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bula’s Civilization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파비랑 연합은 지형지물을 무시하고 날 수 있는 나선 날개가 있다고 하더라도 지상군, 그것도 정글에서 나무를 피해 굽은 길로 진행하는 톱날 전차의 속도에 맞춰야만 했다.
따라서 탐험단 단장인 바센 라크 오라즌에겐 전투를 치를 수 있는 장소를 찾고 검토할 시간이 충분했다.
바센이 고려한 것은 언덕만이 아니었다.
파비랑 연합의 진군 방향을 고려할 때 바센이 전투에 쓸 수 있다고 판단한 언덕은 다섯 개가 넘었다.
그마저도 바센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건 이미 한 차례 승리를 거두었던 나선 날개에 대해서가 아닌, 톱날 전차에 대해서였다.
바센은 늪을 찾고 있었다.
정글 지형은 대체로 습도가 높은데다 짧은 내천과 못이 드문드문 있었다. 그리고 그 중에는 수생 식물들이 겹겹이 쌓이고 젖은 흙바닥이 푹푹 꺼지는 늪도 존재했다.
‘사람의 머리까지 빠진다는 이야기 속의 늪은 필요 없어. 발목까지만 잠겨도 충분하다.’
물론 팽골리안들의 말에 따르면 라크샤사도 빠지면 나오지 못하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늪지대가 존재했지만, 바센의 전략에서 그 정도 늪은 필요 없었다.
사람이 빠지지 않을 정도로 진흙이 제법 단단해도 좋았다.
오히려 바닥은 어지간히 단단해서 그냥 수풀이나 흙바닥처럼 보일 필요가 있었다.
바센은 모험단을 시켜 정말로 늪지대를 어느 정도 평범한 들판처럼 보이게 위장하도록 명령하기도 했다.
‘늪에 빠지는 건 톱날 전차로 충분하니까.’
톱날 전차들이 수십 보를 앞두고 진창에 빠져들고 있었다.
바퀴는 헛돌았고 매섭게 도는 바퀴들은 진흙을 뒤로 퍼내서 파비랑 연합의 오구리들에게 쏟아지다가, 서서히 속도를 줄여 갔고, 곧 하나둘 멈추기 시작했다.
‘되었군.’
파비랑 연합의 작전은 크게 봐선 나쁠 게 없었다.
나선 날개를 먼저 보내 적을 정찰하거나 교란하고, 그 다음 지상군 본대로 적을 치는 것이다.
하지만 파비랑 연합은 자신들의 기술과 전략에 지나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기계적인 대응을 한 것이다.
오구리 보병들이 당황하며 톱날 전차를 빼내기 위해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진창에 단단히 처박힌 톱날 전차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놈들은 발이 늪에 빠지고 진흙까지 뒤집어썼군.’
바센이 검을 빼 들었다.
“쏴라!”
바센의 명령에 총사들의 총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탄 몇 개가 톱날 전차의 전면에 맞으며 불꽃을 튀기기도 했지만, 톱날 전차를 빼려고 그 옆에 붙었던 오구리들이 우수수 쓰러지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바센은 놈들을 확실하게 제압하려면 총을 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돌격하라!”
바센의 명령에 복명복창이 이어졌다.
“돌격하라신다!”
“돌격!”
오구리들이 허둥지둥하며 투창과 화살을 제대로 쏘지 못하는 사이 삽시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팽골리안을 주력으로 하는 보병대가 단창을 들고 오구리들을 공격했다.
오구리들은 전황이 뒤집어지자 등을 보이며 삽시간에 도주했다.
바센이 외쳤다.
“정글에서 나선 날개를 회수해야만 한다! 나선 날개를 회수할 때 적들의 복병이 있다면 곤란하니 놈들을 놓치지 마라!”
─┼
만신전, 제1 회의실.
크람푸스가 말했다.
“네뷸라, 귓속말 왔는데?”
“누구?”
“우리가 지금 상대하는 그 친구. 알디.”
“연결해 보자고.”
플레이어 ‘RD’는 파비랑 연합과 접촉한 뒤 플레이어 목록에 확인되는 닉네임이었다.
크람푸스는 화상 채팅창을 밀어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띄웠다.
룬다가 말했다.
“여기 말고 식당은 어때?”
크람푸스가 룬다를 돌아봤다.
