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80
장인걸은 앨범에 사인을 해 주다가 본부석으로 가서 사람들과 인사를 하기도 하면서 체육대회를 지켜보았다. 아홉 시부터 체육대회가 시작이 되었고 축구나 배구, 농구 같은 구기 종목의 예선이 진행되었다. 위 기수와 아래 기수를 적당히 하나로 묶어서 팀을 구성하였고 운동장 주변에는 기별 동창회별로 차일을 쳐서 모이도록 해놓고 있었다.
“하여간 젊은 애들이 문제입니다. 25회까지는 잘 참여를 하는데 그 밑은 아예 나올 생각을 하지 않으니.”
25회는 대략 나이가 30대 후반이었다. 그 이전 선배들은 많이 나왔지만 그 이후의 후배들은 거의 참여를 하지 않고 있었다. 차일을 보더라도 25회 이전은 각 기수마다 하나씩 차지하고 있었고 그 이후 동창회는 2~3회를 묶어서 하나의 차일을 차지하고 있었다.
“왔냐? 곧 공연할 것 같네.”
장인걸이 43회에 해당되는 차일에 가자 10여 명의 동기들이 모여 있었다. 동기회장과 황명환, 그리고 10여 명이 모여 있었다. 황명환은 작은 아버지 때문에 끌려나온 것 같았다.
“개막식을 하고 난 다음에 바로 공연을 하기로 되어 있어.”
그렇게 말하고 장인걸은 동기들과 인사를 했다. 얼굴만 알지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회귀한 이후에 특별한 접점이 없기에 10년 이상을 지난 후에 보는 것이나 마찬가지라서 얼굴과 이름이 연결되지 않았다.
“애들한테 연락을 했는데 다들 게을러서 개막 시간이 되어야 올 것 같아. 여기 양진에 있는 애들은 다 오라고 했는데. 가족들도 올 수 있기에 사람들이 많이 올 거야. 너도 온다고 플래카드 붙어 있는 것 봤지?”
“나도 봤어. 체육대회 플래카드 아래에 ‘양진고 43회 동문 가수 히어로 장, 11시 전격 기념 공연’이라고 되어 있더라.”
장인걸은 이미 공연을 할 수 있는 환경인지 살펴본 상황이었다. 다행히 오후에 노래자랑을 할 계획으로 음향장비를 좋은 것으로 설치해 놓아 문제는 없었다. 장인걸은 좋은 마이크와 기타만 가지고 가면 될 상황이었다. 이미 사전에 MR도 전달이 되어 신호에 따라 음악이 나오도록 되어 있었다.
원래 계약은 2+1의 계약이지만 그런 것이 지켜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아마 3+2 정도는 될 것 같았다. 15분 정도를 공연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 20분, 길면 30분 정도까지 공연할 가능성이 높았다.
“저기 스탠드에 있는 사람들 보이지?”
장인걸은 시선을 스탠드로 돌렸다. 그러자 스탠드에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공연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아 있는데도 2000여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이 여기저기 모여 있었다.
“동문회와 연관이 없는 사람들이야. 엄밀히 따지면 동문의 가족이나 친척쯤 되겠지.”
“나 때문에 온 사람들이라는 말이네.”
장인걸이 온다고 하니 찾아온 사람들이라는 말이었다. 유난히 어린 학생들이 많이 보였다. 특히 여학생들이 많았다.
“아이고, 저기는 상진중학교, 저기는 영일중학교, 멀리서도 왔다. 시내버스로 최소 30분, 골짜기라 거의 한 시간은 가야 하는데. 아침부터 일찌감치 서두른 것 같아.”
장인걸은 어린 학생들이 아침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고향 사람이 와서 구경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제대로 공연해야 할 의무감이 들었다.
“일단 다시 사인 좀 하고 올게.”
장인걸은 급히 다가와서 글을 쓰는 시늉을 하는 김기현을 보자 그렇게 말하고 다시 가판대로 갔다. 그러자 30여 명이 앨범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인을 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저쪽 공설운동장 입구 쪽으로 가서 판매를 하면 더 팔릴 것인데 여기는 동문만 오는 곳이라 아쉽네.”
행사장은 공설운동장 안쪽이라 가판대를 아래쪽 운동장 입구에 만들어서 일반인들에게는 앨범을 판매하지 못하고 있었다. 황지현이 운동장 스탠드에 앉은 사람을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정 아쉬우면 행사 끝나고 점심때쯤에 스탠드 위로 자리를 옮겨 사인회를 하는 것도 방법이죠.”
“되었습니다. 사인을 하는 것도 힘든 일입니다.”
