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4
치장을 할 시간이 없으니 식사를 거르려고 하는 것을 어머니가 억지로 먹게 했는데 그것이 기분 나쁘다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여자에게 외출 시의 화장은 무장이자 자존심이라는 말도 있지만 시골아주머니인 어머니에게 그런 말은 통하지 않았다.
장인걸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먼저 탄 덕분에 아직 빈자리가 있었다. 지금 타는 학생은 중학생이거나 수능이 끝난 고3들 밖에 없었다. 초등학생은 별도의 통학버스가 운행되기에 버스를 타고 다니지 않았다.
아는 애들이 하나둘 탈 때마다 서로 아는 체를 했지만 장인걸은 그저 눈인사만 하고 달리 인사를 하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에 공부만 한 장인걸이기에 어울려 놀지를 않았으니 그리 가깝게 지낸 사이는 아니었다.
특별반이라 일컫는 1반과 5반은 상당히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편성되었고 나머지 2,3,4,6,7반은 성적이 별로인 학생이 편성되었다. 1반은 문과 우수생, 5반은 이과 우수생이 속했는데 2,3 학년이 동일했다.
이런 우열반 편성이 문제가 되기도 했지만 암암리에 이루어지고 있었고 욕심 많은 몇몇 부모만 불만이 있지 학생들은 크게 불만이 없었다.
장인걸은 5반에 속했는데 그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그나마 서울에 있는 상위권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방대학도 들어가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20분 정도 달려서 양진읍내에 도착을 했다. 마을에서 바로 가면 10분이면 도착할 거리이지만 중간에 정류장에 멈추고 마을 한 곳을 거치느라 돌아간 탓에 10분이나 더 걸렸다.
“야, 오늘 국일당 제과에서 한 시에 보는 것 알지?”
교실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자 황명환이 다가와서 한 마디를 했다. 문과의 여자들 세 명과 때 늦은 미팅을 하기로 했다. 서울로 진학을 하기로 한 여자들이었다.
문과의 경우에는 상위권을 여자들이 주로 차지했다. 이과의 경우에는 남자들이 70%나 차지했고 성적도 남자들이 좋은데 문과는 반대였다.
“오늘은 2교시만 끝나고 마친다고 하더라. 그러면 창선당구장에서 당구 치다가 짜장면 시켜서 먹고 거기로 가자.”
장인걸은 숫기가 없어서 여자들과 별로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반면에 황명환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고 문과반의 여자들과도 잘 어울렸다.
순간 오늘이 원경희를 만나는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중요한 일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바로 그 일이었다.
그저 멀리서 꽤나 예쁘다고 생각을 하지만 어떻게 해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그 자리에서 처음 만나서 이야기를 하면서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여자에 대한 면역이 없는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원경희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상당히 세심하게 모든 것을 챙기는 스타일이라 여러 가지 배려를 해주는 것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후에도 매사를 주도적으로 챙기고 성숙한 면모를 보였기에 막상 일이 터질 때까지 추호도 의심을 하지 않았다. 소문을 듣고 전화를 하여 만나자고 했을 때까지도 그런 일을 했다고 믿지 않았는데 그 사실을 시인하고 결별을 선언하자 너무나 충격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 가고 싶지 않은데. 애들을 만나서 뭐하냐?”
장인걸은 여섯 명과는 앞으로 만나고 싶지 않았기에 거부를 했다. 그 때 교실로 안석진이 들어왔고 자리에 가방을 놓자마자 바로 달려왔다.
“오늘이지?”
안석진은 세 명 중에서 가장 작았다. 심지어 그 때에는 167가량 되는 원경희보다도 더 작았다. 졸업 후에야 꽤 성장을 하여 173 가량이 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땅꼬마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인걸이가 안 간데.”
“뭐야? 어제 가장 좋아할 때는 언제고 오늘은 안 가? 야, 기회는 언제라도 오는 것 아니지. 너 경희 좋아 죽잖아.”
“그렇기야 하지만 그냥 만나고 싶지 않아.”
장인걸도 원경희를 좋아했지만 안석진도 꽤나 관심을 가졌다. 그렇기에 원경희에 대한 소식을 옮긴 것은 안석진이었다. 단지 키가 작다는 콤플렉스를 가진 것 때문에 당시 꽤나 큰 키였던 원경희에게 대쉬하지 못했다.
지금 보니 안석진도 상당히 원경희에게 관심을 가진 것 같았다. 나중에는 먼저 장인걸이 사귀니 마음을 접은 것 같았다.
