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7
금방 끝난다고 하던 영화촬영은 무려 두 시간이 지난 후에도 계속 되었다. 하던 것을 또 하고 또 하니 너무 지루해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잠깐 구경을 하다가 떠나갔다.
아버지도 지루한지 결국 시장 입구의 명화다방이라는 곳으로 가서 거기로 연락을 달라고 전화를 했다. 입구에 공중전화가 있었다. 그 사이에 전화번호를 알아낸 것 같았다.
커피를 시켜 놓고 다방에서 아버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주로 대학에 진학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이야기에 덧붙여 다양한 경험을 하라는 이야기도 했다.
10여 분 정도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다방의 마담은 아버지와 안면이 있는지 커피 한 잔을 타와 같이 이야기에 참여를 했다.
“아드님이 명석대학에 갔다고요?”
“그래. 학교에 간 것은 좋은데 등록금에 생활비를 대려면 허리가 휠 것 같아 걱정이야.”
“에이, 장 사장님이 부자라는 것은 여기 양진 바닥에서 다 아는데 거짓말을 하시네.”
“내가 무슨 부자야. 농사라고 지어도 손해를 보기 일쑤인데.”
“농사를 짓지 않아도 트랙터, 이앙기, 콤바인만 돌려도 돈을 긁는다던데요. 농사도 수백 마지기를 짓고.”
“다 소문이야. 오히려 김 마담이 돈은 다 번다고 소문났던데. 요즘에는 논두렁, 밭두렁까지 커피배달을 나간다면서.”
“장사가 안 되니 그렇게 영업을 하는 거죠. 앉아서 장사 잘되면 힘들게 들판으로 나가겠어요.”
김 마담이 가세하자 서로 쓸데없는 농담을 하면서 노닥거리고 있었다. 그런 사이에 박 양이라고 하는 어린 여자애가 다가와서 요구르트를 하나 물었다.
“박 양아, 여기 사장님 아들이 서울의 명석대학에 들어갔단다. 이 시골에서 서울의 대학에 들어갔으니 개천에서 용 난 거지.”
“축하드려요.”
그러더니 장인걸의 앞에 앉았다. 앉더니 고개를 돌려 장인걸을 살피니 부담스러웠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키도 크고 아주 미남이네요. 나이만 조금 더 먹었으면 내 애인 삼을 텐데.”
헤픈 웃음을 지으면서 그런 말을 하기도 했다. 미스 박이라 칭하는 다방 레지는 고등학교 학생들도 대충 알고 있었다. 제법 예쁜 얼굴로 양진에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선배 누구랑 만난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돌았다.
“너랑 어울릴 나이도 아니니 꿈 깨.”
김 마담이 장재현의 눈치를 보다가 면박을 주었다.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인걸은 한 마디를 하려다가 아버지가 있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다방에는 사람이 꽤나 있었고 영화를 찍는 사람으로 보이는 자들도 몇이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도 있었다.
“저기는 영화 찍는 사람들이라는데요.”
박 양이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다른 손님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거기서도 노닥거렸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내가 예쁜 것은 알아서 나한테 영화배우 해보지 않겠냐고 하던데요.”
“정신 차려 이년아.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지. 그걸 진담으로 들었냐? 그저 꼬여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 거지. 모레까지 이 근방에서 머문다면서?”
마담의 면박에 박 양의 얼굴이 샐쭉하게 변했다.
한참 동안 다방 여자들과 노닥거리면서 시간을 보내었고 전화가 울렸다. 몇 번 전화가 왔지만 주문전화나 다른 사람을 찾았는데 마침내 아버지 이름을 불렀다.
“장재현 사장님, 전화 받으세요.”
카운터에 앉아있던 여자가 아버지 이름을 호출했다. 다방에서 전화를 기다리는 사람이 보통 많았기에 전화 바꿔주는 것이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장인걸도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버지를 따라갔다.
‘원경희를 만나지 않는 대신에 장유현이라는 배우를 만나는 것인가? 이게 나비효과라고 하는 것이겠지.’그렇게 생각하자 전에 영화촬영현장에 아버지가 나타났던 것이 기억났다. 아버지가 보면 뭐라고 할 것 같고 옆에 여자들이 있는 상황이라 다른 곳으로 도망갔었다. 그저 아버지도 장을 보러 왔다가 우연히 마주친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 때도 아버지는 장유현을 만났겠지. 아니면 내가 없으니 굳이 만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내가 있기에 억지로 시간을 내서 소개시켜 주는 것인지도 모르지.’부모이기에 번거로움을 무릅쓰는 경우가 허다했다. 먼 일가를 찾아가서 만나는 것, 그것도 친하지 않고 손아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나서는 것은 장인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성격상 귀찮은 일을 찾아서 할 사람은 아니었다.
