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성운 또한 이 모든 것을 확인했다.
‘끝났군.’
흑린군은 고지대를 점령했다.
석면군이 재정비를 한 뒤 온다고 하더라도 그때는 흑린군이 고지대에서 진을 친 다음이니 쉽지 않은 싸움을 해야할 것이다.
성운의 파괴자 스라티스는 위즈덤의 파괴자 오스트로를 이겼다.
이 사마귀를 닮은 파괴자는 승리를 위해 큰 상처를 입고 말았지만 평범한 군대로는 상대조차 하지 못할 괴수임은 틀림없다.
사도 라크락이 사도 레딘 비알 오서와 그 기사단을 물리쳤다.
레딘은 분전했으나 라크락은 자신이 알고 익혀온 방식으로 적 기사들을 하나하나 죽여나갔고, 결국엔 끝을 보았다.
장완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듯 위즈덤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위즈덤은 잠시 생각하는듯 답을 하지 않다가 성운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패배한 거냐고? 그래. 솔직히 나도 궁금하군. 어떻게 우리가 진 거지?”
성운은 몇 가지 가벼운 조작을 이어나갔다.
전장에 있는 사제들에게는 방비를 게을리 하지 말라고 이르고, 오라즌에 있는 계시 사제들에게는 전투의 승리를 암시했다. 이 암시는 카일 라크 오라즌, 흑린의 왕의 귀로 들어갈 것이다.
카일은 기민하게 움직여 전쟁의 사후처리를 신하들과 의논하고 그 결과에 따라 대륙을 장악할 터였다.
그리고 스라티스를 독려했고, 라크락에게 어떤 메세지를 보낼지 고민하고 있었다.
성운이 답했다.
“설명하긴 쉽지만, 납득은 못할텐데?”
“상관없다, 네뷸라.”
위즈덤의 목소리에선 어느 정도 체념이 섞인듯 싶었다.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게임의 전략, 전술적인 차원에서 나와 너의 지식에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리고 이 게임은 피지컬이라고 할만한 특별한 요인도 없지. 게다가 내가 한 게임 플레이 방식은 내가 의도한대로 개체를 움직일 수 있는 방식이었다. 그러니…”
“같은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 나는 개체를 의도한대로 움직일 수 없으니까 이겨야 하는 건 내가 아니라 너였어야 한다고?”
“그래.”
성운이 말했다.
“일단, 피지컬적인 요인은 분명히 있다고 하고 싶은데, 이번에는 그 부분이 중요한 건 아니었으니 넘어가자고.”
“…그러지.”
“그리고 ‘의도한대로 개체를 움직인다’는 건 최상위권 랭크에서는 유행이 지난 메타야.”
“그런… 가?”
성운이 설명했다.
“지켜봤더니 장완이랑 너, 그리고 룬다가 비슷한 종교 체계를 짜더라고.”
로스트 월드는 플레이어가 신인 게임인만큼 게임 상에서 선택하게 되는 종교 체계, 교리가 중요했다.
이런 종교 체계는 사후세계의 모습과 플레이어가 선택한 소영역, 활동하는 지역에서 생겨나는 자연물이나 풍경 따위를 엮으면서 자연스럽게 신도들이 체화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런 종교 체계가 곧 플레이어의 게임 방식이었다.
“자동으로 진행되는 플레이가 아니라고, 플레이어의 의도대로 진행된다고해서 ‘수동’. 아니면 플레이어가 자신의 뜻대로 게임을 진행할 수 있다고 ‘주도권’이라고 불렀지. 처음 나왔을 때 강력한 메타였고, 다른 메타에 자리를 내어준 다음에도 여전히 나쁘진 않다고 할 순 있지만, 최고라고 할 수는 없지.”
위즈덤이 자신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대로 되는 게 없는 게임 플레이에서 내 의도대로 게임이 진행되면… 더 좋아야 하는 것 아닌가?”
“완전 자동으로 진행되는 것 보다는 낫겠지. 하지만 수동 플레이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어.”
“약점?”
성운이 답했다.
“의도한 플레이 ‘밖에’ 못한다는 거지.”
“그게 약점인가?”
“그래. 수동 플레이는 완전히 자동으로 흘러가는 상황보다 플레이어가 개입하는 상황이 더 좋다고 상정하기 때문에 성립하는 방법이야.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아. 플레이어의 선택이 틀리고, 개체의 선택이 옳을 때도 있어.”
이를테면 전장을 내려다보며 전쟁을 지휘하는 경우가 그렇다.
