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75
학교 문제도 학생이라면 수업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학교와 거래를 원하지 않았다. 물론 그러면서 학교에서 원하는 것을 따라주지 않고 있었다. 적당히 좋은 것이 좋다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면 되는데 타협이 없었다.
장인걸의 이런 태도는 방송출연에서도 드러났다. 편의를 봐주는 사람은 시청률에 상관없이 출연을 하면서도 문제가 될 여지가 있는 경우에는 양보가 없었다.
“일관성만 있으면 됩니다. 다른 프로그램에 출연을 하면서 어떤 프로그램에는 학교를 핑계대면 문제가 되지만 다 불참을 하는데 뭐라고 하는 것은 제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입니다.”
장인걸의 말에 민수길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이런 고집을 부리는 상황에서는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가수가 아닌 연기자라면 이런 고집이 통하지 않지만 가수이기에 가능했다.
추석을 앞두고 마침내 권세라가 속한 밴드 ‘문라이트’가 3집 앨범을 출시했다. 장인걸이 작사, 작곡한 노래를 두 곡이나 수록한 앨범이었다.
“네가 많은 도움을 준 덕분에 2만 장이나 발매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 고마워.”
문라이트는 기존에 2집 앨범을 내고 이번이 3집 앨범이지만 사실상 1집 앨범이나 마찬가지였다. 1,2집 앨범이 정식 앨범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미흡했고 사실상 데모 CD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장인걸은 앨범의 판매가 꽤나 될 것 같아 제작비를 투자하기로 했다. 더구나 프로듀싱과 편곡에 한 발 걸친 상황이고 자신이 만든 노래가 두 곡이나 들어간 상황이기에 팔리면 팔릴수록 자신에게도 이득이었다.
“성공할 것 같으니 투자를 한 거야. 다들 평이 좋으니 그 정도는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거야.”
마침내 앨범이 발매되고 달맞이꽃에서의 공연하고 사인회까지 마치자 그 사실을 실감하는 것 같았다. 청중의 반응도 전보다 좋았고 앨범 판매도 100장에 달했다.
“하지만 우리는 일반 행사를 뛰는 것보다 고정적인 공연을 조금 더 확대하는 정도가 고작이라 홍보가 그리 쉽지 않을 거야. 밴드라서 한계가 너무 큰 것 같아.”
권세라는 밴드의 총무를 맡고 있고 사실상 스케줄까지 관리하는 상황이라 마냥 좋아할 수만 없었다.
“잘 될 거야. 노래도 좋고 연주도 좋잖아.”
“그렇게 되면 좋지만 기대가 무너졌을 때 닥칠 상실감을 생각하면 정말 걱정이 돼.”
문라이트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3집 앨범을 냈다. 그저 그런 밤무대 밴드에 머물다 해체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최후의 승부수를 던진 상황이었다. 앨범이 실패하면 그만둘 멤버도 절반이나 되었다.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더 늦기 전에’라는 일종의 패배감이 지배할 것이고 그 결과는 밴드 해체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번 앨범에서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어야 존속할 수 있었다.
“아마 락 마니아들은 어느 정도 아는 그룹이 되지 않을까? 그러면 A급 공연자 대우는 받을 것으로 보이는데. 언더그라운드 수준을 벗어나면 뮤지션으로 활동하는데 지장은 없지 않아?”
“그 정도만 되면 월급쟁이보다야 낫겠지.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면 좋지. 그러면 나중에 명성이 있기에 음악학원을 낼 수도 있을 것이고.”
권세라의 소박한 욕심에 장인걸은 달리 말을 하지 않았다. 그만큼 언더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뮤지션의 처지가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언젠가 빛을 볼 것이라 생각하면서 음악을 하고 있지만 꿈을 달성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나도 돕고 한정수 선배님도 나서고 있으니 가능할 거야. 이영선 선배님도 오늘 음악방송에 내보낸다고 하니 제법 성과는 있을 거야.”
이영선이 인정을 했다는 의미는 음악성과 대중성이 있다는 의미였다. 친분보다 냉정한 평가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물론 이영선의 평가가 100% 맞는 것은 아니지만 실패해도 기본은 했다. 그것도 대부분 음악 외적인 문제가 생긴 경우였다.
“정말?”
“나도 방금 전에 한정수 선배님에게 들었어.”
