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6
‘동촌마을의 창선이 일가였지? 창선이 종조할아버지라고 했던가? 아버지에게 물어 볼까? 한 번 알아보자. 무슨 호흡법인지 모르지만 조금 더 알아볼 필요는 있는 것 같아. 그 때의 기억을 보면 이것저것 이상한 책도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 아마 어딘가에서 먼지나 뒤집어쓰고 있을지도 몰라.’시간을 거슬러 돌아온 상황이니 그에 대하여 알아보는 것이 필요했다. 그것도 중요한 일 중에 하나라고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과거로 돌아온 원인일 수도 있었다.
지금도 호흡과 명상을 하면 몸과 마음이 안정되었다. 이런 효과를 내는 호흡법이니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제대로 익힌다면 더 나은 효과를 볼 수도 있었다.
인기 배우인 장유현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아내인 성지현이 챙겨준 아침을 간단히 하고 로드매니저가 끌고 온 밴에 올랐다. 밴 안에는 실장인 장시현도 같이 있었다.
“오늘 일정은 어제 말씀드린 대로 야외촬영입니다. 남쪽의 양진이라는 곳에 있는 재래시장에서 촬영을 합니다. 지금부터 빨리 달려가서 오전 11시까지 당도해야 합니다. 오후 한 시부터 촬영을 해야 합니다.”
“시장 장면을 찍는데 굳이 멀리 떨어져 있는 거기까지 가야하는 이유가 있어? 귀찮게.”
“내일 보덕사에서 찍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가 가장 가깝고 적당하다고 합니다. 인근에 합산온천이 있어 저녁에 온천욕을 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설비가 좋은 워터파크도 있어 거기에서 B팀이 촬영을 합니다. 겸사겸사 촬영을 한다고 합니다.”
장유현은 영화를 찍는데 너무나 먼 곳에 로케이션 촬영을 잡는 것 같아 불만스러운지 매니저에게 물었다. 지금 촬영하는 영화 가제 ‘젊은 날’의 주연배우이자 수많은 히트작에 출연한 그는 30대 중반의 인기배우였다.
“곽탄현 감독은 다 좋은데 종종 이상한 돌발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아. 거기 가서 어떤 기행을 할지 걱정이야.”
장유현은 매니저에게 하는 말인지 혼잣말을 하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어투로 불만을 말했다. 20대 중반에 곽탄현 감독이 연출한 ‘젊음의 태양’이라는 영화에 출연한 것이 인연이 되어 다시 이번 영화에 출연했는데 당시에는 돌발 행동을 해도 불만이 없었지만 관록이 쌓이자 맘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촬영한 장면을 잘 살리는 것으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일제강점기가 배경인 사극에서 종로통을 보여주다가 미친 척 지금의 모습을 삽입시켜 관객을 놀라게 하기도 했지 않습니까?”
“그런 것은 좋지만 일정을 엉망으로 만들어서 사람을 힘들게 하니 문제이지. 물론 예술을 하다보면 감이 오면 해야 하지만 그걸 즉석에서 옮기는 것은 민폐이지.”
“그렇게 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잘 알려진 일이지 않습니까?”
매니저 실장인 장시현이 장유현을 다독였다. 그는 장유현이 데뷔할 시기에 장유현의 추천으로 로드매니저를 시작하여 지금은 장유현을 전담하는 실장을 맡고 있었다. 팀장을 해도 될 경력이지만 장유현을 맡기 위해 실장에 머물러 있었다.
공적으로는 배우와 매니저의 관계이지만 사적으로는 사촌 관계이기도 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장유현이 큰 문제없이 오랫동안 배우로 롱런하는 배후에는 한 살 어린 사촌 장시현이 매사를 원만하게 정리한 덕도 컸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그런 변덕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참.”
장유현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것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는 없기에 불만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 한동안 노트를 펼쳐놓고 기억나는 내용을 기록하던 장인걸은 다섯 페이지 가량을 적고 나자 더 이상 적을 것이 없었다. 나중에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추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잘 챙겨서 한쪽에 보관한 다음에 밖으로 나갔다.
“아버지, 다녀오셨어요?”
그가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자 트럭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고 곧 이어서 아버지가 차에서 내렸다.
“그래, 일찍 왔구나. 나는 또 다시 나가 봐야 할 것 같구나.”
“조문 가세요?”
“지금 거기 갔다가 오는 길이다. 거기서 들으니 읍내 시장에서 영화를 찍는다고 하는구나. 그래서 구경이나 할까 한다.”
