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53
지금도 장인걸은 기억이 나는 노래를 복기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자 편곡능력도 좋아지고 기억이 흐릿한 노래를 복원하려고 하다 보니 작곡능력까지 발달하는 것 같았다.
만들고 나면 기억에 있던 노래와 동떨어진 노래가 되기도 하는데 그것이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원래 노래와 다르지만 어떻게 보면 더 좋은 것도 같았다. 장인걸의 취향에 더 어울렸다.
그런 노래는 여자가 불렀던 노래이거나 그룹으로 불렀던 노래도 있어 장인걸이 부르기에 적합하지 않는 면도 있지만 일단은 작업을 해두고 있었다.
1집이 성공을 거두면 2집도 낼 생각이었다. 성공할 가능성이 높기에 이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점점 경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은데 걱정이야.”
대략적인 향후의 일에 대한 논의가 끝나자 일반적인 시사에 관한 부분으로 대화가 진행되었다.
“문제입니다. 대기업이나 일반 기업들이 부도가 나는 것도 문제이지만 가장 큰 문제는 외채라고 봅니다.”
장인걸의 말에 장유현의 표정에 의아한 기색이 어렸다. 경제가 어렵다고 들었는데 거기에 갑자기 외채문제가 거론되니 사고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장유현은 기업이 부도가 나는 것만 고려하고 있었다.
“외채라니? 무슨 이야기야?”
“그간 금융시장개방으로 기업들은 외국에서 엄청난 자금을 빌려오고 외국인들도 많은 양의 자금을 한국에 투자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무역수지는 계속 적자인데 외채의 상환마저 임박한 실정입니다. 더구나 경제마저 불안하니 한국에 유입된 핫머니마저 이탈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원화를 달러로 바꿔야 합니다. 기업은 원화도 부족하고 있다고 해도 대량으로 환전을 하니 중앙은행이 보유한 달러가 부족해집니다. 더 문제는 이런 외채는 정부나 금융기관이 지급보증을 선 상태인데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상환을 못하면 최종적으로는 국가마저 지급불능상태에 빠져 지급유예, 모라토리움을 선언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걸 피하려면 정부가 외국에서 외화를 빌려와야 하는데 지금처럼 불안한 상태에서 어느 나라가 빌려주겠습니까? 가능한 나라는 미국이나 일본인데 그들이 그럴까요? 지금 동남아의 외환위기가 한국으로까지 번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면 결국 유일한 대안은 국제통화기금에서 긴급으로 자금을 수혈해야 합니다. 20년 전에 영국이 그랬던 것처럼요.”
장인걸은 처음으로 다가올 외환위기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을 했다. 그런 설명을 하자 장유현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 되었다. 정부의 발표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런 내용이 보도가 되어도 알지 못하기에 그냥 흘려들었던 상황이었다. 주변에 그 사실을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게 사실이냐?”
“그렇습니다. 제가 인터넷으로 미국의 동향을 살피는데 그들이 바라보는 시각이 국내와 전혀 다릅니다. 그럴 경우 국내 언론보다 그들이 더 정확하게 보도한다는 것은 잘 아실 것입니다. 동남아에서 한국으로 번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합니다. 심지어 일본까지 휩쓸릴 것이라는 의견도 대두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전문가가 일본은 어려울지언정 이겨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장유현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경제가 어려운 것은 알고 있지만 그 정도로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 같았다.
“설마 그렇게 되기야 하겠어?”
외환위기 이전에 일반적인 사람이 보이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될 것입니다. 1,2차 오일쇼크를 생각하면 됩니다. 그때 한국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 처했습니까? 외화부족으로 석유를 사오지 못하는 것은 집에 돈이 없어 당장 먹을 것이 없는 수준이지만 이번 외환위기를 맞는 것은 빚을 갚지 못해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상황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위기의 강도는 비할 정도가 아닙니다.”
너무나 비관적인 전망에 장유현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될지 판단이 되지 않았다.
“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거냐?”
“어떻게 합니까? 기업이 무너지면 다 경매에 나오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그 때는 무조건 현금을 가진 사람이 장땡이죠. 더 갑은 달러나 외화를 가진 사람이고요. 집이건 상가이건 빌딩이건 지금의 반 가격으로 폭락할 것입니다. 심지어 주식은 10%대까지 폭락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물건을 살 사람이 없어서 흑자 도산하는 기업이 속출할 것입니다.”
