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78
18. 고향 양진에서
장인걸은 추석이 지난 후에도 꾸준히 TV에 출연하고 행사를 뛰었다. 그렇기에 학교 수업에 나가는 시간 외에 개인적인 시간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경제상황의 악화는 종종 예기치 않은 휴식을 주었다.
행사에 나가면 여름에 부르지 않았던 ‘가을날의 벤치’나 ‘단풍에 쓴 편지’를 주로 불렀는데 그렇게 하자 차트 상단에 이름을 올렸다. 마침내 1,2위를 다투게 되었고 앨범의 판매량도 다시 증가추세로 돌아섰다.
“이제 본격적인 가수로 나서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할 거야? 학교 문제는 어떻게 하고?”
장인걸은 추석에 장유현을 만나지 못했기에 저녁에 시간을 내서 집으로 방문했다. 경제가 어렵다보니 사전에 예정된 행사가 셋에 하나는 취소가 되고 있었다.
“2학기 마치고 결정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경제 상황이 어려운 상황에서 계속 활동을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일정이 잡힌 행사 중에 몇 개 취소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행사가 취소되어 이렇게 시간을 낼 수 있고요.”
장인걸의 말에 장유현의 얼굴에도 곤혹스러운 표정이 어렸다.
“그렇기는 하다. 나도 지금 태양프로덕션이 자금난에 빠져 골치가 아프다. 태양음반에 진 빚을 먼저 갚아버리는 바람에 ‘좋은 날’ 러닝개런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좋은 날’은 550만 명의 유료입장 관람객을 달성하여 큰 흥행을 했지만 제작사의 경영난으로 인해 상황이 좋지 못했다. 그로 인해 장유현은 변호사를 고용하여 민사소송을 진행 중에 있었다.
“경제상황을 지켜보고 결정하겠다는 말이지?”
“그렇습니다. 계약된 행사비도 오히려 깎자는 추세입니다.”
이제 기업마다 생사를 다투는 상황이 되니 경비절감을 외치면서 판촉 관련 행사를 대부분 취소하고 있었다. 각 단체도 행사를 축소하면서 연예인을 초청하는 것을 취소하고 있었다.
“상황이 어떻게 될지 나도 이제 모르겠다. 우리 기획사도 언제 부도가 날지 모르는 상황이라 걱정이긴 하다.”
장유현은 자신이 속한 기획사가 사업다각화를 한다면서 외식사업에 투자하거나 영화에 투자했다가 엄청난 빚만 지게 된 사정을 말했다. 그나마 장유현은 얼마 전에 드라마가 끝나 받지 못한 돈이 그리 많지 않은 상황이라 문제이지만 얼마 전에 드라마에 들어간 배우들은 기획사의 채권자들에 의해 출연료까지 가압류를 당해 정산을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일단 매몰차게 계약해지를 할 생각은 없지만 월말에 잔액을 정산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지할 생각이다.”
결국 외환위기가 코앞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것을 시발점으로 대부분의 연예기획사와 음반사가 쓰러지고 망하는 상황에 이를 것 같았다.
‘무분별한 사업다각화, 문어발 확장이 모든 기업을 다 망치고 말지. 하던 사업만 해서는 문제가 있다고 너도 나도 다른 사업을 한다고 나섰다가 다 망하고 말았다.’ “그러면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나도 너처럼 1인 기획사를 차리는 수밖에 방법이 없지. 이 나이에 다른 기획사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고. 더구나 어떤 기획사가 믿을만한 회사인지 감을 잡기도 어렵다.”
“한 번 저랑 합작하여 쓰러진 음반사를 인수해보죠. 빚을 갚지 않고 사장들이 야반도주를 한다던데요.”
“음반사를 인수하자고? 뭔가 회생시킬 아이템이 있는 거냐?”
장인걸은 장유현의 말에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설명을 하려면 그 내용이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는 한동안 저작권에 대한 보호가 취약했고 취입한 노래의 모든 저작권이 다 음반사에 귀속이 되었습니다. 저작권자에게 그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요. 20~30년 된 음반사에 그런 저작권만 수천, 심지어 서너 개의 회사에는 수만 건이 귀속되어 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음반사를 인수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저작권을 헐값에 구입하자는 말입니다.”
전에는 노래가 짧아 앨범 하나에 20개 이상이 들어 있고 작사, 작곡의 저작권 모두가 음반사에 소속이 되어 있었다. 그런 라이브러리를 가지고 있지만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해 음반사가 쓰러져도 그것에 대한 감정평가는 거의 제로에 달했다.
