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163
163화
리자드맨 바센 라크 오라즌이 말했다.
“그 걸어 다니는 성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고.”
바센은 종이를 말끔하게 펴고 목탄을 쥐었다.
“우선… 이 성에는 발이 달렸어. 몇 개라고 했지?”
“스물다섯 개요.”
엘프 티오네 이티모가 답하자 바센이 가로저었다.
“아니, 내가 말을 잘못했군. 큰 것, 중간 것, 작은 것 이렇게 나뉘는데 각각이 몇 개였지?”
옆에 있던 팽골리안 마고가 말했다.
“에흠, 큰 것 세 개, 중간 것 아홉 개, 작은 것 열 세 개네요.”
바센이 경쾌한 스케치로 다리를 그려보았다.
“대충 이런 모양이었던가?”
“예에. 그런 게 다리 같은 모양이지요.”
“이게 통짜로 쇳덩이고 말이지.”
“예에.”
바센은 잠시 말없이 대충 다리를 그려 넣었다.
바센이 티오네에게 말했다.
“이번에 새로 온 화약 기술자들이랑 이야기 해봤다고 했던가? 내가 궁금해했던 것도 물어보고?”
“아, 네.”
“결과는?”
“그게… 안됐지만 힘들 거라던데요. 이동성이 가진 무게를 추산했을 때 단순한 강철로도 힘들 거라고요. 마법이 더해지거나 저희가 모르는 수준의 기술력으로 만들어졌을 텐데, 저희가 가진 단순 화약으로는 작은 다리들 정도가 한계일 거라고…”
바센이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탐험단 단원들이 다리에 바짝 붙어서 화약을 설치해도 말이지?”
“네. 같은 실험은 아니지만 궁에 있는 기술대에서 어느 정도 확인한 게 있는데 일단 저희가 가진 화약량을 다 쏟아부어도 안 될 거라네요.”
바센은 마즈다리를 보았다.
마즈다리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마법은 만능이 아니다. 물론 내가 아직 찾아내지 못한 마법 중에 저 이동성을 박살 낼 만한 마법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저 작은 다리 하나를 붙들어 두는 게 전부일 거다.”
“흐음. 뭐, 처음부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어.”
바센은 그림 옆에 ‘다리 파괴는 기각’이라고 써넣었다.
현재 바센이 이끄는 탐험단의 목표는 이동성이었다.
가능하다면 이 이동성을 조사하는 것을 미루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사제들의 말에 의하면 만신전의 신들께서 이동성을 은근히 원하고 있다고 말해 왔다.
특히나 죽은 신을 되살리는데 앞장서고 있는 암본의 교단은 보다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었다.
그저 말뿐인 지원이 아니라 실질적인 지원금을 받고 있는 입장에서 그런 의지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바센은 꽤 오랜 시간 이동성을 관찰하고, 이동성에 들어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동성의 다리를 부수는 것이라 결론 내렸다.
이동성은 게처럼 두 개의 관절로 꺾이는 서로 다른 크기의 스물다섯 개의 다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어느 다리를 부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대략 3분의 1 정도만 부수어도 이동성이 기능하지 못하리란 계산이 나왔다.
하지만 조사 결과 이동성을 지탱하는 다리들은 너무 튼튼했다.
바센이 말했다.
“땅을 파는 함정은?”
함정은 황당해 보이는 아이디어지만 바센으로선 꼭 안 될 것도 없다고 판단했다.
땅 위를 걸어 다니는 건 죄다 구덩이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그게 성이라고 해서 안 될 이유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티오네가 부정했다.
“안 될 거예요.”
티오네가 반쯤 접혀 있던 지도를 펼쳤다.
“이게 이동성의 이동 경로예요.”
지도에는 이리저리 찌그러진 원 비슷한 것이 그려져 있다.
“이 길을 따라서 계속해서 돈다는 건가? 그럼 오히려 함정을 파기 좋아 보이는데. 따로 유인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그 말은 맞는데, 두 가지 이유에서 아니에요. 일단은 이 길을 한 바퀴 도는데 대략 43일 정도가 걸려요. 놈이 지나가자마자 땅을 파기 시작해도 43일 만에 이동성을 넣을 만한 구덩이를 파긴 힘들지 않을까요?”
