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8
나중이라면 모르지만 당시에는 반주로 소주 두 잔 정도 마시는 것은 음주운전으로 적발이 되지 않았다. 더구나 식사도 하고 술을 마신지 한 시간 정도가 흘렀기에 술기운도 거의 사라진 것 같아 아버지가 운전을 해도 만류하지 않았다.
두 시간 가까이 저녁식사를 했지만 워낙 일찌감치 시작한 덕분에 일곱 시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2월 초라 그런지 아주 어두워져 있었다.
“서울에 가면 한 번 찾아가 봐라. 서울에 큰집이 있지만 기댈 곳이 하나 더 있다면 좋을 것이니.”
“그렇게 할게요. 배우라 사회경험이 많을 것이니 도움이 되겠죠. 또한 유명한 사람을 많이 알 것이니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람간의 관계에서 이득을 따져서 만나는 것은 아니지만 서로 돕고 살아가는 것이다. 한 번 도움을 받으면 나중에 갚아주면 되는 것이다. 더구나 너는 어리니 누구에게 도움을 받는 것으로 자존심 상할 것도 없다. 독불장군이라고 사람은 혼자 사는 것은 아니다.”
장재현은 다소 아쉬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을 했다. 그런 표정을 보면서 장인걸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고 조용히 뒤를 따라갔다. 그런 이면에는 젊은 날에 했던 선택을 아쉬워하는 심정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공부를 하라는 할아버지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가산을 정리하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닌데도 그저 어린 마음에 형이 공부하면 된다고 공부를 하지 않았다.
물론 할아버지나 할머니 입장에서 아버지의 선택이 반가운 면도 있기에 그 뜻을 존중해 주었지만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게 되니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조금만 넓게 마음을 가져 주변의 도움을 받을 생각을 했다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았을 것이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떻게든 잡는 것이 좋았다.
장재현은 장인걸을 만날 때마다 그런 잔소리를 많이 했고 장인걸은 그런 말을 듣는 것이 싫어 피한 면도 있었다. 자신의 아쉬움을 자식에게 전가하는 것 같아 싫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마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들이 조금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 보였다.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여 자신의 발전을 도모하는 적극성을 바란 면이 컸다.
3. 고교 졸업
집에 돌아오니 예상대로 큰어머니가 와 있었다. 전처럼 역시 차가 끊어져서 다시 상갓집에 가지 않고 찾아온 것이다. 다시 상갓집에 가면 잘 곳도 불편하고 편히 쉬지 못하고 아침에 발인을 할 때 장지까지 따라가야 하니 그냥 돌아가지 않은 것이다.
“애가 기숙사에 들어가면 좋을 텐데 기숙사는 싫다고 자취를 한다고 하니 걱정이에요. 형님이 자취방을 좀 알아봐 주면 좋겠는데요.”
“그럴까? 명석대학교라면 우리 집에서도 차로 20분 정도 떨어져 있으니 한 번 알아볼까?”
큰어머니가 알아본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장인걸은 별로 내키지 않았다. 적당하다고 소개해준 자취방이 학교에서 조금 멀었다. 시골출신인 장인걸이 보기에 그리 멀지 않았는데 나중에 도시에 적응하니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굳이 반대를 하지 않았다. 계약하러 서울에 가야 하는데 그 때 가서 둘러보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더구나 사촌인 민기가 그리 좋은 대학에 가지 않은 상황인데 도움을 거절하는 것이 이상할 것 같았다.
“전세를 얻는 것이 월세를 내는 것보다 이득일 거야, 동서.”
큰어머니 말에 장인걸은 고민이 되었다. 전세로 들어갔다가 전세가격이 떨어지고 주인마저 금융사정이 어려워져 나중에 군대 갈 때에도 제대로 보증금이 나오지 않아 문제가 되었다.
“전세가 속편한데 그렇게 하려면 목돈이 필요해서 걱정이에요. 그냥 월세로 할지 말이에요.”
“당장은 목돈이 들지만 추가 비용이 없으니 좋을 거야. 월세 그것도 무시하기 어려워.”
큰어머니의 말에 전세를 얻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차라리 월세로 돌리고 나중에 IMF사태가 왔을 때 투자하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장인걸은 그 정도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는 자신의 방으로 갔다. 대화에 참여하는 것은 괜히 감정만 상할 여지도 있었다. 나중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에게 의중을 물을 것이니 그 때 이야기하는 것이 나았다.
