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139
139화
라크락은 레딘 비알 오서의 창날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서로의 창끝이 닿기 직전 피해 낸 것은 레딘이었다.
‘지금의 돌격은 그저 짐승들이 해 대는 힘 싸움에 지나지 않아. 이대로 부닥칠 이유가 없다.’
레딘이 라크락의 창날을 피해 빗겨 나자, 기사단 또한 양분되며 라크락의 공격 범위를 피해 갔다.
정확히는, 피해 가려 했다.
“겁쟁이로군!”
라크락은 몸을 반회전하며 창날을 길게 뻗어 기사단의 후위를 후려쳤다.
엘크 몇 마리가 그대로 쓰러지며 기사들이 낙마했다.
속선의 성기사들은 곧장 일어서서 라크락과 대치했다.
레딘과 그 기사단은 원을 그리며 돌아오고 있었다.
‘대화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저 레딘이라는 트롤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기사단 전체를 통솔할 수 있나 보군.’
라크락은 낙마한 성기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천둥소리와 함께 내지른 창날이 첫 번째 기사를 방패째로 꿰뚫었다.
그다음 달려드는 기사를 향해 창날을 털어 내 다음 기사에게 내던졌고, 세 번째 기사의 몸을 그대로 걷어차 올렸다.
강철로 두른 갑옷을 입은 2미터가 넘는 거구의 몸이 수십 미터 넘게 솟구쳐 올랐다.
‘다음은… 음?’
라크락은 다음 기사를 향해 몸을 날리려고 몸을 숙였다가, 그대로 몸을 굴렀다.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빛나는 화살이 라크락이 있던 자리에 박혔다.
-퍽!
라크락은 몸을 일으키며 화살이 박힌 자리를 바라보았다.
화살이 맞은 자리에는 폭발이 있었다.
‘평범한 화살이 아니다.’
화살을 쏜 것은 지금 달려오는 레딘과 그 기사단이었다.
성기사단은 중무장을 한 상태에서도 정확한 활 솜씨를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활이라면 라크락 또한 재주가 있었다.
라크락이 왼손을 뻗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왼손엔 금빛 각궁이 손에 잡혔고, 오른손에는 빛나는, 번개 그 자체가 붙잡혀 있었다.
라크락은 번개를 시위에 먹여 힘껏 당겼다.
레딘이 말했다.
-피해라!
라크락의 빛살이 쏘아졌다.
라크락과 레딘으로부터 이어지는 빛의 끈이 1밀리 초 동안 번쩍였고, 다음 순간 낙뢰에 맞은 성기사 여섯이 갑옷 안에서 시커먼 연기를 피워 올리며 그대로 낙마했다.
‘야천의 사도에게 허명은 없는가?’
레딘은 스스로 반성할 점이 없지 않다고 생각했다.
레딘은 자신이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했다.
신의 힘을 빌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일 때도, 기사단을 포섭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 때도, 기사단을 이끌고 반란군들을 전례 없는 속도로 제압할 때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너무 쉬운 길만을 걸어왔음을 인정해야겠군.’
첫 돌진에서 레딘은 라크락의 공격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대로 맞섰다간 어떻게 되었을지 절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내가 낙마하고 뒤따르던 기사들 또한 튕겨져 나갔겠지.’
라크락에겐 그야말로 신을 죽인 이의 투지가 있었고, 그 투지를 뒷받침할 만한 능력도 있었다.
‘신도 죽일 수 있는 괴물이다. 난 저자와 같지 않아.’
레딘은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고 판단했다.
-부대를 둘로 나눈다. 전위는 나를, 후위는 부단장을 따라라. 그리고, 부단장?
“예!”
-부대를 이끌고 라크락의 발을 잡아라.
“알겠습니다.”
레딘이 방향을 틀자, 그를 따르는 기사단의 절반 또한 레딘을 뒤따랐다.
-그 사이 나머지 전위는 흑린의 본대를 친다. 라크락의 약점은, 저 후퇴하는 병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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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크락이 낙마한 마지막 기사의 머리에 창을 꽂아 넣었을 때, 아까 전 걷어차 하늘로 솟았던 기사가 바닥에 떨어졌다.
-콰직!
라크락은 둘로 나뉜 기사단을 번갈아보았다.
‘어떻게든 날 따돌려 보겠다는 건가?’
