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69
“공식적으로 매일 100만 원 빼내는 것을 150만 원 빼내 50만 원 정도를 자기 주머니로 챙긴 것 같습니다.”
이런 일은 사업체 어디서건 일어나는 일이었다. 천광상사의 회장인 안광현도 하는 일이고 최유림이 그런 자금의 일부를 관리하고 있었다.
“맞습니다. 나도 사실 그렇게 하다가 경리부장에게 당했는데 혼자 했는지 아니면 누구의 지시를 받아서 했는지 논란이 되고 있다고 합니다. 중간에 연결고리인 백수찬 부장이 사라졌으니 진실은 묻혀 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조직의 돈을 다들 횡령한 상황이라 제대로 조사하지 못하고 유야무야 묻힐 것 같았다. 결국 힘없는 누군가 책임을 지고 희생이 될 것으로 보였다.
“잘 되었군요. 그러면 당분간 그쪽과는 문제없을 것 같군요.”
“우리도 몇몇 간부급 인물들에게 그런 일을 맡겨 놓았는데 문제가 터질 것 같아 걱정입니다. 적당히 한 달에 100만 원 정도는 눈감아 주고 있는데 가게 상황이 나빠지면 그것도 불가능하고 그러다보면 사고가 생길 여지가 큽니다.”
민지훈의 말에 장인걸은 참 세상을 어렵게 산다는 생각을 했다. 민지훈도 횡령과 탈세, 비자금 조성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어 보였다. 그런 시스템이 작동하니 나라의 상황이 완전 엉망이 되고 외환위기가 발발하게 되었다.
‘모든 기업이 이렇게 내부에서 도둑질을 하는 상황이니 다 무너질 수밖에 없지.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다 이렇게 일이 진행되고 있겠지.’ 장인걸은 경제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본 것 같아 씁쓸했다. 아울러 조폭이 어떤 것인지 체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도 주의를 해야지. 히어로기획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면 엉망이 되고 말 것이다. 원칙에 의거하여 모든 것을 처리하는 것이 사고를 예방하는 길이다.’ 장인걸은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민지훈의 일이나 천광상사의 일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작은 이득을 취하려고 하다가 더 큰 것을 잃는 우를 범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개강을 하루 앞두고 권세라가 집으로 밤늦게 찾아왔다. 모처럼만에 갖는 둘만의 시간이었다. 남들의 시선을 피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둘 다 바빠 만날 수가 없었다.
“요즘도 진경이와는 만나?”
“아니, 최근에는 가끔 전화 연락만 하는 편이야.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겠다고 만나는 것을 자제하자고 하더라고. 대중에게 드러나는 것은 부담스러운 것 같아.”
“그래?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권세라의 표정에는 호기심인지 기대감인지 모를 기색이 어려 있었다. 그런 모습이라 대답을 하기가 애매했다.
“몰라.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는데.”
장인걸은 헤어질 가능성이 높지만 그대로 대답하지 않았다. 권세라가 두 사람이 헤어지기를 바라는 것 같은데 당장은 그런 기대에 부응하고 싶지 않았다.
“곧 3집 앨범이 나온다면서? 들어보니 아주 좋더라.”
“다음 주에 나오는데 조금 바빠질 것 같아. 이번에는 다들 제대로 활동해 보자는 입장이니.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다 해본다고 하더라고.”
문라이트도 이번 앨범에 기대가 컸다. 문라이트도 언더그라운드를 탈출하여 메이저 무대에 등장하고 싶어 했다. 더구나 여름가요축제에 백밴드로 참가하고 난 다음에 도전의식을 가지고 이를 악물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나도 도울 수 있으면 최대한 도와줄게. 미약하지만.”
“아마 한동안 너랑 만나기 어려울 거야. 그보다 박상우 이야기 들었어?”
“뭔데? 무슨 일이 있어?”
“남자 애들을 몇 만나서 너랑 진경이가 사귀는 것을 신문에 알린다고 했다더라. 너랑 진경이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한다는데. 너랑 진경이가 작당해서 동아리에서 자신을 쫓아냈다고 하고 다닌데. 그래봤자 믿는 애들도 없지만.”
하여간 미운 놈은 하는 짓도 계속 미운 짓이었다. 기자들이 알게 되면 귀찮아 질 수도 있었다. 물론 그냥 동아리 친구 사이라고 둘러대면 그만일 수도 있었다.
“뭐,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면 되지. 대신에 그에 휘둘리는 기자가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하면 되는 거지.”
