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51
카페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여 씻고 자리에 앉으니 전화가 울렸다. 저녁을 일찌감치 먹고 노래를 했으니 배가 출출했지만 흥분이 가시지 않아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축하해. 나도 앨범 나온 것 하나 샀어. 오늘 내내 시간 날 때마다 듣고 있어.”
강진경의 전화였다. 원래 헤어지자고 했던 상황이니 전화를 하면서도 조심스러운 기색이었다. 박상우 건으로 통화를 하면서 만나지는 않았지만 다시 연락을 하게 되었다.
“축하해 주려면 직접 와서 축하를 해주어야 하는 것 아냐? 성의가 없는 것 같아.”
강진경의 목소리에서 약간의 아쉬움을 느꼈기에 장인걸은 그렇게 말을 했다. 강진경이 먼저 만나지 말자고 했지만 아직 결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 보였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이별하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럴까? 알았어. 일 끝나면 가도록 할게.”
한참 머뭇거리다가 결국은 오겠다고 했다. 아마도 결별을 하고 그 빈자리를 채우지 못한 것 같았다. 강진경과 통화를 마친 장인걸은 시골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가족들이 앨범 나온 것을 다른 사람을 통해 듣는 사태는 피하고 싶었다.
“카세트테이프를 냈다고?”
음반을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니 그냥 카세트테이프를 냈다고 말을 했다. 시골에서는 아직도 카세트테이프를 듣는 것이 고작이었다. CD나 LP판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이해할 것 같지 않았다.
“네, 제 이름이 아니라 예명을 사용했어요. 인걸이란 이름이 조금 고리타분한 느낌도 있고 제 신분을 감추려고 해서 영어 이름을 하나 별도로 만들어 HERO, JANG이에요.”
아버지가 제대로 공부를 하지 않았어도 그 정도는 이해했다.
“인걸이가 가수 이름으로는 그리 멋진 이름은 아니지. 알았다. 하긴 우리 식구가 다들 노래는 좀 하지. 그런데 돈이 들었을 텐데 혹시 저번에 말한 천만 원이 그 돈인 거냐?”
“그 돈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그건 이미 미국에 다 투자를 했어요. 유현이 아저씨 알죠? 그분이 친구를 소개해주어서 만들었어요. 가수 한정수라고 아시죠?”
“한정수야 알지. 그러면 대학은 어떻게 하고?”
“학교는 계속 다닐 거예요. 얼마 전에 고급 음식점을 하는 곳에서 노래하는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거기서 손님들에게 일단 팔 계획으로 만들었어요. 그런데서 노래할 때 자기 노래가 있어야 돈을 더 받으니 만든 거예요.”
장인걸은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을 했다. 전이라면 ‘그러니 그냥 그렇게 알고 계세요.’하고 말았을 것이지만 궁금한 것은 전부 다 대답을 해주었다. 나중에는 할머니나 어머니, 인숙이까지 통화를 했다. 그들에게 했던 대답을 다시 했지만 귀찮지 않았다.
“오빠, 정말이야? 혹시 앨범 하나도 안 팔리면 어떻게 해? 2만장이라면 엄청난 양인데.”
인숙이는 대략 가요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지 걱정부터 했다.
“자비로 만든 것은 아니지?”
“그런 것은 아니야.”
자비로 만들었다고 하면 사기꾼에게 속았다는 소리가 나올 것 같아 회사에서 내주었다고 했다. 워낙 음반사기에 대한 뉴스가 나오는 상황이라 그런 빌미를 주지 않으려고 했다.
“우리 17일부터 방학이야. 방학 내면 나 올라가도 되는 거지? 혹시 안 된다고 말하지는 마.”
“알았다. 와라. 에어컨이 있으니 문제없을 거야. 올라올 날짜를 정하면 나에게 먼저 알려라. 재수 없이 내가 집에 없을 때 온다면 혼자 있어야 할 것이니.”
여기저기 전화를 해서 앨범이 나왔다는 것을 알리니 시간이 되었고 강진경이 찾아왔다.
간단히 간식으로 요기를 하고 나자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강진경이 집안으로 들어오자 장인걸은 음료수를 내놓았다. 전이라면 서로 붙잡고 난리를 쳤을 것이지만 자제를 했다.
“축하해. 노래를 듣다가 정말 놀랐어. 노래를 잘하는 줄은 알았지만 앨범으로 들으니 정말 좋더라. 곧 최고의 가수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
“고마워.”
