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152
152화
라크샤사들은 분전했다.
카튜루에게 찔러 대던 창촉을 재빨리 돌려 힐로브에게 향했고, 도끼를 빼 들고 휘둘렀으며, 사원 내에 있는 다른 라크샤사들을 모두 불러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라크샤사들에게는 유감스럽게도, 힐로브는 ‘섬멸자’였다.
성운의 창조물 중 스라티스는 파괴자다.
파괴자는 성벽을 부수고, 다른 거수와 창조물들을 죽이고, 필요하다면 사도나 강신체, 현신체와 상대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
섬멸자 또한 적을 죽이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그 특화된 상대가 조금 달랐다.
힐로브 또한 다른 괴수들을 상대할 수 있을 테지만, 그보다는 자신보다 약한 상대, 필멸자들, 거수라고는 할 수 없는 약한 괴물들, 그리고 군대, 특히나 보병을 상대하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하나만 모두 펼쳐도 15미터에 이르는 기다란 다리의 끝은 흑요석에 버금갈 정도로 날카로웠고, 그저 라크샤사들을 노리며 걸어가는 것만으로 시체를 만들어 냈다.
다리에 시체의 절단면이 마찰력으로 인해 끼게 되면, 힐로브는 손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듯, 가볍게 다리를 튕겼다. 그러면 다리에 껴 있던 시체는 힐로브의 다리에서 벗어나 벽면이나 천장 어딘가에 처박혔다.
라크샤사들이 힐로브가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괴물임을 알아차리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아아악!”
“도망쳐라! 도망쳐!”
“밖으로 나가!”
하지만 힐로브가 바센 라크 오라즌으로부터 부탁받은 일을 끝내는 것 또한, 금방이었다.
힐로브는 꽁무니에서 흰 거미줄을 뿜어내 라크샤사들의 탈출로를 막았다.
라크샤사 중 일부는 멋모르고 그 거미줄을 밟았고, 뒤엉켜 드는 거미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머지 라크샤사들은 힐로브에게서 도망치지도 못하고 거미줄을 밟을 용기도 없어서 우왕좌왕하기만 했다.
힐로브는 살인에 취한 듯 너무 성급하거나, 살인을 즐기듯 너무 느긋하게 움직이진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등속도로 움직였고, 곧 일을 끝냈다.
바센은 힐로브에게 다가가 절을 올렸다.
“감사합니다. 야천의 도리깨시여.”
도리깨라는 별칭은 남방 제도에서 딥원들을 상대할 때 얻은 것이었다. 시체를 다리에서 털어 내는 동작, 그리고 전투가 끝난 뒤에 시체들이 마치 낱알이 흩어진 것 마냥 퍼져 있기 때문에 아스타시디안들이 그리 불렸다.
힐로브가 말했다.
-감사할 것 없다. 나는 야천의 뜻을 행한 것뿐.
“그와 별개로 저와 제 친구들, 그리고 저 신수 카튜루에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까?”
뒤이어 팽골리안들이 넙죽 엎드려 오체투지를 했다.
“아이구! 고맙습니다!”
아스타시디안들에게서 딥원을 내쫓을 때에 이어 감사를 받자 힐로브는 이런 일들이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성운은 힐로브에게 뛰어난 언변이나 날카로운 지성을 집어넣진 않았다. 성운은 힐로브를 섬멸자로 최적화했으므로, 적에게 속아 넘어가지 않을 만큼의 언변과 지성이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힐로브는 주저하다 호의를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일어나라. 그대들이 또 위험에 처한다면 나는 또 그대들을 도울 것이다.
그 말에 그르르릉 낮게 울리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거… 정말인가?
개미핥기 신수인 카튜루였다.
방금 막 팽골리안들의 도움으로 구속에서 풀려난 카튜루였지만, 여기저기 피를 흘려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힐로브가 답했다.
-그렇다. 야천께서 그걸 원하시므로.
-야천…?
