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111
111화
“엘다르, 너는 이 전쟁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그렇게 질문해 온 것은, 느닷없이 연락을 해 온 룬다였다.
룬다는 평소와 같이 어깨와 다리를 드러낸 복장이었는데, 북쪽 설산을 배경으로 서 있기에 상당히 추워 보였다.
엘다르는 평소와 다른 점을 찾아냈다.
“안경을 쓰셨군요?”
“어? 응. 조금 이지적으로 보일 생각으로. 어때? 그렇게 보여?”
“방금 설명한 이유, 네뷸라 님에게도 그렇게 말하실 수 있사옵니까?”
“…아니.”
“…그 이유가 뭔지는 룬다 님 스스로도 잘 아실 테지요.”
룬다는 안경을 접어서 등 뒤로 집어던졌다.
“아무튼 처음에 한 질문 어떻게 생각해?”
엘다르는 고민에 빠졌다.
정말로 그런지 대어 보기 전까진 쉽게 답하기 어려운 답일뿐더러, 룬다의 속내가 어느 정도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엘다르도 마찬가지지만, 평소에 룬다는 엘다르에게 따로 대화를 걸어오는 일이 잘 없었다.
두 사람은 네뷸라, 즉 성운을 중심으로 묶여 있는 관계였으니까.
‘넓게 보자면야 저희 둘 다 네뷸라 님의 느슨한 동맹에 속했사옵니다마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부분이 없지 않았다.
엘다르는 느슨한 동맹에 속하게 된 계기가 성운에게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부분적으로 약탈을 당하고 억압을 당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엘다르는 이제 와선 모두 전술적인 부분이었던 것 아닌가 좋게 생각했다.
반면 룬다는 처음부터 약점을 잡힌 상태였다.
‘그런 것치곤 꽤나 협조적인 데다 네뷸라 님한테도 살갑게 구는 것 같지만…’
지금까지 룬다를 보았을 때 그것이 꾸며낸 태도라기보다는 진솔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따로 대화를 걸어왔다는 건 이 상황에 대해서만큼은 생각이 달라졌다는 걸까?’
엘다르는 거짓말을 잘하지 못하므로 솔직하게 답하기로 했다.
“상황이 어렵긴 하지요?”
“그렇지.”
룬다가 말했다.
“아직 동맹의 총 병력이 모인 게 아닌데도 이미 10만을 넘겼어. 반면에 흑린은 겨우 2만. 물론 이게 적은 숫자는 아니야. 방어전이라고 생각하면 해 볼 만하다고 볼 수 있긴 해. 하지만 흑린은 병력을 모으는 시간이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니까 더 이상의 병력을 모을 수 있을는지는 조금 의문이지.”
엘다르는 동의했다.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숫자만 보고 싸우는 것은 아니지요. 방어전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죠. 게다가 병력 개개인을 따질 경우, 병력비에서 동맹군의 5분의 2는 ‘작은 체구’죠.”
엘다르가 말한 ‘작은 체구’는 르나르와 코볼트를 말했다.
르나르와 코볼트 또한 체구 차이가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르나르는 ‘작은 체구’, 그리고 코볼트는 ‘아주 작은 체구’에 속했다.
르나르의 평균 키는 140센티미터, 코볼트는 110센티미터 정도로 물리적인 힘도 그만큼 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룬다는 가로저었다.
“하지만 종족비로 따지자면 5분의 1은 ‘큰 체구’잖아?”
룬다가 말하는 큰 체구는 ‘트롤’을 의미했다.
평균 키가 230센티미터로 육체적으로 강력한 종족 중 대표적이었다.
물론 육체만 따지자면 그 이상으로 ‘오우거’가 있긴 했다. 이 경우 3미터에 가까운 평균 키와 수백 킬로의 체중으로 압도적인 신체 능력을 가졌지만 문제는 전쟁이란 걸 수행할 만큼의 지능이 없기 때문에 주요 종족에 속해도 논외 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룬다가 계속 말했다.
“물론 다 감안했을 때 뛰어난 육체 축복을 받은 흑린의 리자드맨들이 뛰어나다는 건 인정해. 게다가 선택받은 자들도 드문드문 있고.”
“그렇죠?”
“하지만 그것도 얼마 전까지의 유리한 점이지.”
엘다르가 의아해하다가 무슨 말인지 알고 “아”하고 탄성을 자아냈다.
“화기가 등장한 이상, 선택받은 자들은 그렇게 유리한 이점은 아니야.”
선택받은 자.
전기의 마성을 통해 번개의 힘을 공격할 수 있지만 문제는 그 능력을 무한히 쓸 수는 없었다.
그 힘은 심력을 소모하고 심력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약초를 흡입해야만 했다.
