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지옥을 만드는 건 어떤가?”
위즈덤이 말했다.
“내 생각엔 다들 사후세계를 너무 놀려두고 있는 것 같군. 한 세계를 완전히 지옥으로 뒤바꾸고 나면 다들 더 신실해질걸.”
그 말에 룬다가 말했다.
“그럼 다른 세계는 무슨 역할을 맡는데?”
위즈덤이 말했다.
“최초의 지옥보다 조금 덜 끔찍한 지옥이지. 첫 번째 지옥에 빠질만큼 죄가 무겁진 않지만, 벌을 받을 만한 이들이 가는 거야.”
“그럼 그 다음 세계는?”
“두 번째 지옥보다 조금 덜 끔찍한 지옥?”
“…다 지옥이야?”
위즈덤은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로스트 월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건 실제 세계지 사후세계가 아니니 상관없지 않나?”
그 말에 엘다르가 손을 들었다.
“같은 방식이면 천국은 어떨지요?”
“엘다르, 사람은 기본적으로 상보다 벌에 민감하다. 게다가 사람들은 모두 다 고통을 싫어하지만, 좋아하는 건 서로 다르지. 천국이라고해도 아기천사들이 나팔을 불고 성가대가 신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는 걸 모두가 좋아하진 않을 거다.”
“그… 당장만 해도 쓸 수 있는 세계가 여섯이나 있으니 각각의 욕망에 맞추면 어떨지요?”
“이를테면?”
“재물욕, 명예욕, 식욕, 수면욕, 색욕…”
“아쉽군.”
“네?”
“칠대 죄악을 이야기했으면 지옥이나 다름없지 않느냐 말할 생각이었는데.”
크람푸스가 거들었다.
“저대로면 지옥이랑 별로 다를 게 없지 않아?”
룬다가 엘다르에게 말했다.
“색욕은 말 꺼낸 니가 해.”
“네?”
화면을 내린 성운이 말했다.
“사제들 다 왔는데, 아까 이야기한 그대로 할 거야?”
“네뷸라, 상벌 시스템에 대한 니 의견이 궁금한데.”
위즈덤이 질문을 하자 성운은 잠깐 고민하더니 말했다.
“지옥 자체는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같은데?”
성운도 로스트 월드에서 지옥이라는 개념을 잘 써먹긴 했었다.
현재 ‘태초의 초원’과 같은 모습의 사후세계는 큰 관리가 필요없다.
가만히 놔두거나, 생전에 영웅이라고 불렸던 이들이 죽은 이들을 통제하는 것만으로도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는다.
다만,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는만큼 그로 인해 얻는 이득도 적은 편이다.
‘물론 태초의 초원에는 그것만 있는 건 아니지만.’
별잡이와 그 후손들이 있는 장소는 일종의 사후 세계의 과학 연구기관이었다.
그 외에도 으뜸전사였던 유르와 타타르 같은 뛰어난 전사들이 여전히 전사로써 죽은 이들을 훈련시키기도 했고, 이러한 학습이 후손 전사들의 꿈에 투영되어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하지만 꿈을 통해서 그 후손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건 상당한 신앙이 소모되는 일이었다.
‘지옥과 같은 개념을 쓴다면 효과가 다르긴 하겠지.’
죽어서 영원히 벌을 받는다고 하면 특정한 교리들을 못박을 수 있기도 하다.
이런 일은 실질적인 게임 플레이에 이득을 주었다.
특정 종교를 이단시, 악마화 하는 경우 해당 종교에 감화되거나 배신을 하는 일이 극단적으로 줄어들 수도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손을 씻고 몸을 청결히 해야 된다던가,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해야 한다던가, 욕망을 참아야 한다던가 하는 식으로 신자들의 습관을 교정할 수도 있었다.
청결은 실제로 질병에 의한 감염률을 낮춰줘서 실제 사망자 숫자까지 떨구게 되고, 게으름뱅이를 배척하는 문화가 만들어지면 사회 전체적인 발전 양상이 빨라지며, 절제가 중요하다고 공동체가 동의한다면 범죄율이 낮아지는 식이었다.
‘간단하고 좋긴 하지만…’
하지만 이런 식으로 무언가를 강제하게 되면, 당연히 부작용도 있었다.