신인 플레이어는 보통은 허공에서 내려다보기 때문에 자신이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부대 이동을 명령하지만, 전쟁을 당장 치르고 있는 병사 입장에서는 해당 위치까지 이동할 때의 수 많은 장애물들을 인식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좋은 위치까지 힘들게 이동하는 것 보다, 그보단 나쁘더라도 체력의 소비를 아끼는 판단이 향후 전투에 더 나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플레이어는 모든 것들을 다 컨트롤할 재주는 없어. 바쁜 상황이 되면 디테일하거나 정확한 명령을 내리지 못하게 되고, 그런 경우에는 엉성한 선택을 하게 되는 거지.”
성운은 위즈덤이 무척 바빴을 거라고 판단했다.
동맹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적과군이었다. 라크락은 이미 묶어두었고, 이미 병력차가 난 흑린군은 성 안에 가두고 천천히 죽일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적과군 4만을 막는 동안 오스트로와 레딘에게는 상대적으로 신경을 덜 썼고, 이 둘은 자체적인 판단으로 도망치거나 피하지 못했으며, 이전에 내려진 명령 ‘상대를 죽여라’를 죽을 때까지 수행하려고만 했다. 명령이 아니라 그저 몸에 새겨진 본능인, ‘위험에 빠졌다고 판단되면 도망가라’를 수행했다면 지금 상황이 그렇게까지 나쁘게 흐르진 않았을 것이다.
“항상 자신의 의도가 낫다고 생각하고, 컨트롤 할 수 없는 것들을 컨트롤하려고 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거지.”
위즈덤이 말했다.
“그럼 어떻게 했었어야 했나?”
“최신 메타는 간단해. 개체를 조종하려고 하지 않는거야. 그대신 개체가 플레이어를 따르도록 하고, 그러면서 개체가 펼쳐나갈 가능성을 열어두게 놔두라는 거지. 그렇게하면 잠깐 시선을 뗐다고 해서 지켜야할 개체가 죽거나 하지도 않으니까, 중요한 순간엔 디테일한 개입을 해볼 수도 있지.”
위즈덤은 이해가 되었다는듯 머리를 끄덕였다.
위즈덤은 성운이 어째서 마법사를 활용했는지 이해했다.
마법사는 자신의 아래 두면 강력한 카드지만, 동시에 위험하기도 했다. 마법사는 근본적인 성향 때문에 플레이어의 의도대로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외부에 떨궈둔다면, 자신이 가질 수는 없지만 남도 가지지 못하는 힘으로 남는다.
게임판의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는 추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추는 향후 플레이어의 선택과 영향력에 따라서 바뀔 수도 있다.
‘작은 왕국에서 마법사를 다루는 것과 대륙을 통일한 제국에서 마법사를 다루는 건 다른 이야기지. 위험을 내포한 와일드 카드보다, 게임의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건가?’
위즈덤이 말했다.
“공부가 되었군. …나는 항복하겠다, 네뷸라.”
성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리고 남은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나는, 이라고 했지. 위즈덤은 간단히 받아들였지만 이 둘은 어떨까.’
크람푸스가 말했다.
“위즈덤도 한 가지 질문했으니 나도 하나 물어봐도 되겠지?”
“그래.”
질문에 하나 답해주고 항복을 받아낸다니, 성운으로서는 마다할 것이 없다.
“까다로운 질문도?”
“무슨 질문인데?”
“우리 상황이 반대일 경우에, 너는 항복하겠어?”
성운은 팔짱을 끼고는 고민했다.
그리고 답했다.
“아니.”
“아니라고?”
“나는 아직 기회가 남아있다고 판단할 거야.”
“…설명해봐.”
성운은 그렇게 했다.
“일단 위즈덤이 항복 직후에 어떻게 움직일지는 알 수 없지. 사도이면서 동시에 왕인 레딘이 죽었으니 나라에 큰 혼란이 올 거야. 그 동안 석면을 복속시키거나 위즈덤이 적극적으로 동맹을 한다고해도 지원하는데는 한계가 있을테니까. 그리고 또 다른 나라들인 금안과 단염은 적국이라고 할 수 없어. 흑린이 아니라 마법사가 주도하고 있으니까.”
“더 있나?”
성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있지. 장완은 전쟁 피해를 많이 받지 않았어. 병력도 고스란히 있지. 그리고 흑린과는 거리가 아주 멀어. 흑린과 적과가 원정군을 만들어 공격할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을테고, 그럼 그 동안 몇 가지 작전을 고안해볼 수 있겠지. 포기하기엔 이르다고 생각할 거야.”
크람푸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항복할만한 이유를 물어보고 설득당할 예정이었는데, 그런 말을 하면 곤란한걸.”
