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15
015화
“놈들을 꾀어내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 오웬.”
“죄송합니다.”
오웬은 슈넨에게 굽실거렸다.
프로그맨 전사들은 라크락과의 다섯 번째 만남을 위해 물건을 등에 묶고 이동하는 중이었다.
“가죽이 검고 물소 머리뼈를 뒤집어 쓴 이 리자드맨들은 경계심이 특별히 많은 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넙죽넙죽 받아먹던 너희들과는 다르다는 건가?”
“…예. 하하.”
오웬은 애써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놈이 활만 보여 주면 갓난아이처럼 가지고 싶어서 안달을 내는 걸 보셨잖습니까? 이제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슈넨은 다소 퉁명스럽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놈들을 모두 노예로 부릴 수 있다면 활 한 자루 정도야 대단한 희생은 아니지. 게다가 그 활 한 자루도 다시 우리 손에 들어올 테니까.”
“물론이죠.”
오웬은 다섯 번의 만남 동안 공을 오래 들였다고 생각했다.
라크락이라고 불리는 그 젊은 리자드맨은 꽤나 강한 전사임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지혜로운 부족장인지는 모르겠다. 싸움꾼으로 훌륭하다고 해서 좋은 부족장이 될 수는 없어. 그러지 못하다는 걸 나는 이미 겪어 알고 있다.’
좋은 무기, 새로운 무기인 활에 대한 집착은 전사에겐 좋은 미덕이지만 부족장에게는 아니었다.
‘라크락이라는 사내는 머리 둘 달린 흉신은커녕 프로그맨들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슈넨이 말했다.
“활은 한 자루면 되나?”
“예, 아마도… 그, 그래도 놈이 협상을 요구할지 모르니 넉넉히 두 자루는 더 빌려주십사 하는데…”
슈넨은 인상을 썼다.
“겨우 네 번을 만났는데 놈의 활쏘기 실력이 비상해진 걸 봤나?”
“…타고난 전사 같긴 합니다.”
“뭐, 날 따라오려면 멀었지만. 저번에 내기 활쏘기를 하자고 했을 때는 큰일 날 뻔했지. 내 생각엔 놈이 우리 활을 흉내 내서 만들어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던데…”
그러니 세 자루는 위험하지 않겠냐는 말이다.
오웬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제가 놈들을 꾀어내기만 한다면 몇 자루를 주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놈들이 가진 무기가 고스란히 다시 저희 것이 될 텐데요.”
“그래. 너의 역할이 크다. 놈은 우리를 완전히 신용하고 있지 않아. 하지만 같은 리자드맨인 너에게 만큼은 살갑게 굴더군.”
“예, 그렇더군요. 아무래도 프로그맨을 보는 건 처음이라 낯선 모양이겠죠.”
“그만큼 경험이 적은 놈이란 거지. …흠.”
그렇게 대화를 끝내려던 오웬은 슈넨이 뭔가 할 말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캐물어야 했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서두르는 게 좋을 거다. 되도록 이번에 놈들에게 많은 정보를 캐내고, 할 수 있다면 그 부족장 놈과 전사들을 우리 마을에 의심 없이 초대할 수 있어야 할 거다.”
“왜 그럽니까?”
슈넨은 말을 할지 말지 망설이는 것 같았다.
오웬은 최대한 비굴한 자세로 슈넨의 말을 기다렸다.
‘프로그맨들 사이에서만 도는 정보다. 꼭 들어야 해.’
오웬은 주변에 자신의 말을 막을 오보이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오보이는 선두에서 오늘도 리자드맨 놈들이 물소를 가져오면 좋겠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래, 너 정도라면 들어도 되겠지. 내 아버지, 아울로이 부족장이 산 제물 의식을 서둘러 치르고자 하신다.”
“예?”
오웬은 깜짝 놀랐다.
산 제물 의식까지는 기간이 꽤 남아 있었다.
바로 얼마 전에도 급하게 의식을 한 번 치렀기 때문이다.
라크락의 무리에 대한 머리 둘 달린 흉신의 계시를 받기 위해서였는데, 제물의 가치에 비해 딱히 소득은 없었다.
“아버지는 물론 장로들의 병환이 심해지고 있다.”
“병환이라니요? 가려움 병 말입니까?”
“…그래.”
“그냥 가려운 것이 아닙니까?”
슈넨은 이례적으로 천천히, 진지하게 말했다.
