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83
장인걸은 최유림이 잠시 보자고 연락을 하자 시간을 내서 만나러 갔다. 추석 직전 안광현 회장을 만날 때 잠깐 보고 그 후에 만나지 못한 상황이었다.
“뭔가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혹시 민지훈 사장에게 들었어?”
“거기서 들은 것도 있고 사실은 조깅을 하다가 분위기를 살피기도 했습니다.”
장인걸은 한강에 나가 훈련을 했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주변을 돌기도 했다. 그러다보면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과 우연히 조우하기도 했는데 그들의 표정이나 행동을 보면 뭔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선출 이사라고 들어 봤을 거야. 현재 우선출 이사가 용성태 부장을 조사 중이야. 차태근 부회장의 최측근인데 용성태 부장은 자신이 모든 것을 했다고 하지만 정황상 차태근 부회장이 모를 수가 없는 사실이 드러난 상황이야.”
조사 중이라는 말은 붙잡아다가 암흑가의 방식으로 닦달을 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경찰이나 검찰처럼 말로 하지는 않을 것이고 온갖 수단을 다해 자백을 받으려고 할 것이 분명했다.
“결국 차태근 부회장이 백기를 들고 은퇴를 선언해야 끝이 나겠군요. 물론 가진 모든 것은 다 내놓고 말이에요.”
“그렇게 되면 다행이지만 그렇게 되기에는 너무나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 같아. 전면전을 벌일 상황이야.”
“내가 도와줄 일은 없나요?”
장인걸은 개입하는 것이 꺼림칙하지만 만나자고 한 이유가 그런 일이 아닌지 확인했다.
“상황은 우리가 훨씬 유리해. 단지 문제는 나중에 수습하는 것이 쉽지 않아 가급적이면 충돌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지.”
최유림의 말에 장인걸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심으로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차근차근 옥죄어서 항복을 받아내려고 하다가 한순간 방심하여 당할 소지가 컸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자칫 기습을 당해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구역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야 통제가 가능할 것이지만 구역 밖에서 이동해 오는 것까지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버스 한 대만 동원해도 50여 명은 이동이 가능했고 두 대라면 백 명은 족히 동원이 가능했다.
거기에 각종 대중교통을 동원한다면 막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특히 조폭의 특성상 유흥가에서 술자리를 자주 가질 것인데 그런 상황에서 기습을 당하면 회귀 전처럼 그대로 당할 가능성이 컸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주의를 하고 있고 술도 마시지 않도록 하고 있다. 아마 이 달이나 다음 달 안으로 정리가 될 것이라 본다. 문제는 그 이후인데 우선출 이사의 세력이 너무나 커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우선출 이사가요?”
장인걸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차태근 부회장도 이치성 전무를 견제하고 있지만 우선출 이사도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차태근 부회장을 제거하는 것이 오히려 어려운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어.”
“우선출 이사가 회장님 직계가 아닙니까?”
“지금까지야 직계로 있지만 차태근 부회장이 사라지면 회장님만이 제어가 가능한 상황이 벌어지지. 그런데 반기를 들면 사실상 제어할 수단이 사라지고 말아.”
“그러면 우선출 이사가 문제를 일으킬 때를 대비하자는 말인가요?”
“회장님은 자신이 우선출 이사를 발탁하고 키웠으니 믿고 있지만 우리가 볼 때는 아닌데 그걸 언급할 상황이 아니니 불안한 거지. 은밀하게 민지훈을 만날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 주었으면 한다.”
“민지훈을 움직여서 우선출 이사를 견제하자는 말인가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자는 것이 김기정 실장이나 이찬혁 부장의 생각이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나마 민지훈이 우선출을 견제할 능력을 갖고 있어.”
“내부에 견제할 사람이 없나요?”
“경호요원은 고작 10여 명에 불과해. 행동대원들은 다 우선출 이사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고 봐야 할 거야. 다른 외곽 조직의 경우에 능력이 별로 없는 자들이고. 사실 차태근 부회장이 사람을 모아서 공격해 올 때 우선출 이사가 실수하거나 농간을 부리면 당할 소지도 있어.”
