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61
장인걸은 인숙이와 은지를 데리고 자취집으로 갔다. 다행이 그날은 달맞이꽃에서 공연 이후에 다른 공연이 잡혀있지 않았다.
“오빠는 운전도 잘하네요.”
은지가 뒷좌석에 앉아서 장인걸을 보면서 운전 실력을 칭찬했다. 초보인데 초보답지 않은 장인걸의 운전 실력이었다.
“가수를 하지 않았으면 바다에 우리들끼리 놀러가자고 했을 텐데. 민기오빠랑 해서 넷이 가면 좋은데.”
은지가 그렇게 말하고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기대는 애당초 하지 마. 너는 남자라는 생물을 몰라서 그러는데 여동생은 제일 나중에 돌아보는 생물로 생각해. 첫째가 애인이고 둘째가 그나마 엄마야. 여동생이나 누나는 혹이고.”
“에이, 인걸이 오빠는 안 그럴 거야, 그렇지?”
“애가 오빠의 실체를 몰라서 그래. 사귀는 여자 친구가 없어서 그나마 우리를 조금 챙기지 당장 여자 친구가 있었다면 고등학생이 무슨 서울구경이냐고 올라오지 못하게 했을 걸.”
장인걸은 아니라고 반박을 하지 않았다. 회귀 전에 똑같은 소리를 했었기 때문이었다. 원경희와 만나는데 방해가 되기에 올라오지 못하게 했다.
“오빠는 안 그렇지?”
“민기는 어떤데? 조금만 꾸며도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 되냐는 소리나 하지 않아? 남자에게 여동생은 아무 짝에도 쓸 데가 없는 거추장스러운 존재란다. 혹시라도 여동생 친구 중에 마음에 드는 친구라도 있다면 모를까?”
장인걸은 본심을 그대로 이야기했다. 은지에게 환상을 심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하긴 그게 현실 남매의 모습이긴 하지. 남자애들도 누나에 대해서 그런 말을 하기도 하니. 결국 시간이 남아도 우리랑은 놀러 가지 않겠다는 말이네.”
“그래. 둘이 가서 백사장에 앉아 바다를 보면서 침을 흘릴지언정 우리랑은 같이 안 갈 거야.”
“귀신 같이 아네. 그런 모습 보일 텐데 얼마나 놀림을 당하려고. 두고두고 말할 것 아니야?”
장인걸은 부정을 하기보다 아예 긍정을 했다. 민기랑 놀러 가더라도 여동생들을 데려가지 않을 것이 당연했다. 해변에 간다면 헌팅을 하는 것은 기본인데 여동생이 지켜보는데서 그런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이 오빠가 정말 재미가 없네. 거기서 절대 아니라고 해야 말이 되지. 갑자기 이러니 내가 맥이 빠지잖아.”
장인숙이 오히려 화를 냈다. 장인걸이 장난을 하기는 해도 전과 달리 너무나 관대하게 바뀌었다. 좋으면서도 왠지 재미가 없었다. 이러면 티격태격 싸우는 맛이 없었다.
“내일도 바빠?”
“아침부터 정말 바쁘게 움직여야지. 오찬 모임에 가는 것부터 시작하여 여러 행사를 돌아야 해. 오후 세시에는 야구장에 가서 시구도 하고 노래도 한 곡 해야 하고. 그 후에 호텔에 들러서 다시 노래하고 카페에 들러 노래를 한 다음에 다시 서울로 이동하여 호텔에 또 들러서 노래하고. 총 다섯 개를 돌아야 하는데 차가 막혀서 스케줄 펑크 나지 않을지 걱정이다.”
“그러면 지하철 타고 오토바이 타고 달려야 한다면서?”
“그렇다고 하는데 그런 사태는 없어야 하는데.”
장인걸은 가능하니 그렇게 스케줄을 잡았겠지만 걱정이 컸다.
“모레는?”
“아침 일찍 너 데려다 주어야지. 집에 들르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이라 가지 못하니 양진읍에 떨궈 줄 거야.”
“아, 거기 근처에 스케줄이 있다고 하더니 거기 가는 거야?”
“원래는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냥 너도 데려다 주고 거기라고 못갈 것도 아니니 일정을 잡았지. 아는 사람이 찾아올까 걱정이다. 무작정 지인이라고 대기실로 쳐들어오려고 하다가 주최 측과 충돌하는 경우도 있다는데.”
연고가 있는 사람이 무작정 쳐들어오려고 하다가 분쟁이 발생하면 중간에 있는 연예인만 난감해지는 경우가 생겼다. 대기실로 접근하는 사람을 모두 허락할 수는 없기에 연예인의 매니저를 동행하지 않은 이상 주최 측 경비원이 차단했다.
“오빠 고등학교 친구들이 찾아올까봐?”