‘큰어머니가 가고 난 다음에 저녁에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다. 전세를 얻는 것이 신경 쓸 것이 없다는 말에 따르지만 맘에 들지 않는 집에서 2년간 살면서 엄청나게 후회를 했다.’장인걸은 노트를 펼쳐서 추가적으로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만이 아니라 아버지, 어머니, 동생 인숙이부터 시작하여 아는 사람의 개인적인 일들까지 기록해 나갔다.
그렇게 하자 적어야 할 것이 상당히 많았다. 친구부터 시작하여 학교 다닐 때 알았던 대학 동기까지 적었고 이웃에 살았던 사람까지 기록하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다음날 학교에 가니 황명환과 안석진이 전날 있었던 여학생들과의 만남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참석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도록 이런저런 허풍을 섞어서 말을 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그들은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전에도 자신만 원경희와 만났지 나머지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 인연이 없었다.
“원경희가 내가 귀엽데.”
안석진이 그렇게 말해 어떻게든 자존심을 세우려고 했지만 장인걸은 그리 관심이 없었다. 원경희는 키가 작은 남자에 대해서는 그리 관심이 없었다. 자신이 하이힐을 신어도 문제가 없는 남자를 만나려고 했다.
그들 셋 중에 그런 조건에 적합한 사람은 오직 장인걸이 유일했다. 황명환도 고작 176 정도라서 10cm 높이만 되어도 오히려 더 컸다.
“남자가 귀엽다는 말을 들어서 좋겠다.”
장인걸은 그렇게 말해 오히려 안석진의 야코를 죽였다. 그런 식으로 상대를 멸시하는 투의 말은 일종의 장난이었다. 일종의 팩트폭력이나 마찬가지였다. 성인이라면 큰 실례일 것이지만 철없는 시절에는 그리 큰 문제도 아니었다.
“원경희가 너한테 관심을 보였는데 네가 오지 않아서 실망한 것 같던데.”
황명환이 알려주기 싫다는 표정으로 그런 이야기를 했다. 아마도 사실일 것 같았다. 자신이 나온다고 하니 나왔다고 말했던 것을 보면 그런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었다.
“관심 없어. 여자는 군대 다녀온 이후에 사귈 생각이야. 그리고 우리 동기는 다 형수님이라는 말도 있잖아. 우리 짝은 중학교나 국민학교에서 찾는 것이 맞아.”
종종 선생님들은 이성에게 관심을 두지 말라면서 그런 농담을 던졌다. 보통 서너 살 아래의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보통인 한국 사회에서 맞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하여간 재미없는 것은 바뀌지 않아. 연애를 하는 거지 누가 결혼을 하냐? 여자들도 연애는 동갑과 하고 우리가 군대에 가면 선배들과 만나서 결혼하는 것이지.”
황명환의 말에 장인걸은 달리 논쟁을 하지 않았다. 단축수업을 하고 일찌감치 끝나자 그들과 어울리지 않고 집으로 도망을 갔다. 괜히 그들과 어울려야 담배나 배우고 당구장에 가거나 읍내를 배회할 것이니 의미가 없었다.
“난 간다. 재미있게 놀고.”
장인걸은 굳이 그들과 가깝게 지낼 생각이 없었기에 그냥 집으로 갔다. 그들도 아쉬워하면서도 억지로 잡지는 않았다.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전세와 월세를 가지고 논쟁이 있었다. 장인걸은 전세를 할 것인지 월세를 얻을 것인지 쉽게 판단이 되지 않았지만 결국 전세보다 월세가 끌렸다.
“일단 1년 정도 월세로 살고 그 후에 판단을 하는 것이 어떨까요? 1학년 마치고 군대에 갈 수도 있고요.”
장인걸은 일찍 군대에 갈 생각은 없지만 월세를 얻자고 했다. 당장 은행에서 융자를 얻을 것인데 그것이 IMF 사태가 터지면서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니 대출을 받지 않는 것이 유리했다.
“더구나 지금 재벌이나 대기업들마저 부도가 속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시중에는 돈이 마를 것이고 집값도 폭락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전세를 돌려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면서 전세가 폭락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제때 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했다.
“그러면 차라리 집을 사는 것은 어떠냐? 내년쯤에 뭔가 해보려고 모아놓은 돈이 조금 있는데.”
“나중이 되면 반값으로 폭락할 것입니다. 차라리 그 때 사는 것이 좋습니다. 아마 내년 정도가 되면 본격적인 폭락이 시작될 것입니다.”