“이제 너와 조금 거리를 두어야겠지. 앞으로는 정말 만나지 못하겠다. 알려지면 잡지나 신문에 나올 수도 있으니.”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설사 그렇게 되어도 나는 상관이 없어. 하지만 네가 어떨지 모르겠다. 너도 생활이 있으니 만나는 것은 어렵겠지?”
“아마 반드시 뜰 거야. 곡이 너무나 좋더라. 그 정도 작곡 실력이 있다면 가수를 하지 않아도 성공할 거야.”
“고마워, 나를 그렇게 높게 평가해 줘서.”
장인걸은 강진경을 다시 보자 애틋한 생각이 들었지만 자신의 욕심을 자제하고 그간 있었던 일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오늘 라디오에 나온다고?”
“응, 10시 50분경에 나온다고 하는데 나와야 확실한 거지. ‘한밤의 음악여행’이라고 했어, 라디오를 켜서 들어야지.”
라디오 겸용 카세트를 가져와서 한밤의 음악여행을 틀었다. 지금 10시 40분경이라 조금만 지나면 나올 때가 되었다.
이영선이 시청자가 보낸 사연을 읽고 희망가요를 틀어주었다.
“시간상으로는 다음 노래일 것 같은데. 오늘 나왔는데 신청한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틀어주는 거지?”
강진경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영선의 추천가요이라는 코너가 있는데 맘에 드는 노래가 나오면 1부나 2부 끝나기 직전에 틀어준다는 것 같아. 항상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달에 한두 번이나 있는 일이라고 하더라.”
“정말? 그러면 아주 좋은 것 아냐? 여기 소개되면 네 앨범 순식간에 대박 나는 것 아니야? 그러면 품절사태가 날 수도 있겠는데? 2만장이라면 음반가게에 몇 장 들어가지 않았을 것인데.”
장인걸은 그럴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 생각을 하지만 혹시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때 노래가 끝났다 시계를 보니 48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노래를 듣고 2부에서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 노래는 ‘한여름의 축제’란 노래입니다. 모처럼만에 새로 나온 노래를 추천해 봅니다. 노래를 듣자마자 바로 소개할 생각에 설레기 시작한 노래는 정말 오랜만입니다. 가수의 이름은 히어로 장입니다. 이름을 보고 건방지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노래를 듣고는 그런 느낌이 아니라 제대로 이름을 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히어로 장의 ‘한여름의 축제’를 듣고 2부에서 뵙겠습니다.”
멘트가 끝나자 바로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라디오에서 자신의 노래가 흘러나오자 장인걸은 자신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강진경이 옆에 다가와서 어깨동무를 하면서 몸을 흔들었고 장인걸도 같이 좌우로 흔들었다.
“축하해.”
그러면서 옆에 달라붙더니 진하게 키스를 해주었다. 장인걸도 한동안 같이 키스를 했다.
“전화코드 뽑을 수 있지?”
강진경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렇게 말했고 장인걸은 막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하는 순간 코드를 그대로 뽑았다.
강진경이 12시가 다 되어서 돌아간 이후에 장인걸은 잠자리에 들었지만 여전히 흥분이 가시지 않아 잠이 오지 않았다. 차라리 잠들기를 포기하고 옷을 전부 벗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조용히 흥분한 심기를 가라앉히면서 자신의 내면을 관조하려고 했다. 하지만 온갖 상념이 떠올라 쉽게 명상에 들지 못했다.
‘하,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더니 내가 그 짝이구나. 어느새 앨범은 수백만 장이 팔리고 금방 인기가수가 되어 광장에서 구름처럼 모인 관중을 두고 콘서트를 열고 있다니.’ 상상은 한계가 없다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내면에 그런 거대한 욕망이 꿈틀대는 것을 알게 되자 스스로 자신이 인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말로는 욕심이 없고 그저 앨범을 내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하면서도 본심은 큰 성공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럴 가능성이 조금 보이자 그 기대로 인해 흥분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의 본심을 확인하니 자신은 욕망의 화신이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성공에 목을 매면서 물질적인 욕망을 당성하기 위해 온갖 좋지 않은 일을 서슴지 않고 행하고 있었다.
‘중심을 잡아야 욕망에 휩쓸리지 않는다. 작은 성공에 들떠 성급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길게, 신중하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작은 욕심에 휘둘리면 무너지고 만다.’ 연예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그렇지 않고 오만하게 행동하다가는 결국 파멸할 수밖에 없었다. 반짝 스타들이 대부분 재능의 한계보다 처신의 문제로 무너졌다.