장인걸은 굳이 억지로 앨범을 판매하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어린 학생들에게 일종의 충동구매를 강요하는 것 같았다.
장인걸은 공연을 하는데 굳이 제약을 두지 않았다. 시간이나 다른 제약을 두지 않으려고 오후 세 시까지 여유를 둔 상태였다.
11시가 가까워지는 것 같아 장인걸이 본부석으로 가자 시장부터 읍장, 시의원 등 지역 유지들이 와 있었고 그들과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과 인사가 끝나자 곧 이어서 체육대회 개회식이 진행되었다.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죠?”
장인걸은 개회식이 끝나가는 것 같아 사무국장인 황현준에게 물었다. 개회식이 끝나고 공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점심시간이 12시이니 그 이전까지 시간이 있었다.
“30분 정도는 가능할 거야. 그 정도를 공연하려고?”
“사람들이 꽤나 모인 것 같아서요. 운동장에만 대략 3000명이 모였고 스탠드에 5000명 정도 모인 것 같아서요.”
“동문들만 해도 전보다 두 배 이상 온 것 같군. 매년 이렇게 온다면 좋을 텐데. 내년에도 잘 좀 부탁해.”
동문 체육대회를 하면 보통 연인원 1000여 명 정도, 동 시간대 최고 500여 명인데 지금은 동문만 해도 4배가량은 온 것 같았고 일반인까지 하면 10배 이상 되는 인원이 동 시간대에 모여 있었다.
스탠드에 모인 인원은 개회식을 하는 중간인데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아마도 공연시간에 맞춰서 양진 주변의 주민들이 입장하는 것 같았다.
“길게 공연하면 좋겠지만 다섯 곡 정도를 부를 생각입니다.”
장인걸은 그렇게 말하고 사회자가 마침내 개회식 종료를 선언하자 올라갈 준비를 했다. 사회자가 장황할 정도로 장인걸을 소개했다. 요는 장인걸이 바빠서 오지 못할 상황이었는데 동문회에서 어렵게 사정해서 오도록 만들었다는 말이었다.
“어렵게 불러서 온 것이 아니라 바쁜 척 하다가 온 장인걸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선배님, 동기들, 그리고 후배님들까지, 그리고 저기 예비 후배님들도 계시는 것 같습니다. 또한 스탠드에 고향분들이 많이 찾아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장인걸은 같은 말이지만 일단 장난스럽게 받아치면서 무대로 나섰다. 장인걸이 사용하는 마이크는 전용마이크였기에 조금 달랐다.
“일단 무대에 올랐으니 노래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신나는 ‘한여름의 축제’부터 달려갑니다.”
장인걸은 자신의 노래가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기에 가장 템포가 빠른 노래로 시작을 했다. 자신의 노래를 들으려고 온 사람들이니 자신의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서 공명을 사용했다. 내공을 끌어올려 노래를 불렀다.
“제 노래를 두 곡이나 했으니 조금 신나는 노래를 메들리로 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오신 어머님, 아버님, 그리고 할머님, 할아버님들을 위한 노래입니다.”
장인걸은 신나는 트로트 세 곡을 메들리로 편곡하였고 그것을 불렀다. 그러자 사람들이 박수를 치면서 같이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마치고 인사를 하자 사람들은 노래를 마치는 줄 알고 ‘앵콜’을 외쳐댔다. 사회자가 나서서 다시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여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하고 다음 노래를 했다.
“이제 가을입니다. 이 계절에 어울리는 노래 두 곡을 마지막으로 들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장인걸은 가을의 노래인 ‘가을날의 벤치’와 ‘단풍에 쓴 편지’를 부르는 것으로 공연을 마쳤다. 자신의 노래를 듣기 위해 양진의 사람들이 5천명 가까이 몰려온 것이 고맙기도 했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다시 한 번 공연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고작 다섯 곡을 불렀지만 양진에서 장인걸의 지명도는 그만큼 높아졌다. 식사를 하러 동기들에게 갔을 때 모두가 신기한 것을 보는 표정으로 장인걸을 보았다.
장인걸은 동문회 체육대회에 참여하고 오후에 자리를 떠나 두 군데의 행사를 뛰고 집으로 왔다.
“외할머니는 어때요?”
추석 때 주천병원에 입원한 이후 아직까지 퇴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없는 곳에서 상황을 물었다. 혹시라도 아버지가 있을 경우 말을 못할 수도 있기에 따로 자리를 마련했다.
“그저 그렇지. 나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고. 나빠지지 않게 하는 것도 버겁지. 심부전인데 화병까지 도진 상황이니.”
“외삼촌은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병원에는 와요?”