바센으로서도 획기적인 방안은 떠오르지 않았다.
“다른 문제는?’
“이동성은 그냥 제멋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누군가 조종을 하는 거예요. 어지간한 함정이라면 먼저 알아차리겠죠. 게다가 이동성의 앞으로는 라크샤사 정찰대가 먼저 가서 위험이 없는지 확인하죠.”
바센이 말했다.
“그게 문제란 말이지. 라크샤사들.”
이동성은 보통 크기의 사람이 걷는 속도와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크기에 비하면 상당히 느린 편이지만 위에 쌓아올려진 성의 크기와 쉬는 일 없이 꾸준히 움직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납득이 가는 속도였다.
하지만 그 때문에 현재 바센이 가진 전력으로는 공격하기 미묘한 속도이기도 했다.
보통 크기의 사람이 걷는 속도와 비슷하다는 건, 팽골리안들에게 제법 빠른 걸음을 요구하는 것이고, 이동성을 지키는 라크샤사들이 성 밖에서 지연 전투를 하게 된다면 다수의 병력으로 성을 따라잡는 건 고역이 될 수도 있었다.
“성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는 많다지만…”
“에구, 좋다고만 할 수는 없지요.”
마고가 설명하는 사이, 바센은 틈틈이 정찰병들이 그려 온 단편적인 그림을 참고해 완성된 이동성을 그렸다.
“듣자 하니 과거에 라크샤사 부족들이 통합되지 않았을 적에, 이동성이 공격을 받으니 타고 오르는 사다리를 끊어 버리는 것만으로도 공격을 봉쇄했다고 하니…”
“다리를 타고 올라가 침입하는 건?”
“녹이 슬고 이끼가 잔뜩 껴서, 나무 탈줄 아는 이들이라면 수월하게 오르긴 하겠지만 큰 다리 세 개 말고는 달리 올라갈 길이 없지요. 그리고 그 세 개의 다리가 연결된 부분은 밤낮으로 라크샤사들이 들여다보고 있고…”
“흠.”
바센이 말했다.
“결국 그 방법 밖에 없군.”
“그 방법이라면…?”
바센이 완성된 이동성 위에 가볍게 날개 그림을 그렸다.
엉성했지만 나선 모양의 날개 때문에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날아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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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리들이 개발한 나선 날개는 오구리 2인에 더해 돌멩이 조금을 더 태울 수 있는 게 한계였다.
덕분에 같은 체격을 가진 팽골리안이 둘 정도 탈 수 있었고, 리자드맨이나 인간 같은 중간 체격의 종족이라면 한 명 정도, 그 이상은 탈 수 없었다.
그 때문에 이동성을 공격하기 위한 탐험단이 이용할 나선 날개의 숫자는 더 적다고 봐야 했다.
오구리들의 나선 날개를 노획한 뒤 제대로 고친 물건은 여섯 대 밖에 없었고 그중 두 대는 오라즌의 궁으로 옮겨진 상태였다.
‘더 많은 나선 날개가 필요하다.’
문제는 흑린에게, 적어도 현재 원정 오게 된 탐험단에게 그런 기술력이 없다는 점이었다.
바센은 당장은 흑린의 최고 기술자들도 나선 날개를 똑같이 구현해 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고무를 만드는 두두바 나무가 흑린에는 없으니까.’
현재 남쪽 대륙의 두두바 나무 산지는 동쪽으로 치우쳐져 있는 것 같았는데, 이것 또한 추측이었다.
일단은 그 지역에 위치한 오구리들이 그런 고무 동력을 생산해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부터 만들 시간도 없지.’
바센은 앞으로의 일주일 정도가 이동성을 공격하는 최적의 시간이라고 보았다.
이동성이 팽골리안들의 도시 시올을 향해 오고 있었다.
정말로 시올까지 올 것인지, 아니면 일반적인 둘레를 계속해서 돌고 있는 것인지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가까워지는 지금이 공격할 적기였다.
더군다나 라크샤사들에게 무언가를 준비할 더 이상의 시간을 주고 싶지도 않았으며, 2차 원정대가 합류한 지금이 최적기라고 바센은 생각했다.