장인걸은 조용히 자신이 회귀 이후에 지금까지 했던 일들을 살폈다. 이런저런 것들을 돌이켜보면 아쉬움이 많았다. 조금 나은 행동이 가능했을 것 같은데 여전히 잘못을 다시 범하고 있었다. 전과 달라졌지만 그렇다고 더 잘했다는 판단이 되지 않았다. 장인걸은 조용히 금강바라밀경의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간의 모든 행적을 살피니 흥분이 다 가라앉아 마침내 책의 내용을 살필 여유가 생겼다.
금강바라밀경은 혼돈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깨우침의 경지, 열반이라 칭하는 바라환희에 대한 내용에 접근하기 위한 초입의 내용이라고 판단이 들었다. 혼돈은 질서의 반대개념이지만 한편으로 진리나 진아에 도달하기 위한 출발점이었다.
‘혼돈은 금강에 이르는 길의 출발점이다. 혼돈에서 질서가 나오고 거기서 진아를 찾아 진리에 이른다. 깨달음이나 깨우침은 바로 혼돈의 미망을 걷어낼 때, 벗어날 때 도달할 수가 있다.’ 혼돈과 질서에 대한 내용은 욕망과 그에 대한 해탈을 의미하는 일면도 있어 보였다. 불경은 의미가 딱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가르침을 담고 있었다. 이성이 아닌 감성까지 같이 동원해야 이해가 되고 체득이 되었다.
장인걸은 그렇게 차츰 몰아의 경지에 들어 무아지경에 이르고 있었고 그렇게 하자 그의 몸에 있던 기운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 기운은 사전에 타통한 음양의 8개 대혈을 질주하기 시작했고 점점 그 기세를 키워가기 시작했다. 그 기세가 커지는 만큼 기운의 양도 점점 증가하기 시작했다. 장인걸은 그 순간 자신의 몸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오는 기이한 기운을 접하면서 놀라고 있었다.
몸 안에서 솟구치는 기운은 바로 그가 회귀하기 직전에 접한 혼돈의 기운이었다. 멀리 우주 저편에서 날아온 기운이 지구의 주변으로 흘러왔고 그것은 하나가 아니면서 하나인 기운이었고 장인걸의 몸으로 일부가 들어오는 순간 전부가 다 모여들었다.
그런 현상은 시공을 초월하여 지구에 온 모든 기운을 아우르게 되었고 그런 기운은 장인걸의 의지와 결합하여 마침내 원하는 시점의 과거로 보내었다. 그렇지만 그 기운은 너무나 거대했고 시공을 초월하고도 남아 장인걸의 몸 안에 잠복하고 있었다.
장인걸은 자신이 어떻게 과거로 회귀한 것인지 저절로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그렇게 알게 되었다. 그것은 어떤 계시나 예지와도 같았다.
새로운 기운은 몸 안을 가득 채웠고 마침내 여전히 타통하지 못한 마지막 임맥과 독맥으로 흘러갔고 거대한 흐름은 가로막는 모든 혈맥을 거침없이 타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인걸은 그 순간 느끼고 있었다. 이대로 임독양맥을 타통하려고 해서는 큰일이 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형체도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임독양맥을 열기 위해서는 강한 기운이 필요했다.
몸 안을 흐르는 기운은 충분히 임독양맥을 타통할 수 있어 보였지만 그렇게 하다가는 임독양맥을 타통하기도 전에 다른 경혈이 먼저 폭발할 것을 깨달았다. 거대한 기운의 흐름을 견딜 정도로 다른 경혈이 강하지 못했다.
지렛대에 강한 힘을 가하려면 지렛대가 튼튼하고 받침대도 튼튼해야 했다. 그렇지 않는다면 물체를 움직이기도 전에 지렛대가 부서지거나 받침대가 부서질 수가 있었다. 임독양맥을 타통할 힘을 가할 경우 지렛대나 받침대라고 할 수 있는 다른 경혈이나 몸이 먼저 부서질 것 같았다.
‘내 몸이 이 기운을 버틸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금 무리하다가는 결국 내 몸이 버티지를 못한다. 멈추어야 한다. 제발 멈추어야 해.’ 장인걸은 몸 안에서 날뛰는 기운을 잠재우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지만 한번 도도하게 흐르기 시작한 기운은 걷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파탄이 나려는 상황에 처해 간절히 멈추기만 바라는 순간 몸 안 깊숙한 곳에서 또 다른 기운이 일어나면서 몸 안에서 날뛰던 기운을 회수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