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154
154화
“북동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군대를 움직여야 합니다.”
“안됩니다. 지금 팽골리안들은 구원자 흰 거미에 대한 이야기로 들떠 있습니다. 감독관으로 있어야 할 전사들을 빼 버리면 큰 일이 날 겁니다.”
아슈라다 북부 총독이자 라크샤사인 아쿨다는 자신의 수행원들이 하는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
“코프릭 님을 만나야겠다.”
그 말에 수행원 하나가 주저하며 말했다.
“하지만 코프릭 님은 대사원 깊숙한 곳에서 한 달째 잠자고 계십니다. 그분을 깨우게 되면…”
“당연히 화를 내시겠지.”
코프릭은 아슈라다 북부를 책임지는 수호자였다.
라크샤사들을 지배하는 ‘위대한 아슈라다’에게서 패배하고 그의 부하로 남게 되었지만, 그 어떤 라크샤사 보다 서열은 높았다.
아슈라다 북부의 거점 도시라 할 수 있는 이 시올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것은 총독 아쿨다였지만, 거대한 힘으로 군림하는 아슈라다의 수호자들은 그 계급 체계에서 예외라 할 수 있었다.
아쿨다가 말했다.
“제물을 준비해라. 그분이 화를 삭이고 대화할 수 있을 정도까지.”
“얼마 전 아슈라다 님에게 보낸 제물이 적지 않습니다. 팽골리안들의 반발이 클 겁니다.”
“어쩔 수 없다. 만약 정말로 북동부에서 큰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코프릭 님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으니.”
시올에서 노예 팽골리안들이 소집되었고, 산 제물 후보들이 선별되었다.
옛 전설이 전례 없이 팽골리안 사이에서 돌고 있기 때문인지, 팽골리안들의 반발이 다소 있었다.
하지만 라크샤사들은 팽골리안의 몸뚱이만 한 칼을 휘두를 수도 있는데다, 팽골리안들은 마땅한 무장도 하지 못했으니 대항할 수 없었다.
첫 번째 후보들이 선택되고, 남은 팽골리안들은 분노하면서도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곧장 두 번째 후보들이 선택되었다.
팽골리안들이 거칠게 반항하자 아쿨다가 말했다.
“첫 번째 제물들은 코프릭 님의 화를 잠재우기 위해서, 두 번째 제물들은 코프릭 님에게 부탁을 하기 위해서다. 수호자의 뜻을 거스르지 마라.”
다시 도시 시올의 광장이 시끄러워졌지만 산 제물을 거두는 시간은 아쿨다의 예상보다 늦어지진 않았다.
라크샤사 사제들이 절차대로, 정확히는 코프릭이 화내지 않을 법한 방법으로 제물들을 끌고 사원 안으로 들어갔다.
사원 안쪽에서 팽골리안들의 비명 소리가 메아리쳤다.
아쿨다는 대사원 앞에서 사제들이 제물을 바치고 돌아 나오길 기다렸다.
본래대로라면 사원에서 나온 사제들이 아쿨다에게 들어와도 괜찮다는 신호를 보내면, 아쿨다가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예상외의 일이 벌어졌다.
-이런, 제길… 또 이빨에 꼈군.
둔중한 걸음 소리와 함께, 사원에서 검은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저 망할 팽골리안들 말고는 정녕 바칠 것이 없는 것이냐? 저 잡것들은 살은 얼마 없는데 껍데기가 너무 질기단 말이다.
그림자는 햇빛 아래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코프릭은 어깨 높이만 해도 대략 9미터 가량, 몸길이는 30미터가 넘을 거대한 흑표범이었다.
번뜩이는 싯누런 눈이 달처럼 떠 있는데, 광장에 모인 사람들을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었고 입가에는 방금 묻은 듯한 핏물로 젖어 있었다.
아쿨다가 당황해서 말했다.
“위대한 코프릭이시여, 혹시 저희 사제들은…”
-어? 사제? 사제도 있었나? 뭔가 씹을 만한 게 있긴 하더군. 그게 너희 라크샤사였나 보지.
코프릭이 낮게 낄낄 웃었다.
아쿨다는 당황하지 않았다.
코프릭은 동물의 외견을 하고 있지만 무식한 게 아니었다. 모든 건 계산된 행동일 터였다.
자신을 깨웠다고 감정적으로 화를 낸다기보다는, 그저 더 많은 제물을 얻기 위해서였고, 그 제물 또한 정말로 배가 고파서라기보다는 그저 재미를 위해서 투정을 부리는 것에 가까웠다.
코프릭이 아쿨다를 총독 자리에 놔두는 이유도 이 놀음에 잘 맞춰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제를 또 뽑아야겠군.’
코프릭이 말했다.
“그나저나 무슨 일로 날 깨웠지? 시시껄렁한 일로 날 깨웠다면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아쿨다가 절을 하며 말했다.
“위대한 코프릭 님, 저희 라크샤사들이 큰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부디 도움을 주소서.”
