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130
130화
크람푸스와 AR1026을 당장 적극적으로 돕느냐,
아니면 당장 후퇴하고 위즈덤과 나머지 2차 원정군으로 후일을 도모하느냐.
장완은 자신의 선택에 앞으로의 승패가 걸려 있음을 직감했다.
문제가 있다면
“나는, 도와주지 못할 것 같아.”
AR1026이 달려들듯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크람푸스가 한 발 앞서 나오며 제지했다.
“그럼… 어쩔 수 없지. 그 생각도 일리가 있으니까.”
장완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어.’
어차피 한자리로 추락한 신성 레벨로는 돕고 싶어도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게다가 그 사실이 알려지면 두 사람에게 그 연유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한다.
‘위즈덤이 사도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왔다는 걸 말하는 건 쉽지. 하지만 그 과정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도 말해야 해. 다른 사람을 의심하고 있었다는 것도.’
대단한 비밀은 아니다.
언제가 되었든 말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이미 감정이 상할 대로 상했어. 룬다가 배신하는 것으로 동맹의 한 축은 무너졌지. 다섯 중 하나가 패배하고 하나가 배신했어. 여기에 다른 하나가 패배 중이지. 언제 동맹이 깨져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서 불필요하게 많은 이야기를 할 이유가 없어.’
장완의 생각에 크람푸스는 꽤나 냉정하게 받아들일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는 AR1026은 그렇지 못할 것이다.
장완이 말했다.
“군대를 돌릴게. 아마 데이머릿에서 출발하는 흑린 기병대는 우리를 쫓을 거야.”
당연할 것이다.
이미 병력 싸움으로 봐서는 금안군은 적과군에게 완패했다.
아직 싸움 자체가 끝난 건 아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이상 전투가 아닌 적과군의 추적·섬멸전이 될 것이다. 금안의 목표는 얼마나 많은 병력을 생환시키느냐에 달렸다. 굳이 흑린군이 도울 것도 없는 것이다.
거기다 만굴군도 데이머릿 지척에 다다랐다.
해만 뜬다면 병력의 움직임이 눈에 보일 만큼 가까우므로 데이머릿에서 추적하기는 용이하다.
보병이 다수인 만굴군은 후퇴에 속도를 내기 위해선 부대 일부를 지속해서 희생하면서 동시에 보급품도 모두 버려야 한다.
흑린이나 적과가 그것을 챙기지 못하도록 불태울 시간도 없이.
‘당장 도망간다고 많은 이득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장완이 말했다.
“흑린 기병대 병력 정도는 어떻게든 막아 볼게.”
그 말에 크람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라면 충분하지. 할 만큼 한 거야.”
“크람푸스!”
AR1026은 크람푸스를 노려보았다가, 이번엔 장완을 돌아보았다.
장완은 배신을 의심했던 것부터 지금의 전투를 돕지 않는 것까지 죄가 많았기에 어떤 욕이라도 들을 각오가 되어 있었는데, 정작 AR1026의 태도는 장완이 걱정한 것과 달랐다.
AR1026이 면사포를 위로 올리면서 말했다.
“한 번만 더 고민해 볼 수는 없나요?”
오랜 시간 동료로 있었지만 장완으로서도 AR1026의 맨얼굴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장완은 AR1026의 얼굴이 아주 매력적으로 조형되었다는 걸 알았다.
‘아니면 진짜 얼굴인가?’
게임 로스트 월드와 달리 지금은 자신의 진정한 얼굴, 그러니까 지구에서의 플레이어였던 자신도 드러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장완은 사자탈을 쓴 그대로 대답했다.
“미안해. 내가 오히려 다시 제안하고 싶은데. 병력을 포기하라고. 아직 기회가 남아 있잖아? 굳이 여기다 신앙을 낭비할 필요는 없어. 이번 전투에 그만큼 신앙을 허비하면 다음 전투가 힘들어질 거야.”
그 말에 AR1026이 한숨을 포옥 쉬었다.
“알아요. 하지만 각자 사정이 있는 거죠.”
“사정이라니?”
“그냥, 게임 플레이 말이에요.”
