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9
“그렇게 하자. 하지만 학교에 다니다보면 과 친구나 동아리 친구들과 친해지고 그러면 바빠질 것이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 시간 내는 것은 가능할 거야.”
장인걸은 전에는 그것도 관심이 없다는 말로 참여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전과 달리 행동할 생각이라 동조했다.
“나도 동의. 미술을 제대로 한 것이 아니라 가서 배워야 할 것이 많지만 최대한 시간을 낼게.”
처음에는 약간 의기소침한 표정이던 채지원도 다른 사람이 보결이라고 무시하는 내색을 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자신감을 회복했는지 표정이 밝아졌다.
“우리 중에 예술 하는 친구도 있고. 여자가 나 혼자 있는 것보다 둘이라 만날 때 좋을 것 같아.”
이정숙도 채지원이 같이 진학하게 된 것을 좋아했다. 이렇게 되면 원경희가 없어도 할 것이 없어 허전하지 않을 것 같았다. 친구를 새로 사귀지 않더라도 이들과 친하게 지내면 외롭지는 않을 것 같았다.
최유림은 모교이자 막내 동생이 다닌 고향의 양진고등학교를 근 10년 만에 방문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바쁘기도 했고 자신이 조금 구린 일을 하니 선뜻 학교에 가지 못했다.
“오빠, 왔어?”
막 학교에 들어가자 졸업식이 시작되기 직전이었고 강당 입구에서 잠깐 최향림을 만날 수가 있었다.
“다른 사람의 졸업식은 한 번도 오지 못했는데 우리 막냉이 졸업식은 참석해야지. 두고두고 잔소리를 할 것인데.”
최유림은 밑으로 남동생 둘과 여동생 하나를 두고 있었다. 밑의 두 동생은 남자라서 그리 정이 가지 않지만 최향림은 여동생이라서 그런지 모든 것이 귀엽게 느껴졌다.
“고마워.”
전날 밤 꽤나 큰 꽃다발을 서울에서 준비해 달려온 상황이었다. 그런 꽃다발을 받은 여동생은 다른 어떤 선물을 받은 것보다 더 좋아하고 있었다.
“여기 우리 동네 인걸이 알지?”
그때 동생이 옆으로 지나가는 한 남자를 붙잡더니 인사를 시켰다. 자세히 보자 낯이 익었다. 다른 곳에서 본다면 알아보기 어려울 것이지만 소개를 받아서 보니 어릴 때의 모습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자신이 누구라는 것을 아는지 남자애가 인사를 했다. 심심하면 동네 애들이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라는 시조를 읊으면서 이름을 가지고 놀리던 애였다. 그것이 워낙 기억에 남아 지금도 기억이 났다.
“인걸이도 졸업이네. 우리 향림이랑 12년을 같은 학교 다녔지. 서울로 대학을 온다고?”
최유림은 은근히 여동생이 관심을 두는 동네 남학생이기에 그가 서울에서도 꽤나 좋은 명석대학교에 입학한 것을 알고 있었다. 서울에서 탑10에 들어간다는 것도 들었다. 자신이야 지방의 전문대를 나왔지만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서울에 오면 연락을 해라. 우리 향림이도 재원대학에 들어갔다던데. 여기 내 명함이다. 언제 한 번 보자.”
재원대학은 서울에 있는 대학은 아니지만 서울과 인접한 도시에 있어 서울 소재의 대학과 비슷하게 대우를 해주었다.
최유림은 명함을 건넸다. 고향의 후배이니 그냥 순수하게 도움을 주려던 생각이었다. 하지만 명함을 받아든 장인걸은 그 이름을 보다가 뭔가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다.
졸업식을 하는 강당이 워낙 번잡스러웠기에 길게 이야기를 못하고 인사를 하고 정해진 자리에 가서 앉은 장인걸은 방금 전에 만났던 최유림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천광상사’나 최유림이라는 이름을 보자 기시감이 들었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마침내 기억을 해냈다. 좋은 의미보다 나쁜 의미였다. 자신의 기억이 사실이라면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다.
그가 상병 휴가를 나왔을 때 일어난 ‘장한평 조폭난동사건’에서 끔직한 변을 당하는 사람이었다. 군대에서 막 상병을 달고 두 번째 휴가를 나왔던 때에 일어난 사건이었다. 그 사건으로 최유림이 휩쓸려서 죽고 말았다.
조직 내부의 갈등이 반란으로 이어져 보스와 측근 10여 명이 살해되고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그 현장이던 룸살롱에 휘발유를 뿌리고 방화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불을 지른 직후에 소방서에 신고가 되었고 바로 소방차가 출동하여 소화를 했다.