장유현이나 장시현이 장인걸에게 꼭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알아두면 손해는 아닐 것이기에 이렇게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서 만나려고 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아버지와 장시현이라는 매니저와 아버지가 통화하는 것을 들었다. 매니저가 장유현의 사촌 동생이라는 것을 들은 상황이었다.
“우시장이 있던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았다고 거기서 보자는구나. 그쪽이 시간이 되면 우리 집으로 가든지 음식점에 가서 식사를 하든지 하자.”
장유현을 만나는 것은 제법 의미가 있는 일로 보였다. 곧 나라가 망하는 정도로 일이 좋지 않지만 장유현은 그런 와중에도 오히려 재산을 불렸다.
평소 지론이 땅은 도망가지 않는다고 부동산에 투자를 했는데 그 당시에 폭락했던 빌딩과 아파트를 여러 채 구입하여 몇 배나 재산을 불린 사실이 나중에 알려졌다.
물론 그 후에 배우 전문 매니지먼트 회사를 설립한 후에 드라마 제작에도 손을 대어 성공했다. 초기에 드라마 제작에 실패하여 적자를 보기도 했지만 자본력이 뛰어나 초기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을 거두었다.
“서울에 가면 아는 사람이라고 네 큰집뿐인데 먼 일가라도 힘이 될 사람을 알아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장재현은 아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불법이 아니라면 뭐든 할 준비가 된 사람이었다. 그런 것을 깨닫자 아무 것도 모르는 농사꾼이라고 생각하여 대화도 제대로 나누지 않았던 것을 반성했다.
“어른이니 만나면 뭔가 배우는 것이 있겠지요.”
장인걸은 그들에게 뭔가 이득을 얻을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도움을 받을 여지는 있다는 생각에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우시장에 당도하자 차들이 여기저기 무질서하게 서 있었다. 여기는 장날에는 주차료를 일부 징수했기에 무료로 주차가 가능한 장사꾼들이 아니라면 별로 사용을 하지 않았다.
“형님, 오랜만입니다. 여기 살고 계신 줄은 생각도 몰랐습니다. 상가집에서 뵈었는데 생각도 못했습니다.”
장유현이 차 밖에 나와서 먼저 인사를 했다. 훤칠한 외모에 서글서글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을 보니 역시 슈퍼스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쁜 사람을 찾아와서 번거롭지 않을까 걱정이군. 그래도 모처럼 이 근방에 온 것을 알았으니 아는 체라도 할까 해서 찾아왔네.”
“잘 하셨습니다. 마음은 있어도 바쁘다는 핑계로 집안 대소사에 참여를 못하는데 이렇게라도 만나니 반갑습니다. 어디 좋은 음식점이라도 있으면 가서 간단히 식사라도 하시죠.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아닐세. 여기에 왔으니 자네들이 손님일세. 촌이지만 제법 음식을 잘하는 식당이 하나 있으니 거기로 가세. 저쪽으로 가면 길이 있으니 말이야.”
양진에서 제법 유명한 갈비집으로 이동을 했다. 장유현과 장시현 외에도 젊은 매니저 한 명이 더 있었다. 그렇게 다섯 명이 움직였다.
“그나마 여기가 양진에서 제일 깨끗하고 먹을 만하네.”
장재현이 음식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설명했다.
“저라고 항상 좋은 음식만 먹는 것 아닙니다. 일반 사람과 하등 다를 것이 없습니다. 저도 소고기는 회식할 때나 먹지요.”
장유현이나 장시현은 그렇게 말하면서 방으로 따라 들어갔다. 홀에 의자에 앉는 자리가 있지만 칸막이가 있는 방이 조용히 이야기하기에는 좋았다.
인사를 나누고 난 아버지는 카운터로 가서 집에 전화를 하여 저녁을 먹고 들어간다고 했다. 어머니로부터 특별한 말이 없는 것이 큰어머니는 아직 집에 당도하지 않은 것 같았다.
“집에 어머니가 계시니 걱정하지 않도록 연락해야 해서.”
그러면서 집안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나중에 집안의 사정을 알게 되어 족보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아버지의 고조할아버지 네 형제에 대한 이야기부터 생존해 있는 증조할아버지 항렬부터 할아버지 항렬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사는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끝이 없이 이야기가 이어졌다. 같은 집안사람이라는 공통점 하나로 잘 모르는 사람이 백년지기처럼 어울리고 있었다.
“우리 형님이 신사동에 있는 시중은행 지점장을 하고 있는데 알지 모르겠네.”