‘방법은 하나뿐.’
바센은 파비랑 연합의 나선 날개를 빼앗을 생각이었다.
비록 파손이 되더라도 간단한 부품을 갈아치우는 것 정도는 원정대와 팽골리안도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원정대를 태울 40에서 50여기 정도가 있다면 이동성을 충분히 공격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파비랑 연합 또한 이제 우리의 화약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대처하겠지. 그러니 수월한 전투를 위해서는 놈들의 약점을 캐내야만 한다.’
바센은 포로를 잡아 둔 감옥으로 걸어 들어갔다.
“골트 테바리, 잘 있었나?”
오구리 골트 테바리는 눈에 잔뜩 힘을 주고 말했다.
“흥! 이제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대와는 말하지 않는다.’
“흐음.”
바센은 다소 까다롭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지난 며칠 간 골트는 자신이 심문 당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바센에게 파비랑 연합에 대해 재잘재잘 떠들어 댔었는데, 이제 와서 뒤늦게 그것이 정보를 캐는 일이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바센으로서는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아니 이제 와서 뭘.’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이제 와서라도 침묵을 지키기로 한 것이 파비랑 연합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또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바센이 아무 생각 없이 골트를 만나러 온 것은 아니었다.
‘카일이 어떻게 말하라고 했더라….’
바센은 마즈다리의 마법을 통해, 동생이자 황제인 카일에게 이 일에 대해 조언을 구했는데, 카일은 꽤나 간단히 답을 주었다.
실제로 카일의 심문법을 사용했을 때 될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바센은 골트에게는 충분히 통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생각났다.’
바센이 말했다.
“이봐, 골트.”
“말 안한다. 흡.”
“우리는 널 처형하기로 했다.”
“말 안한… 뭐?”
골트가 얼이 빠진 표정이 되었다.
바센은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아니, 뭐 바로 당장은 아니고.”
“…우리 파비랑 연합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내일 아침 무렵에.”
“헉.”
이제 골트의 눈가에 살짝 눈물이 맺혀 있었는데, 바센은 애써 못 본 척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원정을 와 있는 입장이다 보니 먹을 입이 너무 많아서 좋을 게 없는데, 굳이 ‘쓸모없는’ 포로를 많이 잡아 둘 필요가 없다는 거지.”
바센은 여기서 골트의 눈치를 슬쩍 보았다.
골트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더니 눈을 콱 감고 말했다.
“그래! 죽여라! 이 한 목숨 파비랑 연합을 위해 바칠 수 있다면!”
바센은 알게 모르게 안도했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마음이 꺾이면 안 될 일이지.’
바센이 말했다.
“아니, 꼭 죽는 길만 있는 건 아니다.”
“그럼?”
“포로 중 절반만 죽이기로 했거든. 그런데 또 반대 의견이 나와서, 쓸모 있는 포로라면 남겨 놔도 되지 않겠냐는 거야. 그래서 고무 동력 기계의 종류와 각각의 약점을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살려주기로 했어.”
그러자 골트가 말했다.
“하, 하지만 모두 침묵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지.”
“그럼 결국 모두 다 사형을…”
“할 생각은 없어. 우리 흑린은 명예를 아니까. 신의를 가진 이들에게 가치가 있다고 믿지. 아, 참고로 고무 동력 기계의 약점에 대해서는 선착순으로 듣기로 했어. 말하더라도 늦게 말해서 여섯 명의 포로 중 네 번째가 되면 끝인 거지.”
그러니 골트의 상황은 이랬다.
포로 여섯이 모두 침묵하면 모두 살아남는다.
하지만 하나라도 입을 열기 시작하면, 입을 연 세 사람만 살아남을 수 있다.
바센은 골트가 충분히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돌아섰다.
“말하고 싶어지면 부르라고.”
돌자마자 골트가 말했다.
“잠깐! 기다려라!”
“…아직 감옥 문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는데?”
“그러니 불러 세운 것 아닌가?”
바센이 돌아서자 골트가 큰 결심을 한 듯 비장한 눈으로 말했다.
“모든 걸 말하겠다.”
바센은 웃음을 참기 위해 잠시 뒤돌아 선 채로 있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