감정적으로는 절대로 믿고 싶지 않았지만 이성은 장인걸의 전망이 맞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 모든 투자를 중단하고 현금을 최대한 많이 보유하는 것이 최선일 것 같구나.”
“맞습니다. 또한 금융기관에 대출이 있다면 상환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주식에 투자했다면 지금이라도 손절매를 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앞으로 은행 이자가 두세 배 껑충 뛸 겁니다. 대출받아서 부동산을 산다면 그건 정말 미친 짓이죠.”
땅은 도망가지 않는다고 믿고 부동산에 투기를 하던 사람은 망할 수밖에 없었다.
“어음을 받는 것은 정말 큰일이겠구나.”
“그렇습니다. 사실 음반을 판매해도 제대로 대금을 받을지 걱정입니다. 유통회사가 부도가 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그나마 예림음반은 외환위기 속에서도 잘 버텨내고 나중에 잘 나가는 아이돌 기획사로 변신을 하고 한편으로 음원스트리밍 사이트인 오렌지뮤직을 운영하게 되는 것을 알기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당시의 예림음반은 어음거래를 하지 않고 무조건 현금거래를 했다. 차라리 어음을 받을 바에는 나중에 받거나 그만큼 할인을 해주었다. 물론 거래처에 결제를 해줄 때도 마찬가지로 현금으로 지급을 했다.
“예림음반은 그나마 현금결제를 하니 그런 걱정은 덜 하다. 음반가게들도 영세한 편이라 어음 발행을 하지 않는 편이고. 하지만 지역총판은 어떨지 모르겠구나. 그래도 그들은 위험부담이 적은 편이라 당장 문제는 없을 거야.”
어음은 최소한 어느 정도 규모가 되어야 발행이 가능했다. 할인도 되지 않을 어음을 발급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했다. 그러니 워낙 영세한 음반시장이 그런 면에서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월요일 아침 일찍 장인걸은 장유현의 집을 나서 집에 가지 않고 한정수의 월광기획에 먼저 갔다. 장유현이 촬영을 가야 했기에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한정수가 오전에 녹음이 있다고 했기에 먼저 만나서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다행일 수 있었다.
“앨범은 어제 저녁에 작업에 들어가라고 지시를 내렸고 오늘 오후에 예림음반에 5천 장이 먼저 입고가 될 것이다.”
한정수가 앨범의 추가제작에 대하여 먼저 이야기를 했다.
“예림음반에 각 지역총판에서 들어온 주문수량이 아침에 집계하니 대략 5천 장이지만 오늘 추가로 들어올 것이니 그건 내일 발송을 할 예정이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총 12번이 방송되었는데 한여름의 축제가 9회로 가장 많다.”
그러면서 앨범주문현황과 라디오 방송현황을 집계한 것을 보여주었다.
“일단 너는 오늘 이것을 숙지하고 대답을 연습해야 할 것이다. 신인가수가 라디오에 나가면 받을 예상 질문을 정리한 것이다. 아울러 스튜디오 마이크를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헤드폰을 사용해야 하기에 주의가 필요하다.”
그러면서 머리에 인 이어가 부착된 헤드폰을 끼게 한 다음에 대화를 시작했다. 한정수도 한 때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했기에 라디오 방송을 하는 방식으로 질문을 했다.
장인걸은 자신의 목소리를 듣자 생소했다. 귀로 듣는 것과 인 이어를 통해서 듣는 것은 차이가 컸다. 그렇기에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차츰 적응을 하게 되자 어떻게 말을 해야 듣기 좋은 목소리가 나오는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ㅂ이나 ㅍ같은 파열음을 발음할 때 조심해. 그렇지 않으면 바람이 마이크에 닿아 소리가 이상해지니까. 처음 방송을 하는 신인이 범하는 가장 흔한 실수이니.”
그러면서 한정수가 시범을 보였고 대략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도 같았다. 마이크에 바람을 내뿜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발음을 하니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수가 있었다.
“방송용 마이크는 예민하니 주의해. 스튜디오에서 사용하는 것만큼 예민하지는 않지만 일반 마이크와 달라.”
한정수와 대략 30분 정도 교육을 받았다. 질문은 시간이 날 때마다 모범답안을 작성하여 외우는 것이 실수를 하지 않는 길이라면서 틈틈이 작성하고 연습하라고 했다.