라크락은 잠깐 고민했다.
부대를 원호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 경우엔 레딘이 아닌 다른 쪽 기사단이 흑린군을 공격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어느 쪽이든 피해를 본다. 손이 부족한 상황이다.
“…크으윽!”
라크락은 바닥에 처박혔다가 신음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키는 트롤 성기사를 보았다.
면갑 아래에서 시커먼 피를 쏟아 내고 있었지만, 그 안쪽은 어찌 되었든 살아 있는 듯싶었다.
‘생각보다 몸이 단단한 놈들이야. 어설프게 대해서는 안 된다.’
인상을 잔뜩 찌푸렸던 라크락은 자신이 모든 것을 짊어질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라크락은 하늘을 힐끗 바라봤다가, 몸을 일으키는 성기사의 머리통을 걷어찼다.
-퍽!
몸과 분리된 머리가 저 멀리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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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린군 지휘관 바센 라크 오라즌에게 부관 수헌이 말을 탄 채 옆에서 달렸다.
“장군, 정찰대가 돌아왔습니다.”
“상황은?”
“좋지 않습니다. 신단염군은 뒤늦게 합류중이지만, 석면군은 이미 부대를 준비 중이었던 것 같습니다.”
수헌은 정찰대가 알아 온 석면군의 숫자와 방비 상태를 말했다.
“숫자는 일단 1만 뿐입니다만, 전체 적의 숫자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모두 다 더하면?”
“모르겠습니다. 정찰대로부터 계속 취합 중이지만 계속해서 적군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대략 3만 정도입니다.”
수헌이 계속 말했다.
“처음에는 후퇴한 방향이 나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그렇지도 않군요. 모든 방향에 석면군이 깔려 있습니다. 사실상 포위지요. 저로서는 도저히 방도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바센이 달리는 코카투 위에서 말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숫자와 다르군. 적의 방비도 그렇고.”
“예? 예. 그렇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정찰을 철저히 한다.”
“예. 하지만 이번에는 소홀한 점이 있었을지도…”
“아니, 없었다. 내가 모두 확인했었으니까. 그리고 우리가 미처 정찰하지 못한 부분은 야천께서 확인해 주실 때도 있지. 사제들이 이 쇠 냄새 풍기는 칼잡이들을 쫓아다니는 이유가 그거 아닌가?”
그 말에 수헌이 피식 웃었다.
“야천을 탓하시는 겁니까?”
“아니. 놈들이, 그리고 속선이 철저히 준비를 했다는 말이지.”
“모든 전쟁 준비는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만, 놈들은 오늘을 위해 지금까지 준비했단 말이다. 그러니 기뻐할 일이지.”
“기뻐할 일이라니요?”
수헌이 어리둥절하게 바라보자 바센이 말했다.
“이번이 동맹과의 마지막 싸움이 될 것 같단 말이지.”
수헌이 웃었다.
“좋군요.”
“전군에 속도를 올리라고 해라. 가능하면 전속력으로.”
“괜찮겠습니까? 더 빨리 도망치라고 해도?”
바센은 혀를 찼다.
“부관.”
“예?”
“아직 배워야 할 게 많군.”
수헌이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바센이 말했다.
“포위당했다면 우리는 더 이상 후퇴하는 게 아니라 돌격하는 거다.”
수헌은 무언가 깨달은 듯 밝아진 얼굴로 말 속도를 늦췄다.
바센의 반대쪽으로 누군가 말을 붙였다.
정찰대였다.
“나쁜 소식입니다. 부대 뒤가 잡혔습니다!”
바센은 고개를 돌려 부대의 후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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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쏴라!
레딘의 구령과 함께 기사단이 화살을 쏘았다.
기사단에게서 쏘아진 빛나는 화살들은 지면에 떨어지는 일 없이, 흑린의 병사들에게 꽂혔다.
그저 화살 몇 대라고 방심했던 병사들은 몸에 화살이 꽂히자 몸을 비틀며 비명을 질렀다.
-아악!
화살이 맞은 부위는 느닷없이 부풀기 시작하더니 생살을 찢고 근육과 혈관, 뼈와 신경들이 외부로 튀어나왔다.
그 기관들은 모두 기형적으로 변형되어 재정립되었다.
운 좋게 직접 화살에 맞지 않은 이들조차도 바로 등 뒤까지 추적해 온 기사단의 칼에 맞았다.