코프릭은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너희가? 혹시 저 서쪽의 물고기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거냐? 드디어 커다란 물주머니에 바닷물을 채워 두고 제 몸에 바닷물을 끼얹으며 진군을 시작한 거냔 말이다. 그거라면 꼭 봐야겠는데.
“…아마도, 그건 아닌 듯하옵니다.”
아쿨다가 설명했다.
북동부 마을 하나에서 도망친 라크샤사들이 있었다.
증언을 들어보니 천둥 같은 소리를 내는 막대를 든 여러 종족 무리가 있었다.
그 막대가 불과 연기를 뿜어내면 라크샤사 전사도 쓰러졌다.
이후로 주변 마을에서 하나하나 소식이 끊어졌고, 팽골리안들에게서 구원자에 대한 전설이 퍼지기 시작했다.
정찰대를 보내었으나 이들 또한 소식이 없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군대를 움직이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다.
-…그래서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냐?
“예.”
-그럼 내가 그 마을로 가 봐야겠군. 팽골리안 외의 사람을 맛볼 걸 생각하니 기대가 되는군.
이미 코프릭은 몸을 사원의 북쪽으로 기울였다.
아쿨다가 말했다.
“…안됩니다.”
-안된다고?
“예.”
‘만에 하나, 코프릭 님의 몸이 상하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코프릭이 죽는 건 상관없다.
오히려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
라크샤사들은 노예를 굴려서 노동력을 얻는데, 자신들 위에 수호자가 있는 바람에 그 노동력 또한 자꾸 줄어들고만 있었다.
그렇지만 코프릭이 죽지 않고 다치기만 한다면, 그 화를 감당해야 하는 건 아쿨다 자신이었다.
아쿨다가 말했다.
“무슨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데 코프릭 님과 대적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코프릭 님은 팽골리안들이 분에 넘치는 생각을 하지 않도록, 마을을 순회해 주시는 걸로 충분합니다. 팽골리안들은 겁쟁이니 그것만으로도 꼼짝 못할 겁니다.”
-흐음… 마을 순회라…
코프릭이 말했다.
-너 없이 마을 순회를 하면 나는 팽골리안들을 내 마음대로 집어먹을지도 모르는데?
아쿨다는 한숨을 내쉬고 싶은 욕망을 참았다.
‘지금 상황을 넘길 수 있는 대가로는 값싸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좋다. 그리하지. 너는 알아서 일을 보거라.
코프릭은 그렇게 말하고는 제단 위에 묶인, 자신에게 응당 할당된 산 제물들을 향해 다가갔다.
─┼
플레이어들은 코프릭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저건… 커다란 흑표범이네.”
룬다의 말을 엘다르가 받았다.
“아마 나우알이겠지요.”
“나우알?”
만신전 회의실.
현재 회의실에 있는 것은 성운과 룬다, 엘다르였다.
피로가 없고 수면이 필요하지 않다지만, 모든 플레이어가 상시 모니터링을 이어가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고, 성운을 제외한 플레이어들이 동의했다.
일종의 기분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덕분에 서로 순서를 정해 회의실을 비울 수 있도록 했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이 세 사람이었다.
엘다르가 말했다.
“본래는 아즈텍 신화에 나오는 화신인데, 지구의 신화나 전설, 민담에서 아무렇게나 차용해 오는 로스트 월드의 특성상 그냥 커다랗고 신비한 힘을 가진 흑표범으로 생각하셔도…”
“어, 아무튼 신수란 말이지? 하는 일만 보면 그냥 흉신이랑 다름없어 보이는데.”
“그 부분은 확실히 의아하네요.”
성운도 속으로 동의하면서 코프릭을 내려다보았다.
로스트 월드의 생물들은 꽤 많은 분류로 나뉘어져 있다.
우선 사피엔스라고도 부는 사람.
분명 수많은 종에서 분화되어 있긴 하지만, 마치 수렴 진화를 통해서 각자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을 믿는 주된 종족.
그리고 사람을 먹기도 하고, 사람이 먹기도 하는 동물들.
여기까지는 지구에도 있지만 다음인 ‘괴물’부터는 조금 다른 이야기였다.
괴물에는 사람들이 혼자서 대적하기 힘든, 크고 힘센 존재들이 있었고 드레이크나 코카트리스, 가고일과 같은 기기묘묘한 것들이 포함되었다.
여기에 더해 ‘흉물’로 불리는 존재가 또 있었다.
이 흉물들은 가축으로도 길러질 수 있는 괴물과 달리, 단독 개체로 성립하며 플레이어들이 생각하기엔 일종의 필드 보스로 존재했다.
이런 흉물과 비슷한 존재가 ‘신수’인데, 신수의 특징은 흉물과 비슷하게 단독 개체로만 존재하지만 흉물과 달리 플레이어의 일반적인 적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대체로 중립적이거나 도움을 주는 등, 선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서 신수를 잘 이용한다면 플레이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다.
