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5
비자금 조성은 조직의 자금을 횡령하는 것인데 사장인 안광현은 부하들이 횡령하는 것은 용납을 못해 그와 관련된 장부를 각자 기록하게 하고 따로 검사를 했다.
조성한 자금과 자신에게 전달된 자금이 차이가 나면 난리가 났다. 불가피하게 그 차이가 발생한다면 그에 대하여 철저하게 소명해야 응징을 당하지 않았다.
최유림은 자신과 연관이 있는 동생들을 동원하여 일단 차명계좌를 모았다. 하지만 자금을 안전하게 보관이 가능한 계좌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경찰을 비롯한 사법기관이나, 조직 내부도 알기 어려운 사람을 골라 계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협조를 받아야 해. 또한 필요하다면 언제라도 금융기관에 가서 업무를 봐주어야 해. 재수 없으면 은행에 자금이 묶이는 사태가 벌어지니.”
김기정 실장이 자금을 적당히 은닉하는 방법에 대하여 설명을 해주었다. 관건은 최유림과 겉으로 드러난 연관성이 없으면서 통제가 가능한 사람을 찾으라고 했다.
친하면서도 친한 것이 드러나지 않은 사람을 골라서 협조를 받는 것은 쉽지 않았다. 범죄에 이용당하는 것을 알면서 순순히 협조할 사람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자네도 사장님 일을 하게 된 이상 그런 사람이 필요할 거야. 적당히 이익을 공유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거야. 그런 사람을 관리하는 비용은 지급이 가능해.”
그러면서 그에 대한 비용에 대하여 알려 주었다. 일종의 자금세탁비용인데 총 금액의 10% 정도까지 관리비용으로 사용이 가능했다. 물론 필요할 경우에는 예금이 아닌 증권이나 부동산에도 투자한다고 설명했다.
“중요한 것은 사장님 외에는 누구도 몰라야 한다는 것이야. 그렇지 않으면 피를 부르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어. 이 바닥이 어떤지 알 거야.”
비자금은 명의를 빌려준 사람의 재산으로 위장을 해놓았지만 결국 주인은 조직의 보스였다. 그런 돈의 행방이 알려지면 그것을 노리는 자가 생길 수 있었다. 그러면 돈을 노리는 자에 의해 명의대여자마저 위험해질 수 있었다.
“조직의 누구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 거야. 조직의 중간보스들도 기회만 되면 뭔 짓을 할지 몰라.”
이찬혁 부장의 말에 최유림은 대략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분명 그 자금은 비밀스러운 일을 하는데 사용이 될 것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 합법적인 자금처럼 숨기는 것 같았다.
최유림은 첫 자금을 수령한 후에 그것을 가지고 자신이 머무는 전세방으로 왔다. 절대 자금을 자신의 계좌에 입금해서는 안 되었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문제가 되었을 경우 추적을 당할 수가 있었다.
“네, 향림이 졸업이 글피라고요? 내려갈게요.”
최유림은 집에서 나온 후에 공중전화에서 시골집에 전화를 했다가 여동생이 졸업을 한다고 하니 참석한다고 말했다. 물론 설날에 내려왔다가 여동생의 졸업식에 참석하기로 했었다.
“시간이 나요. 그 정도 시간은 낼 수 있어요. 그래도 우리 막내의 졸업인데 가야죠.”
최유림은 외부에 나다닐 시간이 주어졌다. 비자금을 운용하기로 하면서 수행비서의 자리에 다른 사람이 하나 더 충원이 되었고 필요한 경우만 따라다니기로 했다.
“그간 주로 사무실에서 근무했는데 외부의 일까지 맡게 되었어요. 그래서 적당히 시간을 낼 수 있어요.”
최유림은 자신이 위험한 일을 맡게 되었지만 그것도 일종의 승진이라 생각하여 은근히 자랑을 했다.
2. 궤도 이탈
집에 당도하니 점심시간이 가까워져서 그런지 엄마가 부엌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식사를 챙기는데 지극정성이었기에 때를 놓치지 않았다. 효자인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까지 효부노릇을 하고 있었다.
“네 아버지가 자기 밥은 걸러도 뭐라 안 하는데 어머니 식사 때만 놓쳐도 난리가 났어. 그러니 어쩔 수가 없었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어머니가 그런 푸념을 했다. 그 정도로 할머니 식사를 챙기는 것이 무엇보다도 우선이었다. 그나마 할머니 식사를 챙기지 않아도 되는 경우는 손자인 장인걸에게 급한 일이 생긴 경우였다.
