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atural Order RAW novel - Chapter 99
차태근 부회장과 우선출 이사가 제거된 상황이니 누구도 저항을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반란을 노린 자들이니 그들의 법도대로 처벌은 불가피했다.
“그리고 이치성 전무가 고맙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어. 지금은 사정이 복잡해 나중에 시간 나면 찾아가겠다고.”
최유림의 전언에 달리 말을 하지 않았다. 적당히 서로 인사치레를 하면 되는 문제였다.
“그리고 행동대를 해체하고 천광경비용역이라는 회사를 세우기로 했습니다. 행동대원 대부분이 거기에 소속될 것인데 나도 관여하기로 했습니다. 조직이 정비된 후에 인력이 필요하면 연락을 주었으면 합니다.”
민지훈이 확실하게 조직 내부의 일에 관여하기로 한 것 같았다. 당장 믿기 어려운 행동대원들을 그냥 둘 수 없으니 해체하고 은밀한 경호조직으로 대체할 계획으로 보였다. 조직이 경비회사로 바뀌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 수도 있었다.
장인걸은 두 사람에게 보안을 지켜줄 것을 부탁했다. 결국 유착관계가 소문날 수밖에 없지만 밝혀지는 시점은 최대한 뒤로 미루고 싶었다.
박상우는 미소를 짓고 신체검사소를 나왔다. 판정이야 정해져 있지만 마침내 확정이 되자 안도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6방이라고?”
“그렇습니다. 6개월만 동사무소 같은 곳에서 근무하면 됩니다. 훈련기간을 빼면 5개월만 근무하는 것이죠.”
박상우는 세드릭 유봉만에게 자랑스럽게 신검 결과를 말했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에게 군대는 어떻게든 가지 않아야 할 곳이었다. 그렇기에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기피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았다.
“자식, 신의 은총을 받았군. 증세가 뭐야?”
“가벼운 척추측만증인데 일상생활은 크게 지장이 없지만 오래 걷거나 다소 무게가 나가는 것을 들거나 짊어지면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박상우의 말에 세드릭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그도 사실 척추측만증을 앓고 있었다. 어깨나 팔이 문제라고 했지만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척추문제였다. 하지만 척추 질환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이 좋지 않기에 병을 숨기고 있었다.
“정말이야?”
세드릭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자신의 증상도 그리 중한 것은 아니었다. 젊어서도 그런 증상이 있었다는데 서른이 다 될 때까지 크게 문제가 없었다. 그도 현역으로 군대에 다녀왔다.
척추측만증이나 대부분의 척추관련 질병의 경우 현역 아니면 면제이지 6개월 단기사병은 거의 없었다. 그런 판정이 나올 정도의 가벼운 증상이라면 판정을 보류하고 재검을 받을 가능성이 더 많았다.
“제가 보기에는 멀쩡해 보여도 엑스레이 사진을 찍으면 약간 휘어져 있다고 합니다.”
말을 하는 박상우의 표정은 억울하다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것은 박상우 특유의 행동이었다. 뭔가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고 발뺌을 할 때 그런 모습을 보였다. 벌써 반년 이상 지켜본 세드릭이기에 바로 알 수가 있었다.
“짧게 다녀오면 되겠네. 어쨌든 척추는 한 번 잘못되면 고치기 어려우니 조심해. 나도 척추측만증 때문에 그만두었으니.”
유봉만의 말에 박상우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유봉만은 겉에서 보기에도 상체가 휘어져 있고 어깨마저 안쪽이 축 처져 있었다. 움직임 자체가 둔해 보이고 꺼벙한 느낌을 주었다.
유봉만은 박상우가 놀라는 모습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해서 6개월 단기사병 판정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뒤로 뭔가 수작을 부린 것이 틀림없었다.
“드럼 연주는 고강도 노동이야. 밴드에서 가장 먼저 지치는 것이 드러머이니 몸 관리를 잘 해야 할 거야.”
세드릭은 굳이 다그쳐서 사실을 알아낼 필요는 없기에 모른 척 넘어가 주었다. 박상우가 맘에 들지 않으면 적당히 그 사실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런 의도를 모르고 박상우는 내내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강진경이 잠시 만나자고 하니 동아리 방에서 만나기로 했다. 입구에서 마주쳤고 현관의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서 들고 안으로 들어와서 마주 앉았다.
“무슨 일이야? 갑자기 보자고 하고.”
강진경과 통화는 가끔 하지만 만나는 것은 한 달에 한 번 정도였다. 멀지도 그렇다고 아주 가깝지도 않은 관계였다.
“뭔가 상의할 일이 있어서. 네가 집을 산다면 아파트가 좋아, 단독주택이 좋아?”
“그게 무슨 말이야? 상황에 따라 다르지. 가진 돈이 얼마이고 어느 지역에 구입할지, 무슨 목적인지 세세하게 따져봐야지.”
