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40
“그거야 모르죠. 만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사람이 나타나면 만날 것이고 아니라면 굳이 찾아서 만날 생각은 없어요. 사람의 마음이 생각하는 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 이야기는 중간에 끊고 다시 장유현이나 음악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물론 음악을 하다가 취미 이상으로 할 것인지는 여부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고민하기로 했다.
하지만 권세라는 올해 정도만 밴드를 하고 내년에 그만둘 생각이라고 했다. 자신의 한계를 알기에 음악은 그저 취미로 한다고 말했다. 여자 드러머로 성공하는 것도 어려운데 재능의 한계마저 존재하니 쉽지 않다는 말이었다.
음악은 결국 노래를 하거나 작곡을 해야 성공할 수가 있는데 드럼을 쳐서는 그럴 가능성이 낮다고 했다. 잘 해야 잘 나가는 밴드의 드러머인데 그것이 성공인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적당히 한 잔을 하고 일어날 생각이었지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두 시간 이상 시간이 흘렀고 상당히 많이 마시게 되었다.
“이제 기숙사에 들어가야 하지 않아요?”
맥주를 마시고 나오자 이제 10시가 지나서 11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서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한참 흘러갔다.
“그냥 기분도 그런데 노래방에 가지 않을래?”
늦었다고 하는데도 술이 취했는지 권세라가 노래방에 가자고 졸랐다. 장인걸이야 천짜리 세 잔을 마셨지만 권세라는 무려 네 잔이나 마신 상황이었다. 상당히 취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알았어요. 같이 가죠.”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있는지 표정이 그리 밝지가 않았고 그렇기에 기분을 풀어주려고 했다.
“웬일로 뽕짝? 선배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노래방에 들어오자 번호도 찾지 않고 그냥 눌렀는데 ‘찔레꽃’이라는 꽤나 유명한 트로트가요였다.
“나도 노래방에서는 이런 노래 좋아해. 동아리에서야 분위기상 자제하지만 카페에서도 종종 이런 노래를 연주하는데, 뭐.”
그러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발라드나 일반 가요를 부를 때보다 훨씬 노래를 잘 불렀다. 노래를 하면서 흥이 나는지 춤까지 추기 시작했다. 막춤이지만 제법 리듬을 타고 있었다.
“일로 와.”
권세라는 술기운이 올라오는지 점퍼를 벗고 티셔츠만 입은 상황에서 장인걸에게 다가오라고 불렀다. 그러더니 장인걸을 붙잡아서 끌어당겼다.
장인걸은 권세라가 갑자기 밀착해오자 난감했다. 노래를 부르면서 블루스를 추는 자세를 취하더니 목에 한 손을 걸고 몸을 기대왔다. 그러면서 어깨에 목을 걸치더니 마이크를 든 손을 겨드랑이로 넣어 등 뒤로 돌려 완전히 밀착을 했다.
‘이게 지금 무슨 자세냐? 완전히 나에게 매달린 꼴이네.’그런 상황에서 리듬에 맞춰 허리까지 비벼대는 상황이라 장인걸은 곤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저 허리 뒤로 손을 맞잡고 같이 리듬에 맞춰 흔들거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내가 먼저 했다면 나중에는 성추행이라고 할 형상인데.’직장 생활을 5년 이상 하다 보니 회식을 하고 노래방에 갔다가 남녀 직원 사이에 트러블이 생긴 경우도 몇 번 경험하기도 했다. 이런 자세를 먼저 남자가 하려다가 뺨을 맞기도 했다.
“선배, 취했어요?”
“아니, 취하지 않았어. 이제 너 불러.”
장인걸은 걱정이 되면서도 결국 트로트 계열로 역시 선정을 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발라드를 부르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래를 부르자 권세라가 블루스를 추는 자세를 취했지만 결국은 그냥 매달려서 흔드는 것이 고작이었다. 장인걸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권세라의 등을 가볍게 쓰다듬으면서 몸을 조금 더 가깝게 밀착시켰다. 꽉 껴안고 어깨에 머리를 묻은 권세라의 거친 숨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노래가 끝나자 둘은 나란히 앉았고 취해서 그런지 아니면 의식적으로 그러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권세라는 장인걸에게 자연스럽게 기대는 자세가 되었다. 장인걸은 밀어낼까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그냥 그대로 있었다.
노래를 찾더니 리모컨을 들어서 번호를 입력하고 앉아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발라드계열로 사랑과 이별을 노래한 노래였다. 그냥 슬픈 노래가 아니라 연인이 떠났다고 해도 여전히 사랑한다는 내용이었다.
