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63
“그거야 당연하지. 회장님 주변도 잘 살펴야 해. 언제 보이지 않는 칼이 튀어나올지 모르니.”
그들의 방패는 안광현이었다. 회장인 안광현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면 그들도 무사할 수는 없었다.
“회장님을 노리는 자들이 생길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해. 검찰이나 경찰이 언제 안면을 바꿀지 모르는 일이고 누가 킬러를 고용하여 손을 쓸지 모르니.”
이찬혁 부장이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했다. 전국구 조직으로 발돋움하면서 최근에는 공격이 없지만 2~3년 전만 해도 한 달이 멀다하고 습격을 받고 보복을 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죽은 자들만 해도 열 손가락으로 부족했다. 또한 일 년에 한두 번은 위급한 상황을 맞기도 했었다.
최유림도 그런 것이 떠오르자 갑자기 불안해지기도 했다. 얼마 전에 외곽조직인 왕돌이파에서도 꺽쇠일파가 민지훈을 습격해온 일이 있는데 그런 일이 안광현 회장에게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장인걸은 무리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많은 행사를 뛰려고 했고 그 덕분에 하루에 매출액이 300만 원까지 높아졌다. 아직 한정수가 한 번 뛰는 수준에 불과했지만 하루에 200만 원 이상의 수익을 낼 수 있었다.
더불어 행사를 뛰면서 자신을 홍보하고 그러면서 증가하는 앨범판매량은 무서울 정도였다. 하루에 만 장 이상이 판매가 되어 판매량이 엄청났다.
그리고 마침내 ‘한여름의 축제’는 세 개의 방송국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물론 다른 노래도 세 곡이나 20위 안에 차지하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서 여름을 접수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고 마침내 팬클럽의 회장단과 집행부가 구성이 되면서 팬클럽 결성식을 치르기로 했다.
“팬미팅을 겸한 팬클럽 결성식에 앨범에 나온 노래로 미니콘서트를 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팬클럽 회장단과 집행부의 의견도 참가비를 1인당 3만 원을 징수하는 것을 결정했습니다.”
그러면서 팬 중에 3000명을 초청하는 것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무작정 비용을 일방적으로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회원이 골고루 나눠서 부담하는 것으로 했다.
“또한 그날 공연을 하는데 밴드를 동원하여 여름가요축제의 리허설을 겸했으면 합니다. 200만 원의 추가 비용을 부담하면 그날 앨범에 나온 곡을 전부 연주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미 연습을 한 상황이니 그렇게 하는 것도 문라이트에게는 손해는 아니겠군요. 그렇게 하죠. 그리고 오프닝을 맡아서 그들 노래인 ‘달맞이꽃의 노래’를 축가로 불러달라고 해주세요.”
문라이트 밴드는 장인걸의 노래를 커버하는 방식으로 달맞이꽃이나 다른 카페의 공연을 할 때 부르는 경우도 많았다. 장인걸은 그들의 제안을 환영했고 그런 공연으로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건 협의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정수 대표님도 방문하여 인사를 하고 축가를 해줄 수 있다고 하여 그날의 일정에 포함시키도록 할 것입니다.”
“팬클럽 사무실은 어떻게 한다고 합니까?”
“회장단과 집행부가 결정하여 가로수길에 마련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에 대하여는 우리가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습니다. 준비모임에 참석한 사람의 면면을 살펴보면 숨어있는 거물도 몇몇 있었습니다. 회장단, 집행부, 그리고 자문단까지 결성을 하여 법률이나 회계, 심지어 건강에 관한 것까지 자문을 받아 활동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변호사와 회계사, 의사, 한의사, 약사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자들까지 팬클럽의 자문단에 참여하기로 한 사실을 말했다.
“그리고 팬클럽 홈페이지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도메인을 등록해야 하는데 hero.com이나 hero-jang.com 이미 등록이 되어 있어 명의를 양도받기 위해 미국의 소유주와 협의를 할 것이라고 합니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총대를 메고 구조조정을 해야 하는데 누구도 나서지 않고 있다. 회장님이 해야 하는데 그 원성을 감당하고 싶지 않아 보인다. 차태근 부회장도 마찬가지이고.’ 그간 장인걸을 만나서 나눈 대화를 통해 경제를 보는 눈을 키웠기에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대략 이해가 가능했다.
