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58
14. TV 출연
장인걸이 샤워를 하고 아침 식사를 마치자 민수길이 빌라 아래에 당도했다는 전화를 했다. 차에 타자 코디인 황지현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서천을 향해 달려갔다. 서천의 한 축제에서 축하공연을 하고 서산으로 이동하여 다시 공연을 하고 다시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공연을 하고 마지막으로 화성군에서 진행하는 지역 행사에서 공연을 하고 서울로 복귀하는 것이 그날의 일정이었다.
“공연은 11시, 13시, 16시, 19시에 잡혀 있습니다. 점심이나 저녁을 먹을 시간도 없기에 일단 김밥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시간의 여유가 생긴다면 음식점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남자라 샵에 들어가지 않고 간단히 로션과 선텐크림만 바르면 되니 그나마 다행이에요.”
황지현이 미용실에 가지 않는 것을 언급했다. 여자는 남자에 비해 치장하는 시간이 엄청나게 오래 걸린다고 했다. 남자도 여러 명이면 혼자 감당이 되지 않아 샵에 들리는 것이 빨랐다.
“너무 빨리 도착한 것 같습니다.”
아침 7시에 출발했는데 그들이 서천에 당도하니 대략 10시에 불과했다. 그들은 행사장 인근에 차를 대고 준비한 김밥을 먹었다. 일찌감치 배를 채워두어야 버틸 수가 있다고 하여 간단히 요기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행사장으로 이동한 다음에 행사진행본부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리고 무대 뒤편에 있는 간이 대기실로 이동했다.
물론 그냥 기다리면 되는 것이 아니라 MR을 건네야 했다. 기타로 반주를 할 것이지만 기본 MR을 틀어야 축제에 어울리는 노래를 부를 수가 있었다. 사전에 MR을 건넸지만 혹시 모르기에 음향기사에게 재차 확인해야 했다.
만일에 매니저가 없다면 가수가 혼자 그런 일을 해야 하는데 노래도 하기 전에 뛰어다니다 퍼질 수가 있었다. 민수길과 김기현이 그런 일을 하는 동안 황지현과 장인걸은 옷을 갈아입고 간단히 치장을 했다.
11시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 무대에 오르는 것은 11시 15분이었고 15분 정도를 공연해야 했기에 11시 30분이 되어서야 떠날 수가 있었다.
장인걸은 원래 두 곡을 부르고 앙코르로 한 곡을 더 부르도록 되어 있었지만 어떻게 하다 보니 한 곡을 더 하게 되었다. 결국 네 곡이나 부르고 허겁지겁 떠났다.
다행이 서산으로 이동하는 동안 교통이 원활해서 12시 40분에 당도할 수가 있었고 대기실에 당도하여 대기하다가 동일한 노래를 불렀다.
“정신이 없네요. 늦지 않도록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동시간에 여유를 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나중에 출연신청이 쇄도하면 분단위로 쪼개서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사실 움직이는 대로 돈이 되기에 일단 잡고 밀어붙이다보면 사고가 나기 마련입니다. 너무 욕심을 부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가수는 퀵 서비스 기사를 하던 오토바이까지 뒤에 대동하고 움직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장인걸을 제외한 세 사람의 인건비와 경비만 해도 하루 50만 원을 상회하고 있었다. 그런 비용을 건지고 장인걸이 어느 정도 돈을 벌려면 최소 200만 원을 행사비로 받아야 하는데 지금은 턱걸이를 하는 정도였다.
“네 군데를 뛰어도 50만 원짜리 행사이기에 고작 200만 원에 불과합니다. 단가가 너무 박하지만 이렇게 다니면서 얼굴을 알려야 가격이 오릅니다. 다행이라면 모레 KTV에 출연하고 금요일에 MTV에 출연하면 조금 상황이 나아질 것입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행사를 뛰기로 하여 일감을 잡았지만 단가가 낮았는데 그래도 TV에 출연하게 되었으니 그것을 빌미로 하여 단가상승을 노릴 수가 있게 되었다.
물론 그것이 단가상승의 요인은 아니지만 인기가 올라가고 노래가 알려지면 찾는 곳이 많아지니 행사비도 덩달아 올랐다.
이틀을 지방으로 돌았다. 첫날 화성에서 일이 끝났는데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로 부산으로 이동했고 거기서 모텔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부산과 거제, 김해, 다시 밀양으로 이동하여 행사를 한 후에야 서울로 복귀했다.