장인걸은 반대를 했다. 그러다가 왜 고생했는지 떠올릴 수가 있었다. 바로 며칠 후에 싼 값에 나온 논을 대출받아서 구입하게 되는 것이 떠올랐다. 이웃에 살고 있는 할아버지가 돈이 급해 논을 내놓았는데 그것을 샀다.
“그러니 당분간은 아무리 싸도 부동산은 구매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반값으로 떨어질 것인데 살 필요가 없습니다. 사업이 어려워지고 빚을 갚지 못한 사람이 속출하게 되면서 사방 천지에 팔려고 내놓은 부동산이 널려 있을 것입니다.”
장인걸의 말에 아버지의 표정도 굳어졌다. 반값으로 폭락할 것은 아니겠지만 요즘 대기업들이 무너진다는 뉴스가 속출하고 있고 장사가 안 된다는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리고 있었다.
“알았다. 월세는 6개월이나 1년 단위로 계약이 되지?”
“네 그럴 것입니다. 특히 대학가는 학기 단위로 돌아가니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임대차보호법이 제대로 적용이 되지 않았고 나가려고 하면 보증금에서 중개수수료의 일부만 제하고 돌려받으면 되었다. 그리 큰 금액이 아니기에 언제든지 나갈 수가 있었다.
보통 집주인들은 수익률이 높은 월세를 선호했지만 돈이 없기에 전세로 내놓았다. 반대로 학생들은 돈이 있으면 전세로 방을 얻었고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월세로 들어갔다.
월세 보증금도 3개월 월세를 선납하는 수준이었기에 그리 많지가 않았다. 명석대학교 입구의 월세는 방 한 칸이 대략 7~15만 원, 방 두 칸이 10~20만 원 수준이었다.
물론 고급 빌라나 아파트는 그보다 훨씬 비싸기도 했지만 다세대는 그 정도였다. 교통이 불편하고 반지하라면 그보다 더 낮은 가격도 있었다.
진성민은 같은 대학 진학자 모임으로 졸업 하루 전에 점심 약속을 잡았다. 졸업식 예행연습을 마치고 그들은 양진 읍내에 있는 화빈루라는 중국음식점에서 만났다.
“2반의 지원이, 미대에 들어갔어.”
장인걸이 알지 못했던 새로운 합격자가 나타났다.
“사실 떨어졌는데 미등록자가 발생해 어제 보결로 등록할 생각이 없는지 연락이 와서 등록했어.”
채지원이라는 여학생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을 했다. 아마도 나중에도 보결로 들어갔다는 사실 때문에 친구들에게 알리지 않아 장인걸이 몰랐던 것 같았다.
“무슨 과?”
“미대공대라는 조소과, 우리 집이 목공소를 하잖아. 그 덕에 목공예를 했어.”
채지원의 집은 일반적인 목공소가 아니라 일종의 공예공방으로 나무뿌리를 가공하거나 전통가구를 만들었다. 시골에서 흔치 않은 예술 하는 집안이었다.
“지원이 아버지가 목공예 장인으로 국가에 등록이 되었데.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 무형문화재로 지정은 안 되었지만 약간의 지원금도 받는다던데.”
이정숙이 채지원에 대해 보충 설명을 했다. 그래서 네 명이 아닌 다섯 명이 모였다.
“고작 다섯 명이지만 가장 많은 숫자가 합격을 했다고 하더라. 선배도 재학생은 고작 여덟 명에 불과하다고 해.”
양석현이 그렇게 설명을 했다. 당시에는 학교니 동문이니 하는 의식이 강해 같은 고등학교 출신들끼리 자주 모였다.
“고작 다섯 명이지만 개강을 하면 한 달에 한 번 정도라도 모이자. 시간이 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점심도 같이하고.”
양석현이 나서서 앞으로 서울에서 친하게 지내자고 이야기를 했다.
‘하긴 원경희를 만나고 다른 것은 생각하지 못했으니 애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했지. 내가 진성민에게 이야기를 한 것이 이렇게 변화를 준 것 같은데 이렇게 하다가 나중에는 얼마나 바뀔지 모르겠군.’이정숙이나 채지원은 진짜 그 또래의 여학생이었다. 그렇기에 대화를 하는데 어렵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원경희가 특이했지. 물론 여자나 남자나 이성에 빠지면 물불을 가리지 않지만.’당시의 장인걸에게 오직 관심은 원경희와 같이 보내는 것뿐이었다. 그나마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 것은 잊지 않아 학교 공부는 충실히 임한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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