“어제도 사제 하나가 가려움 병으로 죽었다. 너희 리자드맨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가려움 병에 걸리면 끈끈한 흰색 점막이 피부를 덮기 시작하고, 그 부위가 가려워진다. 아무리 닦아 내도 점막이 사라지지 않아. 점막은 계속해서 넓어지고, 일정 이상 점막으로 덮이면 숨을 쉬기 힘들어진다. 그러다 죽는다.”
오웬은 아무런 표정 없이 그 말을 들었다.
기뻐할 수도, 놀랄 수도 없었다.
‘슈넨은 날 시험하고 있다. 가려움 병이 죽을병이라는 건 처음 듣는 이야기다. 그래서 몇몇 프로그맨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거군. 모든 게 이해된다. 이미 죽은 프로그맨들도 있겠지.’
오웬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그런 병이었다면 제가 채집꾼들을 더 닦달했을 겁니다.”
“흥, 그놈들이 뭘 알겠느냐?”
“그리고 이 이야기는 퍼지지 않도록 조심해야겠군요. 혈기왕성한 리자드맨들 중엔 프로그맨을 우습게 생각하는 녀석도 나올 겁니다.”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영원히 숨길 수는 없겠지…”
오웬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이야기가 퍼지더라도 리자드맨들을 진정시킬 방법은 있습니다. 그 병이 리자드맨에게도 옮을 수 있다고 하는 거죠.”
“좋은 생각이군. 하지만 진짜로 옮지 않을 텐데?”
“으깨면 흰 거품이 나는 풀, 가려워지는 풀 같은 것도 있습니다. 적당히 속이고 연기하면 될 겁니다.”
“하, 오웬, 넌 정말 훌륭한…”
슈넨은 오웬을 칭찬하려다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지 입을 웅얼거렸다.
그는 곧 오웬을 가리킬 말을 생각해 냈다.
“협잡꾼이군.”
“…감사합니다.”
슈넨은 고개를 끄덕이곤 말했다.
“아무튼, 아버지의 가려움 병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아버지는 강인한 분이시니 누구보다 병을 오래 이겨 내시고 계시지만 슬슬 힘에 부치시는 것 같군. 머리 둘 달린 흉신께 제물을 바치고 병을 치료하길 바라신다.”
“그럼…?”
“지난번과 달리 대규모의 산 제물을 필요로 하지. 이번에는 꽤 많이 필요할 거다.”
오웬은 되물었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글쎄? 모르겠군. 될 때까지 하실지도. 섬 가운데 움막에 애들이 제법 들어찼는데 제물로 통 쓰지 않는다고 아까워하시기도 하셨지.”
슈넨은 어차피 버려질 리자드맨들의 목숨에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웬의 등골로는 소름이 돋았다.
‘될 때까지라고? 그 빌어먹을 머리 둘 달린 흉신은 무능하다. 그저 거대한 덩치로 패악을 부리며 협박하는, 사람 잡아먹는 괴물에 불과해. 우리가 너희의 노예인 것처럼 너희도 그 괴물의 노예일 뿐이다. 병을 치유할 수 있다면 애초에 걸리지 않게 했겠지!’
하지만 오웬은 그런 생각을 말하지 않았다.
“제물이… 아주 많이 필요하겠군요.”
“그래.”
“이번에 놈들의 정보를 캐내고 마을로 초대해 보겠습니다.”
“기대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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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자드맨 전사들과 프로그맨 전사들은 이제 얼굴을 익히고 있었기에 다섯 번째 만남 또한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새로 물물교환 물건을 지고 온 이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흥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협잡꾼 오웬은 저 리자드맨들에게 건질 만한 정보가 거의 없다는 걸 알았다.
‘부족장 라크락이 어떻게 단속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저놈들은 물건 거래 말고는 아무런 정보도 말하지 않는다.’
오웬은 라크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놈은 다르지.’
라크락과의 교환은, 솔직히 오웬이 기대한 것보다 훨씬 좋았다.
지금까지 어떻게든 참고 있었을 뿐이었던 것인지, 풍성하게 모아온 약초를 넘겨주며 제발 활 한 자루만 달라고 사정을 한 것이다.
‘활 세 자루도 필요 없었군.’
이에 대해 오웬이 한 일은 라크락이 슈넨에게 민망한 모습을 보이기 싫다며, 물물교환이 벌어지는 장소에서 떨어져 서로 이야기하자고 한 것 정도였다.
슈넨은 찬성하고 오보이는 반대했지만, 라크락의 태도가 드러나자 오보이도 결국엔 찬성했다.
그렇게 라크락과 오웬, 둘만 있는 자리가 만들어지자 라크락이 말했다.
“이 약초들로도 부족한가?”
