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궁중 마법사라고?”
“그래.”
바센 라크 오라즌의 질문에 마즈다리가 답했다.
“궁을 위해서 일하는 마법사라는 말이지. 폐하가 먼저 제안해 왔고, 내가 응했다.”
바센은 마법사가 싫지 않았지만, 마법사에 대한 오래된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
마즈다리가 그에 대해 눈치챈 듯 말했다.
“전쟁을 하는데 마법사가 있으면 어떨 것 같나?”
“흐음. 솔직히 말해서 모르겠군.”
“의외인데. 마법을 몇 번인가 보긴 했잖은가?”
“하지만 모두 무언가를 죽이기 위한 것이었지. 혼자서 그걸 해내는 건 칭찬해야겠지만, 그런 마법사에 전력을 치중했다가 그 마법사를 잃게 된다면 손해 또한 극심하다.”
마즈다리는 그다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지점이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호응했다.
바센이 계속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마법사와, 마법사와 같은 화력을 가진 총사 부대를 꾸리는데 비용이 같다면 마법사 보다는 총사 부대를 꾸리는 쪽이 좋겠지. 총알 한 발로 마법사가 죽으면 부대 하나를 통째로 잃는 셈이지만, 총사 부대는 부대원 하나를 잃을 뿐이니까.”
“과연.”
마즈다리가 답했다.
“하지만 마법사는 재주가 좀 더 있다.”
“이를테면?”
마즈다리가 잠시 기다리라는 듯 손바닥을 내보이곤 바닥에 마법진을 슥슥 그려 댔다.
바센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티오네 이티모는 자신의 선원들과 함께 일대에 남은 위협이 없는지 확인하고 있었는데, 만티코어가 수호자로 짐작되는 만큼 더 이상의 별다른 위협은 없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학자들이 고대 유적을 들여다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로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즈다리가 말했다.
“끝났군. 여기에 이걸…”
마즈다리는 주머니에서 실지렁이를 한 움큼 꺼냈다.
“먹는 건가?”
“뭐? 아니, 아니지.”
마즈다리는 마법진 위로 실지렁이를 흩뿌렸는데, 마법진이 작게 빛을 발하더니 실지렁이들이 꼬물꼬물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센은 그야 실지렁이들이 마법진 밖으로 도망가려나 보다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실지렁이들은 몸을 구부리거나 펴고, 서로의 몸에 얹히더니 글자가 되었다.
바센은 실지렁이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바센과 접촉했습니다.
“…이게 뭐지?”
마즈다리가 말했다.
“내가 만든 문장이야. 이제 다음 문장이 어떻게 될지 보자고.”
실지렁이들이 다른 문장으로 바뀌었다.
-문제는 없나? 바센? 마즈다리도?
마즈다리가 바센에게 물었다.
“폐하께서 그대에게 별 일 없으시냐고 묻는데, 어떻게 답할까?”
바센이 당황하며 말했다.
“이게… 폐하라고?”
“아니, 이 실지렁이들이 폐하인 건 아니고.”
“…나도 그쯤은 안다. 하지만 어떻게 된 거지?”
마즈다리가 마법진을 툭 두드렸다.
실지렁이들이 움직이는 동안 마즈다리가 말했다.
“통신 마법 중 하나다. 두 개의 마법진을 그리고, 마법진을 연동시키는 거다. 그런 다음 마법진 위에 생물들을 조종하면 같은 행동을 하게 되지. 그래서 되도록 몸이 유연하고 많은 숫자를 들고 다닐 수 있는 실지렁이를 쓰는 거고.”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신기하군.”
바센이 조용히 실지렁이들을 바라보는 사이, 실지렁이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대화를 만들어 냈다.
-두 사람 다 무탈합니다.
-다행이군. 명령에 대해… 변경된 사항은 달리 없다.
-그리 알겠습니다.
간결한 대화로 끝났다.
바센이 말했다.
“이거라면 확실히 큰 가치가 있군.”
“그렇게 생각하나?”
“전략은 결국 그 전략이 얼마나 빠르게 전달되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으니까. 좀 더 고민은 해봐야겠지만.”
마즈다리는 다시 주섬주섬 실지렁이들을 주워 담았다.
“쓸모가 있다면 다행이지. 폐하는 마법사를 더 늘리고 싶어 하시더군.”
“흐음, 자네 생각엔 그게 괜찮다고 생각하나?”
“나야 모르지. 하지만…”
마즈다리는 바센의 걱정을 이해했다.