수요일에는 KTV에 가서 처음으로 대기실을 돌면서 인사를 했다. 거기서 유명한 가수들을 보게 되었다. 다행이라면 한정수가 동행하여 인사를 시켜 주었는데 그 덕분에 텃세로 인한 불미스러운 일은 당하지 않게 되었다.
민수길의 말에 의하면 가수들 중에 인성이 뒤틀린 자들이 새롭게 떠오르는 후배를 보면 이상한 트집을 잡아 괴롭히는 경우가 많다고 이야기했다.
한정수가 있기에 그런 짓을 못하지만 솔로와 그룹 12팀을 만나는 동안 무려 두 명의 가수와 세 팀의 그룹이 적대적인 기색을 보였다. 아무리 감추려고 해도 내부에 담은 생각마저 감추지는 못하는 것 같았다.
‘나로 인해 상승세가 주춤한 것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기분이 좋지 않겠지만 적의를 보이다니. 아마 매니저들과 돌았다면 겉으로 드러냈을 것이다.’ 그들을 살피던 장인걸은 그런 가수들이 모두 이후에 물의를 일으켜서 5년 이내에 연예계를 떠난 자들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했다. 같은 신인이라도 그런 기색을 보이지 않은 자들은 이후에 크게 성공하는 자들이었다. 그것만 봐도 성공을 위해서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인성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성 가수들이야 까마득한 후배에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고 적의를 보이지 않던 선배들과 가깝게 지내도록 하자. 그들은 인성도 좋은 편이니.’ KTV의 가요프로는 순위를 매기는 프로그램이었고 장인걸의 한여름의 축제는 고작 10일이 지났지만 무려 15위에 랭크가 되어 ‘떠오르는 신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소개가 되었다.
순위에 오른 노래 중에 절반 정도는 출연을 하지 않은 상황이었고 신인들은 장인걸보다 뒤처진 순위도 네 팀이나 되었다.
“어디건 경쟁이 없는 곳이 없다. 당장 대기실만 봐도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상위 순위, 이름이 있는 가수의 대기실은 넓고 순위가 낮거나 이름이 떨어지는 가수의 대기실은 손바닥만 하다. 바로 여기처럼. 최소한 1,2위를 다투는 정도가 되어야 제대로 된 대기실을 받을 것이다.”
당시에는 인터넷이나 SNS의 영향력이 거의 없는 실정이라 오직 방송횟수와 앨범판매, 엽서투고만이 순위에 영향을 미쳤다. 그 중에 앨범 판매는 가장 영향력이 컸다. 또한 발표를 하고 최소 2주는 되어야 10위권에 들어갔고 거의 한 달이 되어야 1,2위를 넘볼 수가 있었다.
한정수의 영향력인지 장유현의 영향력인지 모르지만 장인걸은 그날 두 곡을 부를 수가 있었다. 타이틀곡인 ‘한여름의 축제’와 ‘사랑, 알 수 없는 느낌’을 불렀다. 하나는 생방송으로 불렀고 하나는 사전녹화를 했다.
TV에 나온 것은 음반을 내거나 라디오에 출연한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았다. 결국 전화기 코드를 뽑는 것으로 전화기를 폐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잠도 자지 못했을 것이다.
대신 회사에서 사용하는 전화를 이용하여 필요할 경우에 연락을 했다. 그러면서 전화국에 요청하여 집의 전화번호를 변경했다. 또한 핸드폰도 하나 장만했고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전화번호를 알리지 말라고 말하고 알려주었다.
“전화가 워낙 많이 와서 번호를 바꿨다. 당분간 번호는 알리지 않기로 했다.”
학교에 갔다가 나오는데 양진고 동창인 진성민을 만났는데 전화가 되지 않는다고 푸념을 했다. 간단히 음료를 하나 사서 근처 나무그늘에 있는 벤치로 갔다.
“다들 놀랐지. 처음에는 네가 아닌 줄 알았지만 다들 너라고 하니 자세히 살핀 다음에야 너인 줄 알았지. 하긴 나도 네가 전화를 받지 않으니 오기가 나서 계속 걸었는데 다른 사람도 그랬나 보구나.”
진성민은 장인걸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괘씸한 생각이 들기도 해서 될 때까지 전화를 걸려고 했었다. 거는 사람은 혼자이지만 받아야 하는 사람은 수십, 수백 통의 전화를 받아야 했으니 감당이 불가능했다.
“황명환이 너한테 안부 전해달라고 하더라. 다들 시골에 내려갔는데 걔는 지금 학교 앞에 제 와이프랑 같이 있다고 하더라.”