“너희나 만나. 난 별로 내키지 않으니. 더구나 오늘 서울에서 큰어머니가 내려오기로 했어. 그래서 빨리 오래.”
큰어머니가 오는 것은 맞지만 온다고 연락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옆 동네 살던 큰어머니의 집안 어른이 전날 돌아가신 덕분에 조문을 하러 왔다가 잠깐 들린 것이었다.
원래는 며칠 전 설날 다녀갔기에 방문할 계획이 없었다. 그냥 서울에 올라가려고 읍내에 나왔는데 서울 가는 차가 끊어지자 어쩔 수 없이 본가에 들린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상가로 가자니 잘 곳도 마땅치 않을 것 같고 다음날이 발인이라 바로 출발하기도 어려울 것 같아 왔던 것 같았다.
그 덕분에 큰어머니가 학교 근처에 있는 자취집을 먼저 알아보았고 졸업 직후에 적당한 곳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어머니랑 같이 상경하여 계약을 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그냥 부동산중개사무실 한두 곳만 들러도 그 정도 조건의 방은 바로 구할 수가 있었지만 그런 것을 모르니 부탁을 했었다. 당시에는 취직이 바로 되는 시기라 2월이 되면 졸업을 앞둔 사람들이 방을 내놓고 떠나갔다.
1교시 종이 울리자 장인걸은 교실 밖으로 나와 화장실로 향했다. 순간 장인걸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표정이 어렸다.
‘죽일 놈 같으니라고.’하지만 당장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자신을 좌절하게 만들었던 이승찬과 그 무리가 모여서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서 좋을 것이 없기에 그저 용무만 보고 밖으로 나왔다.
교실로 돌아온 후에도 끓어오르는 속을 달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지금은 이승찬이 어떤 짓을 한 상황은 아니었기에 증오심을 가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전에 당한 것을 생각하면 감정이 다스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 쓸데없는 악연을 만들지 않으면 되는 거야. 진짜 만나야 할 인연이라면 나중에 어떻게라도 만나겠지. 일단 피할 수 있다면 피하자.’미운 정도 미운 정이라고 학교에 온 이후에 갈등을 하고 있었다. 만나러 나가서 다시 한 번 어그러진 인연을 바로잡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고 악연이니 맺지 않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같이 보낸 시간이 길었고 그만큼 미움도 컸다. 그렇기에 내내 그 생각만 하면서 고민을 했다. 하지만 이승찬과 그 무리를 보고나자 더욱 확고하게 악연을 떨치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제 더 이상 그 일에 연연하지 말자. 인연이 아닌 것을 붙잡고 괴로워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과거로 돌아온 것은 그런 일을 벌이지 말라는 것이다.’장인걸은 원경희와 보내었던 과거의, 아니 미래의 추억을 모두 잊기로 했다.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기로 했다.
“기숙사에 들어갈 생각이야?”
같은 명석대학교에 들어가기로 한 진성민에게 다가가서 말을 붙였다. 전에는 같은 학교에 갔지만 밥을 같이 먹은 기억도 없었다. 그만큼 무심했던 장인걸이었다.
“기숙사에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신청을 했어. 2~3일 안에 발표할 것 같던데. 너는?”
기숙사에 들어가는 것도 경쟁을 해야 했고 최종적으로 발표를 해야 확정이 되었다. 시골출신에게 우선적으로 배정을 하지만 종종 탈락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나는 신청을 하지 않았어. 그냥 편하게 자취를 하려고.”
“나중에 기숙사 문 닫는 시간 놓치면 찾아갈게.”
기숙사에 들어갈 경우에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아버지인 장재현의 경우에는 남자들이 모이면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입장이었다.
“선배들도 몇 명 있다던데 만나자고 연락도 없네.”
“서울에 가면 만날 자리가 있을 거야. 1년 선배인 유지훈 선배가 나한테 이야기를 하던데.”
장인걸은 자신이 받았던 전화 내용을 말해 주었다. 진성민네 집 전화번호를 알지 못해 연락을 못한다고 나중에 전해달라고 했었다.
“여기 전화번호 있어. 한 번 연락을 해봐. 선배들이 대부분 서울에 있다고 개강하면 보자더라.”
황명환이나 안석진과도 연락을 할 생각이 없기에 같은 학교에 가기로 한 친구들을 챙기기로 했다.
“1반에 이정숙이나 양석현은 연락이 되었다고 하더라.”