“자리를 옮기자고? 왜?”
“그쪽이 더 진중해 보이지 않겠어? 여기 이대로 회의실에 앉아 있으면, 그냥 할로윈 날 강의 듣는 대학생들 같은데.”
화상 채팅창이 연결되었다.
화면에 떠오르는 상대의 실루엣을 보고 성운이 말했다.
“별로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상대방, RD가 말했다.
“여기 대장이 누구냐?”
룬다가 웃기 시작했고 크람푸스가 고개를 숙였다. 장완은 태연하게 앉아 있었지만 어깨가 씰룩거렸다.
룬다가 웃음 중간에 중얼거렸다.
“날개 접은 노란 새… 큭. 너무, 너무 귀여워….”
성운도 가면 안에서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는데, 위즈덤은 정말로 웃지 않는 것 같았다.
덕분에 위즈덤만이 웃음기 하나 없이 말을 하는데 성공했다.
“먼저 대화를 건 쪽이 자기를 소개해야지 않을까 싶은데, 알디.”
RD가, 자못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RD의 플레이어 외형은 고무 오리 장난감이었다.
목욕을 싫어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물 위에 둥둥 뜰 수 있도록 만들어진, 욕조 한편에 놓으면 어울릴 만한 노란 오리 모양 고무 장난감이었다.
“나는 파비랑 연합을 이끌고 있는 플레이어 알디다.”
성운이 생각했다.
“오리너구리에 러버펑크에 고무 오리 장난감이라니. 컨셉에 심취했군.”
“…처음 보는 사람한테 무례한 거 아니냐, 너?’
“아, 무심코 말했군. 미안하다. 생각만 한다는 게.”
“어딜 봐도 놀리는 거잖아, 임마.”
고무 오리가 주둥이를 씰룩거렸다.
“어쨌든… 내가 이렇게 말을 하려고 하는 이유는…”
“이유는?”
“조건부 항복을 위해서다.”
성운이 답했다.
“그리 놀랍지는 않군. 그런데 조건부라니?”
“일단… 네놈 뒤에 웃고 있는 놈들부터 말릴 수 있겠나?”
성운이 뭐라 하기도 전에 룬다와 크람푸스와 장완이 슥 일어나더니 그대로 퇴장했다. 룬다는 뭐가 그리 웃긴지 배를 잡고 웃느라 회의실을 나가기 전까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위즈덤이 RD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좋은 전략이군. 외형으로 다른 사람을 웃긴다는 거. 여기 평소 웃음이 부족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대로 넘어가 버렸겠군.”
“쟨 또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됐어. 넘어가. …다른 조건도 있나?”
RD가 말했다.
“더 이상 공격하지 마라.”
“항복한다는 거 아니었나?”
“이 이상의 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더 이상 공격을 해오면 혼쭐을 내줄 알아.”
성운이 말했다.
“그쪽은 보여줄 패를 다 보여준 거 아닌가? 무슨 자신감이지?”
“패를 다 보여준 건 너희겠지. 모르겠나? 나의 찬란한 고무 기술 문명을? 내 문명은 그 어떤 문명보다도 희소가치가 있고 진보해 있다.”
성운은 생각했다.
‘허장성세인가? 아니면 진짜?’
어느 쪽이든 그럴듯했다.
RD와 파비랑 연합이 보여준 허술함은 충분히 RD를 얕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신대륙에서 어느 정도 세력을 유지하고 토착민인 라크샤사들을 노예로 삼고 있다는 건 나름 형편이 괜찮다는 말이었다.
무엇보다도 전력을 다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신의 힘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신인 이상 3천 명 정도의 싸움에서 꼭 신앙 자원을 소모할 이유는 없었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뭐, 어느 쪽이든 상관없나?’
사실 성운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적어도 당분간은 RD를 공격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필요한 나선 날개도 모두 회수했어. 이동성만 빼앗고 나면 제4 대륙 정벌은 어렵지 않을 거야.’
드래곤이라는 크나큰 적이 남아 있지만, 그 뒤에 따라올 보상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감수할 만한 위험이었다.
때문에 필요하다면 성운 쪽에서 확전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 RD가 정말로 이 대화를 신용해서 병사를 움직이지 않는다면 성운으로서는 나쁠 것이 없었다.
