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91
11월 되자 장인걸은 행사를 최대한 줄이면서 앨범 작업에 집중했다. 물론 경제가 어려워져 강제로 행사가 줄어들기도 했다. 행사 하루나 이틀 전에 취소가 되었다면서 잔금을 입금하지 않았다. 그러면 새로운 스케줄을 잡지도 못하고 놀아야 했다.
“세션 작업이야 우리 앨범 만들 때 해 봐서 그리 생소한 것은 아닌데 네가 원하는 수준에 맞추려니 너무 힘들어.”
권세라는 장인걸이 원하는 수준으로 녹음하는 것이 쉽지 않아 푸념을 했다. 권세라의 경우 여지없이 세세한 감각의 부족으로 인한 문제점을 지적받을 수밖에 없었다. 전에 비해 많이 개선이 되었지만 장인걸이 원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사실 드럼이라면 내가 연주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만 그걸 연습할 시간이 없어. 그리고 이번 기회에 세라의 수준도 높이고.’ 장인걸은 권세라와 종종 저녁에 같이 보내면서 내공을 이용하여 몸에 약간의 변화를 주기도 했다. 그 덕분에 전이라면 감지하지 못할 차이를 구분하고 있었다.
“그래도 이제 일류 드러머라고 할 정도의 실력이 되었잖아. 내가 너무 까다롭게 하지만 더 나은 부분이 보이는데 그냥 눈감고 지나갈 수는 없잖아.”
문라이트는 매일 다섯 시간 가까이 연습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악보의 절반가량도 녹음을 마치지 못하고 있었다. 앨범에 들어갈 12곡 전부도 아니고 절반인 고작 여섯 곡만 세션을 사용하는데 그러했다.
“하긴 우리 멤버들도 녹음실만 갔다 오면 기가 죽더라. 전에 가요축제나 두 곡 녹음할 때 까다롭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번에는 더 심한 것 같아.”
“그 때에 비하면 눈높이가 한 단계 올라갔지. 전에는 그 정도가 최선이지만 지금은 한 단계 높은 수준까지 맞출 수 있을 것 같으니 그걸 요구하는 거야. 흔히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문라이트가 그 정도는 가능하니 시키는 거야.”
장인걸의 말에 권세라는 눈을 흘겼다. 문라이트의 연주수준이 한 단계 올랐다는 칭찬이지만 아직 버거운 것은 미흡한 부분도 있다는 의미였다.
“하긴 한용석 음감이 저번에 우리 공연보고 놀라더라.”
“한용석 음악감독이라면 영화나 드라마의 OST의 대가잖아. 그 분을 알아?”
“달맞이꽃에 가끔 오는 사람이야. 앨범 냈다고 축하해 주려고 대기실에 왔더라고. 우리 실력이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고 말하던데. 이제 메이저급으로 올라섰다고 했어.”
“특히 네 실력이 좋아졌지. 전에는 기계적으로 연주했는데 지금은 강약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으니. 조금만 더 실력이 올라가면 밴드를 리드할 수 있을 거야.”
밴드에서 드럼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만큼 밴드의 중요한 파트였다. 전에는 그저 중심만 잡았지 리드를 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리드할 실력이 되었다.
“그리고 보컬 연습도 꾸준히 하고 있지?”
“응, 노래를 배우는 것이 연주 실력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아. 마음속에 가락을 만들고 느낄 수가 있어야 한다는데 그것이 가능할 것 같아.”
“이제 작곡도 가능할 것 같은데. 다른 밴드원이나 미향이 선배에게 작곡에 대해서도 배워. 그러면 도움이 될 거야.”
“할 게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아. 하라면 해야지. 그보다 나도 기숙사를 나올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활동하느라 학점도 그리 좋지가 않을 것 같고 이번 앨범으로 돈도 꽤나 생겼는데.”
회귀 전에는 권세라는 내내 기숙사에 있었다. 학점이 나쁘면 후배들에게 밀려났는데 끝까지 버틴 것을 보면 공부도 잘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 학기에는 앨범 활동을 하느라 학점이 그리 좋지가 못한 것 같았다.
“아예 빌라를 하나 구입해. 빌라는 가격이 그리 비싸지가 않으니. 그 정도 돈은 되잖아.”
빌라는 아파트보다도 더 가격이 폭락했다. 그렇기에 외환위기 당시에 빌라를 구입할 경우 나중에 큰 폭으로 가격이 상승했다.
“그럴까? 내 돈으로 구입이 가능할까?”
“모자라면 융자를 받으면 되지. 내가 조금 보태도 되고. 나도 종종 사용할 수도 있으니.”