거기서 칼에 찔린 시신이 다수 발견이 되면서 그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사건이 난지 하루만에 최유림의 집에 사망사실이 통보되면서 즐거워야할 휴가가 그리 즐겁지가 못해 다음날 도망치듯이 동네를 떠나 서울로 갔다.
더구나 부검을 해야 해서 언제 장례식을 치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로 인해 그런 분위기가 길게 갈 것 같았다. 그런 사실이 떠오르자 장인걸을 명함을 버릴까 하다가 혹시 하는 생각에 명함을 챙겼다.
졸업식은 그리 특별한 일이 없이 끝났다. 물론 장인걸이 학력우수상과 동창회장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성적순으로 받는 것이기에 그리 특별한 것은 없었다.
단지 할머니가 손자의 졸업을 꼭 본다고 해서 추운 날씨에도 졸업식장에 오는 바람에 어머니나 아버지가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아침마다 외부 화장실에 다니면서 적응한 덕분인지 걱정할 만한 일은 생기지 않았다.
전에는 졸업식이 끝난 후에 황명환이나 안석진과 따로 모여 술을 마시고 그 후에 다시 원경희의 집 근처로 가서 추위 속에서 한 시간 가까이 떨면서 데이트를 했지만 이번에는 가족들과 같이 중화요리를 먹고 집으로 돌아온 것이 전부였다.
대신에 장인걸은 큰어머니로부터 명석대학 입구 쪽에 적당한 월세가 나왔다는 전화를 받았다. 전에는 인숙이 졸업을 앞둔 월요일에 받았는데 사흘이나 더 빨리 통보를 받은 것이다.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10만 원짜리라는 말이군요.”
“그래, 그리고 그 옆에 빌라인데 실내에 화장실이 있는 것은 월세 15만 원짜리도 있어.”
장인걸은 전세 1500만 원짜리가 아니라서 빨리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그 금액이 그리 크다고 할 수 없지만 나중에 전세가 나가지 않아 입대한 후에야 전세금을 돌려받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어른들하고 상의해서 언제 갈지 말씀드릴게요.”
장인걸은 일단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전화 받은 내용을 말했고 다음날 바로 아버지와 같이 서울에 가기로 했다. 전에는 어머니가 같이 갔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1년 계약하고 6개월 단위로 연장할 수 있도록 계약하는 것이 좋다고 하네요.”
장인걸은 1년을 지내보고 문제가 있다면 다른 곳으로 이사할 생각이었다. 방은 굳이 두 개가 필요하지 않지만 잠자는 곳과 분리가 된 부엌 겸 거실은 필요했다. 다른 계절은 문제가 없지만 여름과 겨울에는 불편하고 위험했다.
“큰집에서 하루 자고 온다는 말씀이죠?”
“그렇게 해야지. 서울에 갔는데 그냥 내려오면 할머니가 걱정을 하실 거야.”
친척집을 방문하여 자지 않고 그냥 온다면 뭔가 서운한 것이 있다고 생각할 것이니 그런 염려가 당연한 것인지 몰랐다.
대학교 앞으로 간 장인걸은 이미 어디에 방을 얻을 것인지 정한 상황이었다. 미리 약속을 해두었기에 바로 학교 앞에서 큰어머니를 만났다.
“어제 와서 세 군데를 봐 났어요.”
큰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그렇게 말하고 부동산중개소를 방문하여 방을 보자는 말을 했다. 두 곳은 사람이 있어 볼 수가 있었지만 한 곳은 사람이 없어 방을 볼 수가 없었다.
“주인집 옆에 붙은 집은 일단 제외하기로 하죠. 더구나 화장실을 다른 세입자들과 공동으로 사용해야 하는데 냄새도 심하고요. 월세도 낮은 것도 아니고요.”
그런 곳은 세대들이 분담하여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하는데 좋지가 않았다. 다른 한 곳은 주인은 살지 않는 다세대 원룸형 빌라였는데 그런대로 괜찮았지만 전에 하숙을 하던 곳에 위치하여 걸어 다니기에는 좀 멀었다.
“시골에서야 그리 멀지 않지만 아침에 나와서 걷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거리인 것 같아요. 참 애매하네요.”
장인걸은 그리 탐탁치가 않아 두 곳 모두 문제가 있다는 말을 했다. 그런 다음에 큰어머니가 들어가지 않은 허름한 형상의 부동산사무실로 들어갔다. 아직도 부동산중개사무소라는 명칭이 아닌 ‘오복복덕방’이라는 상호를 달고 있었다.
외부에서 온 사람은 모르지만 그 복덕방은 그 지역에서 무려 30년 이상을 영업한 터주 대감이었고 가장 좋은 물건을 보유하고 있었다.