때문에 성운 또한 선택받은 자를 고평가하지는 않았다.
엘다르가 성운의 평가를 떠올렸다.
‘일시적으로 달려드는 적의 기병대를 와해시키거나, 적 보병대의 방진을 무너트리는 데 가치가 있으니 사실상 달리는 대포, 즉 전차의 역할을 하긴 해. 하지만 그 전차는 열 대 남짓 있을 뿐이고, 적 숫자가 수만 명이라면 전술적 가치는 상당히 제한적이지. 몇몇 전투에서야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겠지만 그 정도는 적들도 감수할 거야.’
엘다르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아, 다른 유리한 점이 또 있네요.”
“뭐지?”
“신성 레벨이요.”
엘다르가 마지막으로 확인한 성운의 신성 레벨은 21이었다.
반면 동맹에서 가장 높은 신성 레벨의 플레이어인 위즈덤이 19.
엘다르가 말했다.
“신성 레벨이 높으니 부릴 수 있는 창조물의 수도 더 많죠. 전투에 특화된 창조물의 경우에는 사실상의 공성 병기고 수백 명의 군대보다 전투력이 높잖아요.”
“하지만 이쪽은 신이 다섯 명인데?”
“아뇨, 하지만 사도 라크락에…”
이야기를 이어 나가던 엘다르는 아까부터 느껴지던 위화감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어… 다섯 명이요?”
“그래. 동맹은 위즈덤, 에이알, 장완, 크람푸스, 그리고 나까지 다섯 명이잖아.”
룬다의 표정은 무슨 생각인지 알아보기 힘들었다.
엘다르는 목을 가다듬었다.
“저, 그러니까 ‘일단은’ 동맹에 속하신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일단은’이 아니야. 애초에 나는 동맹이라고. 처음부터 크람푸스와 동맹이었고, 이후에 이 동맹에 에이알과 장완, 위즈덤이 더해진 거지.”
“그럼 지금까지 네뷸라 님에게 협조한 건…”
“몰라서 묻는 건 아니지? 약점 잡힌 거잖아!”
소리를 지른 룬다는 약간 울상이 되었다가 돌아섰다가 다시 엘다르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표정을 다듬었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 일단 엘다르 너는 흑린에 거의 흡수되어 있잖아.”
“…흡수. 단어 선택이 좀 그렇긴 한데 맞는 말이죠.”
엘프들이 사는 북해안의 도시 자린은 어느 정도 독립적인 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이 흑린인가 아닌가를 따지면 다들 흑린에 속한다고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난 아니지. 솔직히 지금까지는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어. 어차피 동맹과 네뷸라 사이에서 이득을 보면 상관없었다고. 하지만 전쟁이 나면?”
“아하.”
엘다르가 룬다의 고민을 알아차렸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되는군요?”
“…맞아.”
엘다르가 답이라도 적혀 있길 바라는지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네뷸라한테 붙었는데 네뷸라가 패배하게 되면? 지금까지 열심히 정보를 퍼다 나른 나를 크람푸스나 다른 사람들이 용서해 줄까?”
엘다르가 말했다.
“그렇다고 다섯 동맹에 그대로 속해 있으면, 어… 예의 약점이 노출되지 않을까요? 네뷸라 님이 가만히 있진 않을 텐데.”
“아니지. 그때는 크람푸스를 넘기고 위즈덤에 붙을 생각이었지만 이제 와서는 너무 오래된 이야기니까. 물론 그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지도 모르지만, 용서는 받을 수 있을걸.”
“하하… 그렇군요.”
“약점이 잡혀 있었다지만 지금까지 꾸준히 네뷸라와 이야기했으니 동맹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조금은 알고 있을지도 몰라. 네뷸라도 나한테 서슴없이 계획을 이야기하곤 했으니까. 그거라면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겠지.”
엘다르는 어색하게 웃으며 룬다가 인간관계를 상당히 계산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단순히 어디가 이익이고 손해라고 판단하는 수준을 떠나서 자신의 행동으로 만들어지는 상대의 태도를 계산해 내는 것이다.
‘…이것도 재능 아닌가?’
하지만 룬다는 인간관계와 달리 전쟁은 계산해 내기 어려워하는 것 같았다.
룬다가 말했다.
“솔직히 당장 봤을 때는 내가 네뷸라에게 붙어서 4대 2의 싸움으로 네뷸라가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보다, 내가 동맹에 붙어서 5대 1의 싸움으로 동맹이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더 커 보여. 나는 이기는 쪽에 붙고 싶다고.”
“저, 뭐랄까…”
“추하다고? 나도 알아. 원래 승리를 향한 길은 추한 법이야.”
엘다르는 그렇게까지 비장감 있게 할 대사인지 고민했지만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는 않았다.