“그리 친하지도 않는데 동창이라고 무작정 대기실로 찾아오면 난감하지. 그럴까 걱정이 된다.”
장인걸은 고등학교 동창들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라 걱정이 되었다.
밴드에 대해 알아봤지만 데모CD를 들어봐도 딱히 맘에 드는 그룹이 없었다. 맘에 들면 이름이 어느 정도 알려져 있고 신인인 자신의 백밴드로 서 달라고 부탁하기가 쉽지 않았다.
방법이라면 세션을 모아 연습을 하는 것인데 비용도 많이 들고 불협화음이 발생할 수가 있어 꺼려졌다. 그래서 조금 모자라는 그룹이라도 백밴드이기에 조금만 연습을 하면 나아질 수 있는 그룹을 찾았고 아쉽지만 한 그룹을 선택했다. 결정을 하자 핸드폰을 들어 연락을 했다.
“화요일이니 일정을 조정하면 참가는 가능하지 않을까? 한 번 나를 도와준다고 생각하고 해봐.”
장인걸이 선택한 것은 권세라가 속한 그룹 문라이트였다. 달맞이꽃에서 사실상 결성하고 성장한 일종의 기획 밴드이기에 그런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거야 그렇지만 우리가 나가도 될지 모르겠네. 그렇게 하려면 고작 2주 동안에 네 노래를 완전 마스터해야 하는데.”
“할 수 있잖아? 언제까지 달맞이꽃에 있다가 고사하려고? 물론 돈이 안 될 수도 있지만 기회일 수도 있잖아.”
장인걸은 밴드의 리더인 윤찬길이 최종적으로 결정을 하지만 실질적인 의사결정은 권세라가 한다는 것을 알기에 몰아붙였다.
정식으로 초청은 받지 않았지만 여름가요축제는 누구나 참여하기를 원하는 축제였고 문라이트도 그런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 생각했다. 대신 거기에 가려면 엄청나게 연습해야 하는 점이 문제였다.
“그러면 우리 밴드를 만나게 해줄게.”
결국 권세라가 동의를 했고 일정이 끝나자 밴드의 연습실로 갔다. 장인걸은 그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했다. 물론 그렇게 하려면 대략 8곡 정도를 연습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편곡이 되어 있습니다. 이걸 참조하면 됩니다.”
악보와 MR형태의 데모CD를 건넸다. 만일에 그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연주를 하지 못하면 MR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락 스타일로 편곡을 했군요.”
윤찬길도 딱 듣자마자 대충 무슨 노래인지 감을 잡았다.
“보컬은 필요 없다니 그나마 다행이군요. 노래가 쉬워보여도 생각보다 쉽지 않던데 말입니다.”
윤찬길도 권세라가 드럼 연습하는 것을 옆에서 돕다가 노래를 했는데 쉽지가 않았다. 노래 자체는 어렵지 않는데 그 느낌을 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저에게 맞춰서 편곡을 했으니 다른 사람은 따라 하기 쉽지 않죠.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보수 문제인데 조금 박하지만 5백만 원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연습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너무 적지만요.”
돈을 받지도 못하는 상황, 실제로 약간의 출연료가 주어지지만 보통 기부를 하는 상황이지만, 무대를 꾸미기 위해 그 정도를 투자하는 것이 불가피했다. 그 정도 연습을 하면서 그런 금액을 받는 것은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 일이지만 장인걸도 최대로 맞춘 금액이었다.
옆에 있는 민수길은 장인걸이 나서는 상황이라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런 일은 뮤지션인 장인걸이 섭외를 하고 마무리 짓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3집 앨범을 내는데 두 곡 정도 지원을 해줄 수도 있습니다. 밴드에 맞는 곡이 있으니.”
장인걸은 그것이 자신에게도 손해가 아니면서 상대에게 최소 천만 원의 가치는 있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렇게 하면 자신에게도 떨어지는 것이 있겠지만 일단은 일종의 혜택이었다.
“이거 앞으로 보름 동안은 죽어나겠군요.”
그렇게 말하고 손을 내밀었다. 둘이 악수를 한 후에 민수길과 권세라가 본격적인 협의를 하기 시작했다. 개런티 외에도 부가적인 비용은 장인걸이 부담하지만 그 격을 정하는 것도 필요했다.
장인걸은 여동생을 양진읍에 내려주고 주천으로 이동했다. 은지가 따라붙어 시골에 간다고 나선 것은 의외였다. 시골이 불편하다고 하던 애인데 인숙이와 제법 친해진 것 같았다.
주천에서 주천문화제가 열렸고 거기에 초청을 받은 상황이었다. 주천 공설운동장에 인구 4만인 주천읍의 주민과 12만 명의 주천군민 중에서 1만여 명이 자리를 했다.