-피조물들의 신이시자 나의 주인 되시는 분이다.
-신이라고? 신들은 떠나갔다.
-그분은 돌아오셨다.
카튜루는 힐로브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가볍게 도리질 쳤다.
-나는 야천을 모른다. 만약 야천의 마음이 바뀌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힐로브는 잠시, 여섯 개의 눈으로 넙죽 엎드린 팽골리안과 피를 잔뜩 흘려 아프고 힘없는 카튜루를 보았다.
힐로브는 지금까지 야천의 뜻대로 행동하고, 그 외의 시간에는 대체로 잠들어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힐로브가 보기에 자신의 주인은 자신을 불러들일 생각이 없는 듯했다.
‘그렇담 야천께서 행동하듯 하리다.’
힐로브가 답했다.
-야천께서 구태여 그러지 않으라 명하시지 않는다면, 너희를 도울 것이다.
그 말에 카튜루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아, 다행이군. 다행이야.
카튜루는 머리를 바닥에 누이며 말했다.
-내가 다시 깨어날 때까지, 부디 이 작은 친구들을 부탁하지…
그 말과 함께 카튜루가 눈을 감았다.
그러자 팽골리안들이 깜짝 놀라 카튜루를 살폈다.
바센이 걱정하며 물었다.
“죽은 건가?”
팽골리안 마고가 카튜루의 콧구멍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아니네요. 많이 아파서 자는 거네요.”
팽골리안들은 카튜루를 응급 처치했다.
바센이 힐로브에게 말했다.
“흰 거미시여, 사실 또 다른 부탁이 있습니다.”
-말하라.
“이들의 말을 듣자 하니 옆 마을에서도 라크샤사들이 오고 있을 거라고 합니다. 그들을 격퇴하도록 도와주실 수 있습니까?”
힐로브는 몸을 돌려 사원 출구를 보고는 자신의 발 하나를 바센에게 내밀었다.
“저… 이건?”
-어디로 가야 할지 네가 알려 주면 좋겠지만, 너희는 발이 느리지.
힐로브의 머리통이 살짝 꺾였다.
넓은 시야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뒤에 있는 바센이 잘 보였다.
-올라탈 수 있겠나?
바센은 마고와 함께 힐로브의 등에 올라탔다.
소사원에서 나오자 마고는 예상되는 적 방향을 가리켰고, 바센은 열심히 소리쳐서 혹시나 생경하게 생각할 티오네 이티모와 그 선원들에게 우군임을 확인시켰다. 몇몇 선원들이 힐로브를 알아보고 절을 올렸다.
옆 마을에서 증원된 라크샤사 부대는 이미 지척까지 접근한 상태였다.
정찰대 중 일부가 마고의 마을 상황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도망쳐서 소식을 알리기 전에 힐로브의 거미줄에 걸렸다. 그들은 증원된 적 부대의 숫자 200명, 전원 보병이라는 무장상태 등을 모두 실토한 뒤에 죽었다.
힐로브가 말했다.
-적들을 상대하는 건 상관없으나, 넓은 숲인 만큼 200 모두를 일거에 죽일 수는 없다. 도망치는 놈들이 있을 것이다.
바센은 ‘설마 혼자서 다 죽일 생각이었느냐’ 말을 하려다가, 가볍게 도리질했다.
바센이 보니 힐로브는 단순히 자신감에 차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저 전략적인 차원에서 하는 말임을 알 수 있었다.
정찰병을 재빨리 제압하고 죽인 것만 하더라도, 적들의 배후에 정보가 넘어가지 않도록 염려하는 것이다.
200명이나 되는 적을 숲 속에서 혼자 습격하면 그야 도망치는 적이 있을 건 당연했다.
“적들을 크게 우회하여, 적들의 진군 방향 반대쪽에서 접근해 주십시오. 여기 마을 쪽으로 적들을 내모는 겁니다.”
-오.