장인걸의 말에 권세라의 볼이 발그레하게 변했다.
장인걸은 폴라텍스트라는 회사의 대표인 박유환을 만나고 있었다. 폴라텍스트는 자체 기술로 서버를 제작하는 회사였다. 물론 다른 네트워크 장비도 개발하고 있었다. 나중에 국내 최고의 네트워크 장비회사로 성장했다. 스마트폰이 보급될 때 2G와 3G 장비를 개발하기도 했다.
IMF때 망하다시피 했지만 사장 혼자 남아 회사를 지켰고 결국은 성공을 하여 폴라텍스트 신화를 만들어 냈다. 외환위기 당시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면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어 보였다.
“총 10대의 서버를 발주할 계획이란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아울러 서버의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사후관리와 A/S도 폴라텍스트에서 책임을 져 주었으면 합니다. 우리가 관리할 능력은 없고 IDC도 장비에 대해 모르기는 마찬가지고요.”
장인걸은 아직 국산 서버의 안정성을 확보한 상황이 아니기에 폴라텍스트에서 품질과 유지에 대하여 책임지기를 원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리도 제품의 성능이나 하자에 대해 파악하고 백업을 받아야 하니까요.”
자체 연구기술로 서버를 개발했지만 사실상 제대로 제작 판매를 한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은 외국의 서버를 가져다가 무단으로 복제한 상황이었다. 그저 그 원리만 알고 비슷한 성능의 부품을 조립한 수준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특허는 아예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아울러 제품 하자로 인해 발생할 문제에 대해서도 폴라텍스트에서 책임을 졌으면 합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추후에 발생하는 특허관련 문제나 각종 안전문제 등에 관하여도 제조자가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장인걸이 특약사항으로 그런 내용을 삽입하기를 원하자 순간적으로 박유환 사장의 얼굴에 곤혹스러운 기색이 나타났다. 그도 각종 특허를 무단으로 사용한 것을 알고 있어 보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제야 겨우 인터넷 상용화가 이루어지면서 막 국산 네트워크 장비 산업이 태동하는 시점이었다. 그렇기에 관련 기술에 대한 특허는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선진국의 관련 업체와 특허 사용에 관한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특허의 사용 권리를 확보해야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그런데 혹시 저희 회사에 투자는 가능합니까? 프리웨이라는 포털을 운영한다고 하면 10대의 서버도 50만 명의 가입자만 확보해도 포화상태에 이를 것인데 말입니다. 계속 성능이 향상된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납품받으려면 저희가 안정적으로 제품개발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회사의 사정이 좋지 못합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투자도 안 들어오는 상황이고요.”
“우리의 투자를 원한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네트워크 관련 장비는 국내에서 저희가 가장 선두에 있다고 자부합니다. 투자자를 모집하려고 했지만 국내 경기가 워낙 좋지 않아 사실상 포기한 상황입니다. 금융권에 대출을 알아보았지만 그것도 불가능한 실정입니다. 하지만 경제 상황이 호전되고 인터넷이 활성화되면 네트워크관련 장비는 앞으로 무한한 시장이 펼쳐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폴라텍스트는 직원 20여 명의 벤처기업으로 실질적인 제작은 다른 회사에 하청을 주고 있었다. 최종적으로 반제품 상태의 부품을 납품받아 사무실에서 조립, 테스트하여 납품했다. 컴퓨터를 조립하여 판매하는 것이나 비슷한 시스템이었다. 제품을 개발하였지만 실질적으로 판매는 거의 없는 상황이었다.
“좋습니다. IR자료를 보내주면 회계사를 통해 실사를 하고 투자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물론 미래가치에 대한 평가하여 적절한 회사의 가치를 산정할 것입니다.”
장인걸은 회사를 다닌 경험이 있기에 투자에 대하여도 잘 알고 있었다. 삼광식품의 경우 제품을 추가할 때 자체 개발도 하지만 시장에 개발한 제품을 납품받아 판매하기도 했고 그럴 경우 협력업체를 지정하고 그 회사에 투자하여 지분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설비투자를 하기도 했다.
‘된장과 간장의 품질이 떨어져 문제가 되었지. 사람들의 식성이 바뀌면서 기존 양조 방식의 제품은 프리미엄제품 시장에서 퇴출이 되었지. 결국 재래식 된장 제조업체를 개발했는데 설비가 영세해 납품이 원활하지 못했지. 그래서 10억 원을 투자하여 지분 49%를 회사에서 확보하는 방식으로 설비를 확충했다.’ 회귀 전에 그런 작업을 하면서 장인걸은 투자를 하는 일도 어떻게 진행되는지 배울 수가 있었다. 이런 투자에서 무형자산인 기술이나 영업권 등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반영해 주어야 투자가 원활히 진행되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가치는 너무 높게, 너무 낮게 평가한다면 서로 감정만 상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빚만 남은 폴라텍스트인데 무형자산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지 않으면 투자할 가치조차 없었다.
