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10
010화
라크락이 자올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자올은 손가락 하나를 꼽았다.
“우선, 신께서는 저희의 위험을 그저 두고 보시지 않을 겁니다. 저희가 싸운다면, 분명 신께선 부족장님을 도울 겁니다.”
“그래, 나도 신을 믿는다. 하지만 저건 몇 년생 드레이크가 아니다. 잠꼬대만으로 지축을 흔드는 걸 봐선, 신께서 내 몸에 드시더라도 호각으로 싸워야 할 거다.”
성운은 라크락의 정확한 판단에 놀랐지만, 더 관심이 가는 건 자올의 의견이었다.
성운은 자올의 능력치를 잠깐 확인했다.
『자올(전사 Lv.3/중재자 Lv.1)
힘 26
지능 35
사회성 28
직관력 11』
‘중재자 클래스는 부족에서 신임받는다는 의미지. 알고는 있었지만 지능은 라크락보다 높아. 계속 오르는군. 제일 흥미로운 건 특수 능력치인 직관력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았던 능력치였다.
아마 최근의 경험 때문에 새롭게 만들어졌으리라.
자올이 말했다.
“저와 전사들도 있습니다.”
“나는 너희 전사들이 강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저런 괴물과의 싸움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거다.”
자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부족장, 언덕을 떠나오기 전 쇠붙이 장인이 쇠를 굽기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 기억하십니까?”
“흠…”
라크락은 그 행동을 따라하라면 흉내 낼 수는 있었지만, 그런 작업들이 정확히 어떤 의도와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 이해하지는 못했다.
무리의 지도자인 라크락으로서는 쇠를 구울 줄 아는 쇠붙이 장인이 있으니 쇠붙이 장인의 일까지 배울 필요는 없는 것이니까.
문명이 발전하며 분업이 나타나기 시작한 이상 그게 더 무리의 지도자다운 행동이긴 했다.
‘그렇지만 자올이 틀린 것도 아니야.’
성운은 관심 있게 자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부족장도 불씨를 살리기 위해서는 바람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걸 알 겁니다.”
“그렇지.”
“지금까지 우리는 불씨를 살리기 위해 입으로 바람을 불거나, 손바닥을 흔들거나 커다란 나무껍질을 뜯어 흔들어 댔습니다. 하지만 쇠붙이 장인은 다른 방법을 쓰더군요.”
“아, ‘풀무’라고 부르던가.”
자올은 고개를 끄덕였다.
“쇠붙이 장인에게 부탁해 그 물건을 사용해 봤는데 전보다 바람이 훨씬 많이 불어 넣으면서도 편하기도 했습니다. 왜라고 생각합니까?”
“도구를 사용하면 적은 힘으로 더 큰 힘을 낼 수 있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풀무 같은 도구가 없다. 그 도구 또한 그 장인이 오래 고민해서 만들었어.”
“그렇게 정교한 도구는 필요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상대해야 할 괴물은 저 산비탈 아래에 자고 있고, 저희는 위에 있습니다. 저희는 화구 앞에 앉은 쇠붙이 장인이나 다름없습니다. 준비하고 행동하면 쇠붙이를 구울 수 있을 겁니다.”
그 말만으로는 라크락과 전사들이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자올은 뒤이어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말했다.
그 아이디어에 라크락과 전사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호응을 보냈다.
성운 또한 마찬가지였다.
성운은 기적을 사용해 라크락 앞으로 파란색 나비 하나를 소환했다.
‘이 정도면 알아차리겠지.’
황야에서 계절도 맞지 않게 갑작스럽게 파란 나비가 나타나자, 전사들이 의아하게 생각했다.
라크락은 멍하니 나비의 날갯짓을 바라보다가 눈에서 이채를 발했다.
라크락이 입꼬리를 올렸다.
“신께서도 허락하셨다. 자올, 그 의견대로 하지.”
─┼
산비탈은 경사가 높고 험준했다.
비탈 아래에 또아리를 틀고 자리 잡은 고대 갑충을 기준으로, 대략 70도의 급한 경사가 자리한 것이다.
그 말은 라크락과 전사들이 고대 갑충과 싸울 때, 마치 개미지옥에 빠진 것처럼 적당히 운신할 공간도 없이 맞부딪쳐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반면에 거대한 고대 갑충에게는 수많은 발이 있었고 이보다 높은 경사라도 어렵지 않게 올라올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라크락을 제외하곤 고대 갑충 가까이 가지 않을 테니 상관없어.
계획대로라면 라크락이 접근하는 순간도, 고대 갑충의 숨통을 끊을 때뿐이었다.
라크락은 고대 갑충을 내려다보는 산등선 위에 서 있었다.
“이 바위랑, 저 바위, 그리고 저것이라면 되겠나?”