“다 말씀해 주셔서 감사하긴 합니다만, 이 이야길 저한테 하는 이유가 뭐죠?”
“우리 같은 처지 아냐?”
“네?”
룬다는 몰랐냐는 듯 말했다.
“엘프들은 북해안을 장악하고 있으니 언제든 독립을 요구해도 이상하지 않잖아.”
“그렇지만 흑린의 지배하에 있는데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 전쟁이 나면 지배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잖아. 절호의 기회지. 그리고 지금까지는 네뷸라에게 협조를 했다지만 진짜 동맹도 아니었잖아? 조금이라도 네뷸라에게 피해를 줬다면 동맹은 긍정적으로 보고 널 받아들일걸.”
엘다르는 그 말을 듣고 나자 타당한 말이라는 판단이 섰다.
제3 대륙 신들의 권력 관계가 완전히 뒤바뀔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저는 네뷸라 님을 배신하지 않을 건데요.’
엘다르는 성운이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잡담이라도 하려고 들면 어김없이 게임 플레이에 대한 이야기로 빠졌다.
딴 일이라고 해 봤자 결국 바둑, 장기, 체스 같은 다른 게임이었다.
자기 이야기라곤 일체 하지 않으므로 엘다르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었다.
일상이란 게 없이, 평생 로스트 월드만 하다가 이 세계에 뚝 떨어진 사람처럼 굴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그럼에도 성운은 매력적인 구석이 있었다.
성운이라는 사람 개인을 보았을 때는 알 수 없다.
엘다르가 본 것은 성운이 그려 내는 게임 플레이를 통해서였다.
모든 것이 승리를 위한 과정이라지만, 엘다르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에서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고 감지했다.
‘아직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엘다르는 그게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하는 게 좋겠지.’
엘다르가 말했다.
“저한테도 고민해 볼 시간이 필요한데요.”
“…그래?”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 시간 좀 주시겠어요?”
“알겠어.”
엘다르는 룬다와의 화상 채팅을 종료하고 바로 다음 사람에게 귓속말을 걸었다.
곧 화상 채팅창에 익숙한 얼굴이 떠올랐다.
“엘다르, 뭐야?”
성운이었다.
엘다르는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룬다 님이 고민이 좀 있어 보이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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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고민은 무슨. 그냥 너보고 자기한테 붙으라는 거잖아. 6대 1의 게임을 하자고.”
성운이 단정하자 엘다르가 말했다.
“그래도 설득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요?”
“없지야 않겠지. 하지만 설득할 생각 없어.”
“네? 왜요?”
성운은 곧장 답하는 대신 손을 내저었다.
“애초에 룬다는 게임의 전황을 잘못 보고 있어. 내가 유리한 이유로 방어전을 꼽았다며.”
“네. 그런데요?”
“두들겨 맞다가 끝날 일 있어?”
“네?”
성운이 설명했다.
“방어를 하긴 해야겠지. 적들은 모든 공격로를 활용할 테니까. 그렇다고 가만히 놔두면 적들이 모든 공격로를 활용하도록 놔둔다는 말이야. 그러니 우리는 빈약한 공격로에 대한 적의 공격을 저지시키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나가야 해.”
“아.”
“게다가 전면전이야. 막고만 있다가 적이 제풀에 떨어져 나가길 기다리긴 힘들어. 그 사이에도 적들은 더 넓은 땅에서 곡식을 기르고 무역을 할 테니까. 고립된 쪽이 힘들 뿐이지.”
성운의 말에 엘다르는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그나저나 룬다 님은요?”
“설득은 괜한 일이야. 룬다는 머리가 단순하잖아.”
“복잡한 게 아니라요?”
“단순한 게 맞아. 답을 모르니까 자기 딴엔 계산한다고 복잡한 거지. 그냥 놔둬도 상관없어. 오히려 잘됐지. 그렇게 단순한 머리니 설득을 하니 마니 귀찮게 굴 필요가 없어서.”
“그러다 동맹에 붙으면 어떡하죠?”
성운은 가로저었다.
“최후의 최후까지 결정 못 할 거야.”
“그럼 어떻게 말할까요?”
“음, 이렇게 하지.”
성운이 말했다.
“첫 전투의 승패를 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해. 그럼 룬다도 그때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있겠지. 그걸로도 충분해.”
“네? 그러다 지기라도 하면…”
성운은 가로저었다.
“엘다르, 어차피 전쟁은 간단한 거야. 계산이 중요해 보이지만 그걸론 충분하지 않아. 아무리 한쪽이 유리하고 많은 준비를 했더라도…”
“했더라도…?”
성운이 웃었다.
“잘 싸운 쪽이 이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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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뒤.
황야에서 출정한 흑린의 1만 병력이 첫 전투에서 단염의 3만의 병력을 대패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