만 일부를 붙잡은 사실은 알리지 않고 있었다. 그런 사실이 알려지면 나중에 약점이 되기 때문이었다.
“민지훈씨를 만난 일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조금 들었습니다.”
장인걸의 말에 다소 안심하는 기색이 되었다.
“천광상사와 거래를 하지만 한 집안 식구는 아니기에 조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들었습니다. 각기 다른 식구라고 말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는 구멍가게에 불과합니다. 천광상사와 거래하는 업체가 우리 말고도 네 군데나 더 있습니다.”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회장님이 2선으로 물러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면서 분위기가 어수선하다고 들었습니다. 그 정도는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죠?”
“그 정도는 우리도 알기 마련이죠. 우리와 직접적으로 영향이 있는 본사의 일인데.”
말을 마치고 난 후에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일도 그 일과 무관하지 않아 보이니 답답한 것 같았다.
“저도 아는 형이 천광상사 다닌다고 해도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조금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긴 일반인이 이런 일을 알 필요는 없죠.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데 편하게 말하십시오.”
장인걸이 직접 찾아온 것은 단순히 술이나 한 잔 하자고 온 것은 아닐 것이니 용건을 물었다. 천광상사에 지인이 있다는 말은 뭔가 제안을 하기 위한 밑밥을 까는 일이었다.
“저도 운동을 조금 하고 싶은데 적당한 곳이 없습니까? 서울에서는 운동하는 것도 남의 눈이 있어 조심스럽습니다.”
장인걸은 자신이 뭔가를 하려면 혼자 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아 주변에 사람을 만들 생각으로 그런 제안을 했다. 적당히 친분을 가지면서 부릴 사람을 만들 생각이었다.
“운동이라? 우리 애들 몇몇은 명석대 정문에서 조금 떨어진 청룡무술도장이라는 곳에 모여서 운동을 합니다. 나도 시간이 나면 가서 몸을 풀고요. 사실 거기는 내가 운동을 하려고 아는 형에게 투자하여 만든 곳입니다. 지하에 피트니스센터도 있으니 운동을 하기 적당합니다.”
장인걸은 더 많은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그 정도에서 그치고 술을 마시기로 했다. 민지훈과 대략 한 시간 정도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면서 맥주를 마셨다.
아직은 민지훈을 전적으로 믿을 수 없는 상황이기에 적당히 마신 것 같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간 취기가 올라오는 상태였다. 그 정도라면 습격을 당해도 대응이 가능할 것 같았다.
장인걸은 일요일 오전에는 집에 있는 고서를 탐독했다. 특별히 할 일도 없었다. 장인걸이 토요일에 고등학교 동창들과 만날 약속이 있다고 하니 강진경은 일요일에 약속이 있다고 하여 만날 일이 없었다.
점심을 먹고 난 후에 책을 읽다가 시계를 보았다 오후 세시가 넘어 가고 있었다. 계속 책만 읽으니 머리도 멍하고 안에 있다 보니 좀이 쑤셨다.
그래서 악기라도 연주하고자 기타를 메고 학교로 갔다. 동아리 방에 당도하니 문이 잠겨 있었고 안에서는 드럼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문을 두들기다가 가지고 있던 열쇠로 열고 들어가니 누군가 드럼을 치고 있었다. 권세라가 혼자서 드럼을 연주하고 있었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진홍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일요일에 웬일이야?”
“기타 연습이나 하려고요. 선배는요?”
“나야 운동 겸 해서 한바탕 두들기려고 나왔지. 그렇지 않아도 도움이 필요했는데 잘 되었다.”
그러면서 악보집을 들더니 뭔가를 찾아서 펼쳤다.
“내 드럼이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지?”
권세라의 질문에 장인걸은 쉽게 말을 하지 못했다. 전에는 권세라의 실력이 월등히 뛰어났지만 지금은 실력이 비슷했고 오히려 권세라의 치명적인 단점 때문에 문제가 되었다.
“선배의 장점은 정확한 박자에 있죠. 더불어 박자의 완급 조절도 제법 뛰어나고.”
“반면에 강약 조절이나 곡에 따른 미묘한 밸런스 조절은 못하는 문제가 있지. 더구나 드럼의 주법의 변화를 통한 곡에 맞는 연주는 미숙하다는 단점이 있지.”
장인걸이 말하지 않은 단점을 바로 지적했다. 그런 문제 때문에 권세라가 일류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
“일류가 되려면 그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데 도저히 감을 잡지 못하겠어. 음악성이 부족한 것 같아. 그걸 극복하려면 부드러운 곡을 많이 연주하여 표현력을 향상시키라고 하더라. 그런데 표현력이 무엇인지 도저히 감을 못잡겠어.”