“하나하나가 놈의 덩치에 절반은 됩니다. 충분할 겁니다.”
자올은 고개를 끄덕였다.
라크락이 가리킨 세 개의 바위 옆에는 전사들이 붙어 있었다.
전사들은 맨손이 아니었다.
주변에 얼마 없는 키 큰 나무를 구해 와 통째로 든 상태다.
‘돌을 굴려서 뭉개 죽인다.’
정말이지, 간단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을 위해선 상상력이 필요했다.
‘라크락만 해도 싸운다고 하면 직접 맞붙어서 숨통을 끊는다는 것밖에 생각 못했으니까.’
반면 자올은 달랐다.
자올은 정확히 무어라 표현할지는 몰랐지만, 작은 힘으로 큰 것을 움직일 수 있다는 개념을 자신의 지식으로 적극적으로 체화하고 있었다.
성운이 보았을 때 그 지식을 체계화하자면, ‘물리학’이라 부를 만했다.
‘질량과 운동 에너지, 그리고 위치 에너지와 지렛대의 원리를 활용하는 셈이니까.’
그렇다고 자올이 갑자기 물리학자가 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쇠붙이 장인의 기술이 자올의 직관력에 영향을 준 것처럼, 하나의 사건이 여러 인물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거겠지.’
라크락이 말했다.
“시작해라.”
그 말에 자올이 팔을 들어 올려 신호를 보냈다.
전사들이 산등선 위의 바위 아래 통나무를 끼고 바짝 당겼다.
바로 움직이진 않는다.
자올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호흡을 맞춰라. 내가 손을 올리면 당기고, 내리면 바위가 흔들리도록 둬라.”
자올이 박자를 넣자 바위의 흔들림이 점차 커졌다.
이윽고 바위 하나가 완전히 넘어갔다.
‘이제 내가 나서야 할 때군.’
되도록이면 세 개의 바위가 동시에 고대 갑충을 덮치는 것이 좋았다.
성운은 라크락에게 강신했다.
성운=라크락은 강대한 힘으로 막 넘어가려는 두 번째 바위를 밀어서 넘기고, 가장 커서 힘에 붙여 들리지 못한 세 번째 바위를 힘껏 밀었다.
“넘어간다!”
성운=라크락의 외침에, 그리고 바위가 흔들리며 만드는, 산세를 뒤흔드는 거대한 폭음에 고대 갑충의 머리통이 들어 올려졌다.
고대 갑충은 처음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인식하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기민한 동작으로 몸을 바짝 일으켰다.
‘그렇지만, 머리가 좋은 생물은 아니지.’
머리가 좋았다면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고대 갑충은 자신에게 달려드는 돌덩이를 위험이라기보다 도전자로 생각했다.
고대 갑충은 첫 번째 바위를 향해 달려들었고, 무지막지한 속도로 굴러오는 바위에 머리통이 틀어박혔다.
-캬오오오!
사나운 소리를 내며 고통스러워하는 고대 갑충의 허리를 향해 이윽고 비탈에서 튕겨져 올랐다 떨어지는 두 번째 바위가 틀어박혔다.
고대 갑충 위에 실려 있던 유적은 물론, 갑충의 허리까지 완전히 꺾인 것이 보였다.
그럼에도 고대 갑충의 생명력은 왕성해 보였다.
고대 갑충은 나머지 바위가 자신의 정면을 향해 온다는 걸 알고 몸을 뒤틀고자 했다.
‘그건 안 될 일이지.’
성운=라크락은 창대를 꼬나 쥐었다.
그리고 삼단뛰기를 하며 산등선에서 도약했다.
삼백여 미터를 날아간 성운=라크락은 허공에서 몸을 비틀며 창을 내던졌다.
-쾅!
거의 빗살과 같이 쏘아진 창날이 몸을 일으키려는 고대 갑충의 외피를 뚫고 틀어박혔다.
표면적만 따지면 작은 상처에 불과하지만, 그 찰나 동안 움직임을 묶어 둔 것으로 충분했다.
‘마무리할 것도 없겠어.’
세 번째 바위가 고대 갑충의 머리통에 직격으로 꽂혔다.
「흉물 사냥:당신의 부족이 ‘흉물:고대 갑충’을 살해했습니다!」
─┼
라크락은 전사를 보내 무리를 불러 모았다.
거대한 괴물이 죽은 것을 보고 무리는 라크락과 전사들, 그리고 ‘위대한 딱정벌레 신’을 향해 함성을 내질렀다.
성운은 늘어난 신앙 자원을 기적으로 돌려서 먹을 것으로 환원했다.
중요한 것은 늘어난 신앙이 아니었다.