주천은 장인걸에게 익숙한 곳이었다. 바로 외할머니가 사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1년에 한두 번은 방문을 했고 읍내를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하기도 했다.
그런 곳에 자신이 유명 가수로 초청을 받아 공연을 한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런 곳에서도 사람을 불러 모으기 위해서 장인걸을 초청했다.
장인걸은 유독 자신이 가는 곳에 여학생이 많은 것이 신기했다. 은지 말로는 여학생들 사이에 남자 중에 최고의 미남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하는데 어쨌든 좋은 일이었다.
회귀 전에 비해 키도 5cm는 더 컸고 얼굴 윤곽도 훨씬 선명해 미남으로 보였다. 거기에 체형도 다부지면서도 슬림한 형태라 여자들이 좋아했다.
대기실에서 공연할 시간을 기다리는데 행사요원이 누군가 면회를 요청한다고 했다. 누구인지 확인하니 이승찬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무리인 김광일, 이진석, 서정민이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더니 이놈들이 무슨 일이지? 지금 주천에 있었나?’ 장인걸은 그들이 오더라도 두려울 것이 없기에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로드인 김기현을 통제구역 입구로 보내어서 데려오도록 했다.
“무슨 일이야?”
장인걸은 그들과 학교 다닐 때 친하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친하게 지낼 일도 없기에 사무적인 어조로 용건을 물었다.
“우리야 네가 텔레비전에 나오고 오늘 온다고 사방에 광고를 하기에 반가워서 이렇게 왔지.”
넷 중에 가장 변죽이 좋은 이진석이 말을 했다. 아마도 자신과 친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온 것 같았다. 뭔가 특별한 용건은 있어 보이지 않았다.
“양진에서 여기로 온 거야?”
장인걸은 30분 넘게 달려온 것이기에 의구심이 들어서 물었다. 그렇게 달려서 찾아올 정도로 가까운 관계도 아니었고 그렇게 할 정도로 용건은 없어 보였다.
“우리는 졸업하고 여기 주천관광호텔 지하에 있는 주천나이트에서 일해. 양진은 워낙 바닥이 좁아서 일할 곳이 없어서.”
고등학교 때에 껄렁하게 놀더니 결국은 유흥가로 들어온 것 같았다. 낮에는 영업을 하지 않으니 축제에 왔다가 그저 안다는 핑계로 찾아온 것 같았다.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 예상을 했지만 하필이면 이런 자들이 올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줄 것은 없고 음반이라도 하나씩 가져가라.”
장인걸은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심정으로 음반을 건넸다. 제대로 된 녀석들이라면 음반을 하나씩 사들고 사인을 받으러 오겠지만 양아치들에게 그런 매너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사인 참 멋진데.”
장인걸은 낄낄거리면서 희희낙락하는 모습을 보니 어이가 없었지만 달리 말을 하지 않았다. 회귀 전에 자신과 원경희의 삶을 파괴한 주범들이라고 생각하니 여전히 화가 났다. 아직은 그런 일을 행하지 않았을지라도 그런 짓을 언제라도 행할 잠재적인 악한들이었다.
‘단순한 것인지 아니면 세상이 그렇게 만만한 것인지, 어쨌든 벌써부터 몸에 온갖 악업이 가득하군.’ 느낌 자체가 암흑가에서 몸을 담고 있는 최유림이나 민지훈보다도 더 탁기가 강했다. 이는 그만큼 악에 물들어 있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다.
“곧 행사가 있어서 준비해야 하는데 나중에 보자.”
장인걸은 더 이상 그들과 같이 있고 싶지 않아 행사준비를 말했고 그 말에 그들도 알아서 나갔다. 회귀전의 악연과는 어떻게든 부딪치는 것 같았다.
‘저것들이 지금 당장은 문제가 없지만 의도하건 안 하건 나중에 뭔가 귀찮은 일을 만들 것 같단 말이야.’ 그렇다고 당장 어떻게 한다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 느낌이 좋지 않아도 그냥 넘겼다.
장인걸은 일단 ‘울고 넘는 박달재’란 트로트로 노래를 시작했다. 시골이기에 나이든 사람이 많았고 그들의 정서에는 신나는 트로트로 시작하는 것이 가깝게 다가가는 길이었다.
그 후에 한여름의 축제를 불렀고 다시 청년의 발걸음을 불렀다. 그런 다음에 앙코르가 나오자 ‘사랑, 알 수 없는 느낌’을 불러서 그 자리에 찾아온 여학생들을 만족시켜주었다.
“트로트를 부르고 난 다음에 발라드를 부르는데 이상하지 않아요? 가수들이 트로트를 부르면 목소리나 음정이 변하던데.”
황지현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트로트와 일반 가요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이 신기한 것 같았다. 가수들 중에는 트로트를 부르면 창법이 미묘하게 달라져 문제가 생긴다고 기피하는 경우도 많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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