음반사마다 보통 20억 원 정도의 채무가 있지만 법원으로 관리가 넘어가면 파산절차에 처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면 법인 자체가 청산이 되고 말았다.
“부도가 난 후에 음반 라이브러리를 확보하는 방법도 있고 나쁜 놈들은 부도나기 직전에 어떻게 한 푼이라도 돈을 챙기려고 헐값에 처분할 것입니다. 그 때 몇 푼 주고 헐값에 인수받는 방법도 있습니다. 사실 이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죠. 먼저 권리를 넘겨받고 돈을 지급하면 됩니다.” “사전에 저작권을 확보하자는 말이구나. 하지만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을지 의문이다. 다시 앨범을 내도 팔릴지 의문이다.”
그러자 장인걸은 인터넷의 발달과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니 장유현의 눈빛이 달라졌다. 장인걸이 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한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순식간에 그런 음반 라이브러리는 노다지가 될 것입니다. 두고두고 마르지 않는 샘물이 될 것입니다. 몇 년 동안은 아무 가치가 없겠지만 5년 정도 지나면 제가 말한 것이 현실화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사전에 헐값에 인수하는 방법을 고민해 보고 쓰러진 음반사에 대해 알아보고 인수를 하는 방법을 강구해 보도록 하자. 너도 가용할 현금이 꽤나 되지?”
“이것저것 다 떼고도 30억 원은 될 것입니다. 그 정도라면 앞으로 부도날 음반사 10개의 저작권 정도는 인수가 가능할 것입니다. 태양음반이 오늘 내일 한다는데 슬쩍 인수여부를 타진해 보고 안 되면 일단 거기부터 살펴보다가 채무 정리가 되면 은행과 법원에 권리관계를 알아보고 인수를 하죠.”
계속 경제가 어려워지고 현금이 필요하다는 장인걸의 말에 장유현도 건물을 하나 살 생각이었는데 보류한 상황이라 수중에 꽤나 많은 현금이 있는 상황이었다.
“알았다. 그러면 같이 합작으로 법인을 만들도록 하자. 아니 청산 직전의 기획사나 음반사를 인수하도록 하자. 그것이 실적을 인정받아 유리할 것도 같구나.”
장유현과 장인걸은 서로 합작을 하기로 했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물론 장시현까지 불러서 그를 새로운 회사의 대표로 내세워서 일을 추진하기로 했다.
행사가 끝난 밤늦은 시각 장인걸은 장유현과 자주 사무실에서 만났다. 장시현은 기획사 일을 그만두고 은마기획이라는 기획사를 인수했다. 기존의 채권채무를 승계하는 법인양수도 방식으로 3천만 원에 인수했다.
이미 자본 전부가 잠식당한 상황에 채무가 채권에 비해 더 많은 깡통이지만 그나마 평판이 나쁘지 않고 소속 가수도 세 팀이 있어 그 정도 가치는 있었다.
몇 개의 기획사를 놓고 검토했지만 황민경과 라일라, 세틴이라는 그룹 뮤지션을 보유한 그 회사가 가장 조건이 좋은 것 같아 인수했다. 세 사람 모두 큰 성공은 거두지 않지만 10년 후에도 가요계에서 꾸준히 활동하는 뮤지션이라는 점을 장인걸이 알기에 인수하기로 했다.
장시현이 법인을 인수한 직후에 장유현과 장인걸이 각기 2억5천만 원씩 출자를 하여 45%의 지분을 획득했고 장시현은 10%의 지분을 보유하게 되었다.
또한 장유현은 소속사에 계약해지통보를 했다. 정산금을 주지 않은 상황이니 그런 절차를 밟는 것이 당연했다. 이미 다른 연기자들도 그런 절차를 밟은 상황이니 장유현만 유별난 것은 아니었다. 이미 회생할 가능성이 없는 회사에 남아 있는 것은 시간 낭비에 불과했다.
한편 장시현은 현재 음반사 중에 경영상태가 불안해 부도가 난다고 소문이 난 업체에 접근하여 라이브러리를 구매하는 협상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당장 얼마의 자금이라도 융통할 수가 있기에 크게 쓸모가 없는 앨범 라이브러리를 과감하게 처분했다.
“대충 노래 하나당 저작권 전부를 통틀어서 2천 원에서 3천 원 안팎으로 매매가 될 것 같습니다. 급하면 천 원에 거래하는 경우도 있고요. 보통 부도가 나기 직전이면 다들 그렇게 거래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지금은 아무런 쓸모가 없어 사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 번 발표를 하고 난 노래의 저작권 가치가 그리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물론 유명 가수가 부른 명곡은 몇 백만 원의 가치를 지니기도 했지만 다른 노래는 가치가 없기에 일괄적인 거래를 통해 목돈을 받으려면 한꺼번에 거래해야 했다.