“그럼 저희가 나머지 병사들을 에워싸서 공격하고, 도망자들을 추격하겠습니다.”
-좋다. 필멸자, 바센. 그대는 똑똑하구나.
힐로브는 바센이 기대한 대로의 작전을 그대로 수행했다.
하지만 힐로브의 살상 능력은 바센이 기대한 것 이상이었다.
바센은 라크샤사 전사들을 거의 다 제압한 마을에서 선원들과 탐험대를 소집해서 재빨리 진을 갖추고 도망치는 라크샤사 증원군을 기다렸다.
이 증원군은 예닐곱 명 씩 끊어서 몇 번인가 오다가 곧 멈췄다.
꽤나 많은 총알을 소진할 거라 예상했지만, 숫자가 너무 적은 탓에 총알을 쓸 것도 없이, 대기하고 있던 활잡이들이 비명을 지르며 정신없이 도망치는 라크샤사들의 머리통을 톡톡 쏘아 맞추는 것으로 충분했다.
‘혹시 중간에 샌 건가? 그럼 어쩔 수 없지. …아니, 혹시 힐로브께서 잘못되신 거라면…’
걱정은 기우였다.
바센이 엄선된 탐험대를 데리고 힐로브 쪽으로 가자, 대략 백오십에 이르는 시체들이 숲 여기저기 퍼져 있었다.
무성해야 할 초록 잎은 피로 흥건해졌고, 힐로브의 버릇 때문에 나무 위에 올라탄 시체들도 잔뜩 있었다.
힐로브가 말했다.
“모두 몇이나 죽였지?”
“마흔 셋입니다.”
“그럼 숫자가 딱 맞군. 도망친 녀석은 없다.”
힐로브는 탐험대의 환호를 들으며 돌아왔다.
팽골리안들은 더 크게 기뻐하며 바센과 그 동료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큰 승리를 축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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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이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훌륭하군. 토착민들의 호의도 살 뿐만 아니라… 신앙까지 오르는군. 원래라면 떨어져야 되지 않나?”
“그렇지.”
성운이 답했다.
본래 플레이어가 개체에게 개입하는 모든 상황은, 인과율을 위배한다. 그리고 이 인과율 위배에 대한 대가로 신앙이 소비되는 것이다.
특히나 이런 신앙의 소비는 그 대상이 자신의 신자가 아니라면 더 커지는 페널티가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간단해.”
성운이 말했다.
“시스템적으로 지원이 없다지만, 느슨한 동맹만 하더라도 어느 정도 동맹 효과가 생기지. 자신의 신자가 아니더라도 동맹의 개체를 도울 때는 페널티가 감소하지?”
“그건 안다.”
“하지만 그건 두 사람이 동맹이라서가 아니라, 친밀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야. 스테이터스 창으로 표기가 따로 되지 않아서 구체적인 값은 모르지만, 다른 사람이 해 놓은 연구를 보니까 이걸 ‘친밀도’라고 부르더라고.”
위즈덤이 정리했다.
“그러니… 그 친밀도가 있으면 신앙 페널티가 줄어든다는 건가?”
“맞아. 그리고 나는 힐로브를 통해서 빠르게 친밀도를 쌓았지. 카튜루랑, 팽골리안들에게.”
“그래서 개입해야 할 적기라고 말한 거군.”
아마 상황에 따라서는 바센과 마고만으로 카튜루를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슷한 자원으로, 성운이 가진 무기 중 하나인 힐로브를 보내 둘 수 있다면 그쪽이 더 이득이었다.
“그래도 힐로브를 운용하는 것만으로 소모되는 신앙이 있긴 하지. 그걸 힐로브에 대한 찬사로 바꿔 놓는 걸로 다시 신앙을 벌여 뒀지만 그래 봤자 본전치기 정도지.”
“하지만 신앙을 전혀 소모하지 않고 일을 해결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건가? 확실히 그렇군. 힐로브를 대표적인 우상으로 해서 만신전의 이름값이 올라가기도 할 테니.”
