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136
136화
“화약 보유량이 분명 낮을 텐데도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는다면…”
위즈덤이 생각하는 문제에 대해, 크람푸스가 말했다.
“흑린의 화약 생산량이 우리보다 높은 거 아닐까?”
“어떻게?”
“숯이야 질의 문제일 뿐 어느 나라에서나 쉽게 생산할 수 있고, 황은 지금 문명 단계에서 생산이 어렵지. 하지만 초석, 질산 칼륨은 가능하잖아?”
크람푸스가 말한 것은 염초 밭이었다.
염초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함토라고 불리는 엄선된 흙이 필요했다.
이 함토는 오래된 집의 마루 아래나 부엌, 아니면 담 아래에서 겉면만 살살 긁어 취했는데, 그 양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이 함토를 사람의 소변, 그리고 재를 잘 섞은 다음 비를 맞지 않게 몇 달 말려야 한다.
바짝 마른 그것을 바닥에 펼쳐 두고 뒤집어 가며 또 몇 달을 말린 다음 가축의 대변과 흙으로 다시 덮어 둔다. 그리고 그 위에다 불을 붙여 굽는다.
그러면 흰 이끼 같은 것이 생기는데 그것이 염초였다.
다만 이 염초도 온갖 불순물이 섞인 것이라 순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가마솥에 넣고 끓이는 과정이 필요했다.
저질의 염초도 3개월은 걸리고 순도가 높은 염초의 경우 몇 년 씩 걸리기도 한다.
이렇게 염초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만이 아니라 이 염초를 만드는 과정에서 혼합물을 말린 드넓은 공간이 있어야 되는데 이를 염초 밭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런 염초 밭은 한계가 있지. 아무리 네뷸라의 재주가 좋아도 최대 생산량은 정해져 있다고 봐야 해.”
“실력 좋은 연금술사나 마법사가 있다면?”
위즈덤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적어도 크람푸스가 보기에는 그렇게 보였다.
“아니, 간단한 거야. 염초 밭은 단순히 긴 시간만이 아니라 공간도 필요하고 인력도 필요해. 지금 문명 단계에선 제3 대륙의 어느 나라도 농업이 기본이야. 그런데 농사를 할 수 있는 시간, 농사를 할 수 있는 땅, 농사를 할 수 있는 인력을, 겨우 무기를 만드는데 쓴다고? 그 실력 좋은 연금술사와 마법사가 있어도 그런 부분을 바꿀 수는 없어. 물론 좀 더 순도가 좋은 염초를 만드는데 도움은 주겠지만… 근본적인 기술 혁명이 뒤따라야만 한다는 거지.”
크람푸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크람푸스는 위즈덤과 달리 성운이 대단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기보다는 보다 간단하고 명료하게 생각하는 게 더 정답에 가까울 거라고 믿었다.
“위즈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거 아냐?”
“내 생각이 복잡하다고?”
“그래. 네뷸라의 실력이 좋다는 건 인정해야겠지. 로스트 월드에서 가장 능력 좋은 플레이어라고 하자고. 하지만 버그를 쓰거나 치트를 치거나 하는 건 아니란 말이지.”
“그랬다고 해도 이제 와선 놀라지 않을 것 같지만… 모두 상식선에서 납득이 가는 플레이였지.”
“그래. 그러니 이번에도 우리가 이해 가능한 선의 플레이를 하고 있을 거야. 상대를 과소평가할 건 없지만, 과대평가해서 우리가 쓸데없는 곳에 에너지를 소비할 필요는 없는 거지.”
“오컴의 면도날인가.”
영국의 논리학자이자 수도사였던 프란체스코가 썼던 ‘하나, 많은 것을 불필요하게 가정해서는 안 된다. 둘, 더 적은 수의 가정으로 설명 가능하다면 굳이 많은 가정을 펴지 말라’는 글에서 유래한 논리학적 지침이었다.
예를 들어, 나무에 매달린 검게 변한 사과에 구멍이 있다면 누군가 사과에 구멍을 뚫고 검게 색을 칠한 다음 인위적인 흔적을 모두 치웠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냥 벌레 먹은 사과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다.
위즈덤이 말했다.
“그래. 쓸데없는 가정은 치우자고. 그럼 간단히 봤을 때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지?”
크람푸스가 말했다.
“네뷸라에겐, 지금 상황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거지.”
“아무런 문제가 없다? 흑색 화약은 이제 전쟁의 주요 무기가 됐어. 몇 번의 전투만으로 전쟁 교리가 뒤바뀌었지. 그리고 계속해서 화약 무기가 개선되고 있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뒤바뀌고 있다고 봐도 좋고.”