성운의 신성 레벨도 변함이 없다. 이때부터는 레벨업이 더디기도 하고 경험치도 많지 않다.
‘하지만 이걸 위해서라도 잡고 싶긴 했지.‘
「흉물 사냥의 보상으로 ‘흉물의 정수’를 획득합니다.」
신이라고 한다면 가장 큰 능력은 역시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운이 벌레의 소영역을 가졌기 때문에 리자드맨을 배불리 먹일 굼벵이를 창조해 낼 수 있는 것처럼, 각 신들은 자신의 영역에 맞는 자원들을 신앙을 소모해서 창조해 낼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창조하기 위해선, 그만큼 흔하지 않은 재료가 필요했다.
‘그게 바로 정수.’
이런 정수는 필드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그러니까 설정상 떠나 버린 신들이 놔두고 간 영물, 또는 흉물. 그보다 높은 단계의 흉신(凶神) 같은 강한 존재를 잡았을 때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정수가 있으면 ‘피조물’을 만들 수 있었다.
신의 피조물은 성장할 수 있고, 높은 단계에서는 ‘사도’나 ‘화신’과 같은 클래스를 얻어서 신의 의지를 대신하는 유용한 전략 무기이면서 그 존재 자체로 신의 위명을 널리 알리는 신앙 자원 생성기였다.
‘초기에는 유지비가 드니까 바로 만들 지야 않겠지만.’
피조물은 자원이 준비되더라도 만들어야 하는 타이밍이 따로 있었다.
당장은 신앙 자원으로 라크락과 무리를 돕는 것이 먼저였지만, 성운은 로스트 월드에서 지원하는 ‘피조물 생성기’ 프로그램이 여기서도 똑같이 사용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시야 한편에 띄워 두었다.
‘시간은 많으니 여유롭게 해도 되겠지.’
머릿속으로 첫 번째 피조물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있던 성운 앞으로 기대하지 않고 있던 메시지가 떠올랐다.
「라크락의 무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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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락은 고대 갑충의 발끝을 잘라서 입에 넣었다가 퉤 하고 뱉었다.
“맛없군. 먹지 못할 것 같다.”
“화로를 만들어 한번 삶거나 구워 보죠.”
“흠…”
라크락은 별 기대하지 않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그게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해.”
라크락은 그렇게 말하곤 고대 갑충 위를 걸어 올라갔다.
많은 리자드맨들이 고대 갑충 주변에 자리를 잡고 웅성거리고 있었지만, 저 두려운 존재가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있었다.
자올 또한 이 거수에 대해 정확히 아는 바가 없으므로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위험합니다, 부족장.”
“놈은 죽었다. 신께서 그리 알고 계시니 맞겠지.”
“흠… 그것도 맞는 말이군요.”
“놈을 죽이기 전에, 놈 위에 무언가 얹혀 있는 걸 봤다. 하지만 돌덩이에 깔렸나 보군. 부서졌거나.”
라크락이 고대 갑충의 허리춤에 박살 난 제단을 보고 중얼거렸다.
자올이 웃었다.
“사냥을 했는데 수확물이 없어서 섭섭하신 거군요?”
라크락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무리의 이동을 막는 괴물을 처단하고, 또 다시 신의 위명을 드높이는데 성공했으니 그것만으로 수확이라고 해야겠지만, 이것만으로는 뭔가 아쉬웠다.
“이렇게 맛이 별로일 줄은 몰랐다.”
“걱정 마세요. 다르게 ‘조리’하면 달라질지도 모릅니다.”
“흠.”
“그리고 껍데기가 단단합니다. 떼어 내서 가져가면 쓸모가 있을지도요.”
“그건 괜찮군.”
자올은 성큼성큼 걸어 라크락 옆으로 올라갔다.
“라크락.”
“어?”
“하던 이야기를 계속 하죠.”
“음?”
“제가 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 궁금합니다.”
“그게 뭐였지?”
“반려 이야기 말입니다.”
라크락은 헛기침을 하고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시선이 돌아간 곳에 돌덩이로 부서진 제단이 보였고, 그 안에 해질녘의 빛을 받아 빛나는 무언가가 있었다.
“저게 뭐지?”
“말 돌리지 마십시오.”
“아니, 저기 뭔가가 있다.”
라크락이 손으로 가리킨 다음에야 자올의 눈에도 들어왔다.
자올은 전사들에게 명령해, 돌을 굴렸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제단의 파편 속에서 예의 무언가를 세상에 드러냈다.
충격으로 찌그러지긴 했지만, 그건 황금으로 만든 서판이었다.
라크락은 황금 서판을 집어 들었다.
“자올, 이게 뭘까?”
라크락은 서판 가득히 쓰인 구불구불하고 복잡한 규칙의 그림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라크락의 무리가 ‘문자’를 발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