권세라가 겨드랑이 밑으로 파고드는 자세라서 어쩔 수 없이 어깨에 손을 얹어서 반대쪽 어깨를 감싸 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자세가 일반적인 자세는 아니지만 장인걸도 꽤나 술을 마신 상황이라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서비스 시간까지 대략 한 시간 반 정도 번갈아 가면서 조용한 노래를 했다. 같이 안고 춤을 추거나 기대어 껴안고 있었다. 처음에야 어색한 느낌이 들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편안한 기분으로 껴안고 밀착을 했다.
“너무 늦어 기숙사에 들어가기 그런데.”
노래방 기계의 시간이 0이 되고 마지막 노래를 부르는 상황에서 권세라가 곤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술기운이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술이 다 깨어 둘 다 맑은 정신이 된 상태였다.
“우리 집에 가서 자고 갈래요?”
이미 서로 그렇게 작정을 한 상황이지만 모른 척 의향을 확인하고 있었다. 상대가 언제 마음이 바뀌어 ‘노’라고 말할지 모르기에 그런 절차는 필수였다.
“그렇게 하자.”
장인걸은 결국 갈 곳 없는 여자를 데리고 집으로 오게 되었다. 12시가 넘어 인적이 없는 밤길을 나란히 붙잡고 걸어갔다. 처음에는 천천히 걸었지만 나중에는 뭐가 그리 급한지 숨이 차오를 정도로 빠르게 걸어갔다.
장인걸은 월요일에 1,2교시를 마치고 학생회관 근처에서 평소처럼 강진경을 만났다. 암묵적으로 그 시간이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같이 식사를 하고 5,6교시 수업을 들으러 갔다.
“토요일에 친구들 잘 만났어?”
둘이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밖에 있는 벤치로 가서 앉았다. 처음에는 휴게실에서 원두커피를 마셨지만 지금은 비용 때문에 자판기 커피로 만족하고 있었다.
“언혼식을 한다고 해서 갔는데 신부가 웃으니까 그나마 마음이 편하더라. 힘든 표정을 지을까 걱정했는데.”
장인걸은 대략적으로 모임이 어땠는지 이야기 했다. 하지만 원경희에 대하여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 일은 다른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일찍 헤어졌으면 나한테 연락을 하지?”
“그냥 조금 심란하기도 하고 피곤해서 일찍 나왔는데 들어오다가 최근에 알게 된 선배를 만나서 같이 조금 마셨어. 우연히 이 동네 사는 형을 알게 되었거든.”
장인걸은 연락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설명을 했다.
“둘 다 동창이고 속도위반이라고 했지?”
“응, 며칠 전에 혼인 신고를 했고 결혼식 대신에 친구 모아서 식사나 한 것이지. 반지교환도 하고.”
“그래도 다행이다. 낙태를 하지 않아서.”
강진경은 그렇게 말을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장인걸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주의를 하고 있지만 남녀가 만나다보면 언제 그런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너는? 토요일에는 숙제하고 일요일에 남자선배 만난다던데?”
“만났어. 오랜 만에 만났는데 느낌이 그렇더라. 클럽 갔다가 같이 시간을 보냈는데. 뭐랄까 예전의 느낌이 아니더라. 그냥 너랑 만날 걸 하는 생각이 들었어. 너는 어제 뭐했는데?”
강진경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남자를 만난 사실을 말했다. 아마도 계속 만날지 판단하기 위한 일종의 테스트로 보였다. 여기서 질투하거나 감정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오후까지 공부했는데 세 시가 넘으니 조금 답답해서 기타 연습이나 할까 동아리 방에 갔더니 세라 선배가 있더라고. 그래서 같이 연습했어. 그냥 가기 서운해서 호프집에서 생맥주를 마셨어. 그런 다음에 노래방에 가서 12시 넘게 노래를 했지.”
장인걸도 비밀로 할까 하다가 사실대로 말하기로 했다.
“기숙사 11시면 문 닫지 않아?”
“그래서 우리 집에서 자고 아침에 일찍 나왔어.”
권세라가 강진경과 만나는 것을 아는 상황이니 강진경도 권세라를 만난 사실을 알아야 공평했다. 다른 사람이라면 알릴 이유가 없지만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니 감출 일이 아니었다.
“오늘 수업 끝나고 볼까?”
“응, 집으로 와. 저녁이나 같이 하자.”
장인걸은 둘 사이에 뭔가 벽이 생기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 스스로 그런 상황이 적응이 되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그러면서 양다리를 걸치는 것이 두렵기까지 했다. 보편적인 규범에서 일탈을 하는 것 같았지만 그것도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둘이 아주 좋았겠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그런 선택을 했지? 세라 선배는 그럴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는데.”
