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79
사실은 끝까지 가격을 고수하다 광고 출연이 무산되면 자칫 돈만 밝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형성될 수도 있기에 양보했다. 그 정도는 봉사의 의미로 협조를 하지만 그 이상은 학교에 끌려 다니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번 가을 축제에 저번처럼 나갈 생각이야? 다들 기대를 하던데.”
이번 가을 축제에 동아리 연합회의 합동무대가 계획되어 있지만 동아리 대표로 나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현재 특별무대를 마련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응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었다.
“축준위에서 동아리 무대와는 별개로 20분 정도 특별무대를 만들어 달라고 해서 고민을 하고 있어. 일종의 초청가수 무대.”
물론 개런티가 없는 무대이기에 고민이 되었다. 재학생이기에 개런티를 달라고 하는 것도 조금 무리한 면이 있었다. 학교에서 주최하는 행사도 아니고 학생 중심의 행사였다.
“네 생각에, 내가 특별 무대에 나오는 것이 좋을까?”
“일단 사람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대운동장에 특설 무대를 꾸미지만 지금까지 고작 2000명이 최대로 모은 정도인데 외부에 알려지면 운동장이 꽉 찰 것이고 그러면 학교의 인지도가 올라갈 것이고. 각 대학 축제라는 것이 다 똑같은데 네가 출연하면 그걸 핑계로 친구에게 놀러 오라고 할 수도 있고.”
김진수의 말은 동아리 연합회에서 특별공연을 기획하는 핵심적인 이유를 짚고 있었다. 동아리 연합회에서도 학교 인지도를 올릴 수 있다는 생각에 그런 무대를 기획하고 있었고 장인걸과 접촉하기 어렵기에 동아리 총무인 이미향과 권세라를 통해 요청을 해오고 있었다.
“동아리 연합회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지?”
“알잖아? 네가 거절하면 온갖 좋지 않은 소문이 날 거야.”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글 이유는 없지만 무시하기에는 워낙 후유증이 만만치가 않았다. 학교에서 편의를 제공받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학생이라서 누리는 것도 적지 않았다.
더구나 1학기 때 동아리 축제 때 무대에 선 것도 데뷔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로 인해 학생들의 관심을 받았고 앨범도 많이 사준 면이 있었다.
그의 팬을 자부하는 학생도 많았다. 팬 서비스 차원에서라도 무대를 꾸미는 것이 필요했다.
“알았다. 해야겠네.”
결국 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김진수의 말에 바로 승낙하기로 했다. 일정이야 일부 조정이 가능하지만 빨리 통보해 주는 것이 좋은 시간을 확보할 수가 있었다.
장인걸은 자신의 특설무대를 위해 동아리의 협조를 요청했고 동아리에서는 물론 적극적으로 호응을 해주었다. 물론 백밴드 수준의 지원이지만 그런 정도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대신에 동아리 공연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특별무대를 하는데 동아리 공연까지 참여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았고 다른 동아리 회원이 묻히는 수도 있기에 나가지 않기로 했다.
이미향과 권세라도 장인걸이 동아리 공연의 전면에 나서는 것은 동아리 전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장인걸이 빠지겠다고 하자 받아들였다. 대신에 장인걸의 공연에 유정훈, 권세라, 유화영, 이미향이 백밴드로 나서기에 사실상 동아리 공연을 두 번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장인걸은 동아리 사무실을 방문한 권세라를 만났다. 거기서 권세라가 동아리 행사까지 참여한다고 하자 걱정스럽게 물었다.
“문라이트로 활동을 하면서 동아리 공연까지 준비가 가능해?”
최근 ‘함성’이라는 타이틀곡이 5위까지 올라 KTV까지 출연을 할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발라드도 락도 아닌 일종의 락 발라드로 인기가 많았다.
앨범도 출시 일주일 후에 추가주문으로 3만 장을 더 제작하여 배포하였고 그것도 거의 다 소진이 되어 다시 추가제작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아. 더구나 네 노래는 이미 마스터를 한 상황인데 어려울 것이 있을까? 낮에만 종종 모여서 연습하면 되잖아.”
“알았어. 고마워.”
“사실 문라이트와 같이 와서 공연을 할까 고민하기도 했는데 개런티 문제가 걸려서 나서기가 곤란해. 나 혼자라면 몰라도.”
권세라는 명석대 학생이지만 다른 멤버는 학교와 상관이 없었다. 그러니 문라이트가 공짜로 공연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나야 학교 학생이니 문제가 없지만 문라이트는 무료공연은 불가능하지. 최소 200은 받아야 할 텐데. 동아리 공연을 준비하는 축준위는 총학이 아닌 동아리 연합회 소속이고.”