장인걸은 난데없는 질문에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상황을 물었다. 대충 아버지가 두 자매에게 집을 사주기로 했다면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한 지금 구입할 예정이라고 했다. 결국 1인당 지원해 줄 금액만 정해주었고 아파트와 주택 중에서 정하고 지역도 본인들이 결정하라고 했다.
“구입 시기는?”
“내년 말까지 사라고 했어. 그 후에는 오를 것 같다고 하던데. 모든 것을 우리가 정하라는데 막상 정하려니 내가 부동산에 대해 아는 것이 있어야지.”
금액이 상당히 컸다. 그런 금액을 현금으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너, 정말 부잣집 딸이구나. 그 정도라면 아파트보다 단독주택을 사는 것이 낫겠다. 관리는 조금 힘들겠지만.”
그러면서 장인걸이 알고 있는 부동산 지식에 대해 알려주었다. 나중에 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대충 맥락을 알기에 짚어 주었다.
“고급주택은 사실 단독주택이야. 커다란 집은 아주 고가이지. 아파트 대형평수가 아무리 비싸도 고급 단독주택보다 비싸지 않아. 대신 아파트는 팔기가 쉽지만 이런 고급주택은 파는 것도, 사는 것도 쉽지 않아. 또, 가격의 변동도 폭이 크지. 경기가 좋으면 매물이 없어 엄청나게 폭등하고 경기가 나빠지면 급매물이 속출하면서 가격이 폭락하는 사태가 벌어져. 지금 대지 300평짜리 고급주택이 15억에 나오는 실정이야. 집값은 쳐주지 않고 대지가격만 쳐주는 실정이야. 조금 지나 경매로 넘어가면 10억 원으로 떨어질 수도 있어. 평소라면 30억을 호가할 것인데.”
“정말이야?”
“그래. 그러니 그런 물건을 사는 것이 좋아. 딱 네 아버지가 정한 가격제한폭이니. 그런데 무슨 돈인데? 지금 다들 돈이 없어서 문제라는데.”
“우리 집이 딸만 있다고 아버지가 할아버지에게 받은 회사지분을 큰집에 넘겨준다고 해. 큰집 큰오빠가 인수하기로 한 것 같아. 아빠는 중립인데 큰아버지랑 작은아버지랑 회사의 주도권을 놓고 경쟁중이야. 그러다가 아빠가 그냥 큰집을 지지하기로 했나봐. 물론 5년간 아빠가 사장을 맡기로 했고. 그 후에 큰집 큰오빠가 회사를 물려받을 것 같아.”
어느 집안이건 재산다툼은 다 있는 것 같았다. 딸만 있으니 아예 욕심 부리지 않고 깨끗이 정리하기로 한 것 같았다.
“너는 회사에 들어가지 않을 거야? 그러려면 지분이 있어야 대접받을 것인데.”
“큰 욕심 없어. 지분다툼에 끼어들면 결국은 어느 한 쪽과 척을 질 것인데 차라리 없는 것이 낫지. 사장을 할 것도 아니고. 일단 그렇게 알고 너도 도움을 좀 줘. 나도 공부할 것이니.”
강진경의 집안 사정을 알고 있기에 달리 말을 하지 않았다. 나중에 고용시장이 악화되어 갈 곳이 없어지면 프린스해운에 입사할 것이지만 지금 그런 것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적당히 용건이 끝나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곧 동아리의 다른 사람들이 와서 더 이상 이야기를 할 수가 없게 되었고 둘 다 수업이 있어 떠나야 했다.
앨범 준비가 마무리 되었다. 11월 29일에 앨범을 발매하기로 했다. 1집은 조용히 발매를 했지만 이번에는 적절한 홍보를 하고 각 방송국까지 방문하여 직접 앨범을 돌리기도 했다.
외환위기로 IMF 구제 금융을 받기로 한 상황이라 방문한 방송국의 분위기는 침울하기 짝이 없었다. 방송국도 구조조정을 한다는 이야기가 돌아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였다.
그렇기에 조용히 PD들에게 앨범을 돌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들의 관심은 자신의 거취가 어떻게 될지에 쏠려 있기에 장인걸이 나타나도 그리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다른 가수들의 음반과 겹치지 않아 다행입니다. 경기가 좋지 않아 대부분 음반제작을 뒤로 미루었다고 합니다.”
같이 방문했던 민수길이 최근에 발표된 앨범 중에 유명 가수의 앨범은 없다고 말했다. 경쟁제품이 그만큼 없어 유리한 측면도 있었다.
“판매야 어떻든 신곡을 내야 행사에 나가서 부를 노래가 있을 것이니 일단 앨범을 내야죠. 1집의 반만 팔렸으면 좋겠군요.”
장인걸은 음반의 판매도 반토막이 되었다는 업계 사람들의 말을 들었기에 욕심을 버리고 목표를 낮게 조정했다. 최선을 다해 홍보할 것이지만 결과에 연연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문라이트도 30만 개 가까이 팔았는데 한두 달 사이에 음반 시장이 완전히 죽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팬들이 다 사면 1집만큼 성공할 수도 있습니다.”