문라이트도 장인걸과 동일한 조건에 앨범 출시를 앞두고 월광기획과 계약을 한 상황이었다. 언더그라운드를 벗어나려면 양지의 기획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불가능했다.
“히트감별사님이 틀어준다면야.”
권세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한밤의 음악여행’에 소개된 것은 최소한의 판매량을 보장했다.
3집에 나온 노래의 프로듀싱을 사실상 장인걸과 한정수가 맡아서 진행했고 특히 장인걸이 준 두 곡은 메인 타이틀곡과 서브 타이틀곡이었다. 그렇기에 곡 자체도 회귀 전에 충분히 히트를 했던 곡이기도 했다.
장인걸은 문라이트의 성공이 자신의 성공과도 상당히 연관이 있기에 남의 일처럼 외면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전에 히트한 곡을 주었지만 전의 노래를 그대로 준 것이 아니라 상당부분 수정하고 편곡한 것이기에 같은 노래라고 할 수는 없었다.
“추석 때도 집에 가지 않겠네?”
“그렇지. 추석 당일을 제외하고 최대한 풀로 카페 순회공연을 해야지. 카페들도 대목은 아니지만 꽤나 장사가 되는 시기이니 사람도 많은 편이고.”
명절 부근에는 행사는 뜸하지만 연인들의 데이트나 소규모 모임은 꽤나 많은 편이라 카페는 손님이 많았다. 문라이트는 추석 연휴기간에도 쉬지 않고 활동을 하려는 것 같았다.
박용하는 ‘아는 사람들’이라는 프로그램을 책임지는 MTV의 중견 PD였다. 그는 이번 추석 특별프로그램을 편성했다. 보통은 MC와 고정 출연자들이 친분을 통해 출연자를 섭외했다.
하지만 특별프로그램이기에 색다른 사람을 섭외하여 출연시키기로 했고 몇 명의 명단을 작성하여 섭외에 들어갔다. 그 중에 한 출연자의 섭외가 되지 않아 짜증이 났다.
“뭔가 문제가 있어?”
담당 CP인 표진성이 다가와서 물었다. 그는 원래 ‘아는 사람들’을 기획하고 진행하다 CP로 승진하면서 박용하가 맡게 되어 여전히 ‘아는 사람들’에 관심이 많았다.
“히어로 장, 장인걸이란 녀석이 나오라는데 수업을 핑계로 거절을 한 상황입니다. 반면에 시청률이 바닥인 ‘진기명기’에는 나오고요.”
“거절하는 이유가 학교 수업 때문이라는 말이야? 천운길 같은 녀석인가? 가수 중에 꼭 학생은 그런 경우가 있단 말이야. 학교와도 별로 사이가 좋지 않겠군.”
“그런 것 같습니다. 더구나 공대이기에 교수들이 수업을 빼줄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방송국의 모든 프로그램 중에 오전에 촬영이 있는 프로그램은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상에서 제외하는 말이군.”
“나중에 방학하면 출연을 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시간을 옮길 수는 없겠지?”
“당연하죠. 다들 행사를 나가고 다른 프로그램에 나가려면 오후 네 시 이전에 끝내야 하는데 불가능합니다. 그 녀석은 오후 다섯 시, 빨라야 오후 네 시 이후에야 촬영이 가능한데.”
MC나 고정출연자들은 인기가 대단했다. 그들을 잡기 위해 오후 네 시 이전에 촬영을 종료한다는 규정이 만들어졌고 그런 원칙은 3년 동안 철저히 지켜지고 있었다.
“학생이 학교 수업에 들어간다는데 어떻게 할 수는 없지. 포기해. 괜히 문제 복잡하게 하지 말고. 게스트가 그 녀석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
“문제는 그 시간에 STV에서 편성하는 것이 임시 편성인 ‘온가족이 함께 부르는 노래’인데 레전드급 가수들이 총출동한다고 합니다. 이러다가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격수를 넣어야 하는데 그 녀석이 빠지면 한 축이 무너지게 됩니다.”
채널 쟁탈전에서 중요한 것은 가내 역학관계도 중요하지만 고집을 부릴 이유도 중요했다. 보통은 특정한 사람이 주도권을 행사하지만 어떤 이유가 있다면 특별한 사람이 주도권을 행사했다. 월드컵 축구를 하면 주부대신 그 시간에는 가장인 남편이 주도권을 행사했다.