그것은 그나마 융통성이 있었고 할머니가 원하지 않았기에 아버지도 달리 문제 삼지 않았다.
“학교 다녀왔어요.”
할머니가 머무는 방문을 열고 인사를 했다. 간단히 얼굴만 보이고 인사를 하더라도 꼭 그렇게 하라고 하니 따라야 했다. 그런 면에서 장인걸의 아버지는 누구보다도 완고한 면이 있었다.
안방을 열고 인사를 하려고 하는데 아무도 없었다.
“어디 가셨어요?”
“밭과 논을 둘러본다고 나갔어. 이 겨울에 뭐 볼 것이 있다고 가는지.”
마당에 트럭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를 몰고 나간 것 같았다. 당시에 꽤나 넓은 논농사를 짓고 있었다. 기계화 농업이 본격적으로 도입이 된 상황이라 모내기나 추수는 모두 이앙기나 콤바인으로 했고 농약도 기계를 이용하여 했기에 그 전에는 스무 마지기를 짓는 것도 힘들었는데 그 열다섯 배인 삼백 마지기를 짓고 있었다.
“오늘은 일찍 왔네. 놀다가 들어올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버지는 조문 안 갔어요? 큰아버지 쪽 사돈네 상이 났다면서요?”
“아, 네 아버지가 거기도 간다고 들었다. 네 큰엄마의 작은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더라. 돌아가신 양반이 네 아버지와 안면이 있다고 하니 거기 갔을 거다.”
“그러면 조문하러 큰아버지도 왔겠네요?”
“은행일이 바빠서 오지 못했을 것이다. 큰엄마나 잠시 왔을 것인데 모르겠다. 더구나 애들 개학도 할 것이고.”
큰아버지가 아버지보다 다섯 살이나 많지만 결혼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한 덕분에 큰집 장남인 민기는 동갑이고 생일은 장인걸이 몇 달 더 빨랐다. 둘째인 은지는 인숙이보다도 한 살 어렸다.
“밥 먹고 어디 갈 거냐?”
“그냥 집에 있을 생각이에요. 나가 봤자 쓸데없이 거리나 헤매고 다닐 것이고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아요. 괜히 피곤하기만 하고 껄렁한 애들 만나면 귀찮은 일이나 생기겠죠.”
“잘 생각했다. 괜히 술 먹고 사고 치면 골치만 아프지.”
부엌 옆에 있는 식탁에 앉아서 간단히 수다를 떨면서 점심이 준비되기를 기다렸고 말소리에 할머니까지 나와서 대화에 참여했다. 간단히 식사 준비가 끝나자 식사를 하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컴퓨터를 가진 것도 아니기에 방안에서 할 것이라고는 공부를 하는 것이 전부인 상황이었다.
책상에 앉은 장인걸은 꿈인지 회귀하기 전의 삶인지 모를 내용을 하나씩 노트에 적어나갔다.
‘IMF 외환위기, IT버블, 카드대란, 월드컵 4강, 911사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이 정도가 당장 기억나는 사회적인 이슈들이군.’그렇게 간단히 적고 난 다음에 다시 아래에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적어 나갔다.
‘대학입학과 상경, 편의점 아르바이트, 휴학과 군대 입대, 제대와 복학, 월드컵 응원, 대학 졸업과 삼광식품 입사, 대리 승진, 원경희와 이별, 마라톤 대회.’노트에 적고 보니 앞으로 살았던 세월도 그리 특별한 것 없는 평범한 삶이었다. 단지 꿈인지 회귀인지 모르지만 직전에 있었던 것만 선명하게 생각이 들었다.
‘화공과를 나와서 식품회사에 들어간 것도 특이한 면이 있지. 거기에 사원 2년 차에 공장에서 본사 상품기획파트로 발령을 받아서 나중에 판매기획팀으로 옮겨간 것도 특이한 일이지. 보통은 경영학과나 경제학과를 나온 사람이 갔는데.’화공과를 나온 사람이 식품회사에 필요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거기에 우연한 기회에 지원을 했고 합격이 되었다. IMF 이후에 취직이 어렵기에 기회만 되면 여기저기 원서를 내던 상황이었기에 특이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합격한 것이 특별한 일이었다.
‘이번에는 자취집을 학교에서 조금 더 가까운 곳으로 얻는다. 가격 차이도 없을 것이니 굳이 먼 곳을 얻을 필요가 없다.’하나하나 적어나가니 참고해야 할 것이 많았다.