장인걸은 순간 자신이 뭔가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 무엇인지 기억해 냈다. 그날 시장에서 영화촬영을 했다는 사실이었다. 제과점에서 미팅을 하다가 영화촬영을 한다고 해서 같이 오일장이 열리는 장터로 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원경희와 손을 잡게 되었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서로 놓치지 않으려면 손을 잡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자연스럽게 진도를 나가게 되었다.
“그래요? 그러면 나도 갈까요? 엄마한테 같이 가자고 할까요? 다 같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장인걸은 어머니가 할머니 때문에 가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묻기로 했다. 어디에 가는지 알릴 필요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엄마, 장터에서 영화 찍는데 갈래요?”
“날이 추운데 무슨 영화냐? 전에도 영화 찍는 것 봤는데 직접 영화로 보면 좋아도 찍는 것 보면 아무 것도 없더라.”
엄마는 가고 싶은 것 같지만 마음이 없는 것처럼 대답을 했다. 전이라면 말 그대로 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것이지만 지금은 그런 기색을 감지할 수 있었다.
“아빠랑 같이 갔다 올게요.”
장인걸은 어떤 영화를 찍고 어떤 유명한 배우가 나올지 기대가 되었다. 시골은 이벤트가 없었고 그런 것 자체가 드물었으니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간단히 외출하기 적당한 옷을 갖춰 입고 트럭의 조수석에 올랐고 아버지는 트럭에 실려 있던 짐을 내려서 창고로 가져다 놓고 차에 탔다.
“천천히 가요.”
“이 정도 가지고 뭘 그리 걱정 하냐? 전에는 아침에 지각한다고 밟으라고 난리 친 녀석이.”
버스를 타고 다녔지만 어떻게 하다보면 식구들 모두가 늦잠을 자는 경우도 있었고 그러면 지각을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럴 경우에 아버지가 트럭으로 학교에 태워다 주는 경우도 있었다. 그 때는 마음이 급해 빨리 가라고 재촉했다.
“그 때야 급하니까 그랬지만 지금은 급할 것이 없잖아요.”
“그 때는 시속 80km가 넘게 달렸고 지금은 고작 60km로 가는데 과속이야? 저기 제한 속도 60km라고 되어 있지 않아?”
표지판에 60km라고 되어 있고 속도계를 보니 그 정도였다. 단지 도로가 그리 좋지 않고 트럭이 꽤나 오래 된 탓에 덜컹거림이 심했다. 그러니 속도를 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읍내에 접어들자 한쪽으로 가서 차를 세워 놓았다. 장터 옆에 주차장이 있지만 장이 서는 날에는 유료였고 장터 근처에는 차를 가지고 가서 댈 곳이 마땅치 않기에 한적한 곳에 차를 내고 걸어서 가려는 것 같았다.
가게가 있는 골목을 지나 장터로 향했다. 입구에 노점상들이 즐비하게 있었다. 오일장이 서는 날에는 노점상들이 골목을 차지하고 있었고 조금 더 들어가자 평소에는 문을 닫았던 점포들이 문을 열고 물건을 진열하여 판매하고 있었다.
“지금은 장이 죽어 질이 떨어지는 떨이 물건을 주로 다루는 것 같아. 그나마 어물전이 조금 장사가 될까?”
앞장서서 가던 아버지가 약간 탄식을 했다. 평소에도 시장입구 쪽에 있던 각종 가게에서 필요한 물품을 살 수가 있었다. 장이 서지 않더라도 사지 못할 물건이 없었다.
조금 더 들어가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이고 있었고 통제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장유현에 이진희네요. ‘젊은 날’인가 그 영화인 것 같아요. 저기 표지 보니 맞네요.”
장유현이야 관심이 없지만 이진희는 장인걸도 관심이 있었다.
“장유현이라면 내 현조 할아버지인 빛 광자, 맑을 철자를 쓰시는 분의 3남인 기둥 주자, 영화 영자를 쓰시는 분의 손으로 나랑 항렬이 같을 것이다. 우리는 2남인 기둥 주자에 하늘 호자를 쓰는 분의 손이고. 그러니 아주 먼 집안은 아니다.”
“그러면 나와는 11촌 아저씨뻘인가요?”
“그럴 것이다. 우리 종씨인데 만나서 인사라도 하자.”
“그쪽에서 우리가 일가인지 알아요? 괜히 갔다가 당신 누구냐고 면박만 당하는 것 아니에요? 누구 수에 누구 모, 수모를 당하는 건 아니에요?”
“전에 일가 상갓집에서 봐서 서로 얼굴은 알고 있다.”
아버지 장재현이 주변을 서성이다가 한 곳으로 다가갔고 장인걸도 따라갔다. 안다고 하더니 진짜로 아는 것 같았다.