“와이프랑? 내가 듣기에는 1학기 마치고 휴학한 다음에 시골에 내려간다고 들었는데.”
“말이 그렇지 시골에 명환이도 없는데 집에 내려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걔네 처가, 상희네 집에서 학교 앞에 전셋집을 얻어주었다고 하더라.”
“문제는 없다니? 저번에 보고 연락도 못했는데.”
“나도 잘 몰라. 시골에 갔다가 올라오는 차안에서 만나 같이 이야기를 했는데. 나하고 그리 친하지는 않잖아. 거기서 연락처도 알았는데. 어제 너한테 연락이 안 된다고 연락이 왔더라.”
장인걸의 입장에서 사람들이 조금만 생각해도 사정을 알 것인데 부득불 연락을 하려는 심정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자신이 아는 사람이 가수가 되어 텔레비전에 나왔으니 궁금하겠지만 그것이 급한 일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받지 않더니 나중에는 아예 없는 번호라고 나오니 더 황당했겠지.”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전화기 코드를 뽑아놓았지. 다음날 아침에 전화국에 번호 바꿔달라고 했고. 114에 문의해도 번호 알려주지 않도록 했고.”
진성민은 여전히 전화를 받아주지 않은 것이 서운한 기색이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가수가 되면서 변했다는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낮에는 공연을 하고 밤늦게 겨우 잠자러 들어가면 계속 전화가 울려대는데 처음 한두 번이지 계속 받을 수는 없는 일이지. 다음날 새벽에 또 나가야 하는데.”
장인걸은 생각이 없어 보이는 진성민이 답답했지만 그래도 참으면서 사정을 설명했다.
“그거야 그렇지만 잠깐 전화를 받고 축하의 말이라도 전하면서 궁금한 것도 물으려는데 전화가 안 되니까 그렇지. 네 사정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렇잖아. 궁금한 것이 있으면 풀어야 하는 것이고. 더구나 네가 학교 다닐 때는 노래하는 것을 몰랐는데 어느 날 갑자기 가수가 되었으니.”
장인걸은 공감하기 어려운 소리를 하는 진성민을 보면서 자신이 이상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동의하기 어려웠다.
장인걸은 회사에 돌아와서 황명환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이유야 둘 중에 하나 인 것 같은데 명확히 하고자 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거야?”
장인걸은 진성민이 황명환이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인다면서 연락을 하라고 하여 확인하는 차원에서 전화를 걸었다. 그러다가 결국 한 가지 생각이 났다.
‘황현준 총무님이 있지?’ 황명환은 아버지보다도 작은아버지인 황현준과 더 가깝게 지내는 모양새였다. 작은아버지 황현준이 딸만 둘이 있어 족보상으로 양자를 가서 양아버지라는 말도 있었다.
‘나중에 부회장이 되지만 지금은 40대 중반으로 동문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지. 총무가 사무국장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지만 선배들은 여전히 황 총무라고 불렀지.’ “그게 다른 게 아니고 우리 작은아버지 때문에.”
“동문회 일 말이지?”
“매년 10월 초에 공설운동장에서 동문 체육대회가 있잖아. 거기에 너를 오게 하라고 해서.”
장인걸은 역시 피하기 어려운 요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순간 그런 요구를 할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각종 지역관련 행사에 나오라고 할 것인데 어디까지 응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동문회는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다른 행사는 피해야 했다.
“날짜가 언제인데?”
“10월 3일, 양진 공설운동장에서 9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피해 준다고 5년 전부터 거기서 했잖아. 11시에 개막식을 하는데 네가 축가를 해주었으면 한다고 해서. 그 시간이 안 되면 개막식 시간을 조정할 수도 있고.”
장인걸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친구를 통해서 섭외가 들어온 것 자체가 맘에 들지 않았다. 이런 것을 보면 결국 무료봉사를 하라는 요구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정식으로 데뷔한 가수야. 또한 기획사에 소속이 되어 있고. 그렇기에 내가 스케줄을 맘대로 빼고 그냥 가서 공연을 할 수는 없어. 그런 일은 정식으로 기획사에 접수를 하고 일정을 잡아야 해.”
장인걸은 간다고 해도 어떤 방식이든 정식으로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가수는 가수라면 공짜 공연은 하면 안 된다면서 단돈 만 원, 막걸리 한 잔이라도 받아먹고 공연을 하라는 명언을 하기도 했었다. 그래야 동료 가수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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