같은 학교에 누가 합격했는지는 파악을 해둔 상황이었다.
“그러면 졸업 전에 한 번 만나자.”
“그렇게 하자. 졸업 전이라고 해야 내일과 모레뿐인데.”
“내일 점심에 만날까? 내가 약속 시간을 잡도록 할게.”
진성민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전에는 장인걸을 제외한 세 사람이 친하게 지낸 것을 알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자신도 그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장인걸은 원경희를 만난 덕으로 인해 서울 생활이 그리 외롭지 않았지만 그로 인해 대학생활의 낭만을 즐기지도 못했다. 그저 학교수업과 원경희와의 만남이 전부였고 대학동기들과는 그리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나중에 군대 갔다 와서 복학생들과 친하게 지내기도 했지만 그 때는 머리가 자랄 대로 자란 상황이라 그저 안면을 익힌 정도에 불과했고 군대에 가지 않고 졸업을 한 동기들과는 제대로 알지도 못하게 되었다.
그런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더구나 이번에도 서로 좋아 죽는 관계가 되어 정신을 못 차리고 싶지는 않았다.
“난 간다. 너네들끼리 만나. 꼭 사람 숫자를 맞춰서 만나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서울로 대학가는 문과 여학생들과 인사나 하는 것이라면서.”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황명환이 서울에 가는 여학생들과 안면이나 익히자는 구실로 만든 자리였다. 그러니 굳이 그가 가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가 없었다.
2교시 수업이 끝나자 단축 수업을 마치고 종례를 했다. 장인걸은 미련이 남았지만 과감히 거부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날 것이지만 악연이라면 멀리하는 것이 나았다.
“야, 정말 가지 않을 거야?”
“그래. 먼저 갈게. 그리고 석진이 너 담배 피지 말아라. 나중에 끊지 못해 고생하지 말고.”
이맘때 석진이가 제일 먼저 담배를 피기 시작했고 그 후 졸업을 한 직후에 석진이의 권유로 황명환과 장인걸이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석진이는 담배 때문에 폐에 문제가 있어 셋 중에 유일하게 금연을 하기도 했다.
그 후에 셋 다 10여 년간 담배를 피워댔으니 그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지금도 손이 입으로 가는 것을 보면 심리적으로 금단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았다.
“남이사.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건 삽으로 밥을 퍼먹건 뭔 상관인데.”
안석진이 발끈했다. 학생의 신분으로 담배를 피기 시작한 상황인데 그것을 지적하니 화를 냈다.
“그거야 네 맘이지만 내 앞에서 냄새피우는 것은 싫다. 지금도 냄새가 풀풀 난다.”
중간에 어디선가 담배를 피우고 왔는지 담배 냄새가 나고 있었다. 유독 양진고등학교만 그랬는지 몰랐지만 학생 절반가량은 흡연을 하고 있었고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가면 담배 연기가 자욱했다.
자신의 느낌인지 모르지만 안석진은 자기가 그 자리에 가지 않는다고 하니 오히려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런 기색을 느끼기에 괜히 담배로 시비를 거는 것인지도 몰랐다.
“아이쿠, 11시 20분 버스를 타려면 빨리 가야겠다.”
집에 가는 버스는 한 시간에 한 대가 다니는 상황이니 그 차를 놓치면 걸어가는 것이 더 빨랐다. 그러니 서둘러야 했다. 며칠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허송세월을 하는 것보다 뭔가 유익한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최유림은 김기정 실장과 이찬혁 부장을 만나서 비밀리에 조성한 자금을 관리하는 방법에 대하여 듣고 있었다.
“사장님께 건네기 전에 2~3년간 보관할 계좌가 필요하다는 말이군요.”
“대포통장을 이용하는 것도 방법인데 조금만 문제가 발생해도 찾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어. 비밀번호가 바뀌었는데 문제가 된다거나. 입력횟수 오류가 발생하면 본인이 필요하고.”
김기정 실장은 이찬혁 부장과 최유림과 약속을 잡고 그가 관리하는 ‘유림’이라는 한식당에서 만나자 그런 말을 했다.
“대략 한 달에 1500만 원 정도를 건넬 것이야. 많으면 2500도 가능하고. 조성하는 방법이야 다양하겠지만 사장님이 그 용도를 명기해야 하니 그에 관련된 증빙을 최 비서가 남겨주어야 해. 서로 그 건에 관련한 것은 사장님에게 보고를 해야 하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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