밴드는 기본적으로 인원이 많기에 금액이 솔로보다 높았다. 권세라가 있다고 하여 무료공연이나 할인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밴드가 놀더라도 공연을 할 상황이 아니었다.
“3집은 일단 소기의 성과를 거둔 상황이고 문라이트도 언더그라운드 수준은 벗어난 것 같아 다행이야.”
“노래가 좋아서 그렇지, 뭐. ‘함성’과 ‘청춘고백’을 제외하면 다른 노래는 흔적을 찾아보기도 어려운 실정이야. 역시 노래가 좋아야 가수는 뜨는 것 같아.”
처음에는 3집 앨범에 수록된 여러 노래를 불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청중의 반응은 함성과 청춘고백에 집중이 되었다. 그 두 곡만 앨범에서 살아남고 나머지는 죽었다. 장인걸이 발표한 1집 앨범은 12곡 모두 일정한 팬을 확보하여 모두 다 살아남았다고 할 수 있었다.
“좋은 노래를 만들지 못하면 여전히 그저 그런 밴드에 머물 거야. 다들 작사, 작곡을 더 열심히 하자고 다짐한 상황이야.”
권세라의 말에 장인걸은 왠지 죄책감이 느껴졌다. 자신이 수정하고 편곡을 했지만 원곡은 남의 저작물이기 때문이었다. 온전한 자신의 노래였다면 그런 성과를 내지 못했을 것 같았다.
“역시 노래로 먹고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 앨범을 낼 때야 기대가 컸지만 냉정한 현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지. 이번 앨범도 노래 빼면 그저 그런 밴드의 노래라는 것을”
권세라의 지적은 현실을 적시한 것이기도 했다. 문라이트의 자작곡은 1,2집의 노래보다 수준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킬링포인트가 부족했다. 그렇기에 한정수와 장인걸이 손을 댔지만 히트를 하기에는 미흡했다.
“하지만 이제 한 발 정도만 더 나가면 될 거야. 다음 앨범에서 성공을 거두면 돼. 나도 시간이 나는 대로 같이 작업을 돕도록 할게.”
혼자 작업을 하는 것보다 한정수나 문라이트와 같이 작업하는 것이 나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정수 선배님과 이야기를 했는데 내 2집의 녹음에는 악기 세션을 사용할까 해. 그 때에 문라이트가 조금 도와주었으면 해.”
전이라면 문라이트의 실력이 부족할 것이지만 여름가요축제와 이번 3집을 내면서 그들의 연주능력이 향상되었다. 그러니 앨범에 세션으로 불러도 될 것 같았다.
“하기야 1집의 반주가 조금 심심하긴 했지. 직접 연주하면 그 정도보다는 낫겠지. 우리야 세션으로 참여하는 것 정도는 해줄 수 있지. 그러면서 얻는 것도 있을 것이고.”
권세라는 거절을 하지 않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거절하여 장인걸과 멀어지면 아쉬운 것은 문라이트였다. 그것을 알기에 홀로 서기를 하려고 발악하고 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장인걸은 설악산 설악리조트 단풍축제에서 행사를 마치고 양진으로 가고 있었다. 목요일 수업을 마치고 오후 네 시에 출발하여 일곱 시 반쯤 현장에 당도하여 여덟 시에 무대에 올랐고 무대를 마치자 바로 시골집으로 가고 있었다.
다음날 양진고등학교 동문회 체육대회에 오전에 참여하여 축하 무대를 꾸민 후에 오후에 인근에서 진행하는 고구마 축제에 초청받아서 공연을 할 계획이었다.
“네, 지금 가고 있어요. 저는 집에서 머물고 다른 직원들은 읍내 모텔에 숙소를 잡아두었어요.”
장인걸은 집에 전화를 걸었다. 사전에 양진고등학교에서 행사가 있다고 해서 집에 간다고 알려놓았다.
“천천히 와. 밤길은 위험하니 서둘지 말고.”
“네, 그렇게 할게요.”
아마 12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할 것이지만 어쨌든 집에 잠시라도 가게 되니 기분이 좋았다. 물론 연휴 3일간 양진 인근에서 행사를 하여 본가에서 머물 수가 있었다.
그 지역의 여러 행사에 나가 자신의 고향이 양진이라는 것을 알려 일종의 연고지 인기 강화를 노린 투어를 기획했다. 집중적으로 그 지역의 행사를 잡다보니 단가는 조금 낮았지만 개의치 않고 진행했다.