“아, 장태현 지점장님이 친형님이십니까? 종형님이라는 것을 알고 한 4년 전부터 친하게 지냈습니다. 형님과 형제간인 것은 몰랐습니다. 저도 거기에 예금이 조금 있습니다.”
장유현과 큰아버지가 알고 지내는 관계였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집안일에 관심이 별로 없었으니 그런 내용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애는 우리 아들이네. 이번에 대학에 들어갔네.”
그러자 장인걸이 입학한 대학과 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곧 주문한 소고기가 나왔고 소주도 한 병을 시켰다. 아버지는 차를 가져왔다고 하여 딱 두 잔만 마셨다. 장유현도 내일 촬영이 있다고 역시 그 정도만 마셨다.
“서울에 올라오면 전화를 해. 보름 후면 촬영이 끝나니 만나서 한 잔 하게.”
“예, 알겠습니다.”
장시현이 대신 명함을 주었다. 전화는 장시현을 거쳐야 통화가 되었기에 장유현은 따로 전화번호를 주지 않았다. 초기에 사용하던 011 번호를 보자 감회가 새로웠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식사가 끝났고 장유현이 인근에 있는 합산온천에 숙소를 잡았다고 말을 했다.
“너 몸이 아주 좋은데 운동 하니?”
장유현이 유심히 장인걸을 보면서 물었다. 장인걸은 수능이 끝난 후부터 달리기를 했기에 제법 근육이 있었다. 거기에 미남은 아니지만 제법 말끔한 외모로 훈남이라고 할 정도는 되었다.
“달리기를 조금 합니다.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 스트레칭을 하기도 하고요.”
“건강이 중요하니 운동은 계속해.”
그러면서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보였지만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기색을 보면서 장인걸은 연예계로 진출하는 것을 말하려다가 그만 둔 것이라 생각을 했다.
삼광식품에 취직한 후에 광고계에 있는 인사들이 분위기가 있다면서 모델을 했으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종종 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오히려 외모가 좋아져 군대를 제대할 때는 조각미남이라는 말도 들었다.
결국 식사를 마치고 기회가 되면 또 만나자는 말을 하고 헤어졌다. 그러면서 집안 행사가 있으면 서로 연락을 하기로 했다.
“형, 인걸이에게 모델일이나 연기를 해보라고 하려고 하는 것 같던데 괜찮아 보였어요?”
차를 타고 합산온천을 향해 출발하자 물었다. 장시현도 일종의 스카우트를 하고 싶지만 집안사람이라 참았다.
“응, 얼굴도 그렇고 몸도 그 정도면 좋고 거기에 목소리가 아주 좋지 않아? 더구나 어린 애가 아우라가 있어. 뜬 사람이 갖는 그 미묘한 분위기 말이야. 또한 발성이 좋아 중저음인데도 또렷하잖아. 기본수준의 연기력만 있다면 뜰 것 같아.”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명석 대학에 들어갔다고 하니 권하기가 그렇더라고요. 물론 자기가 하고 싶다면 몰라도 먼저 권하기는 그렇죠?”
“그보다 우리 집안사람들도 여기저기 괜찮게 사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 대학 교수도 있고 변호사도 있고 의사도 있고 은행 지점장도 있고. 언제 한 번 자리를 만들어 볼까?”
“형님이 나선다면 모이기야 하겠지만 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인데 내키지가 않네요.”
“인기는 한순간이고 나도 미래를 준비해야지. 내년 초에 계약이 종결되면 독립할 생각이야. 사람도 필요하고 인맥도 다져야지. 연예계 인맥만 가지고 충분하지 않을 것 같아.”
장유현은 언제까지 현재의 기획사에 있기는 싫었다. 정산비율이 9:1이니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기획사에서는 금전 외에 얻는 것이 상당했다. 그것은 지금도 고스란히 기획사에 귀속이 되고 있었다. 가장 비근한 예로 끼워 팔기라고 하는 캐스팅 문제였다.
“알았어요. 그러면 집안사람을 투자자로 영입할 생각인가요?”
“그것도 고려하고 있지. 누군가에게 투자를 받아야 한다면 그들에게 받는 것이 좋지. 다른 사람보다 우호적일 것이니.”
나중에 상장을 한다면 경영권을 방어해야 하는데 집안사람이라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우호지분일 것이니 안심이 되었다.
“자리를 만들어 보죠.”
장시현은 달리 말을 하지 않았다. 독립을 염두에 두고 있기에 팀장으로 승진도 마다하고 실장에 머물고 있었다. 승진을 해도 책임만 커지지 큰 득이 없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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