장인걸은 염문설을 뿌린다고 하지만 신문이란 것이 인터넷과 달라 함부로 가십 기사를 내지 못했다. 잡지에는 A니 B니 하는 이니셜로 기사를 낼 수도 있지만 그 정도로는 타격이 없었다.
“하여간 애들에게 쓸데없는 이야기 옮기지 말라고 말을 했는데 미향이가 개강하면 동아리 사람들을 모아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다 밝히기로 했어. 조용히 덮을까 했는데 자기가 들쑤셔서 일을 키우고 있으니.”
박상우가 자신이 억울하다고 사람들을 선동한 상황이니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스토킹에 대한 내용이 알려지면 다른 동아리 회원들도 더 이상 가까이 하지 않을 것이고 그의 주변까지 소문이 날 것이니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 같았다.
“그리고 명천음악학원이라고 들어 봤지?”
“드러머 세필드가 운영하는?”
“응, 박상우가 거기에 등록하여 다니고 있다던데. 거기서도 너를 엄청 욕하고 다닌데. 찬길이 선배가 어디서 듣고 와서 말해주더라. 너와 무슨 관계냐고 물어서 그냥 사이가 좋지 않다고만 말했어. 더 이상한 소리를 하면 스토킹 문제를 알려야 해서.”
박상우가 동아리를 쫓아낸 것으로 드럼을 그만 둘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순간 회귀 전에도 박상우가 거기에 다닌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필드라면 그동안 보인 박상우의 행적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세필드는 한 때 잘나가는 드러머였지만 드러머라면 반드시 찾아오는 부상을 피할 수는 없었다. 어깨, 팔꿈치, 무릎이 좋지가 않아 서른이 갓 넘은 나이게 사실상 현역 드러머에서 은퇴했다. 일종의 직업병으로 인한 조기 은퇴였다.
세필드는 얼마 후에 기획사를 차릴 것으로 보였다. 그 기획사가 바로 나중에 박상우가 이적한 아이돌 밴드인 크라스노트를 결성했고 ?즈바드에 있던 박상우가 무단으로 옮겨 가면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세필드는 크라스노트를 띄우기 위해 일종의 노이즈마케팅을 했고 그 선봉에 박상우가 섰다. 그 덕분에 밴드라는 마이너 장르에서 아이돌 밴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결국 박상우는 세필드가 움직이라고 하는 방향으로 움직인 것일 수가 있다. 하여간 나쁜 놈들끼리 만났군.’ 세필드는 한 때 대마초 사건으로 언론에 보도가 되기도 했고 그로 인해 그가 속했던 밴드그룹 아리랑고개는 풍비박산이 나기도 했다. 그런 자가 실용음악학원을 열어서 음악가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거기 출신들이 어떨지 예상이 되었다.
결국 장인걸이 회귀할 때쯤에는 대표 프로듀서인 세필드와 크라스노트의 멤버들이 다시 한 번 신종 마약을 복용한 혐의로 물의를 일으켰고 세필드의 빅붐기획은 이름대로 큰 폭발과 함께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결국 회귀 전에 2학기 때 차근차근 연습한 이유가 정신을 차린 것이 아니라 학원에서 교육을 받으니 기본기를 연습한 것이군. 아무리 내가 개입을 해도 대부분의 사건은 그대로 진행이 되는 것 같군. 연말쯤에 퀸즈바드가 결성이 되면서 박상우는 언더에서 활동할 것 같군. 나 때문에 다른 선택을 할지도 모르지만.’ 장인걸은 박상우가 언젠가 자신에게 걸림돌이 될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손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하려면 당장 자신의 손에 오물을 묻혀야 하는데 내키지 않았다.
2학기 개강을 하게 되자 학교에 등교를 했고 장인걸은 강의에 들어갈 때마다 곤혹스러운 상황에 직면했다. 다들 수업 전후로 장인걸을 붙잡고 사인을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여학생이 은근히 추파를 던질 때 적당히 거절하는 것이 힘들었다. 너무 매몰차게 거절하면 모욕감에 원한을 가질 수도 있고 그렇다고 어정쩡하게 반응하면 오해를 하여 계속 치근거릴 수도 있었다. 적절한 수준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물론 그런 상황을 예상했기에 각오를 했지만 막상 당하니 힘들고 짜증이 났다. 그렇지만 그런 것 자체가 인기를 얻었기에 겪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긍정적으로 임하였다.
“야, 김진수, 혼자 수업에 들어가면 나는 어떻게 하라고?”
장인걸은 주로 같은 과의 김진수가 있으면 그와 같이 자리에 앉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2학기에도 그 옆에 앉았는데 김진수 옆에 같은 과의 여학생 둘이 다가오더니 김진수에게 화를 냈다.