AR1026은 말하는 중간 중간 어떻게든 전황을 뒤바꾸기 위해서 시스템 창을 이리저리 만지면서 말했다.
“지금까지 말하지 않아서 미안한데, 사실 금안의 내정이 별로 좋지 않아요. 아무래도 네뷸라 님이 써 놓은 이런저런 공작 때문이겠죠. 저희 나라엔 야천을 믿는 이들이 많고, 귀족 중에도 있어요. 그렇게 심각한 수준은 아닌데 또 강경하게 쳐내기에는 상계에 타격이 오기 때문에 그리 건들일 수 없는 수준의. 금안은 왕의 실권이 약하기 때문에 이번에 크게 패배한다면 다음 원정군은 이번만 한 규모를 갖추기 어려울 거예요. 제가 실수를 하면, 전혀 안 될 테고.”
그 말에 장완이 말했다.
“그걸 왜 지금까지 말 안 한 거야?”
“다른 사람들한테 폐를 끼칠 수 없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네뷸라 님이 수를 써도 잘 버텨 내는데 저 혼자 무너지면 민망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그만한 내부 사정을 정확히 알게 되면 누가 의심할까 봐 무섭기도 했어요. 진짜 배신자는 따로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누가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장완은 할 말이 없었다.
‘누가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건, 맞는 말이었다.
각 나라에 신이 하나인 이상 외부의 다른 신이 도와주는 건 모양새가 이상해진다. 그 정도 긴밀한 접촉을 하기 위해선 느슨한 동맹이 아닌 시스템의 보완을 받는 진정한 동맹 상태여야 했다.
‘각자 문제가 있었을 텐데, 알려 주지 못 했구나. 같은 동맹이라지만 거리감이 있었어. 에이알만 그런 것도 아니지. 나나 위즈덤이나 마찬가지야. 어쩌면, 저 망할 룬다도 그랬을 테고.’
장완은 어쩌면 룬다가 배신하지 않도록 말릴 시점이 있었던 것 아닐까 생각했다.
AR1026이 말했다.
“하지만 다 지나간 일이죠. 조심하세요. 저처럼 바보 같은 실수 하지 말고.”
“그래. 서로 큰 피해 없이 지나가길 바라자고.”
“네. 그동안 고마웠어요. 또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
마지막 말에 장완은 물론 크람푸스도 당황했다.
“에이알?”
AR1026이 마지막이라는 듯, 시스템 창을 가볍게 터치했다.
장완과 크람푸스의 눈에 AR1026이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두 사람은 눈을 마주쳤다.
“설마?”
크람푸스가 당황하며 말하자 장완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금안의 진영 위로 누군가 떠 있었다.
장완이 이를 악물었다.
“현신한 거야,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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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는 그리 커 보이지 않았다. 인간이나 엘프 여성 정도일까.
실루엣은 검은색의 드레스가 나풀거리는 대로 흔들렸고, 드레스 아래의 맨발이 아무것도 딛고 있지 않은 채 늘어뜨려져 있었다.
반면에 얼굴은 그림자로 가리어진 듯 보이지 않았는데, 양 눈만이 붉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작은 인형이 떠 있을 뿐인데도 사람들의 등골을 간질이는 존재감이 있어, 이 혼란 와중에도 병사들은 고개를 들어 그것을 보았다.
적과군은 그 존재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금안군 중 사제들이 그 모습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사제들이 외쳤다.
“암본(暗本)께서 나타나셨다!”
도망치던 금안군 진영에서 환성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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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정신 차려.”
크람푸스의 말에 장완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현신 상태에서 죽으면 경험치가 무지막지하게 날아가잖아?”
무지막지하다는 표현을 썼지만, 현재 금안 부대가 전멸하면서 현신한 에이알도 사망한다면 레벨이 0까지 떨어질 수도 있었다.
레벨 0은 봉신, 사실상 사망을 말했다.
실제로 절우비는 현신체가 사망하는 것으로 그대로 봉신되었다.
크람푸스가 말했다.
“그만큼… 에이알이 많은 걸 걸었다는 거지. 룬다랑 네뷸라한테 무력시위하는 거야. 적당히 하지 않으면 나도 너희를 곱게 대할 수 없다는 거.”