그 다음 존재하는 것이 신으로서는 미흡하나 높은 지능으로 사람들을 지배하는 ‘흉신’인데, 현재 플레이어들이 보기에 코프릭이라 불리는 나우알은 신수보다는 흉신에 가깝게 변해 있었다.
“어쩌면 아슈라다라는 존재 때문일지도 모르겠군.”
성운이 말하자 룬다가 말했다.
“아슈라다도 플레이어일까? 그런 것치곤 플레이어 목록에 안 뜨는데.”
“글쎄, 편법을 쓰면 안 보이게 할 수도 있을까? 그렇지만 수호자라고 했으니까.”
“그럼 흉신?”
“그럴지도. 아니면 흉신보다 한 단계 더 높거나.”
룬다가 뭔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엘다르가 말했다.
“어쨌든 저 코프릭이라는 녀석은 꽤 강해 보이는데, 아무리 총으로 무장했다고 한들 현재 무력 수준으로 상대하기 까다롭지 않을까요? 역시 라크락을 내보내는 게…?”
“벌써 그런 고급 카드를 내보낼 수는 없지. 게다가 바센이 원하는 대로 선제공격에 나서게 되면 적 영역에서 싸워야 하니까 페널티도 받을 테고.”
“그럼 좋은 방법이 있나요?”
“응. 코프릭은 꽤 강해 보이니까, 오히려 잘 됐지.”
“잘 됐다고요?”
“창조물을 하나 만들 거야. 내가 자주 쓰던 방법 중에 하난데, 이미 템플릿이 있으니 만드는 건 간단해. 단지 스킬을 넣을 때 요구되는 소영역 레벨이 있는데, 나만으로는 부족해.”
“아, 그런가요?”
성운이 엘다르의 얼굴을 가리켰다.
“따라와.”
“예?”
옆에 있던 룬다도 덩달아 당황했다.
“어?”
─┼
며칠 뒤.
창조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고르디우스’라고 이름 붙여진 작고, 길쭉한 생명체는 지상에 내려앉자마자 열심히 기어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형제들에 비하면 정말이지 작고 연약한 몸이었다.
몸길이는 겨우 10cm 남짓 될까?
믿을 것은 오로지 몸의 끝에 있는, 강철조차도 베어 물 수 있는 강력한 이빨뿐.
이 주변에 있는 가장 약한 생명체인, 팽골리안들이 가축으로 기르는 미니피그들조차도 이 고르디우스에게는 천적이나 다름없을 터였다.
고르디우스는 연약한 몸뚱이를 열심히 굽혔다 펼치며 기어갔다.
-나는… 살아남으리라…
지렁이 같은 생명체에게 있어 지나치게 비장해 보이는 말이었으나, 고르디우스는 이 작은 몸에도 충분한 지성을 갖추고 있었다.
고르디우스는 자신의 기원은 물론, 자신의 목표도 알고 있었다.
-나는 주시자 야천과 신들의 전령 무영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
물론 조금은 왜곡되게 알고 있긴 했다.
-내 목표는… 저기 저…
고르디우스는 자신의 연약한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고통에 굴하지 않고 자신을 가로막는 높다란 단상에 몸을 밀착해 구불구불 기어 올라갔다.
고르디우스는 오로지 냄새와 온기만으로 자신이 향해야 할 곳을 익혔다.
고르디우스가 향하는 곳은 제단 위, 벌벌 떨며 묶인 채 기다리고 있는 팽골리안들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팽골리안 하나의…
-…구멍!
고르디우스는 이윽고 가장 후열에 앉아 있던 팽골리안의 다리를 타고 올라가 신체 외부와 내장을 있는 구멍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산 제물로 올라간 팽골리안은 느닷없는 감각에 눈을 번뜩 떴다.
사제 하나가 이상한 반응을 보이는 팽골리안을 보고 눈을 흘겼지만, 모른 척했다.
‘어디 병든 놈 하나가 껴들어 왔나 보지. 하지만 상관없다. 저 먹보 괴물은 아무거나 먹을 테니.’
거대한 그림자가 덮쳐 오자, 팽골리안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라크샤사들의 수호자 중 하나이자, 나우알, 코프릭이었다.
-이놈들, 요기 좀 하자꾸나!
코프릭이 이윽고 고르디우스가 들어간 팽골리안을 집어 삼켰다.
고르디우스는 이제 자신의 다음 차례가 왔음을 알았다.
고르디우스는 코프릭이 팽골리안의 몸을 씹어 삼키기 전에 밖으로 나온 다음, 재빠르게 코프릭의 입천장을 찢으며 솟구쳤다.
-나는 기만자 고르디우스.
-음?
코프릭은 별안간 입안의 통증과 더불어, 자신의 머리통 속에서 울리는 듯한 목소리를 들었다.
-야천께서 몸을 빚고, 무영에게서 배우로서의 기술을 배웠으니…
고르디우스는 자신과 코프릭의 뇌 사이를 가로막는 두개골과 혈뇌 장벽, 그리고 척수액 사이를 재빨리 파고들었다.
-나는 너가 되리라.
고르디우스는 연가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