더구나 노래를 발표한 가수나 저작권자들과 사실상 사이가 그리 좋지 않은 상황이 대부분이라 그런 상황에서도 저작권을 돌려주려고 하지 않았다. 뮤지션과 음반사가 계약이 끝날 때는 원수가 되어 헤어지는 것이 보통이니 당연했다.
“몇 개 음반사에서 현재 소속된 가수와 관련된 저작권, 1년 이내에 발표된 노래의 저작권을 제외하고 그 가격에 내놓을 생각이라 합니다.”
“일단 최대한 가격을 깎아서 인수하는 방향으로 해보십시오. 아마도 더 낮은 가격에 처분할 수도 있습니다. 몇 군데는 기존에 망한 회사에서 인수받은 앨범 라이브러리도 있다면서요.”
경제가 어렵기에 전이라면 여러 음반사에서 나서서 저작권을 구매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자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니 결국 나서는 사람이 없기에 충분히 저작권을 모을 수가 있어 보였다.
“일단 최대한 사 모으겠지만 음악 박물관을 만들 것도 아니라면 때 지난 구닥다리 노래들의 저작권을 살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에요.”
장시현에게 앨범 라이브러리가 어떤 가치를 지닌 것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장인걸은 왜 그것을 사 모으는지 설명을 했다.
“일단 모아보면 될 거야. 음반사 하나 당 1억 정도 잡으면 10억이면 얼추 되지 않을까? 아주 가능성이 커.”
장유현도 좋은 일이라는 듯이 첨언을 했다.
“노래방부터 모든 노래를 트는 곳이 저작권의 대상에 포함이 된다는 말이군요. 그러면 티끌 모아 태산처럼 큰돈이 되겠군요. 더구나 컴퓨터로 자동 집계가 되니 집계하는 것이 복잡한 것도 아니고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편곡의 시대가 올 것입니다. 멜로디라는 것도 사실은 유한하거든요. 그러면 기존의 곡을 새롭게 리메이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저작권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알 것입니다.”
장인걸은 나중에 음원판매플랫폼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렇게 하려면 많은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어야 협상력이 높아지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장시현은 당장 거래를 하지 않더라도 그런 라이브러리를 구입한다는 소문을 내서 거래정보를 획득하려고 했다. 물론 적당히 노래 박물관을 만들 생각이라는 말도 흘려 의도를 감추었다.
노래박물관을 만든다는 말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음원판매 사이트 자체가 모든 노래를 저장하는 것이니 박물관이나 마찬가지였고 단지 판매를 한다는 점만 감춘 것이다.
장인걸은 충실하게 학교 수업에 참가했다. 행사를 뛰더라도 수업에 지장을 주는 경우에는 절대 의뢰를 받아들이지 않도록 했다. 그런 원칙이 무너지면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시험공부 많이 했어?”
수업이 있어 강의실로 가 자리에 앉자 김진수가 일주일 남은 시험공부를 제대로 했는지 물었다. 한 달 가까이 지나자 그나마 귀찮게 하는 사람은 거의 사라졌다.
“이동 중에 차에서 할 일이 없어 교재를 많이 봤지. 지방에 행사를 하러 내려갈 경우 저녁에 숙소에서 할 일이 없어 그 시간에 공부하고. 그렇기에 다른 학생보다 공부 시간에서 절대 부족하지 않을 거야.”
장인걸은 가수활동을 하면서 학과 공부를 제대로 하여 좋은 학점을 받을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학교 모델을 한 것 같더라. 지하철의 포스터 보니 네 얼굴이 있더라.”
처음에는 다른 광고모델의 일과 동일하게 모델료를 불렀지만 결국 염가에, 일반 학생 모델보다 조금 더 받는 수준에서 일을 하기로 했고 얼마 전에 대학 설명회에도 참가하여 1학기에 과 수석을 한 사실까지 소개를 하기도 했다.
그 덕분에 대학 총장이나 보직을 담당하는 교수들과 안면을 틀 수 있었다. 물론 앞으로도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지 않기 위해 여전히 학교에 편의 제공을 요청하지 않을 계획이었다.
“대학의 일원이라는 생각에 봉사를 하기로 했지. 학교에 우수한 인재가 들어오는 것이 나중에 졸업을 했을 때 유리한 면도 있을 것 같기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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