“포기해. 그런 녀석은 어려워. 한 번 원칙을 어기면 계속 끌려 다니는 것을 알기에 절대 물러서지 않아. 계속 귀찮게 하다가는 본전도 찾기 어려우니.”
표진성 CP의 특징 중에 하나가 포기할 것과 고집부릴 것에 대한 판단이 빠르다는 점이었다. 반면 박용하는 하고 싶은 것은 해야 직성이 풀렸고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집요하게 상대를 괴롭혔다. 그 때문에 적이 많은 편이기도 했다.
마라톤 대회가 끝난 후에 잠깐 통화를 했지만 추석을 앞두고 여기저기 안부 인사를 하다가 천광상사의 안광현 회장에게 전화를 했더니 잠깐 보자는 이야기를 하여 전에 만났던 동정홍을 방문했다.
장인걸은 상황이 좋지 못하기에 스케줄을 핑계로 나중으로 미룰까 했지만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아 만나기로 했다. 만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마라톤이 힘들다던데 멀쩡한 것 같습니다.”
“2~3일 고생을 하고 나니 그런대로 회복을 했습니다.”
“젊은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젊을 때야 한숨 자고나면 개운했는데 지금은 조금만 무리하면 몸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내가 장 선생을 보자고 한 것은 추석도 가까워지니 작은 선물이라도 하나 드릴까 해서입니다. 내 아는 지인이 보낸 것인데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 선물보따리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최 과장 말로는 고서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그 내용이 무예에 관한 것이라는데 누구도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금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장인걸은 고서라고 하니 궁금하여 보따리를 풀었다. 그 안에 책 다섯 권이 있었다. 다섯 권 모두 크기나 모양이 다른 것이 출처가 각각인 것 같았다.
“이런 귀한 것을 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회장님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입니다.”
안광현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특별히 아픈 곳은 없지만 기운 자체가 약해져 있었다. 뭔가 스트레스를 받아 활기가 사라진 것 같았다.
“일이 조금 풀리지 않아 힘이 듭니다. 이 바닥이 워낙 지저분한 동네라서 끝이 좋은 경우가 드뭅니다.”
안광현의 말에 장인걸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그 말 속에 많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경제 상황이 나빠지고 일이 풀리지 않으니 그동안 감춰져 있던 많은 문제가 그대로 다 드러나고 있습니다. 좋을 때야 그냥 좋은 게 좋다고 넘어가지만 상황이 어려워지면 수습하려는 생각보다 남 탓을 하면서 싸우기 급급한 것이 인간인 것 같습니다.”
결국 상황이 좋지 않으니 내부 분열이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이런 것이야 민지훈과 최유림을 통해서 어느 정도 파악한 상황이었다.
장인걸과 안광현은 차려진 음식을 먹었다. 한동안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내부 분열이 외곽까지 알려진 상황이라면 다른 여섯 개의 조직도 알 것이고 심지어 경찰이나 검찰도 알 것이라 봅니다.”
“그러니 걱정입니다. 적당히 봉합을 해야 하는데 이 바닥은 적당히 타협이라는 것이 불가능하니 말입니다. 누구 하나가 백기를 들고 투항하기 전에는 결판이 나지 않습니다.”
차태근 부회장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은퇴를 선언하는 정도가 최선의 해결책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무력 충돌이 벌어지고 어느 한쪽을 그들 방식으로 강제은퇴를 시키거나 제거하는 것으로 결판을 낼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안광현은 그런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에서 잠깐의 여유를 갖고자 장인걸을 만나자고 한 것 같았다.
“역사는 승자만을 기억합니다. 왜냐하면 승자만이 역사를 기록할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다 쏟아 붓더라도 이겨야 합니다.
전쟁이 벌어지면 누가 악인지 선인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장인걸은 안광현이 패배하는 상황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마저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할 위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안광현이 이기고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모질게 마음먹고 결단을 내리는 것이 최선일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장인걸은 우유부단하게 미적대다가 당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 먼저 정리하라고 조언했다. 힘이 있는데도 주저하다가 당하는 것만큼 멍청한 것도 없었다.
“그런데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은데 장 선생이 보기에는 어떨 것 같습니까? 내 주변에 배운 애들은 드물고 배운 애들일지라도 자기 입장이 있어 사실대로 말하지를 않으니. 설사 사실을 말해도 내가 판단이 되지 않고 믿음도 가지 않고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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