성운이 위즈덤을 바라보았고, 위즈덤은 별다른 의견은 없는 듯싶었다.
성운이 말했다.
“좋아. 그 말대로 하지.”
“당연히 그렇게 나와야지. 내 구역에 침입하면 각오해라, 알겠나?”
성운은 대답 없이 화상 채팅창 크기를 줄였다.
그대로 꺼졌다고 생각했는지 RD의 혼잣말이 들려왔다.
“어휴, 살았다.”
“….”
“어, 뭐야, 안 꺼졌나?”
성운은 화상 채팅창을 껐다.
성운과 위즈덤은 잠깐 서로를 바라보았다.
성운은 RD를 비웃으려다 그냥 작전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생각했다.
위즈덤도 그에 찬성한 것 같았다.
─┼
며칠 뒤, 시올에서 남쪽으로 멀지 않은 곳.
이동성을 공격하는 계획은 단순했다.
나선 날개 육십 여대를 이용해 허공을 가로질러, 이동성의 성벽 안쪽에 착륙한다.
이 육십인, 정확히는 팽골리안과 같은 작은 체구의 종족을 포함해 칠십인 정도 되는 특수한 임무를 맡은 이들의 목적은 ‘이동성을 멈춰 세우는 것’이었다.
그간 주변 라크샤사 부족들을 포로로 잡아들여 심문한 결과 이동성 내부에는 ‘제어실’이라고 부르는 이동성을 조종하는 방이 따로 존재하며, 그 방은 위대한 아슈라다가 선택한 높은 신분의 라크샤사들이 상주하는 것 같았다.
그 방을 제압한 다음 이동성을 멈춰 세우고, 지금부터 이동할 본대가 이동성에 타고 오르는 것을 돕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 다음 바센이 이동성에 올라탄 본대를 지휘해 위대한 아슈라다를 죽이고 이동성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이동성 내부의 라크샤사 부족은 매일 축제를 벌일 정도로 호화스런 생활을 하는데, 그 덕분에 어지간한 시끄러움은 묻어지며, 위대한 아슈라다는 어지간한 소란에는 자신의 방 밖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바센은 마지막으로 부대를 정비하기 위해 둘러보다, 나선 날개 하나에 익숙한 인물이 앉아 있는 걸 보았다.
“마즈다리?”
가루다 마법사 마즈다리가 말했다.
“계획이 어딘가 엉성해 보이더군. 함께 가는 게 좋아 보여서 다른 단원과 자리를 바꿨다. 조금 개조도 했고.”
바센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괜찮겠나? 무게가…”
마즈다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뭘 모르는군, 리자드맨. 우리 종족은 원래 하늘을 날았다. 보이는 것에 비해서 몸무게가 많이 가볍지.”
바센은 본래 등 뒤의 날개로 하늘을 날아다녔다는 가루다 종족의 옛 전설을 떠올렸다.
“그럼 문제없겠군. 잘 따라오도록.”
명령에 따라 고무 동력기들이 각각의 나선 날개에 장착되었다.
바센이 자신의 조종석에서 마찰 고무를 풀자 고무줄이 느리게 풀리기 시작하더니, 곧 나선 날개의 중앙 날개가 맹렬하게 돌기 시작했다.
나선 날개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몇 번이나 연습했지만, 적응이 되질 않는군.’
바센은 나선 날개로 하늘을 날 때마다 어딘가 설레는 느낌을 받았다.
‘본래 하늘을 날지 못해서 그런 건가? 아니면, 우리 종족도 언젠가 과거에 날아 보았기 때문에?’
바센의 의문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사람이 만든 탈것 수 십 대를 발 아래로 둘 수 있는 것은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그저 적으로 상대하기 위해 멀리서 총구를 겨눌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이건 마치 한 무리의… 새 떼가 된 것 같은데.’
실제로 새 떼들이 받을 느낌과 비슷할 거라고 바센은 생각했다.
바센은 마즈다리가 있는 곳을 향해 돌아보았다.
멀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바센은 마즈다리가 단순히 돕겠다는 이유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옛 신의 저주를 받아 더는 날 수 없게 되었다고 하던가? 하지만 이제 저주 따윈 소용없게 되었군.’
노을 녘으로 나선 날개들이 날아올랐다.
이동성을 향해 암습이 시작되었다.