손을 씻는다는 건 하나의 종교적 의식이 되므로, 언제든 종파나 계파에 의해 다른 행위로 변질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
성실함이 중요해지면 그만큼 문화나 예술, 여흥에 둔감해져서 관련한 발전이 더뎌진다.
욕망이 낮아지면 공동체의 경제적 능력도 저하되는 편이었다.
성운이 말했다.
“유연함이 중요해.”
“유연함?”
의외의 말인지 위즈덤이 되물었다.
성운이 답했다.
“일반적인 게임이라면 보통 이 시점에서는 목표를 명확히 하는 게 좋지. 하나의 명확한 방향을 잡고 문명을 그쪽 방면으로 또렷하게 발전시키는 거야. 그렇게 되면 남은 플레이어들이 극단적인 카운터 메타가 아닌 이상, 먼저 발전했으니 더 유리한 지점에 서는 거지.”
“그런데?”
성운이 답했다.
“그런데 지금 게임은 우리가 알던 게임과 똑같다고 할 수 없게 되었어. 단순히 실재하는 세계로 존재한다는 이야기 뿐만 아니라…”
“악신들의 존재 말이지.”
성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러 상황에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어야 하지. 솔직히 말해서, 난 게임의 승리 조건이 전과 같다고 할 수 있는지도 자신이 없는데.”
“어째서?”
로스트 월드의 승리 조건은 간단하다.
자신 또는 동맹을 제외한 모든 플레이어들을 봉신시키는 것, 즉 죽이는 것.
상대의 신성 레벨은 상대 문명의 크기를 따라가므로, 적 문명을 모두 파괴할 필요까진 없다.
적의 주요한 사도와 창조물, 그리고 사제들과 주요 사원을 파괴하게 되면 적의 경험치 하락치는 적의 신성 레벨을 넘어선다.
“하지만 이 승리 규칙 안에는, 변칙적인 추가 규칙이 있었는데, 아는 사람?”
성운이 좌중을 돌아보자, 위즈덤과 엘다르는 아는듯 했고, 다른 플레이어들은 어리둥절해보였다.
위즈덤이 말했다.
“하지만 그 규칙은 실전성은 고사하고 실제로 성립 되더라도 의미가 없었는데…”
장완이 신경질냈다.
“그래서 그 규칙이 뭔데?”
성운이 말했다.
“플레이어 전원 동맹.”
“…랭크 게임에선 안 되는 거 아냐?”
“거의 불가능하지. 하지만 했던 사람들은 있어.”
“어떻게?”
성운이 답했다.
“누가 궁금해서 게임을 시작할 때마다 제안을 했는데, 수 십 번 만에 모두 제안을 받아들인 판이 있었지. 성공하고보니 동맹하게 되는 순간 게임이 끝났어. 하지만 별로 의미는 없었지. 승리 메세지가 떴지만 사실상 패배나 무승부로 취급하는지 랭킹이 떨어졌다고 하더라고.”
엘다르가 말했다.
“아, 그럼 혹시 이번에도 사람들을 잘 설득하면…”
“안되겠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악신 때문에.”
“아.”
성운이 말했다.
“극단적으로 봐서, 우리가 승리 조건을 맞췄을 때, 게임이 끝나기는 하느냐는 거지.”
플레이어들은 각자 생각에 빠진 것 같았다.
게임이 끝나지 않는 것은 상관없는 일이긴 했다. 어차피 승리해도 신으로 남는 것이 조건이었으니까.
하지만 영원히 다른 무언가와 싸워야하고, 악신이라는 위험이 잔존한다면 그건 승리했다고 볼 수 없기도 했다.
성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이 건은 일단 됐어.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일단 급한 거부터 처리하자고. 엘다르?”
“예, 말씀하시지요.”
“다들 불만 없는 것 같으니, 아까 이야기한 거 그대로 준비해줘. 사제들이 거의 다 모였어.”
그 말에 장완이 고개를 살짝 들었다가 아무 말 없이 다시 고개를 돌렸다.
엘다르는 눈치를 살짝 봤다가 답했다.
“알겠사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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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 왔군.”
라크락은 슌 라크 오라즌을 데리고 각각의 죽음 이후의 땅들이 교차할 것으로 짐작되는 곳에 도달했다.
이곳에는 날카롭게 솟아오른 회색의 장벽이 있었고, 그곳으로 들어가는 높다란 계단과 그 계단에서 이어져 장벽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매끈한 철문이 있었다.
슌이 말했다.