“맞아.”
현재 팽골리안들의 토착 종교는 신수 숭배였다.
이 간단한 원시 신앙은 신수에 대한 친밀감과 교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팽골리안들의 신수인 카튜루가 힐로브를 인정해 주는 것으로, 카튜루가 잠드는 동안 대신하여 신앙을 얻게 된 것이었다.
위즈덤이 웃음기가 다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여기서 끝나진 않겠지.”
성운이 답했다.
“당연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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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센은 마을을 정리했다.
선원, 그리고 탐험대의 경우 가벼운 부상자가 몇 있었고, 팽골리안들은 사상자가 다소 있었으나 이들이 함께 이룬 승리에 비하면 감수할 수 있는 숫자였다.
바센이 티오네에게 질문했다.
“마고의 말대로라면 적들의 공격이 이대로 끝나지는 않을 거야. 다른 배들과의 연락은 어떻게 하지?”
티오네가 답했다.
“저희와 함께 출발한 선단 중 마지막 배가 연락선이에요. 가장 빠른데다, 가장 안전한 항로로 갔죠. 해안선을 따라 각각 배와 접촉을 시도할 테니 저희가 없다는 건 알아차릴 거예요. 그게 아니더라도 흑린에서 2차 원정대를 꾸리니 언젠가는 알거고요.”
“가장 빨리 알면?”
“글쎄요, 보름?”
“가장 느리게 알면?”
“2차 원정대 조직을 기다려야 할 테니… 빠르면 세 달?”
바센이 어깨를 으쓱했다.
“보름에 걸어 보자고. 다른 배들과 접촉할 수 있게 되면 화약 문제는 처리할 수 있게 돼. 그땐 또 총알이 문제가 될지도 모르지만…”
“지리를 알면 자체 생산을 할 수 있을 지도요.”
“좋은 생각이군. …하지만 당장은 다음 며칠을 생각해야 해. 마고의 말이 맞다면 라크샤사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더 큰 나라를 이루고 있어.”
마고의 묘사에 따르면, 라크샤사 대부족의 크기는 어림잡아도 흑린이 자리한 반도 그 이상이었다. 문명 수준이 낮은 것치고는 광활한 지역을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꽤 많은 싸움을 계획해야 할 거야. 그러기 위해선…”
바센의 말에 힐로브가 끼어들었다.
-내가 도와주지.
“아, 물론 그래 주신다면 감사합니다만….”
-날 좀 더 적극적으로 기용해라.
바센은 잠깐 고민했다.
힐로브는 신이 보낸 창조물이었다.
바센은 신학적으로, 힐로브에게 계속해서 부탁을 해도 되는 건지 의심스럽고 부담스러웠다. 신화에 따르면 신들은 인과율을 꿰뚫어서 자신들의 의지를 개입하는데, 그 일은 무척 버거운 작업이라고 묘사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그런 걱정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는 분명 야천께서 우리에게 보내는, 살아남으라는 계시다. 그럼 살아남아야지.’
바센이 말했다.
“옆 마을은 증원을 보냈고 이에 대한 소식을 알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그에 대한 보고도 상위 체계에 보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입막음을 해야 한다는 거군.
“예. 그러니 적들이 준비하기 전에 지금 당장 선수를 치는 게 최선입니다. 피로가 덜한 이들과 함께 옆 마을을 급습하면…”
-내가 가겠다.
바센이 의아하게 물었다.
“혹시, 혼자서… 말입니까?”
힐로브는 곧장 답하지 않고 고개를 들었다.
-밤이 찾아온다.
“예?”
힐로브가 말했다.
-내 몸이 비록 희지만 야천께서 만드신 피조물 그 누구보다 조용히 움직일 수 있지. 기다리도록 해라.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힐로브가 그늘진 숲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몇 시간 뒤, 바센은 힐로브가 신용할 수 있는 거미라는 걸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