“하지만…”
장완은 현신 스킬을 사용했더라도 상황을 희망적으로 볼 수 없었다.
애초에 현신은 사망 페널티에 대한 문제 때문에 전략적 차원에서 극히 제한적으로 쓰이거나, 어지간히 상황이 나쁘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는 스킬이다.
크람푸스가 가로저었다.
“됐어. 그만해. 이제 와서 마음을 바꿀 생각은 없잖아?”
장완은 주저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서 이 두 사람이 완패하더라도 성공적인 퇴각만을 기대하고 있었다.
크람푸스가 말했다.
“그럼 각자 할 일을 하자고. 넌 이대로 병력을 생환시켜. 금안군을 보호할 수 있으면 더 좋고.”
“알겠어. 너는?”
“난 현신까진 할 생각 없어. 하지만…”
크람푸스는 순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번쩍 거린다.
예의 걱정하던 놈이 나타나려는 징조다.
“최대한 에이알을 서포트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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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가 벌어지는 금안 진영의 뒤쪽, 그늘진 바위 뒤.
룬다가 비명을 질렀다.
“에, 에이알이 현신했어! 어떡하지?”
옆에 있던 성운이 핀잔을 주었다.
“이기고 있잖아? 호들갑 떨지 마.”
“하, 하지만 현신체잖아?”
성운은 현신체가 상대하기 까다롭다는 건 인정할 수 있었다.
로스트 월드에서 그 누가 뭐라고 하든 단독으로 가장 강한 것은 현신체일 것이다.
현신체의 능력은 신앙 레벨과 플레이어가 가지고 있는 영역으로 결정된다.
즉, 신앙 레벨이 오르고 많은 영역을 가지고 있을수록 힘이 강해지므로 그 어떤 개체도 현신체를 상대하긴 힘들다.
“하지만 에이알이 레벨이 몇이었지?”
“18이었던가?”
“봐, 절우비 때랑 큰 차이도 없잖아.”
“절우비랑 에이알이 비교가 돼? 걔는 게임을 제대로 할 줄도 몰랐잖아.”
성운은 그 의견을 반박할까 했지만, 룬다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는 알았다.
‘현신’ 스킬의 능력 크기는 플레이어의 신앙 레벨과 영역의 크기와 숫자로 결정되지만 어떤 식으로 그 능력을 발현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였다.
현신 스킬은 플레이어의 경향에 맞게 수많은 스타일로 나타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절우비는 현신하면서 물리적인 능력을 극대화했고, 그 덕분에 거신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것은 로스트 월드의 일반적인 플레이어들이 선호하는 경향은 아니었다.
오히려 물리적인 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은 상당히 바보 같은 짓으로 생각되었다.
단순한 물리력은 창조물이나 사도를 사용하면 된다.
그리고 물리력을 극대화하려고 들면 매 순간 소비되는 신앙 자원의 양, 즉 유지비도 많아진다.
코스트를 줄이기 위해서는 역설적이게도 물리적인 능력을 줄일 필요가 있었다.
어차피 현신체가 가진 신성 레벨만 따져도 물리적으로 현신체를 타격할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으므로, 남는 코스트를 다른 능력에 투자하는 것이다.
룬다가 말했다.
“움직인다!”
룬다가 목격한 것과 동시에 에이알의 손이 들어 올려졌다.
그 모습을 보고 불길함을 느낀 토베 볼코 장군이 외쳤다.
“후퇴! 후퇴하라!”
하지만 너무 늦은 뒤였다.
수백 명의 적과군의 발아래에서 검은색 가시가 솟아올랐다.
새된 비명을 지르는 것은 그 가시의 공격을 피해 낸 이들의 것이었다.
날카로운 가시는 곧게 솟아올라 병사들의 몸을 아래에서 꿰뚫어 입과 정수리, 척추 위로 튀어나왔다.
신이 내지른 손짓 한 번으로 적과군 300여명이 일시에 즉사했다.
룬다가 말했다.
“네뷸라!”
성운이 툴툴거렸다.
“됐어, 안 늦었으니까.”
다시 에이알이 손을 들어 올리려 했을 때,
지면에 벼락이 내리쳤다.
전기를 드리운 검은 리자드맨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