“물론, 너랑 나는 다르지.”
“어떤 부분이?”
“나는 그런 작전을 생각해낼테고, 너는 못할 테니까.”
크람푸스는 화를 내는 대신 웃었다.
“야, 너 진짜…”
“하지만 내가 아니라 네가 항복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거라면, 할 말이 없진 않아.”
“뭐가 있나?”
성운은 세 손가락을 보였다.
“이번 일이 설령 실패했어도 내가 보여주지 않은 게 세 가지 더 있거든. 첫 번째는 마법사 마즈다리야.”
“마법사…”
크람푸스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설명이라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나머지 둘은?”
“첫 번째로 충분하지 않나? 나머지 둘은 당연히 비밀이야. 항복하고나면 나중에 알려주지.”
크람푸스가 말했다.
“그래, 항복하지.”
이제 모두의 시선이 장완에게 향했다.
장완이 말했다.
“뭐?”
성운이 말했다.
“이제 너 밖에 남지 않았다는걸 굳이 알려줄 필욘 없을 것 같은데.”
장완이 말했다.
“내가 무릎꿇고 용서라도 빌기를 바라는 거야?”
성운은 앞서나가지 말라고 하고 싶었지만, 우선 지적할 부분이 있었다.
“그 모습으로는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데.”
그 말에 장완은 얼굴을 붉혔다.
장완은 아직 성운의 동생인 지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장완은 등 뒤에서 사자탈을 꺼내들어 머리에 뒤집에 썼다.
“…그럴 의도로 한 말은 아니야. 외형은 조금 있다가 고칠게.”
성운은 한숨을 쉬었다.
“그럴 필요 있어? 내가 상처받길 바란 거 아닌가?”
“맞아.”
“그게 모두 작전의 일환이었다고만 하지는 못할텐데.”
“그것도… 맞아.”
“그럼 아바타를 고칠 필요도 없지. 그 얼굴로 나타날 때마다 날 깜짝깜짝 놀래킬 수 있을테니까.”
장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생각이 바뀌었어.”
“왜?”
장완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솔직히 말해서, 절대로 알아차리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 동생은 안중에도 없는 형편없는 오빠라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잘못 판단한 것 같아. 좋은 사람인지는 몰라도 내가 생각한 것만큼 나쁘진 않았던 것 같아. 내… 오판이었어. 미안해.”
성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자신은 형편없는 사람이 맞았다. 장완은 그렇게 틀린 게 아닐지도 몰랐다.
어차피 그런 종류의 작전에 대해서라면 성운은 크게 감정이 상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자신 또한 그런 기회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사용했을테니까.
‘오히려 이런 카드가 있는데도 진작에 사용하지 않은 게 위즈덤의 실수지.’
성운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않지 않기로 생각하곤, 장완에게 마음이 걸리던 부분을 말했다.
“사과를 할거라면 나보다 지우에게 해야겠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장완이, 사자탈의 눈을 부릅뜨며 성운을 치켜보았다.
“아니. 난 언니 잘 알아. 언니는 용서해줄거야.”
“…뭐지? 그 당당함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양보하지 않을거야. 절대로.”
“잠깐. 뭐야? 너 지우랑 무슨 사이였는데?”
“말 안해.”
성운이 재차 물으려는데 크람푸스가 웃으면서 앞으로 나왔다.
“자, 그럼 다들 항복한 거 맞지?”
“아니, 난 아직 항…”
위즈덤도 끼어들었다.
“잘됐군. 그럼 네뷸라, 이제 선택의 시간이군. 우리를 모두 박살내서 피규어로 만들건가? 아니면 느슨한 동맹이 아닌 ‘진정한 동맹’을 맺을 건가?”
성운은 생각했다.
‘결국 노리는 건 그 부분이었군.’
애초부터 위즈덤은 동맹의 패배 시나리오 또한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의 나라가 거대한 대륙을 일통하는 건 쓸 데 없이 많은 시간과 자원을 소모한다.’
물론 그렇게 하게 되는 게임들도 있었다.
게임의 초반부에 대륙의 패권을 잡게 되는 경우가 그랬다.
하지만 지금처럼 대륙 내에서 비슷한 세력들이 힘을 키워나간 경우 ‘진정한 동맹’ 선택지를 고려하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진정한 동맹이란 플레이어들이 임시로 맺게 되는 느슨한 동맹이 아닌, 게임에서 지원하는 시스템을 통한 동맹을 의미했다.
동맹의 형태는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주도권을 잡게된 플레이어가 결정했다.
“그래.”
성운은 이미 동맹의 형태를 결정해둔 상태였다.
“이제 만신전을 지을 시간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