“시현이 아닌가?”
아버지가 양복 입은 30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사람에게 아는 척을 했다.
“아, 전에 종조할아버지인 진주할아버지 상가에서 뵈었던 분 같은데. 누구신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재현이라고 하네. 자네랑 동항렬이지. 종손집안이나 자네 집안은 창명에 있지만 우리 고조할아버지가 여기 양진으로 이주를 하였네.”
“아, 이제야 기억이 납니다. 벌써 10년도 한참 전인 것 같습니다.”
“자네야 잘 모르지만 유현이 이야기는 항상 듣고 있었네. 재작년에 영화가 잘 되어서 큰 상을 받았다는 것도 알고 있네.”
겉으로 드러내 놓고 자랑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집안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관심을 둔 것 같았다. 아버지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을 보면 괜히 그런 내용을 말해 허풍쟁이가 되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여기는 내 아들일세. 인사드려라. 너한테 아저씨뻘이다.”
서로 고개만 숙여 가볍게 인사를 했다.
“애가 올해 고등학교 졸업을 하네.”
장시현은 촬영 중인 장유현을 지켜보느라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고 장인걸은 달리 할 말이 없어 가만히 있었다. 그러니 아버지가 재차 장인걸을 소개했다.
“지금 촬영 중이라 제가 정신이 없습니다. 한 30분 지나면 오늘 촬영이 끝납니다. 그 때 유현이 형이랑 같이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장시현은 당장 대화할 상황이 아니기에 명함을 하나 내밀면서 그렇게 말했다. 외지에서 안면 있는 집안사람을 만나니 반갑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상대할 수도 없었다.
“그러면 우리는 끝날 때까지 구경을 하고 있겠네. 그 때 인사나 하세.”
장재현도 촬영 중에 계속 이야기를 할 상황이 아니기에 뒤로 물러났다. 장인걸은 혹시 학교 친구들이 있을까 살폈는데 역시 몇몇 아는 얼굴이 보였다.
‘역시 저기 있군.’황명환을 필두로 안석진과 여자 세 명이 한쪽 구석에 모여서 촬영 장면을 살피고 있었다. 영화의 장면은 시골 처녀인 순희(이진희 분)를 보고 한눈에 반한 주하(장유현 분)가 오일장에서 다시 만나서 첫 데이트 비슷한 과정을 촬영하고 있었다.
그러는 가운데 서로에 대해 알면서 좋아하는 감정을 내보이는 중요한 장면이라 미세한 감정표현을 해야 하기에 NG가 자주 나고 있었다.
더구나 소란스러운 시장에서 감정을 잡는 것이 쉽지가 않아 촬영현장은 긴장감이 지배하고 있었고 분장도 자주 바꾸어야 했다. 그렇기에 차츰 스텝들의 인원통제도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뭐, 저렇게 같은 장면을 계속 찍는지?”
“카메라가 얼굴을 근접 촬영하는 것을 보면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것 같아요. 손도 잡을락 말락 하는 것을 보면 첫사랑의 설렘 같은 것이겠죠.”
장인걸이나 장재현이나 눈이 좋은 편이기에 꽤나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배우들의 세세한 움직임을 볼 수가 있었다.
“그런 것도 같구나. 여자 몰래 남자가 손을 잡으려고 헛손질을 하기도 하고 여자는 고개를 돌려 몰래 웃기도하는 것을 보면 말이야.”
상당히 집중력을 요하는 장면이라 연기자나 촬영 스텝이나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거기다 차일 안이기에 동선에 따라 조명판도 정밀하게 움직여야 했다.
장인걸이 이런 것을 잘 아는 것은 마케팅팀에 있기에 광고 촬영 현장을 자주 다녔기 때문이었다. 광고회사에 외주를 주지만 촬영할 제품의 모델부터 각종 현장에 대한 지원을 해야 했다.
“너 여기서 뭐해?”
“아버지 따라서 시장에 왔어.”
어느새 황명환이 다가왔는지 옆으로 끼어들어 말을 붙였다. 아마도 자신들과 어울리지 않고 따로 집에 갔다가 시장에 영화촬영을 구경나온 것이 맘에 들지 않아 따지러 온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황명환은 장인걸 옆에서 아버지를 발견했는지 인사를 했다.
“학교 친구인가?”
“예.”
황명환은 뭔가 불만이 있는 얼굴로 장인걸을 보았지만 아버지가 있어서 그런지 결국은 자리에서 떠나갔다. 그런 일이야 대수로운 일이 아니기에 장인걸은 그냥 무시했다. 황명환이 돌아가서 뭐라고 하니 안석진이나 여자들도 뭐라고 하는 것 같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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