“자만심을 가지는 마법사들은 있을 거다. 신의 힘을 흉내 낼 수 있다면 신 흉내를 내도 괜찮지 않냐고 생각할지도 몰라. 그런 이들은 교육 과정에서 내쫓을 수 있어야겠지. 지금 있는 마법사들이 훌륭한 스승이 되어야 하기도 하겠지만.”
“자네는?”
바센의 물음에 마즈다리는 잠시 침묵했다.
마즈다리가 자신의 왼손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겐 증오가 있었지. 저주받은 아이로 자라나 잘난 것들이라고 뻐기는 것들에게 한 방 먹여 주고 싶었어.”
“하지만 흑린이 그 기회를 훔쳤다고 생각하나? 어떤 면에선 그렇게 볼 수도 있을 텐데.”
마즈다리가 웃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 완전히 마음에 든다고 하진 않겠지만, 증오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걸 꼭 다른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할 필요가 없지.”
친구들의 복수라고 할 만한 것은 대륙 전쟁을 통해 충분히 갚았다고 할 수 있었다.
트롤들은 이제 힘을 잃었다.
여전히 자치 국가로서의 기능하고는 있지만 흑린 제국의 제국령 중 하나에 불과하기도 했다.
유년의 고통이라고 할 만한 것도 회복되고 있었다.
야천이 그들을 구원하러 온 도래자라고 하지 않는가?
바센이 마즈다리의 어깨를 툭 치곤 연구자들을 향해 걸어갔다.
“마법사가 되는 법만이 아니라 어른이 되는 법도 배운 모양이군.”
“아마도.”
이후 며칠간 연구자들은 천막을 치구 발굴을 이어나갔다.
찾아낸 것은, 큰 가치가 있긴 하지만 모두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이었다.
바센은 훼사의 등에 묶인 커다란 황금 서판을 보고 말했다.
“칼론바 황금 서판? 오라즌 궁정 창고에 가면 쌓여 있지 않나?”
티오네가 말했다.
“그 정도는 아닐걸요.”
과거 신들이 떠나가기 전 찬란한 문명을 자랑했다는 대제국 ‘칼론바’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서판이었다.
유적 또한 칼론바 제국에 속했었던 것으로 보이며, 칼론바가 단순히 하나의 대륙만이 아닌 이 머나먼 남쪽 대륙까지 영향력을 끼쳤음을 보여주었다.
마즈다리가 황금 서판을 보며 말했다.
“그래도 내용은 흥미롭군.”
“고대어도 읽을 수 있나?”
“마법사들이 마법진에다 쓰는 글자가 뭐라고 생각하는 건가?”
“글자였나?”
티오네가 괜히 창피해하며 바센의 옆구리를 찔렀다.
바센은 당황하며 제국의 왕자 옆구리를 서슴없이 찌르는 엘프를 곁눈질했다.
마즈다리는 바센의 말을 못들은 셈 치고 말했다.
“내가 봐도… 오라즌의 궁정에서 봤던 칼론바 제국의 황금 서판들과는 다른 내용이야. 그 황금 서판들에 적힌 내용은 주로 칼론바 제국이 얼마나 휘황찬란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지. 마치… 누구에게 자랑이라도 하듯이. 하지만 여기 적힌 내용은 좀 다르군.”
“어떤 부분에서?”
마즈다리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여기에 담긴 글은 칼론바 제국이 어떻게 멸망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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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서판:위대한 칼론바 제국의 멸망(3)
황금 판 위의 새겨진 글은 과거 ‘칼론바 제국’이라고 불렸던 고대 문명의 멸망 과정에 대해 서술되어 있습니다. 찬란했던 문명인 칼론바 제국이 어떤 식으로 멸망해 갔는지에 대한 중요 사료입니다… (자세히 보기)』
성운은 마즈다리보다 더 관심 있게 이 황금 서판을 들여다보았다.
성운만이 아니었다.
플레이어들은 황금 서판이 완전히 발굴된 이후 모두 자리에 모여 있었다.
위즈덤이 자신의 창을 열심히 뒤적이다, 창을 내리고 말했다.
“데이터베이스에 없어. 완전히 처음 보는 유물이야.”
성운은 엘다르에게 말했다.
“엘다르, 어떻게 생각해?”
“네? 저요?”
“네가 전문가잖아.”
엘다르는 의아한 듯 플레이어 일동을 둘러보았다.
다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사이엔가 로스트 월드의 설정과 스토리 담당은 엘다르가 전담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제 생각엔…”
“내려가서 말해.”
“…네.”
엘다르는 종종 걸음으로 제1 회의실의 계단을 내려가, 강단으로 올라갔다.
엘다르가 말했다.