크람푸스가 가로저었다.
“그걸 부정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전쟁 직전에 흑린은 대량의 초석을 사들였어. 당시에야 초석 산지를 가지고 있던 장완은 흑린이 어떻게든 초석을 마련할 테니 자신이 수익을 내면 전쟁에서 더 유리한 지점에 있을 거라고 보았겠지만.”
“장완이 실수한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실제로 그 정도 초석 양으로는 전투를 몇 번 하지 않아도 소모할 거야. 실제로 일전의 전투 막바지에는 흑린의 흑색 화약의 품질이 떨어졌다. 순도 높은 초석이 아니라, 염초 밭에서 생성된 초석으로 흑색 화약을 만들었기 때문이지.”
화약 무기에 쓰이는 흑색 화약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추진제인 질산 칼륨이었다. 질산 칼륨이 연소될 때 급격히 팽창하는 힘이 탄두를 밀어내는 에너지로 작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제작 과정에서 순도의 편차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것도 이 질산 칼륨이었다.
크람푸스가 말했다.
“하지만 필요한 만큼은 가지고 있는 거지.”
“필요한 만큼?”
“네뷸라는 긴 전쟁을 할 만큼의 질산 칼륨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당장의 전투를 할 만큼은 가지고 있다고 보는 거야. 그러니…”
위즈덤이 말했다.
“네뷸라가 단기 결전을 노릴 것이다?”
크람푸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크람푸스는 자신의 추론이 마음에 들었는지 씩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당장의 논리로는 그다지 틀린 부분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위즈덤은 또다시 가로저었다.
“틀렸다.”
“틀렸다고?”
위즈덤이 말했다.
“정확히 하자면, 네뷸라는 단기 결전을 노리겠지. 하지만 우리는 절대 그걸 응해 주지 않을 거야. 네뷸라가 원한다고 해서 그걸 할 수 있는 게 아니란 말이지.”
위즈덤은 지도를 띄웠다.
“현재 네뷸라는 수비군을 제외하고도 3만 이상의 원정군 병력을 모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측되는 흑색 화약의 양을 생각하면 이 병력은 세 번 정도 전투를 치를 건데, 두 번째 전투부터는 질 좋은 초석을 쓴 흑색 화약을 모두 소비할 거다. 반면에 네뷸라가 공격해야 하는 우리 땅은 너무 넓지.”
위즈덤은 석면과 암굴의 주요 거점들을 가리켰다.
모두 성이 위치하는 곳이었다.
“물론 우리가 흑린을 공격해 들어갈 경우엔 네뷸라가 원하는 대로 단기 결전의 그림이 그려지겠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을 테지.”
“…그런가. 그 말이 맞는 것 같은데.”
크람푸스가 안타까워하자 위즈덤이 말했다.
“하지만 크람푸스, 너의 말 덕분에 실마리는 잡혔다.”
“실마리라니?””
위즈덤은 손을 움직였다.
크람푸스가 봤을 때는 엉뚱한 위치였다.
“만굴의 연안 지대…?”
“그래. 알쿰. 만굴의 초석 산지다.”
그 말에 크람푸스는 저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위즈덤이 설명했다.
“알쿰은 초석 광산은 물론이고 각 나라로 초석이 판매되기 때문에 보관하는 창고도 많이 있지. 흑린에서 많이 떨어져 있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대비도 미비하다. 네뷸라로선, 초석이 없다면 초석을 구하면 될 테니까. 이 알쿰이 흑린의 다음 목표일 거야.”
─┼
위즈덤의 추측대로 흑린에선 꽤 많은 선박들이 건조되고 있었고 대부분 군함으로 밝혀졌다.
위즈덤, 크람푸스, 그리고 장완은 최대한 네뷸라의 작전을 모른 척하면서 알쿰에 대한 방비를 강화해 나갔다.
그러면서 각 해안에서 군함들을 건조하면서 해상전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끝냈다.
다시 두 달이 지날 무렵, 150척의 군함으로 이루어진 흑린 함대가 제3 대륙의 남해안으로 출진했다.
아무런 경고도 하지 않은 기습 공격이었지만 항시 바다를 경계하고 있었던 크람푸스는 그 기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해 냈다.
‘기다리고 있었다.’
세 사람으로 이루어진 동맹은 설욕을 되갚아 줄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흑린 함대는 알쿰 앞바다까지 나아갔지만, 만굴의 군함 130척, 석면의 군함 100척, 그리고 단염의 반란군이 준비한 30척의 상선까지 모두 260척의 배가 수평선까지 늘어서서 흑린의 함대를 에워쌓았다.