나중에 하는 것보다 지금 하는 것이 2집 앨범을 발매할 때 효과가 나올 것 같았다. 나중에는 초청단가가 올라갈 것이고 그러면 바닥을 훑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장인걸은 밤 11시 경이 되어서야 양진의 집에 당도했다. 집에 가자 식구들 누구도 잠자리에 들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보름 전에 추석이라 봤는데도 오랫동안 보지 않은 사람처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오빠가 내일 공연하러 온다고 소문나서 다들 구경하러 간다던데, 공설운동장에 사람 엄청나게 모일 거야.”
체육대회를 하는 장소는 스탠드에 1만2천 명이나 입장이 가능했고 운동장에서 체육대회를 하니 주천에서 축제를 할 때보다 더 많이 모일 수도 있었다.
장인걸은 차에서 잠을 자지 않은 상황이기에 피곤했고 식사를 마친 후에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에 장인걸은 인숙이랑 같이 공설운동장으로 갔다. 고등학생인 인숙이도 모처럼의 휴식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운동장에 도착하여 일종의 간이 부스를 설치하고 CD와 카세트테이프를 판매했다. 이미 행사계약을 하기 전에 그런 일을 허가받은 상황이었다.
장인걸은 사전에 수배하여 가져온 책상에 앉아서 사인을 해주었다. 같이 온 스텝들은 앨범을 제시하여 사인을 받는 것이 일종의 예절이라는 말을 흘려 앨범 판매를 독려했다.
그동안 장인걸의 앨범이 많이 팔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 자리에 온 사람 중에 열에 하나도 구입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제법 많은 앨범이 판매가 되었다. 이름이 없는 것도 아니기에 장인걸이 동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선뜻 지갑을 열었다.
“찬조금 백만 원을 냈어?”
장인숙이 행사 팸플릿을 보면서 옆에 와서 슬쩍 물었다. 거기에 세 번째 순서로 찬조금 100만 원을 낸 사실이 적혀 있었다. 장인숙은 유지들처럼 찬조금을 낸 것이 신기한 표정이었다.
“응, 행사비 100만 원을 받았는데 그와 동일한 금액을 찬조금으로 냈지. 거기에 사인 CD 50장을 경품으로 제공했고.”
장인걸은 회귀 전에 자주 봐서 익숙한 동문회 간부들을 만나서 인사를 했다. 동문회의 회장부터 부회장, 사무국장, 기별 동창회장들을 만나서 인사를 했다. 대부분 서울이나 수도권에 살고 있었다. 동문회 체육대회라 각 지역에서 버스를 동원하여 아침 일찍 출발한 것 같았다.
올해는 고향인 양진 공설운동장에서 체육대회를 하지만 격년제로 서울에서도 동문회 체육대회를 개최했다. 그 때에는 양진에서 서울로 버스를 타고 올라왔다.
“아, 이 사람아, 이렇게 올 거면서 뭘 그리 뒤로 빼나?”
황현준은 장인걸을 보자 행사 섭외과정에서 빡빡하게 대한 것에 대한 푸념을 했다.
“알다시피 제가 계약에 의해 움직이는 상황에서 편의를 봐드리기 어렵습니다. 제 본심은 공짜로라도 해드리고 싶지만 절차가 그렇지가 못합니다. 그래서 동문의 도리를 하자고 찬조금을 대신 냈지 않습니까?”
“그거야 알지만 사람이 받아들이는 것은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인데. 어쨌든 결과는 같지만 너무 빡빡해.”
“혹시라도 다른 사람이 제 계약에 대해 물으면 사실대로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찬조금에 대해서는 가급적이면 언급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장인걸의 말에 황현준의 표정이 조금 심각하게 변했다.
“다른 모임에서 연고를 내세워서 섭외하는 것이 내키지 않는 것 같군. 알았네. 자네에게 부담이 되는 일이라면 그렇게 하겠네. 향우회 같은 곳에서도 자네를 부르려고 하던데.”
장인걸은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았다. 황현준은 동문회 사무국장도 맡고 있지만 재경 향우회에도 관여를 하고 있었다. 단체 이름과 맡고 있는 직책만 다르지 각종 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은 대동소이했다. 어느 모임에서는 회장을 맡고 다른 모임에서는 이사를 맡는 등 겸직을 하고 있었다.
“고향이기에 약간의 편의를 봐드릴 수는 있지만 만사를 제쳐두고 도울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고등학교 동문회와 재경향우회는 전적으로 다른 모임입니다.”
장인걸의 말에 황현준도 이해를 한 것 같았다. 사적인 관계와 공적인 관계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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