‘아울러 경제가 나빠지면 조직도 적자로 돌아설 수가 있다. 비자금 조성을 못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해도 감당이 되지 않을 수가 있다. 특히 몇몇 규모가 큰 업소는 적자로 돌아서고 있다. 그런 업소에서 부실이 커지면 전체적으로 천광상사 자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 최유림은 장인걸과 대화를 나눈 이후에 유심히 조직이 돌아가는 상황을 살폈고 문제가 심각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적자를 보면서도 일단 적자가 난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다. 이찬혁 부장이나 김기정 실장은 그 내막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모르는데 회장님이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부실이 드러나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당장 자리를 보전하기 위해 별 수를 다 써서 적자가 드러나지 않게 하고 있지만 그것도 흑자가 나야 해결이 가능하지 계속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는 감당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유혈사태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경영실패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데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이로 인해 발생할 혼란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쳤다.
“최 대리는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될 것 같아?”
조용히 염두를 굴리던 최유림은 갑자기 안광현 회장이 질문을 던지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뭐라도 대답을 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지금이나 나중이나 문제가 없어야 했다.
“한 1~2년은 어려운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봅니다. 바짝 정신을 차리고 긴축을 하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고 인천 달맞이파의 꼴이 날 수도 있습니다.”
달맞이파는 1년 전에 파산을 하여 조직이 그대로 붕괴되었다. 경쟁조직의 무력이 아닌 사업실패로 인해 사라진 최초의 조직이었다. 그로 인해 조폭이라고 해도 사업이 실패하여 빚을 지면 감당이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본다는 말이군. 그러면 경제가 얼마나 어려워질 것이라고 보나?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말이 다 달라서 뭐가 뭔지 들어도 모르겠으니.”
“제 생각에는 나라가 망할 정도로 어려워질 것이라고 봅니다. 외화가 없어 다른 나라에서 빌려와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 태국 꼴이 날 것으로 보입니다.”
장인걸이 외환위기가 올 것이라고 말했는데 처음에는 믿지 않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그런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았다. 특히 태국과 인도네시아의 상황을 보면 얼마 후에 한국의 모습이 어떨지 상상이 되었다.
“태국 꼴이 나면 완전 개판이 된다는 말인데. 그러면 남아나는 기업이 없다는 말이고 업소도 장사가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상우라고 내 친구가 태국에서 장사하는데 인력으로는 어떻게 해볼 길이 없다던데.”
“그럴 가능성이 있습니다. 공무원들은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하지만 조짐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올해만 해도 벌써 대그룹만 무려 일곱 개가 넘어갔습니다.”
최유림은 그런 상황이 몇 달 안에 도래할 것이기에 그렇게 장담을 하듯이 말을 했다. 장인걸의 전망에 의하면 연말이면 결판이 난다고 했는데 그럴 것 같았다.
또한 어떤 말을 해도 자신의 말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니 크게 부담이 없었다. 물론 그런 상황이 오면 그 때에는 자신에게 권한이 주어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일단 희망사항이었다.
“그보다 최 과장, 시골의 아는 동생이 요즘 뜨는 가수라면서?”
“아, 인걸이요? 이름이 조금 구식이라 히어로 장이라고 이름을 바꿔서 가수로 나왔습니다.”
“노래가 좋더라고. 나도 한 때 밤무대를 관리하는 부장을 하기도 했던 사람인데 마스크도 죽여주고 노래도 잘하니 여자들이 아주 좋아할 것 같아.”
안광현 회장도 주먹세계의 밑바닥부터 올라온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유흥가를 잘 알았다. 젊어서 밤무대라고 할 수 있는 카바레나 나이트클럽의 관리부장을 하기도 했었다.
“언제 그 친구 한 번 보자고 하게. 최 과장의 동네 동생이라면 날파리가 달라붙지 않도록 해줄 필요도 있어.”
“회장님이 그렇게 해주신다면 좋을 것입니다.”
“그놈아가 언제 비는 시간이 있는지 확인하여 김 실장이 일정을 잡아 봐. 술 한 잔 같이 하면서 예술에 대해 논해보게.”
안광현 회장은 사실 취미가 없었다. 각종 스포츠나 골프도 관심이 없었다. 있다면 노래를 듣는 것인데 그것도 흘러간 옛 노래를 듣는 것이었다.
아니면 드라마를 보는 것 정도였다. 그 외에 취미라고 할 수 있는 것이 회식을 하거나 술을 마시는 정도였다.
그나마 어쩌다 한 번씩 예술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을 불러다가 술을 마시면서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아무런 대가도 없이 후원을 해주었다.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평생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도록 보살펴주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누가 되지 않도록 정중하게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장소는 어디가 좋겠습니까?”
“나이가 어리니 동정홍에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군.”
동정홍은 중국식 퓨전 레스토랑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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