“그리고 앨범 판매에서 보듯이 상황이 확 달라질 것 같아. 유현이가 행사를 뛸 준비를 하라고 하는데 카페 두 곳의 계약은 양해를 구해 필요하면 뺄 수 있도록 했어. 대신 평일 다른 시간으로 공연을 해야 할 거야. 그게 카페도 이득일 수가 있고.”
그러면서 카페의 손님이 주말에 몰린다고 했다. 인기가수가 주말에 공연을 하지 않고 한산한 평일에 하면 그 사실을 알려 손님을 모을 수가 있으니 이득일 수가 있었다.
“또한 차량과 인원도 일주일 정도면 준비가 가능하니 일단 준비를 하겠다. 정산 금액이 천만 원이 넘으면 매니지먼트 서비스를 하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계약대로 진행을 할 것이다. 앨범의 판매추이를 보면 무난히 넘길 것 같으니.”
그러면서 행사를 가급적이면 이동을 줄이는 방향으로 하여 하루에 4개 정도로 잡도록 계획을 세울 것이라고 했다. 물론 처음에는 돈보다 홍보를 목적으로 잡지만 7월 25일 이후에는 철저하게 수익성을 따져서 행사에 나가기로 했다.
“진짜 앨범이 잘 나갈까요? 아직도 불안합니다.”
장인걸은 성공할 것 같지만 확신이 없기에 재차 확인했다. 자신이 보기에 곡 자체는 충분히 좋고 자신이 노래도 잘 불렀지만 객관적일 수가 없었다.
“아마 다음 주 정도에 TV에 나갈 수가 있을 거야. 두 시간 정도 잡아먹을 것이니 오후를 통째로 비워야 할 거야.”
나중에는 녹화를 하는데 엄청나게 시간을 잡아먹지만 당시에는 간단히 녹화만 하면 끝이었다. 생방송일지라도 리허설을 한 번 하는 정도였다. 대부분 녹화를 하여 방송을 한다고 했다.
“방송 때문에 행사를 나가는 것이 불가능할 수도 있어. 그럴 수는 없으니 하나나 두 개 방송은 사전녹화로 대체해야지.”
당시에 음악프로는 상당히 가수의 편의를 봐주는 시스템이었다. 생방에 나가지 않는다고 하면 오히려 더 반겼고 어느 정도 지명도가 있는 인기가수만 생방에 나가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너무 일이 커지니 겁이 납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거야. 자신이 주변을 통제하지 못하면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위기를 자초하는 사람도 있어. 말실수 한 번으로 죽일 놈이 되는 수도 있어. 그나마 너는 이 바닥을 아는 나나 유현이가 있기에 그런 실수를 줄일 수가 있어 다행이야.”
한정수는 앞으로 닥쳐올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결국 돈이 들어올 때까지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일종의 운영자금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장유현이 대주기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만일에 우리가 그 자금을 댄다면 8:2가 아니라 못해도 5:5로 해야 할 거야. 그런 자금을 유현이가 부담하기에 아끼는 거지. 최소 1억 원은 유현이가 부담을 해야 할 거야. 유현이야 굳이 알릴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너도 알아야 하는 문제이고.”
그러면서 앨범 20만 장을 발행할 때에 들어갈 비용을 보여 주었다. 정산은 앨범이 출고되고 한 달, 늦으면 두 달 정도가 되어야 이루어지는 그 사이에 앨범 제작비만 4억 원이 지급되어야 했다. 50만 장이라면 무려 10억 원에 달하는 자금이 선투자가 되어야 했다.
“행사는 자금 회수가 조금 빠르지. 입금이 되어야 움직이는 것이고. 지금 행사를 해서 앨범제작비를 충당해야 투자비를 줄일 수 있지.”
장인걸은 당장 움직이는 자금이 억대가 되자 감당이 불가능해 보였다.
“나도 이런 자금을 투자할 능력은 없고 결국 급전대출을 받아서 충당해야 하는데 그러면 결국 전주만 돈을 버는 거지. 그렇게 되면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일이 벌어져. 너는 유현이가 그 역할을 해주는 상황이니 얼마나 다행이야.”
장인걸은 회사를 다녔기에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이해했다. 대기업은 이런 투자를 무조건 외상으로 하지만 중소기업, 심지어 영세업체는 그런 거래가 불가능했다. 그 사이에 현금으로 물건을 만들어서 외상으로 팔아야 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