장인걸은 그런 일을 가지고 대화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여 침묵을 지켰다. 더 이야기를 하면 상대에게 실망할 수도 있고 상황이 이상하게 변할 수도 있었다.
“이제 1학기도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방학 때 뭐할 거야? 시골집에 내려가서 보낼 거야?”
장인걸이 거기에 대해 대꾸를 하지 않으니 결국 화제를 전환했다.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눈치 챘다.
“며칠 가서 있겠지만 서울에 있을 생각이야. 그래서 일단 에어컨부터 사려고.”
벌써 날이 더워지면서 집이 더운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일요일에 집에서 나온 이유가 사실은 날씨가 더워졌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러면 서울에서 뭐할 계획인데? 동아리방에 나올 거야?”
“가끔은 가겠지만 공부를 해야지. 학과 공부랑 영어공부랑. 그리고 몇 가지 할 일도 있고. 생활비를 벌어야 하니 아르바이트를 할까 고민 중이야.”
그렇지 않아도 유진영 교수에게 지인 명단을 받았다. 칼 막스턴이라고 하는 변리사를 소개받았다. 그가 도메인 등록에 대해서 잘 아는 편이니 도움을 받으라고 했다.
“그러면 나도 학교에 나와야겠네. 도서관에서 공부도 하고 동아리에서 시간 나면 너랑 연습도 하고. 방학 때는 차를 가지고 다닐까?”
“차도 있어? 가지고 다니지 않은 거야?”
“주차도 문제이고 사실 1학기 때부터 가지고 다니면 그렇잖아. 집에서 대학에 입학 했다고 사주었지. 넌 운전할 수 있어?”
“당연하지. 나도 제법 운전을 할 수 있지.”
회귀 전 서울의 교통체증 속에서 5년 이상 단련한 실력자였다. 그렇지 않아도 중고로 하나 장만할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이미향은 식사를 하다가 너무 놀라 숟가락을 물고 한동안 멍한 표정이 되었다.
“설마 정말이야? 어떻게 하려고? 포기한다면서?”
“나도 남자를 처음 만나는 것도 아닌데, 뭐. 사귄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어 보이고. 그냥 나도 만나고 싶은 사람과 자유롭게 만나기로 했지, 뭐. 요즘은 결혼 할 때 남자건 여자건 한두 번 연애경험 없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뭐.”
권세라는 뭔가 상황이 자신의 맘에 들지 않을 경우에 하는 어투로 말을 했다. 그럴 경우에 말끝마다 문제가 없다는 듯이 ‘뭐’를 덧붙였다.
“안전 조치는 확실히 했지? 문제가 생기면 여자가 훨씬 타격이 크다는 것은 알지?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
이미향은 권세라도 예측이 불가능한 면이 있기에 이상한 행동을 할 소지가 있어 걱정부터 했다. 권세라는 사차원 성격이라 난데없이 애를 갖겠다고 할 수도 있었다.
“누가 오래 버티는지 보려고. 군대 갔다 올 때까지 버티려고.”
이미향은 권세라의 이야기에 다시 한 번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여전히 권세라다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대로 그만두면 왠지 내가 진 것 같잖아. 쉽게 포기가 되지 않더라고. 시작도 하지 않고 도망가는 것은 아닌 것도 같고.”
“하여간 너는. 그러면 끝까지 가려고? 맘이 바뀐 것이 아니라면 네 속만 타는 것 아니야? 연애할 때는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것이라는데.”
“너도 어제 만났다면서?”
권세라가 머쓱한 표정으로 말을 돌렸다. 그런 주제로 이야기를 하려니 쑥스러운 것 같았다.
“첫 휴가 나왔더라고. 그냥 연락을 했다고 하는데 자존심 세우지 않고 만났어.”
“그래서? 뭐래? 계속 만나기로 한 거야?”
“몰라.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 그냥 남자 친구 없냐고 물어서 남자 친구 있으면 오빠랑 이러고 있겠냐고 쏘아붙였지.”
말은 조금 거칠었지만 이미향은 만족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둘이 잘 풀린 것 같았다.
“다행이다. 너라도 잘 되어야지.”
“그보다 강진경에 관하여 들은 것은 없어? 물어 봤을 것 아니야? 앞으로 어떻게 할지도 정하지 않은 거야?”
“그렇지, 뭐. 묻기도 그렇잖아. 그냥 자기 하고 싶은 것을 우선하겠다는 이야기뿐이야. 계속 양다리 걸치겠다는 거지.”
“어쨌든 좋았던 것 같네. 얼굴이 활짝 폈는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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