장인걸은 납품에 대한 가계약을 체결한 후에 사전에 섭외해둔 변호사의 자문을 받아 서버 10대에 대한 구매계약을 하기로 했다. 물론 서버를 구동시키기 위한 각종 기술을 지원받는 것을 포함하여 운영 전반에 대한 책임의 상당부분을 폴라텍스트에서 부담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또한 사전에 협의한 대로 폴라텍스트는 최대한 빨리 IR자료를 작성하여 제출하기로 했다. 투자금액은 대략 3억 원 정도로 하기로 했고 지분은 30%를 확보하는 내용을 1차로 합의했다. 물론 박유환 사장이 말한 내용이 실사를 통해 사실로 판명된다는 전제를 달았다.
장인걸은 모처럼 시간을 내서 큰집에 들렀다. 추석 때 보고 그 후에는 바빠서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은지와 통화를 하기도 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만날 수가 없었다.
“오빠, 마라톤까지 잘 하는 것 보면 대단해.”
장인걸은 은지가 슬쩍 학교에 올 수 있는지 물었지만 마라톤 준비 때문에 시간을 내지 못해 축제에 가지 못했다.
“저번에 축제에 가지 못해 미안하다. 마라톤 때문에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았어.”
“그거야 어쩔 수 없지. 민기 오빠는 요즘 공부 한다고 조금 바쁜 것 같아. 오늘도 식사하고 온다던데.”
집에는 큰어머니와 은지만 있고 민기나 큰아버지는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오빠네 회사 홈페이지 만들었더라.”
“봤어?”
“나도 오빠 팬클럽에도 가입했고 팬클럽 홈페이지에도 종종 들어가. 거기에 히어로기획, 월광기획, 은마기획의 홈페이지로 가는 링크배너가 걸렸던데.”
“다 우리 회사에서 만든 홈페이지야. 팬클럽 홈페이지도 조금 내가 손을 봐주었어.”
“그래서 이번에 홈페이지가 바뀌었구나. 전보다 조금 편리해졌더라. 그런데 프리웨이도 오빠네 회사랑 연관이 있어?”
“그거 우리 회사에서 만들어서 오픈한 거야. 너도 가입했어?”
“이메일을 사용할 수 있으니 정말 좋던데. 요즘 학교에서 다 가입하고 있어. 종종 다운 되어서 짜증나지만.”
중고생들이 가입한다니 기분이 좋았다. 당장 돈이 되지 않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그것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그러면 검색이나 카페는?”
“검색은 잘 사용하지 않고 카페는 재미있던데. 자기 홈페이지로도 사용이 가능하고. 블로그보다 카페가 더 재미있어.”
장인걸은 블로그와 카페 두 가지를 모두 적용했는데 블로그는 개인홈페이지 성격이 강했다면 카페는 공동의 홈페이지 성격으로 운영이 되었다.
블로그의 경우 오직 개인이 만들고 관리할 수 있었다. 반면 카페는 개인이 개설하지만 공동으로 관리도 가능하고 회원도 가입이 가능했다. 그렇게 두 가지를 병행한 것은 어떤 것이 더 효과적인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네 생각에 프리웨이 내부에 학교 동창회가 생기면 어떨 것 같아? 활성화가 될 것 같아?”
장인걸은 ‘학교가 좋아’란 사이트가 유행했던 것이 생각나서 그것을 만들까 고민 중이었다. 물론 프리웨이의 서버 채널로 둘 생각이었다.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아. 근데 우리보다 어른들이 더 좋아할 것 같은데. 우리야 동창들을 학교에서 만나는 상황이니 크게 아쉽지도 않으니.”
“거기 소설과 만화는?”
장인걸은 소설과 윕툰을 연재할 수 있는 게시판도 만들었다. 일종의 개인 블로그 형식이었다. 아마추어 작가 50여 명이 연재를 하고 있었다.
“나도 거기서 로맨스 소설 하나 보고 있어. 만화는 너무 유치해서 별로 재미없고.”
“어떤 것?”
“나의 황태자 전하. 재미있더라고. 요새 여자애들 그런 것 좋아해. 거기다 글 올린다고 우리 반 경희가 준비 중이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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