자신이 선정한 곳을 퇴짜 놓고 장인걸이 그곳으로 가자 큰어머니는 썩 내키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장인걸의 지적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기에 달리 말이 없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일흔은 되어 보이는 노부부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방 보러 왔습니다.”
장인걸은 군대에 다녀온 후에 전세방을 얻을 때에 그곳을 이용했고 만족을 했었다. 더구나 집을 보러 가기 전에 사전에 충분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것이 인상적이었다.
“여기 앉으십시오.”
그렇게 세 사람을 소파로 안내한 이후에 메모장을 펼치고 상담을 진행했다. 거주할 조건부터 입지, 경제적인 상황까지 자세히 물었다.
“일단 저쪽 길을 벗어나지 않고 뒤쪽의 길도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군요.”
벽에 걸린 주변지도를 보더니 사전에 붉은 색으로 표시된 지역을 가리켰다.
“여기가 대략 교문에서 5분 거리에 당도할 수 있는 곳입니다. 여기를 벗어나면 여기까지가 대략 10분 거리입니다.”
그런 다음에 원하는 조건에 대한 답변을 했다. 그러더니 벽에 걸린 일반적인 주택구조도를 가리켰다.
“보통 방 한 칸인 집은 이런 구조를 가집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부엌이 존재하고 그 옆에 화장실이 있습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방이 있고요. 부엌은 난방용 보일러가 있거나 연탄을 때는 경우도 있고요. 취사는 주로 LPG를 이용하고요. 도시가스가 들어온 곳은 여기까지이고요.”
“도시가스가 들어온 곳으로 해주세요.”
석유를 사다가 채우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기에 도시가스가 들어온 곳으로 해달라고 말을 했다. 사실 그렇게 하는 것은 월세가 더 상승하는 것이지만 조금 아끼려고 하는 것은 그리 좋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여기로 알아봐야 하는데 딱 두 곳이 있습니다. 거기로 가보도록 합시다.”
그들은 노인이 안내하는 집을 살폈다. 둘 다 주인집이 붙어있지 않는 곳이었다. 한 곳은 다가구주택이었고 한 곳은 다세대 빌라였다.
“여기가 전에 본 곳보다 좋군요. 입식이고 거실도 있고요.”
“비용은 보증금 50에 대략 2만원 더 높아 12만 원입니다.”
“여기로 해주세요. 계약기간 1년에 6개월마다 연장이죠?”
“보통 학생들은 그렇게 하죠.”
교문에서 대략 5분 정도 걸어야 하는 거리에 위치한 곳에 있는 집을 얻기로 했고 바로 부동산에 가서 계약을 하기로 했다. 더구나 며칠 전에 졸업할 사람이 나간 상황이라 언제든지 입주가 가능하다는 점도 좋았다.
점심시간이 지난 후라 근처에서 간단히 식사를 한 후에 그들은 택시를 타고 큰집으로 갔다. 셋이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가나 택시를 타나 비용의 차이가 없으니 그냥 편하게 택시를 탔다. 나중에 환승요금이 적용되지만 당시에는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면 각각 요금을 내야 했기에 할인이 되지 않았다.
“너도 어제 졸업이었지? 나는 재원대학에 들어갔어. 여기서 다니려면 만만치 않은데 걱정이다. 재수를 할까 생각 중이야.”
민기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방에 들어가자 푸념을 했다. 집안 형편이 그런 대로 좋아 과외를 하고 학원에 다녔어도 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맘대로 하지 못했다.
“잘 생각하여 좋은 방향으로 정해. 재수를 해서 결과가 좋은 것도 아니고. 이미 등록을 했으니 반수를 하겠네.”
“한다면 그렇게 해야지. 아버지도 안전하게 1학기 마치고 휴학을 하라니.”
민기는 재원대학에 만족하지 못해 반수를 하지만 결국 실패를 하고 복학을 하지 않고 바로 군대에 갔다가 나중에 복학을 했다. 그것을 알기에 달리 말을 하지 않았다.
대학 문제에 관해서는 친구들끼리도 함부로 언급을 하지 못하는 것이 당시의 분위기였다. 특히 좋은 대학에 간 사람은 대학 이야기가 나오면 죄인처럼 입을 닫는 것이 당시 분위기였다.
“넌 자취를 하는 거야? 아빠는 우리 집에 와서 나랑 같은 방을 쓰게 한다고 하던데.”
“학교 앞이 편해. 너랑 같은 방을 쓴다니 끔찍하다. 이 좁은 방에서 둘이 붙어서 싸울 것을 생각하면.”
큰아버지는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인지 명절 때가 되면 장인걸이 서울에 대학을 오면 집에 데리고 있겠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큰어머니가 불편할 것인데 항상 그런 말을 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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