“흠, 조, 조금 부족한 거 같군요. 이 활을 드리면 금세 비슷한 활을 만드실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재료를 모르는데.”
“그쪽에도 장인들이 있으니 흉내 내실 수는 있겠죠.”
“…흠, 좋아.”
활을 보며 눈동자를 빛내던 라크락이 별안간 오웬을 바라보았다.
“더 원하는 게 뭐지?”
오웬은 라크락의 바뀐 태도를 곧장 인식하지 못했다.
단지 오웬은 준비한 말을 할 때가 왔다고만 생각했다.
“믿음입니다, 라크락.”
“믿음?”
“예.”
오웬은 거짓말을 시작했다.
“저희 회갈색 가죽의 리자드맨들은 프로그맨들과 부족을 합치기 전에 형제의 의식을 지냈습니다. 그 의식을 지내기 전에는 서로 부대끼며 좋은 물건들을 나누었고, 그 이전에는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대의 부족과 저희는 어떱니까? 좋은 물건을 나누고 있긴 하지만… 서로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죠.”
“그렇지.”
“이건 그대들이 우리에게 믿음을 주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겨우 활 한 자루에도 그만큼 많은 약초를 내놓는 거고요.”
라크락은 다소 삐딱하게 서서 팔짱을 꼈다.
“그 말도 맞군. 믿음을 주려면 내가 뭘 해야 하지?”
“그대들에 대해 이야기해 주십시오. 그대들은 어디에서 왔고 얼마나 있으며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까?”
“음, 우리가 그 믿음이라는 걸 주면, 그쪽에서도 주는 거겠지?”
“물론입니다.”
라크락은 잠시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오웬의 등 뒤에서 뭔가를 발견하고 작게 웃었다.
오웬은 무슨 일인가 싶어 뒤를 돌아봤는데, ‘파란 나비’ 한 마리가 퍼덕거리며 날고 있었다.
‘아직 날이 충분히 풀리지 않았는데, 나비라니? 애초에 이 주변에 저런 나비가 있었던가? 이상하군.’
하지만 파란 나비를 본 뒤 라크락은 좀 더 오웬에게 협조적으로 변했다.
라크락은 오웬의 질문에 답했다.
무리는 350명 정도로 예상한 것보다 훨씬 적었고, 해당 지역에서 살고 있으며, 무엇보다 살아 있는 물소가 스무 마리나 있다고 했다.
‘슈넨이 알면 가지고 싶어서 미치겠군.’
전사의 숫자는 무리의 숫자에 비해 꽤 많은 서른 명이라고 했다. 과장이 있거나 전사의 질에 문제가 있을지도 몰랐다.
‘좀 더 늙은이나 어린이들을 포함시켰을지도. 그래 봤자 80명의 전사를 가진 프로그맨과는 비교해 봤자 크지 않은 전력이다. 몇 명 부풀려 봤자지. 놈들은 활도 쏠 줄 몰라.’
오웬은 다행이라고 생각하곤, 프로그맨에 대한 가짜 정보를 흘렸다.
라크락이 너무 겁을 먹지 않도록 숫자를 줄여서 말하고, 사실 활은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활도 많지 않고, 그래서 교환하기 까다롭다고도 말했다. 활을 쏠 줄 아는 전사도 그리 많지 않다고 말했다.
“프로그맨들은 온순한 종족입니다. 저나 당신처럼 강인하지 못하죠.”
“그런가?”
라크락의 의문에 오웬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렇게 믿음을 주고받고 나면, 슈넨은 당신을 마을로 초대하고 싶어 했습니다. 늘 손님 대접을 하고 싶었는데 당신이 마음을 열지 않아 아쉬워했죠.”
“오호.”
“어떻습니까? 생각이 있으십니까?”
“전사들을 대동해도 괜찮나?”
“물론이죠. 모두 데려와도 좋습니다.”
아니, 프로그맨들에겐 모두 오는 쪽이 좋았다.
라크락의 마을과 프로그맨들의 마을은 거리가 꽤 멀었다.
상대의 마을에 전사들이 남아 있다면, 리자드맨들을 꽤 많이 놓치게 될 터.
‘이번에 이 검은 가죽의 리자드맨들을 모두 다 데려와서 한 번에 처리하는 게 좋겠지.’
라크락이 말했다.
“그럼 그 부분은 슈넨과 다시 이야기하는 걸로 하고… 그 초대를 감사하는 의미로 내가 뭘 좀 더 주려고 하는데, 괜찮나?”
“더 주다니요?”
“‘믿음’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라크락은 작은 바위에 앉고서 마른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바닥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와서 이것 좀 보지.”
오웬은 의아해하며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