“지금은 어디 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 애들 엄마가 결국 폭행으로 고소하고 이혼소송까지 냈다고 하더라. 평소에 애 엄마나 애들한테도 손찌검을 했다고 하더라. 그동안 올케와 애들의 병원 진료기록을 보니 가관이 아니더라. 경찰에서 조사받으러 오라고 했는데 가지 않아 경찰이 우리 집까지 찾아왔더라.”
“조사를 가지 않으면 체포영장이 떨어지고 잡히면 구속이 될 것인데 외삼촌 집에 없어요?”
“추석 지나 집에서 칼부림하다가 경찰에 잡혀갔고 긴급으로 접근금지신청이 받아들여져 집에서 쫓겨났다고 하더라. 그래서 외할머니네 빈집에 있었는데 소환장 날아오니 그 후에 잠적했다고 하더라.”
“외할머니네 있었으면 혹시 집문서나 그런 것에 손대지 않았을지 걱정이네요.”
“그런 것은 다 내가 갖고 있다. 혹시라도 와서 힘으로 빼앗아 갈지 모른다고 나에게 맡겨 두었다. 외삼촌이 사업한다고 할 때 나한테 줘서 내가 갖고 있어. 추석 때 이미 집을 완전히 다 뒤집어엎었다고 하더라. 말로는 명절 앞두고 청소한다고 했는데 집문서나 인감도장, 통장을 찾은 것 같다고 하더라.”
“하여간 문제네요. 잡히면 바로 구속이 될 것인데 어떻게 할 거예요? 뭔가 도와줄 생각이에요?”
“돕기는 뭘 도와. 그냥 모른 척 해야지. 그대로 두어서는 사고 칠 것 같더라. 한 번 정신을 차려야지.”
손설향은 머리를 흔들면서 돕지 않겠다고 했다. 만일에 어머니가 돕는다고 하면 절대로 나서지 못하도록 말릴 생각이었다.
“외숙모는 어떻게 생활하고 있대요?”
“전부터 집에 돈을 가져다 준 것보다 뜯어간 것이 더 많다고 하더라. 집에 없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하더라. 병원에 찾아와서 맞아 죽을까 겁나 같이 못 살겠다고 하는데 미안해서 할 말이 없었다. 더구나 애들까지 들볶고 큰 애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같이 힘으로 싸우기 시작하면서 큰 사고가 날 것 같아 서둘렀다고 하더라.”
폭력을 행사하니 사촌동생이 저항을 하고 같이 드잡이를 하니 집안이 조용할 날이 없고 애한테 힘으로 밀리니 결국은 죽인다고 칼부림까지 했다고 했다.
“그렇다고 너무 신경 쓰다가 엄마까지 아프지는 말아요. 외삼촌을 만나도 혼자 있지 말고 조심하고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조심해요.”
“하여간 왜 그 모양인지 모르겠다. 내 이런 말까지 할 말은 아니지만 얼마 전에 아버지 묘에 갔는데 봉분에 삽질까지 했더라. 동네 창피해서, 원.”
“왜요?”
“술을 잔뜩 먹고 와서 아버지 묏자리가 좋지 못해 자기가 그렇게 되었다고 그랬다는데 정신병으로 병원에 입원시켜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 말 꺼냈다가 나중에 무슨 짓을 할지 두렵고.”
장인걸은 어이가 없어 한숨만 내쉬었다. 엄마가 얼마나 괴로울지 생각하니 마음이 좋지가 못했다. 그렇다고 딱히 어떤 해결책도 없었다. 말처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결국 다음날 외삼촌이 불심검문에 걸려 체포가 되었다는 전화가 외숙모에게 왔고 어머니 손설향은 안타까워하면서도 외면했다. 장인걸이나 아버지도 어떻게 도와줄 방도가 없었다.
장인걸은 민지훈의 말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회사 사정이 그렇게 되도록 방치를 한 것입니까? 그 정도 부채라면 하루아침에 쌓인 것이 아닌 것 같은데요.”
“방치를 한 것이 아니라 갑자기 부도를 맞으니 상황이 어려워진 것이죠. 대금결제를 받고 3개월이 지나야 90일짜리 어음의 만기가 끝나 책임이 없어집니다. 조금 길면 6개월이고요. 업체에서 어음을 받으면 바로 할인을 하는데 그 기간 동안 무려 12억 원의 어음을 받아서 결제한 것입니다.”
권동환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명진전자에서 12억 가까운 부도를 낸 상황으로 은행에서 3일의 유예기간을 주었다는 말을 했다. 물론 사전에 부도가 날 징후는 있었을 것이지만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상황이었다.
끝ⓒ
(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