‘영어공부를 하자. 군대에 갔다 온 이후에 토익을 공부하느라 정말 고생했다. 특히 LC를 철저히 하자. 듣기가 안 되어서 정말 고생을 했다.’대학에 입학하여 경희와 노느라 시간을 많이 빼앗긴 탓에 영어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어휘나 독해는 시간이 날 때마다 공부를 했지만 학원에 다녀야 하는 LC는 하지 않아 취직에 필요한 토익 850점을 넘기느라 엄청난 고생을 했다.
‘더구나 경희와 노느라 돈도 많이 들었지. 결국은 그런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까지 하기도 했다. 멍청한 짓이지. 차라리 그럴 시간에 공부를 하는 것이 낫지. 더구나 기사시험을 합격하기 위해 생고생을 하기도 했고.’취직하려면 자격증을 취득해야 했기에 기사시험을 준비했고 그렇게 하려니 정말로 고생을 했다.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은 것은 그런 공부를 하다가 지친 탓도 있었다.
‘하긴 취업을 하여 돈을 버는 원경희에게 자존심이 상해 공부를 계속 하는 대신에 취업을 한 면도 있지.’군대를 다녀오느라 2년이나 늦은 상황에서 다시 대학원에 가느라 2년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싫었던 것이니 이해가 되기도 했지만 성급한 결론이기도 했다.
더구나 여동생이 있는 점도 한 몫을 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여동생도 1년 후에는 졸업을 했으니 집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설사 문제가 되더라도 그 정도 지원을 해주지 못할 정도로 집이 가난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어린 마음에 지레 어렵다고 예단한 것이기도 했다.
‘문제는 우리 집에 큰 문제는 없지만 당장 닥쳐올 외환위기가 문제이다.’가장 문제라고 할 수 있는 큰아버지는 오히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살아남아 전무로 승진하고 본점 국내영업본부장까지 역임하였다. 상고를 나왔다고 알려진 큰아버지는 중간에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위기이지만 기회이기도 하다. 나중에 크게 돈을 번 사람이 속출했다. 유학 갈 생각으로 외화예금만 했던 사람도 배에 가까운 이득을 챙기기도 했다.’당장 한도가 그리 크지 않지만 외화예금을 하는 것도 방법이었다.
‘돈을 준비해서 폭락한 부동산을 매입하는 것도 방법이지. 대치동이나 개포동 방면의 부동산을 사놓으면 1~2년 사이에 두세 배 가까이 상승한다.’그런 믿어지지 않는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지만 그것은 결과를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선뜻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당장 경매 물건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폭락하는 부동산에 돈을 투자하는 것은 무리였다.
연일 하한가를 치는 주식을 사는 것은 당장은 미친 짓이나 마찬가지인 것처럼 폭락한 부동산을 구입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부자들은 언젠가, 그것도 오래지 않아 올라갈 것은 예상하고 투자를 했고 기대한대로 빠르게 회복이 되어 큰 수익을 안겨주었다. 물론 그렇게 투자할 자본이 없지만 방도를 찾는다면 아예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자신이 왜 10년 이상의 시간을 거슬러 이 시점으로 돌아온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했다.
‘명상, 그냥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닌 일종의 단전호흡법이다. 그것과 회귀가 뭔가 연관이 있는 것 같아.’그러면서 국민학교 3학년 때의 기억을 더듬었다.
당시에도 상당히 덩치가 컸던 장인걸은 관할 교육청에서 주최하는 학교 대항 육상대회에 학교 대표선수로 선발이 되었다.
하지만 달리기를 하면 횡경막에 충격이 가해져서 고통스러웠고 다른 학생들보다 유난스러운 면도 있었다. 당시에 육상을 담당하는 교사의 말로는 장인걸의 달리는 속도를 몸이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는 말을 했다.
결국은 적당히 연습을 하다가 배가 아프면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또래 중에 가장 빨리 달렸기에 대회에 나갈 수가 있었고 그 대회에서 2등을 했다.
3등까지 도 대회에 나갈 수가 있기에 군대표가 되었는데 그 문제를 해결해야 했는데 우연히 그 말을 들은 할아버지의 지인이 호흡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 지인은 스님인지 무당인지 도사인지 모를 사람이었다. 관상을 보고 사주 궁합을 봐주고 초상이 나면 묏자리도 잡아주고 심지어 굿도 해주고 부적까지 써주는 사람이었다.
달리면 너무나 고통스러운 상황이라 그 호흡법을 평상시에 하면 차츰 아프지 않는다고 하여 매일 수련을 했고 나중에는 하지 않으면 답답했다. 그렇기에 대략 20년 가까이 매일 지속했다.
‘그 노인이 살던 곳이 어디였더라?’그 호흡법은 평범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다가 이웃 마을에 살았던 것이 기억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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