“희정아, 너는 사회학개론을 듣고 나는 동양사를 듣는데 따로 오는 게 맞지 않을까?”
김진수는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을 했다. 1학기 기말고사까지도 그런 기색이 없더니 방학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느새 두 여학생과 친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더구나 같은 사회대 건물이지만 5동과 8동은 여기 28동으로 다니는 길이 다르잖아.”
수학-미적분이라는 전공수업이 있는 28동으로 오려면 5동은 아랫길로, 8동은 윗길로 다니는 것이 가까웠다.
“인걸이 축하한다. 가수 데뷔했다면서?”
김진수의 말에 대답을 하지 않고 안희정이 아는 체를 했다. 같은 과이기에 몇 번 이야기를 했지만 한두 마디가 전부였다.
“응, 고맙다.”
장인걸은 달리 할 말이 없기에 짤막하게 대꾸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최미선의 표정이 달라졌다. 장인걸은 과의 두 여자들과 가깝게 지낼 이유가 없기에 다른 사람과 달리 소 닭 보듯이 대하고 있는데 그런 태도가 맘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이번 학기에 전액 장학금 받았다면서?”
장인걸은 2학기 등록할 때 성적우수로 전액장학금을 받았지만 감추고 있었는데 그것도 알려진 것 같았다. 등록금 정도는 충분히 낼 정도가 되었지만 과 수석으로 장학금을 받는 것은 명예로운 것이기에 수령을 했다.
“받을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고 있었는데 그런 것 같더라. 그런데 어떻게 그 사실을 아는 거야?”
“그거야 과 사무실에 문의하면 다 알려주는 사실인데, 뭐.”
최미선이 그렇게 말을 했다. 학교에서 투명한 장학금의 집행을 표방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각종 장학금의 수혜자에 대한 내역을 그대로 다 공표했다.
“아, 그렇지. 그러면 너도?”
“맞아. 나야 겨우 수업료 면제였지만.”
최미선이 성적으로 과에서 2등이라는 말이었다. 3등은 기성회비를 면제받았다. 장인걸에게 과 수석을 내준 것이 맘에 들지 않은 것 같았다.
‘아. 회귀 전에는 최미선이 과 수석을 내리 했었지. 나야 2년만 다니고 군대 갔다 와서 졸업했기에 잘 모르지만 졸업할 때 공대수석을 차지했었지. 졸업식에서 총장상을 받았던 것 같은데.’ 군대에서 졸업한 후에 복학을 하러 학교에 왔다가 같은 학번 동기가 몇 명 졸업한다는 말을 듣고 갔다가 거기서 최미선이 공대수석을 차지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나로 인해 1학기 과 수석을 놓친 것인가?’ “음악을 하는데 공부도 아주 잘하는 것 보니 넌 천재야?”
적의는 보이지 않지만 내심 분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장인걸의 경우에 학과 수업이 끝나면 주로 동아리방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연습을 했는데 성적이 좋으니 공부에 열중한 사람으로서 화가 날만 했다.
“천재라기보다 그냥 찍는 실력이 좋은 것이지. 내가 예상한 부분에서 시험이 출제되었으니.”
장인걸은 그 정도로 말을 하고 달리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도 여자지만 그렇게 매력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저 여학생이 없는 공대에서 희소성이 높은 정도였다.
“과 활동도 좀 하지. 이제 가수가 되었으니 더 참여하지 않겠네. 가수로 데뷔했으니 휴학할 줄 알았는데 등록했네.”
“학교는 다녀야지. 고졸보다는 대졸이 낫지.”
장인걸은 그런 식으로 말을 했다.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조금만 이상한 대답을 했다가 와전이 되면 구설수에 오를 수 있었다.
“앞으로 인사라도 하고 지내자.”
“그러지, 뭐. 같은 과인데.”
장인걸은 최미선이나 안희정이 먼저 아는 체를 하자고 한 것 자체가 신기했다. 전에는 이런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같은 과이지만 제대로 대화를 한 기억이 없었다. 둘은 조금 떨어진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들이 자리에 가서 앉자 김진수를 보았다.
“방학 때 도서관에서 자주 보면서 조금 친해졌어. 그러다가 같이 을왕리 해수욕장에 다녀오기도 했고.”
“그래? 누구랑 사귀는데?”
“그런 것은 아니야. 희정이가 조금 더 친한 것 같아.”
장인걸은 달리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이 사귀는 것이야 그들 마음이고 장인걸이 뭐라 할 일이 아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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