결과는 동맹의 승리였다.
동맹의 입장에선 안타깝게도, 흑린에게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다.
이얀 타타 제독이 이끄는 흑린의 함대는 두 척이 완파되었고, 다섯 척이 반파되었을 뿐이었다. 완파가 여덟 척, 반파가 열 세척인 동맹이 피해만 보자면 더 컸다.
하지만 흑린을 상대로 한 동맹의 첫 승리라는 점에서 고무적이었다.
장완은 무리하게 군함을 늘리느라 국가의 자원이 엉뚱한 곳에 소모한 것에 비하면 미비한 승리라고 비꼬았지만, 크람푸스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우리 계산이 맞다면, 흑린은 이제 다음 전투부터 제대로 된 화약 무기를 쓸 수 없어.”
전투에 참여한 배의 숫자를 고려할 때 파괴된 배는 서로 많지 않았지만 이 모든 건 적극적으로 달려든 동맹과, 그것을 막기 위해 막대한 화력을 쏟아부은 흑린의 전투 양상 때문이기도 했다.
전투에서의 승리 이외에도 동맹의 목표는 흑린이 흑색 화약을 소비하게 만드는 것에 있었다.
위즈덤이 평가하자면 전술적인 차원에선 미비한 승리이나 전략적인 차원에선 압도적인 승리였다.
“다음은 어떻게 하지? 흑린이 한 번 더 알쿰을 공격해 올까?”
“아니, 그럴 것 같진 않은데.”
흑린의 간자들이 발견한 바에 따르면 군함 중 일부가 이미 민간에 팔려 상선으로 개조된 것이 발견되었다.
위즈덤은 성운이 할 수 있는 몇 가지 계획을 가늠해 보았다.
“하나는 네뷸라가 방어전에 치중하는 거야. 공격을 하기에는 흑색 화약의 질이 떨어지니까.”
크람푸스가 지적했다.
“하지만 장기전으로 들어서면 흑색 화약을 통한 무장을 유지할 수 있는 우리가 더 유리하잖아?”
“그래. 그러니 네뷸라가 할 수 있는 선택은 그리 많지 않아.”
위즈덤이 계산한 흑린의 초석 보유량은 이미 적과와 흑린의 것을 합산한 것이다. 따라서 적과는 예외로 둬야겠지만, 아직 단염에는 초석과 흑색 화약이 상당량 있을 것으로 추측 되었다.
“…단염을 치나?”
“그것까진 가늠하기 힘들군. 단염을 쳤을 경우, 단염은 다시 우리 동맹에 들어오고 싶어 할 테니까. 흑린으로서는 부담되지 않겠나.”
“그럼?”
위즈덤이 크람푸스를 가리켰다.
크람푸스가 반문했다.
“뭐? 나?”
“그렇다, 두 가지 이유에서 크람푸스 너 다.”
“두 가지?”
“첫 번째는, 이제야말로 흑린이 최후의 방도로 단기 결전을 노릴 거란 점.”
“두 번째는?”
“흑린이 너를 노릴 거라는 거지.”
그리고 위즈덤의 말대로 되었다.
크람푸스가 다시 꾸리고 있던 독립국은 위즈덤, 석면의 영토에서 가장 취약한 지점에 있었다.
물론 석면의 영토에서 유력한 지역을 내어 줄 수 없었던 탓이지만, 석면의 트롤들이 다른 나라의 공격에 대비해 쌓아 올린 높은 성이 이는 방어 요충지라는 점에서도 크람푸스에겐 가치가 있는 땅이었다.
그 아시엔 성은 단염 반군이 신단염을 세운 장소였다.
흑린군 2만이 아시엔 성을 향해 공격을 나섰다.
하지만 이번에는 동맹이 기대한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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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엔 성 공방 5일차.
아시엔 성의 성벽은 밤낮 없이 이어진 흑린의 포격에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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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람푸스는 성운에게 귓속말을 보냈다.
“어디서 난 거지?”
“뭘?”
“화약 말이다.”
크람푸스가 질산 칼륨에 대해 이야기하자 성운은 그제야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성운이 말했다.
“질산 칼륨 무역을 할 수 있는 게 너희만은 아니잖아?”
“뭐?”
성운은 지도를 띄웠다.
“지도를 잘 보라고. 이 지도에 있는 게 너희만인지.”
크람푸스는 당황하며 지도를 보았다.
그러다 무언가 깨달았다.
지도는 제3 대륙 전도가 아니었다.
지도의 다섯 시 방향, 끄트머리에 빼곡 튀어나와 있는 것이 있었다.
제4 대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