우선출이 일거양득의 상황을 노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태가 벌어지면 우선출이 아무런 희생 없이 손쉽게 조직을 장악할 수도 있었다.
“결국 예비로 출동할 세력을 확보하자는 말이군요.”
“맞아. 양동작전에 당하면 당할 수도 있고 그럴 때 민지훈이 나선다면 하나의 대안이 될 거야.”
“알겠습니다. 형이나 회장님이나 아예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이야기는 전하도록 하지요. 하지만 제안을 거절하면 저도 방도가 없습니다.”
“알았다. 받아들인다고 하면 삐삐로 5454545라고 보냈으면 한다. 그리고 이 전화번호를 알려주도록 해.”
최유림은 장인걸에게 개입하여 중재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런 일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범죄조직에 사실상 가입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범죄행위지만 당장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지면 자신마저 괴롭기에 나서기로 했다.
장인걸은 모처럼 청룡도장 실전관에 들러 자유롭게 운동을 했다. 마라톤 훈련을 하느라 주로 헬스클럽에 가서 운동을 했는데 조심스럽게 하다 보니 몸이 풀리지 않는 느낌이라 자리를 옮겨 조금 강하게 운동했다.
“뭔가 말할 것이 있어 보입니다.”
끝나고 잠시 지하 주차장에 세워놓은 차에 민지훈과 같이 탔다. 따로 은밀하게 이야기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안광현 회장님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 김기정 비서실장과 이찬혁 경리부장이죠?”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이 두 사람과 외부의 이치성 전무, 우선출 이사까지 더해 회사의 주축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민지훈도 대충 천광상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있기에 장인걸의 말을 보충하기까지 했다.
“제가 안광현 회장님의 측근인 최유림 과장과 친분이 있습니다. 며칠 전에 잠깐 만났는데 이상한 말을 하는데 걱정이 되더군요. 사실이 아니라면 좋겠지만 일리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안광현 회장의 직계세력을 우선출 이사가 총괄하는 상황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두 가지 문제, 능력이 부족하거나 실수할 경우, 변심으로 인한 위험의 방치에 대한 우려를 설명했다.
“측근 경호원 10여 명을 제외하고 모든 행동대원을 총괄하는 것이 우선출 이사라는 말인데 그 말이 사실일 것입니다. 그런 문제를 안다면 대비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민지훈도 그렇게 파악하고 있었다.
“문제는 급박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우선출 이사가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다면 위험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연락이 되지 못하도록 하거나 또는 양동작전에 휘말린다면 이런 우려가 사실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장인걸의 말에 민지훈도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도 몰이사냥에 당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했었다. 만일 장인걸이 우연히 개입하지 않았다면 당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민지훈 사장님과 비상연락망을 유지하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런 상황이 발발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 봅니다. 물론 그럴 경우 민지훈 사장님에게 손해는 아니라 봅니다.”
장인걸의 말에 민지훈의 얼굴이 상당히 굳어졌다. 얼마 전에 만난 우선출 이사에 대한 일종의 불신이었다. 하지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것이니 그런 추측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도 친분이 있는 안광현 회장님이 변을 당하는 사태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민지훈 사장님도 귀찮아 질 것이고 말입니다. 이게 최유림 과장의 연락처입니다. 한 번 연락을 하여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장인걸은 강요하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게 하면서 설득하기 위해 진지한 어조로 설명을 했고 민지훈도 그렇게 하기로 대답했다. 장인걸은 민지훈과 대화를 마치고 차를 끌고 가다가 공중전화에 들러 삐삐 호출로 정해진 숫자를 입력했다.
장인걸은 금요일 저녁에 춘천으로 갔다. 마라톤대회가 일요일 오전에 예정되어 있기에 일종의 현지적응을 위해 하루 전에 갔고 다음날 차를 타고 마라톤코스를 사전에 답사했다.