“제 생각엔, 아주 중요한 유물이지요.”
“이유는?”
“지금까지 로스트 월드의 설정에는 미싱링크가 있었습니다. 신들이 언제, 어떻게, 어떤 연유로 떠나갔냐는 건데요. 보통 플레이어들에게 크게 중요한 건 아니고, 사실 이런 종류의 설정은 얼렁뚱땅 넘어가도 게임을 즐기는 데는 상관이 없었죠.”
장완이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니지.”
“그렇죠. 저희는 아니죠.”
엘다르가 모두가 볼 수 있는 그림판을 켜서는 이리저리 적기 시작했다. 달필이었다.
“절우비와 샤차 같은 설정 속에만 존재했던 고대의 악으로 추측되는 악신들이 정말로 등장했고, 이 때문에 저희는 승리 조건의 불확실함에 직면 했으니까요. 극단적으로 본다면 이건 그냥… 거대한 음모일지도 모릅니다.”
룬다가 손을 들었다.
“질문인가요?”
“질문은 아닌데,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줄래?”
“글쎄요… 저희를 이곳에 데려온 알딘이라는 존재가 말한 대로 저희에게 단순히 게임 한 판 시켜 보는 게 아니라, 다른 목적을 위해서 데려온 걸 지도요? 사실 게임을 좀 했다고 신이 되게 해주겠다는 보상을 줄 이유가 없잖아요?”
크람푸스가 정리했다.
“…그러니, 설정의 미싱링크가 그 음모를 파헤칠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거지.”
“네. 맞아요.”
엘다르가 임시 칠판에 줄을 길게 긋고 말했다.
“아무튼 이번에 밝혀진 황금 서판을 토대로 대강의 멸망 타임 라인을 보자면, 신들이 떠나간 뒤에도 칼론바 제국은 존재했어요. 오히려 신들이 떠나간 걸 기꺼워한 것 같았죠. 하지만 그건 고대의 악이 이끈 음모였는데, 제국의 멸망은 그 다음에 일어나요. 이번에 드러난 멸망의 사유가 재밌어요.”
엘다르는 버섯을 그려 넣었다. 그림 솜씨도 뛰어났다.
“거대한 폭발이었죠. 그리고 로스트 월드에서 이 정도로 묘사되는 폭발을 일으킬 방법은…”
“핵폭발?”
성운이 말했다.
엘다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마법 중에도 비슷한 게 있긴 하지만, 묘사되는 낙진 같은 걸 보면, 정확히는 핵전쟁이었죠. 이후에 묘사되는 기후 상황도 흔히 말하는 핵겨울이랑 비슷해요. 그것보단 좀 더 따뜻해 보이지만.”
위즈덤이 말했다.
“핵가을이라고 한다더군. 이론적으로 지구의 핵이 다 지표에서 폭발해도 극적인 핵겨울보다는, 얼어붙진 않지만 낮은 기온이 이어지는 핵가을에 가까울 거라고.”
“그럼 아마 그런 것 같아요. 핵가을. 그 때문인지 칼론바 제국이 일순간에 소멸한 건 아니지만, 엄청난 타격을 입고 사양길로 접어들었다는 건 확실해 보여요. 중요한 건 이번에 발견한 황금 서판은 일종의 고발문이라는 거죠. 제국을 교란에 빠트려 서로를 향해 핵미사일을 쏘게 만들었던 범인의 이름이 적혀 있어요.”
엘다르가 그 이름을 적었다.
-아슈라다.
룬다가 또 손을 들고 말했다.
“저 아슈라다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아슈라다일까?”
“글쎄요. 확신은 못하죠. 하지만 드래곤은 설정상 수명이 무한하니, 그때부터 살아 있었어도 이상하진 않아요.”
“하지만 그때의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왜 자신이 지배하는 라크샤사들을 그대로 두고 있는 걸까?”
“글쎄요. 칼론바 제국은 아마도 저희 지구랑 비슷한 수준의 문명을 가지고 있었어요. 부분적으론 좀 다르겠지만. 설정상 드래곤들은 인과 안에 있는 존재니까, 신앙 같은 자원을 소모하지 않아도 자신의 지식을 마음대로 풀 수 있을 텐데요.”
성운이 말했다.
“뭐… 그런 건 그렇게까지 중요한 건 아냐. 그 드래곤의 머리를 까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일이니까.”
시스템 창을 바라보던 위즈덤이 말했다.
“그렇담, 희소식이군.”
“희소식?”
“파비랑 연합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규모 나선 날개를 가지고 진격 중이군.”
성운이 바로 기다리던 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