장인걸은 결국 권세라가 원하는 대로 조용하면서도 부드러운 노래를 기타로 연주를 했고 권세라도 잔잔하게 드럼으로 비트를 넣기 시작했다.
“드럼도 타격 부위나 강도에 따라 일종의 멜로디가 존재해요. 예민한 사람은 약간의 차이만 나도 그 차이를 감지할 수가 있어요. 어디를 어떻게 타격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곡에 맞는 연주가 어떤 것인지 대략 감이 와요. 그걸 잡아야 해요.”
“내가 박치는 아닌데 약간의 음치가 있어. 그것 때문이겠지.”
장인걸은 기타를 연습하러 갔는데 결국 권세라의 드럼 연습을 보조하는 역할을 몇 시간 동안 수행해야 했다.
기타로 멜로디를 연주해야 했고 종종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동일한 방식으로 연주한 것을 녹음한 후에 권세라의 연주와 장인걸이 연주한 성과물을 비교하기도 했다.
“쉽지 않네. 벌써 해가 지는 것 같아.”
같이 연주하고 녹음한 것을 듣고 토론을 하다 보니 시간이 빨리도 흘러갔다. 같이 연주를 하면서 장인걸도 배우는 것이 적지 않아 집중을 했기에 지루한 줄을 몰랐다.
“어디 가서 맥주 한 잔 할래?”
“참, 일요일인데 공연 없어요? 원래 주말에 공연이 있잖아요?”
“시간이 조정되어 일요일은 없어. 대신 금요일로 옮겼어. 일요일보다 금요일이 더 손님이 많다고.”
장인걸은 이틀 연속으로 술을 마시는 것이라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서너 시간 계속 노래하고 연주를 했더니 목이 마르기도 했다. 그냥 시원하게 맥주 한 잔을 하고 싶기도 했다.
“좋아요. 그러면 가서 치킨에 한 잔 하죠.”
그들은 문단속을 하고 천천히 후문 쪽으로 걸어서 나갔다. 거기로 나가는 것이 먹자골목과 가까웠다.
“먼저 가서 자리를 잡고 있을래? 옷 좀 갈아입고 갈게.”
트레이닝복을 입고 나가는 것이 쑥스러운지 기숙사 근처에 다다르자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 자주 가는 버블브로이에 가서 치킨을 시켜놓을게요.”
“그래. 혹시라도 자리 없으면 그 앞에서 기다리고.”
물론 일요일 저녁이니 자리가 없지는 않겠지만 혹시라도 모르는 일이기에 그런 약속까지 했다. 장인걸도 메고 있던 기타를 집에 가져다 두고 그곳에 도착하자 일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절반 정도 자리가 비어 있었다.
“요즘 진경이랑 자주 만나?”
권세라는 대략 20분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왔다. 가볍게 세수를 하고 옷만 갈아입고 왔다고 하지만 샤워를 한 것 같았다. 같이 프라이드치킨을 먹으면서 생맥주 한잔을 다 비워 시장기가 가시자 슬쩍 물었다.
“가끔. 마지막으로 금요일에 만났어요.”
장인걸은 굳이 감출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 당당하게 말을 했다. 죄를 짓는 것도 아니니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상우가 진경이를 좋아하는 것 같던데 문제없어?”
“신경 쓰지 않아요. 치근대긴 하지만 도를 넘는 정도는 아니어서요.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해지면 진경이가 적절히 대처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만일에 문제를 일으키면 나도 나서서 처리할 생각이에요.”
박상우가 노골적으로 치근대는 것으로 인해 동아리에서도 말이 나오는 실정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동아리에서 쫓아내고 싶지만 아직 명분이 부족했다.
“하긴 아직 너희가 만나는 것은 몇몇 사람만 아는 정도이고. 박상우는 만나는 것을 알면서도 찝쩍대니 문제이지.”
“그거야 진경이의 문제이죠. 서로 구속하지 않기로 했는데.”
장인걸은 서로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하여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일종의 합의가 있는 상황에서 직접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는 나설 수 없었다. 호의로 나섰지만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을 방해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하여간 이해가 되지 않아. 걔가 말하는 것처럼 서로 다른 사람 만나도 간섭하지 않기로 한 거야? 그게 가능해?”
술이 들어가자 직설적으로 질문을 했다. 아마도 그런 생각이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사람인 이상 질투심이 없을 수 없죠. 하지만 내가 편하자고 구속 없이 만나자고 했는데 그걸 어길 수는 없죠. 나도 그래야 하고. 그런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안 만나면 그만이고요.”
“그러면 너도 다른 사람을 만날 생각이야?”
권세라의 질문에 장인걸은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애매했다. 여기서 만난다는 의미가 그저 가볍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니기에 대답하기가 곤란했다. 아니라고 하기에는 말과 행동이 다르고 그렇다고 하면 스스로 바람둥이라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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