민수길은 음반가게의 반응을 전하면서 아침부터 찾는 사람이 많아 일부 가게에서는 벌써 품절사태가 났다는 말을 했다. 이번에는 초도물량으로 CD만 무려 10만 개를 제작했는데 하루 사이에 거의 다 소진되었으니 꽤나 판매가 될 것 같았다.
물론 최소 30만 장 가량은 팔릴 것이라 생각하여 일단 20만 장을 발주한 상황이었다. 바로 추가적인 공급을 진행 중에 있어 저번처럼 품절사태가 장기화되지 않아 매출 손실도 적을 것 같았다.
“카세트테이프는 1주일 후에 나올 것이고 그러면 연말 가요계를 휩쓸 것이라 봅니다. 벌써 여기저기서 노래를 트는 것 같습니다. 2집 성공으로 신인상에 인기가수상을 휩쓸 수도 있습니다.”
아직도 범용성은 CD보다 카세트테이프가 더 컸다. 그것은 CD플레이어보다 카세트플레이어가 엄청나게 많기 때문이었다. CD가 에러가 적고 오랫동안 들을 수가 있지만 아직은 카세트테이프를 더 많이 찾는 편이었다.
“음질은 CD플레이어가 훨씬 좋은데 아직까지는 카세트를 더 많이 듣는 것 같습니다.”
장인걸은 조금 시간이 흐르면 PC가 모든 것을 대신하는 시기가 오고 그러면 음반 판매 자체가 줄어드는 시기가 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돌이 아니면 최고의 인기가수도 고작 5천 장을 팔지 못하는 시대가 오지. 음반은 팬덤들 사이에 일종의 기념품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결국 음원과 콘서트, 행사로 돈을 버는 시대가 도래 한다. 아직 한참 지나야 하겠지만.’ 그것도 3~4년 후면 현실로 다가올 미래였다. 물론 그런 시대가 오더라도 잘 적응하면 되는 문제였다.
‘대신에 무단으로 음원을 다운로드받는 것은 막아야지. 그렇게 하려면 적절한 입법을 통해 적절한 규제를 하고 음원판매 사이트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무조건 다운로드를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법을 제대로 정비하면서 정당한 가격을 내고 음원을 유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빨리 음원판매 사이트를 만들어야 했다.
“그보다 연말 시상식에서 특별 무대를 꾸며야 하는데 각 방송사마다 요구하는 방향이 달라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방송국에서 다 똑같은 무대를 준비할 수는 없으니 결국 세 가지 버전의 무대 준비가 필요했다. 하나 정도는 문라이트를 동반하여 락 공연 형태로 꾸미면 될 것 같은데 나머지 두 개의 무대는 좋은 아이디어가 없어 고민이었다.
집에 전화를 걸어 앨범 발매를 알렸다. 1집과 달리 그러려니 하는 반응을 보였다.
“마라톤을 하고 학교도 다니면서 준비를 했다니 놀랍구나.”
아버지 장재현은 그런 정도만 반응을 보였다.
“집안은 평안하죠?”
“우리 집이야 잘 있지만 네 외갓집은 그렇지가 않아 걱정이다. 외할머니는 상황이 심각하니 늦기 전에 한 번 들러라. 더구나 외삼촌은 얼마 전에 석방이 되었지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고 하더라.”
“그래서 지금 어디에 있어요?”
“어디에 있겠냐? 집도 없으니 갈 곳도 없고 그나마 비어있는 주천 네 외할머니 집에 들어가서 있지. 외할머니가 병원이 있으니 같이 있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지.”
아버지의 말에 장인걸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외갓집 소식은 듣기만 해도 짜증이 나는 내용이었다.
“알았어요. 시간을 내볼게요. 이제 추수도 얼추 끝나가죠?”
“다 끝난 지가 언제인데. 하우스 재배를 해야 하는데 경기가 좋지 않아 올해는 그냥 건너뛰기로 했다. 가격이 폭락하면 노는 것보다 못할 수도 있어 보인다.”
“그렇게 하세요. 인숙이는 학교에 잘 다니죠?”
“잘 다니고 있다. 네 동생이란 것이 알려지면서 귀찮게 하는 애들이 없어 다행이다.”
“잘 되었네요. 그보다 아버지, 제가 알아보라는 산은 어떻게 되었어요? 주인이 누군지 알아요?”
장인걸은 양진산의 한쪽 임야 주인이 누구인지 아버지에게 알아보라고 했다. 당시에는 개인정보의 보호가 그리 철저하지 않아 읍사무소에 가면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었다.
“원래 주인은 양진 토박이였는데 죽으면서 아들 셋에게 나눠서 상속이 되었다고 하더라. 양진 안골 부잣집 말이야. 안골 쪽에 있는 큰 종갓집 알지? 대충 알아보았는데 일단 팔려고 하는 것 같더라. 하지만 그런 악산을 사려고 하는 사람이 없고 가격도 전과 같이 불러 거래가 되지 않고 있더라. 2억 원이 애 이름도 아니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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