“여기가… 신들께서 기거하시는 곳입니까?”
“좀 밋밋하지 않나? 바쁘셔서 그런지 신경을 못쓰고 계신 거 같군.”
“예? 뭐…”
슌은 온 세상 사람들이 지어 올려도 불가능할 것 같은 장벽의 크기를 보면서 경이롭다고 생각하던 와중이었다.
라크락이 슌의 어깨를 두드렸다.
“뭐, 다음에 오면 더 좋아질 거야. 우리가 가장 늦은 모양이니 서두르지.”
“네? 다음이요?”
라크락은 답없이 아낙세를 독려해 걸어 올라갔다.
계단을 걸어올라가자, 철문이 절로 열리기 시작했다.
“굉장하군요, 저 거대한 철문이 저절로…”
“저절로?”
라크락의 말에 슌이 철문의 뒤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장수풍뎅이가 철문에 엮인 쇠사슬을 자신의 뿔에 감아 당기고있었다.
철문의 무게는 몸길이가 20미터는 넘을 이 거대한 장수풍뎅이에게도 가볍지 않은지, 한 발이 움직일 때마다 철문은 느릿하게 열렸다.
라크락이 말했다.
“헤캅이다. 임시 문지기지.”
“임시요?”
“여기 있는 것들은 대부분 임시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지. 신들께선 그 무언가를 정하기 위해 이곳에 모이셨고.”
슌이 말했다.
“저도 신들을 만나게 되는 겁니까?”
“그래.”
헤캅이 말했다.
“그대들이 마지막이니라.”
라크락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곤 헤캅을 뒤로했다.
슌이 바라보자 헤캅이 거대한 앞발로 다시 문을 닫고 있었다.
문 안쪽은 어둡고 컴컴했다.
라크락이 거대한 기둥들 사이를 걸어가자 저 스스로 빛나는 반딧불이만이 발 앞 몇 미터를 밝혀줄 뿐이었다.
어두운 그림자 사이로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였고, 간혹 머리 위를 지나가기도 했다.
슌이 잔뜩 겁을 먹어 머리를 숙이자 라크락이 말했다.
“두려워할 것 없다. 신들께서 직접 빚으신 이들이, 아직 갈곳을 정하지 못해 한 곳에 모여있을 뿐이다.”
“그럼 야천의 가름쇠께서도 이곳에 있습니까?”
“방금 우리 머리 위를 걸어갔군.”
“정말입니까?”
“그래. 다른 신들의 수호자들이 널 겁주려고 어슬렁거리고 있었거든. 스라티스가 그들을 내쫓았다.”
슌은 다시 표정을 회복했다.
라크락과 슌은 저 멀리 보이던 빛무리에 합류할 수 있었다.
여섯 명의 다양한 종족과 서로 다른 옷을 입은 사제들이 모두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무엇에 대해 기도를 올리고 있는 거지?’
목소리가 들려왔다.
-“늦었구나, 라크락.”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청아하고 맑은 목소리였다.
라크락은 아낙세에서 내리며 말했다.
“그렇게 됐습니다.”
슌은 목소리의 주인을 찾기 위해 아낙세에서 내려 사제들의 등 뒤를 지났다.
슌은 이들이 왜 기도를 드리고 있는지 곧장 알아차렸다.
겉모습만 보자면 긴 머리칼에 뾰족한 귀, 작은 체구와 성별을 가늠하기 힘든 모습을 가진 엘프다.
하지만 슌이 지금까지 느껴본 적이 없는 제7, 또는 제8의 감각으로 눈 앞의 존재가 특별하고 고귀한 이라는 것을 곧장 알아차렸다.
리자드맨인 슌으로서는 그럴리가 없는데도, 엘프의 이목구비를 보면서도 곧장 아름답다고 느꼈다.
슌은 더듬거리며 라크락에게 물었다.
“저, 저분은…?”
“자린과 엘프들의 신, 춤추는 그림자신, 무영(舞影)이시다.”
엘다르였다.
엘다르는 슌을 보고 살짝웃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슌은 심장이 쿵쾅대며 뛰는 것을 느꼈다.
슌은 온몸에 힘이 빠지듯 주저앉아 기도를 올렸다.
엘다르가 여러 사제들 앞에서 말했다.
-“일곱 사제들이 모두 모였으니. 나는 신들의 전령이자 이야기꾼으로서 그대들에게 신들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전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