기사단의 칼날이 팔을 절단하자, 팔은 그 즉시 근육, 혈관, 뼈, 신경으로 분해되며 바닥에 흩어져 떨어졌다.
비명을 지르는 병사가 다음으로 공격당한 곳은 목이었다.
‘…질서의 힘!’
레딘은 새로운 질서를 보며 환희를 내질렀다.
속선의 근본적인 힘은 엮고 섞는 힘.
본래는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 또는 정연하게 짜내는 직조 예술품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많은 신들의 힘은 창조와 파괴 두 가지 모두의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테면 야천은 벌레를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야천의 사도들은 벌레를 내쫓기도 한다.
따라서 속선의 사제들 또한 비슷하게 실을 풀어헤치는 재주 말고도 실을 묶어 내는 재주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나와 성기사들은 더 높은 단계의 힘을 가지고 있지.’
묶을 수 있다면, 풀 수도 있다.
‘이것은 관점의 차이다.’
묶인 것을 풀어내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한 힘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시야를 달리한다면, 쓸모가 있었다.
어찌 본다면 세상 만물이 곧 ‘엮인 상태’이기도 한 것이다.
잘 짜여진 옷 한 벌은 물론이고, 서로 못 없이 엮인 나무 집이나, 한 권의 책, 연금술사들이 가지고 있는 복잡한 기계 장치들까지도.
‘따라서 생물 또한 하나의 엮인 상태에 불과하지. 따라서 삶은 좀 더 복잡하게 엮인 모습일 뿐, 그 본질은 죽음과 다르지 않다.’
레딘은 도망치는 흑린군 병사의 등을 찔렀고, 그 병사를 완전히 풀어헤쳤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하지만 속선에 대한 레딘의 찬양은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벌레?’
레딘과 기사단이 활을 다시 들어 올렸을 때, 새카만 풍뎅이 떼가 눈앞에서 나타났다.
마치 이것도 풀어보라는 듯.
‘야천!’
레딘은 대륙의 모든 신들에 대해 철저히 조사했으므로 야천이 과거에 벌레와 연관이 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까짓 벌레 따위…’
복잡하지 않을수록 레딘은 풀어내기 쉽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옷가지나 책과 같은 사물은 이 신의 힘만 있다면 손을 대는 것만으로 풀어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이 벌레들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칼날에 맞으면 껍데기와 내장, 진액으로 풀려서 바닥에 나뒹굴었으나, 그뿐이었다.
풍뎅이가 사라지면, 다음 풍뎅이가 왔고, 그 풍뎅이를 풀어헤치면, 더 많은 풍뎅이가 앞을 가로막았다.
‘야천의 힘인가? 아니면 본래 벌레도…’
시야가 사라지자 불안해진 엘크들이 속도를 늦추고 주저했고 멈춰 섰으며 뒤로 물러나기도 했다.
느닷없는 풍뎅이 떼와 분투하던 레딘은 자신의 등 뒤에서 번쩍이는 빛을 느꼈다.
‘이런, 시간을 지체했나?’
라크락이었다.
다행히도 라크락은 다른 기사단을 모두 물리친 것이 아니라, 꽁무니에 매달고 있었다.
‘아니, 아니다. 놈은 제 부대가 공격당하는 걸 보고 마음이 급해진 거야. 앞뒤에서 합공할 기회다!’
레딘은 기사단에게 외쳤다.
-라크락에게 달려라! 화살을 쏴라!
기사단은 풍뎅이 떼에서 빠져나오며 라크락에게 돌진했다.
평원을 달리는 라크락과 아낙세.
그 앞뒤에는 엘크를 탄 기사단이 화살을 쏴 대고 있었다.
하나같이 이견이 없을 명궁.
이윽고 화살 하나가 라크락의 팔뚝에 맞았다.
-됐다! 이제 질서의 힘만 주입된다면…
화살은 즉시 뽑혔지만, 화살을 맞은 팔뚝은 마치 끓고 있기라도 한 듯 부글거렸다.
라크락의 내부 기관들이 재정립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라크락은 호흡을 들이키며 자신의 오른팔을 노려보았다.
“흡!”
팔에 잔뜩 긴장이 들어가자, 그 움직임은 그대로 멎어 버렸다.
라크락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계속해 봐라, 트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