“코스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먼저 현지에 내려가 코스를 분석한 이원희가 코스답사가 끝나자 주행전략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주로 경사와 바람을 고려하여 구간별 속도를 정하고 그에 따른 주행전략을 설명했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반복적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험하지는 않지만 끊임없이 이어지기에 대비를 해야 합니다. 특히 오르막길주행이나 내리막길주행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무리하게 달리다가 지쳐 나가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일명 흔들기라고 하는 전략에 대해 설명하면서 당하지 않도록 당부를 했다.
“이번에 참가하는 선수 중에 세렝 부가티라는 케냐의 선수가 있는데 이 선수의 경우에는 오르막길이나 내리막길에서는 세계 최강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르막길에서도 18초대를 유지하고 내리막길의 경우에는 일명 ‘바람의 질주’라고 하여 최고 12초대로 질주하기도 합니다.”
“12초대요?”
장인걸은 너무나 놀라서 반문을 했다. 그 정도라면 100달리기 속도였다. 그렇게 달리다가는 초반에 녹다운될 수도 있었다.
“그렇습니다. 거의 100m 질주를 하는 속도로 달립니다. 그런 질주를 보고 따라가다가 결국에 고꾸라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춘천의 코스는 그 선수에게 가장 유리한 코스라는 말도 있습니다. 단지 문제는 그 선수의 지구력이 아주 뛰어난 것은 아닙니다. 후반에 조금 약하죠. 그래서 최고기록이 2시간 7분대 정도입니다.”
그런 기록이라면 장인걸의 기록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어 같이 달릴 이유가 없었다.
“초반, 대략 5km까지 선두그룹과 같이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초반 레이스에 휩쓸려서 같이 달리다가 페이스를 잃는 것입니다. ‘악마의 페이스’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와 같이 레이스를 할 경우 세계기록에 근접한 선수도 2시간 10분을 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세계적인 선수들이 참여한 대회도 그런 기록이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초반부터 질주를 하여 페이스를 잃으면 아무리 기록이 좋은 선수도 나중에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 결국은 엉망인 기록이 나온다는 말이었다.
“중위권으로 달려가더라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악마의 페이스에 휘말리면 줄줄이 기권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 이번에 절대로 휘둘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철저하게 내 페이스를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코스를 보니 말씀한대로 평지가 거의 없는 길이더군요.”
“그렇습니다. 호반을 따라 달리는 코스이지만 평지는 거의 없습니다. 기존의 코스 최고기록도 2시간 9분대가 넘어가고 세렝 부가티의 심술마저 더해지면 기록은 그리 좋지 않을 것입니다.”
장인걸은 자신의 페이스를 지킬 것이라 다짐했지만 그것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허무하게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고 재차 다짐을 했다.
마라톤대회는 보통 아마추어들의 마스터즈대회와 선수들만 참여하는 엘리트대회가 있다. 하지만 국제마라톤대회는 두 가지 대회가 동시에 열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엘리트 대회만 열리는 경우는 공식적인 대회, 올림픽이나 세계 육상 선수권대회, 또는 전국체전 같은 경우가 해당이 되었다. 그렇기에 국제마라톤대회는 보통 선수부가 출발한 이후 곧바로 마스터즈 부문이 출발을 했다. 춘천 마라톤 대회도 선수부가 가장 먼저 출발을 했다.
장인걸은 뒤에 서게 되었다. 주최 측에서 지정한 사람들이 선두에 서는 것이 보통이고 나머지 선수들은 적당히 섰지만 무명의 경우에는 은근히 차별을 하는 탓에 뒤로 밀렸다.
장인걸이 등장하자 카메라가 촬영을 하기도 했지만 그런 것은 무시를 하고 주최 측의 지시에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당장 중요한 것은 대회이지 카메라가 아니었다.
정렬을 하고 대기하자 간단한 주의사항이 한국어와 각종 언어로 반복하여 되풀이 되었고 그런 과정이 끝난 후에 ‘준비’라는 구령이 떨어지고 마침내 총소리와 함께 출발을 했다.
초반에는 상당히 빠른 속도로 다들 질주를 했고 장인걸도 그에 맞춰서 달려갔다. 후반이지만 고작 차이가 6~7m 정도 밖에 나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선두와 후미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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